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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실의 근원

자살하면 안되는 이유, 죽음이 두려운 이유, 생명이 소중한 이유

gincil 2016. 5. 6. 00:18

이 세상에는 세상의 실상을 보신 눈뜬 사람과 눈앞의 일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눈을 뜨신 분을 우리는 성인이라고 하고 보지 못하는 자를 중생, 다른 말로 눈뜬장님이라고 한다.

 

인류는 중생의 삶을 살아 왔다.

그래서 인류는 자신이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죽어 어디로 가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래서 현대는 죽음에 대해 이렇게 헤매고 있는 것이다.

 

과거 세상을 보신 성자들은 깨달음의 눈을 얻어 생명의 길을 분명히 일러 주셨다. 그러나 지금 인류는 욕망과 어리석음으로 인해 그 길을 망각하고 또 다시 어둠과 무의미 속을 헤매고 있다.

따라서 눈앞의 일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장님들끼리 아무리 코끼리를 만지고 코끼리의 모습을 이야기해도 진짜 코끼리는 알 수 없는 법이다.

 

따라서 죽음의 실상을 알고자 한다면

그동안 인류가 헤매온 생각 속에서 죽음을 알려고 하지 말고

참된 지혜의 빛을 만나 생명의 실상을 보는 눈을 떠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결코 죽음에 대해 알지 못한다.

 

다행히 그대는 수천년만에 나타난 진리와 인연이 닿아

이제 생명의 실상을 알게 되었으니 참으로 복받은 사람이다.

 

요즘 좋은 죽음(Well Dying)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인생 100세 시대를 맞아 노인인구가 급증하고 치매와 노인병으로 인간의 존엄성이 급격히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인류는 삶이 무엇이고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왜 살아야 하는지, 왜 자살하면 안되는 지, 어떻게 죽어야 하는 지에 대해 알지 못한다.

여기에 대해 답을 모르는 것은 눈뜬 장님인 중생이 당연히 감수해야 할 운명인 것이다.

그게 인생이려니 하고 체념하고 눈을 부릅뜬 채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죽음의 장막 너머로 어쩔 수 없이 떠밀려 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생명과 인간의 의식에 대해 알아보자!

인간이 고귀한 이유는 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 하며 의식이 보고 느끼고 창조하는 작용으로 인해 온갖 문명이 만들어지고 이 세상의 의미와 가치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인간의 의식은 항상 깨어 있고 완전함을 추구하고 있기에 조금의 부족이나 흠도 용납하지 아니한다.

그래서 어떠한 순간에도 깨어서 자신이 무엇인지, 어디로 가는지를 알고자 한다.

그러나 세상은 인간에게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깨어있는 인간의 의식은 더욱 고통스러운 것이다.

인간의 자랑인 정신이 이때는 더욱 고통스런 존재로 작용하는 것이다.

 

인간의 의식이 이러한 고통과 한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이 왜 사는지 죽어서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인간의 의식은 결코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가 생겨났고 성자들은 깨달음을 얻으라고 하신 것이다.

 

왜 인간을 비롯한 지구의 많은 동물들은 자신의 생명을 지키고 죽음을 피하려 하는가?

그 이유는 모든 존재는 살려고 태어나 더 나은 자기를 얻으려 하기 때문이다.

의식을 가진 인간은 여기서 더 나아가 자신의 의미와 가치를 깨닫고 한점의 의문과 부족함이 없는 완전함을 추구한다.

그 이유는 인간의 의식이 완성을 추구하는 존재로 이 우주에서 가장 진기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정신을 완성시켜 신의 경지에 이르고 최종적으로 조물주의 차원에 이르고자 하는 것이다.

동물과 인간과 인간의 정신은 바로 이러한 완성의 흐름 속에 있기 때문에

삶을 통해 더 나은 자신을 이루려고 살려고 하며 죽음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과 뜻은 생명이 타고난 본질로 하늘이 지어놓은 완전한 자연의 질서이다.

 

이러한 인간의 정신은 무지를 깨쳐 모든 의문을 풀고 자신을 정화시켜 완전하게 만들면 그 마음의 꽃이 피어 인간완성의 경지인 해탈에 이르게 되며 마지막으로 조물주의 차원에 이르게 된다.

인간에게는 이러한 길이 있고 무한한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귀하게 태어난 인간의 생명을 함부로 버리려는 것을 방관하지 않고 구하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식의 정화는 모든 생명을 사실과 이치로 축복할 때 그 마음이 밝아져 열매맺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간의 본성적이며 당연한 사랑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것은 그대가 지금 생각에 빠져 살기 때문이다.

눈앞의 현실을 중시한다면 자신의 삶과 영혼을 키울 길을 찾고 행해야 하는 것이지, 이렇게 생각에 빠져 관념의 만리장성 속을 헤매고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완전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정신이 아무 것도 모르는 죽음의 심연으로 끌려가기 싫기 때문이며 인간의 정신이 흠과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자기를 이루고 싶기 때문이다.

 

따라서 완전함을 추구하는 깨어있는 인간의 정신은

자신이 왜 죽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아야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이것을 알아야만 좋은 죽음(Well Dying)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책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면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그대는 숨이 막혀 곧 숨이 끊어질 듯한 고통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뼈가 부러져 하늘이 노랗게 된 고통을 맛본 적이 있는가?

 

죽음의 순간이 오면 어쩔 수 없이 그러한 극도의 고통의 순간이 다가오게 되고 그 순간이 지나면 그대의 영혼이 몸에서 빠져 나가 그대의 육신을 지켜보게 된다. 그때부터 인간의 몸은 생명이 사라진 고기덩어리가 되어 부패하기 시작한다.

 

인간의 영혼이 몸에서 빠져 나오는 순간 인간의 영혼은 몸의 속박과 장애에서 해방되기 때문에 모든 고통에서 해방된 평안함과 희열을 느낀다. 그리고 인간의 영혼은 자신의 육신 위에 떠올라 자신의 몸과 슬퍼하는 가족들을 바라보게 된다. 이것이 죽음 직후의 과정인 것이다.

 

이러한 시간이 지나면 이제 사후의 과정이 시작된다.

인간의 영혼은 과거에 자신이 산 흔적을 자신의 영혼 속에 담기 때문에

사실과 이치에 따라 자연의 흐름에 조화되어 산 영혼은 그 영혼이 맑고 가벼워지고

자연의 흐름과 어긋나게 환상과 거짓을 쫒고 욕망과 집착과 원한에 가득 찬 영혼은 탁해져 무거워지게 된다.

 

그래서 가벼운 것은 오르고 무거운 것은 내려가는 자연의 이치에 의해

인간의 영혼도 자신의 영혼의 맑기와 경중에 따라 사후에 받는 과보도 달라진다.

 

평범하게 산 사람의 영혼은 다시 인간의 영혼을 만들기 때문에 다시 인간으로 태어난다.

이것은 모든 생명의 공통된 원리다.

콩이 콩을 낳고 팥이 팥을 낳듯이 인간은 다시 인간을 낳고 인간의 영혼은 다시 인간으로 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여름날의 소나기처럼 잠이 쏟아지는 가운데 모든 것이 사라지면서 다시 인간으로 윤회하게 된다.

 

그리고 사실과 이치에 따른 삶으로 맑은 의식과 평안을 얻은 영혼은 인간의 영혼보다도 더욱 가벼워져 위로 올라가기 때문에 높은 하늘나라로 올라가게 된다. 이것을 구원을 얻었다고 하며 천국에 오른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완전하게 정화돼서 우주에서 가장 정화된 의식체가 되면 인간완성체인 해탈이 되고 최종적으로 조물주의 자리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잘못된 삶으로 인간의 수준에 해당되는 영혼보다 탁하게 되면 무거워져 낮은 곳으로 떨어져서 지옥에 빠지게 된다.  인간의 영혼이 지옥에 빠지게 되면 귀신이 되어 세상을 떠돌게 되고 온갖 영적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이러한 유혼은 몸이 없는 존재기 때문에 의식활동이 곧 자신의 활동방식이다. 그래서 유혼은 느끼는 것도 무한대로 느끼게 된다. 그래서 조금 뜨거우면 불지옥에 온 거 같고, 좀 추우면 얼음지옥에 온 거 같고, 또 기압이 조금 떨어지면 철혈지옥, 바늘지옥에 와서 온몸이 부서지는 거 같은 그런 고통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인간에게는 삶이 의미가 있고 무한한 가능성이 주어져 있기 때문에 더 나은 자기를 짓기 위해 살려고 하며, 이치대로 살고 세상을 축복함으로써 좋은 원인을 지어 자신을 완성에 이르려고 한다. 따라서 귀하게 받은 인간으로서의 삶을 함부로 포기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한 모든 것은 과학법칙상 반드시 결과를 남긴다. 따라서 살아있을 때 내 속에서 온갖 조화를 부리며 운명과 문명을 창조한 인간의 정신도 반드시 결과를 남긴다. 따라서 나의 생명을 포기한다고 해서 나의 영혼까지도 포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의 목숨은 내 맘대로 할 권리가 있다는 어리석음으로 자신의 목숨을 쉽게 버린다고 한들 그 영혼은 자신이 지은 결과대로 남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자살한 자에게는 약한 의지와 잘못된 삶의 자세가 영혼 속에 남아 계속 불행한 후생을 맞게 된다. 자살로 삶을 마감한 자는 한과 집착 때문에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고 이승을 떠돌며 계속 지옥의 고통을 겪게 된다. 이 땅에서 이룬 것이 하늘에서도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자살한 자는 현실에서 맺힌 한을 저승에 가서도 계속 품고 살게 되는 것이다.



----[질문]---


이런식의 물음에 어떻게 답을 해야할지요?

답을 써내려가다가 제주관을 피력하는건 아닌가해서,

저도 사실과 이치를 보는것이 부족한 중생이라

선생님께 여쭤봅니다.

 

 

 

1.
우선 사람이 자살하면 안되는 이유를 설명하는데에는 생명이 소중한 이유를 먼저 이해해야 하는데, 별로 납득이 가는 답을 얻은적이 없습니다.

며칠전에는 인터넷에서 "생명을 지키려는 것은 본능이다" 라는 글을 본적이 있는데 이 글을 보고 어째서 지구의 많은 동물들은 자신의 생명을 지키려드는 본능이 존재하는가?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생명을 잃고 찾아오는 아무것도 없는 공허함을 두려워해서 일까요? 하지만 이 이유로는 타인이 자의로 목숨을 끊는것을 막을 순 없습니다.

첫번째 질문입니다, 타인이 자의로 목숨을 끊는것을 어째서 사람들은 말리려 드는가? 입니다.

~~~~~~~~~~~~~~~~~~~~
2.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동물은 종족 번식을 하기 위해 고통을 느끼고, 죽음을 피한다 라는 글을 본적이 있는데, 어째서 종족 번식을 해야만 하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그런 원초적인 본능들은 우주가 탄생할때부터 정해진 약속인지 왜 그런게 존재하는지까지 끝없는 의문이 생기더라고요.

우선 제가 생각하기엔 자신의 삶에 대한 집착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것으로는 부족합니다.

고통을 느끼는 이유가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 라는것은 많이 들어왔지만, 죽음을 피해야 하는 이유 자체가 의문이라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여기서 두번째 질문입니다.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 하는 이유 그리고 많은 동물들의 생존본능은 어디서 오는가? 입니다.

저도 분명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지만, 딱히 이유가 고통밖에 떠오르지 않아서 더 궁금합니다.

개인적인 얘기지만, 고통이 없다면 죽을때의 감정을 최후의 감정삼아 느껴보고 싶기도 합니다. 답변자분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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