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진실을 찾아서

어두운 세상에 길은 있는가 를 읽다가 본문

☆ 진실의 근원

어두운 세상에 길은 있는가 를 읽다가

gincil 2017. 6. 9. 12:48

요즘 논쟁이 많은 첨예한 문제를 물었네요.

이념이 결부된 문제라 좀 깊이 있는 이야기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어쨌든 사실을 확인하고자 하는 밝은 마음이 느껴져 좋습니다.

 

지금 현실은 세상을 보지 못하는 눈뜬장님인 중생들이 자기 생각을 진실처럼 함부로 말하고 그 중에서도 거짓된 자들이 말을 더 잘 만드는 경향이 있어, 세상의 인기있는 흐름을 따라 가다보면 실상과 어긋나 자신을 망치고 세상을 망치는 일이 종종 벌어집니다. 중생들은 자신이 바라는 욕망과 이상대로 세상을 만들고자 하지만, 세상은 개인의 욕망과 이상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실과 이치와 지어진 원인에 따라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은 지은대로 이루어지는 완전한 법계입니다.

따라서 세상을 이루는 좋은 뜻을 따르면 좋은 결과를 얻고 밝은 세상이 나타나며 그 뜻과 이치를 어기고 나쁜 뜻을 지으면 불행한 자기와 나쁜 세상이 다가오게 됩니다.

 

그러면 세상을 좋게 하는 뜻은 무엇인가?

그것은 세상이 이루어진 사실과 이치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며 인과의 이치에 따라 공정하게 사는 것이며 양심과 정의에 따라 좋은 원인을 지으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좋은 원인을 짓는 좋은 인간이 되어 남을 해치는 일을 하지 않으며 밝은 세상을 만드는 세상의 주인이 됩니다. 이러한 좋은 뜻에 반대되는 원인을 지으면 나쁜 뜻이 번져 인간도 망하고 세상도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 세상을 보지 못하는 이상주의자가 사실과 이치에 맞지 않는 혼자만의 상상으로 아름다운 거짓말을 만들어 사람들을 어둠과 환상에 빠뜨리는 일입니다. 그 좋은 예가 바로 공산주의를 만든 마르크스로, 그는 사실과 이치에 어긋난 아름다운 공산주의로 사람들을 유혹하여 수십억의 인명을 전쟁의 참화에 빠뜨렸으며, 결국 몇 나라를 망친 이후 사실에 어긋난 허황된 관념으로 판명나 폐기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공산주의가 세상을 망치는 이유는 자연의 이치에 따라 지은대로 받고 양심과 용기있게 사는 주체적인 인간을 만들지 않고, 이상에 빠져 모든 것을 나라에서 보장해주려 했기 때문입니다. 소련에서 공산주의 혁명에 성공한 후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사는 인간다운 세상을 선언하자, 이기적이고 계산이 빠른 인민들은 모든 것을 평등하게 나누는 공산주의 체제 아래서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자기에게 돌아오는 수입은 일정하며 일을 안 해도 생활이 보장된다는 것을 알아채고, 일하는 시늉만 낼 뿐 자기 일처럼 최선을 다해 노력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민들을 관리하며 배급하는 공산주의 지배계급 또한 관리의 전권을 갖게 되자 점차 업을 가진 인간의 속성상 부패하고 관료주의화 되어갔으며 결국 비효율의 극치를 이룬 공산주의 사회는 최선의 노력과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사라지고 모든 인민이 게으르고 왜소화됨으로써 전체 인민의 먹거리도 제대로 생산해내지 못하는 가난한 나라가 되어 붕괴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경제는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양심과 용기를 가진 좋은 시민을 양성해 스스로 성실히 일하고 일한만큼 공정하게 받도록 하면 좋은 원인이 계속 지어져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책 중 '경제를 살리는 길'이라는 제목의 장에서 경쟁력 있는 곳을 살아남게 하고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한데 대해, 그대는 '자유시장경제'라는 미명아래 돈으로만 모든 것의 가치를 결정하여, 효율적이지 않은 분야에는 지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처럼 사태가 악화되었다고 주장하며 반론을 제기했습니다. 그래서 시장에서 경쟁력의 아주 큰 부분은 자본에서 비롯되므로 원래 자본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거대 기업과 경쟁한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그대의 주장은 스스로의 생각이라 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지금 우리나라에서 대중의 지지를 넓혀가고 있는 좌파 경제학의 논리와 같습니다. 그들은 그동안 반독재 투쟁과정에서 정부와 정경유착으로 성장하는 대기업과 자본주의 체제를 비판해오면서 세력을 넓혀온 결과 오늘날 좌파 경제학은 젊은 세대들의 반사회적 반권위적인 취향에 부합하여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이에 호응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연의 흐름에 부합되지 않으면 진리가 아닌 것입니다.

항상 진리는 다수보다 소수인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가 올바른 진리를 이야기할 때 다수의 거짓된 자들은 예수가 신성을 모독하고 거짓을 행한다는 이유로 살인마 바라바는 살리고 예수를 죽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경제는 자연의 이치에 따라 인과법에 의해 하나의 생명체처럼 이루어집니다.

그것이 자연의 흐름이며 부정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이를 인간이 이를 억지로 조작하려 한다면 반드시 문제를 일으켜 공산주의 꼴이 나고 맙니다.

 

경제는 자연이라는 시장 속에서 인간의 자유로운 물물교환을 기반으로 공정함을 원칙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이것이 계속 발전하여 개인의 이기심과 욕망, 그리고 자본과 기술 개발에 기초한 자본주의로 발전했고, 열심히 노력하여 싼 가격에 질 좋은 제품을 만드는 사람이 더 많은 부를 취득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노력하지 않고 창의적이지 못해 고객의 마음에 드는 제품을 생산하지 못한 업자는 경쟁에서 밀려 적은 이익을 가져가는 것은 경제의 공정한 모습인 것입니다.

 

그런데 좌파 경제학에서는 이러한 자유시장 질서가 평안히 살고 있는 사람들을 약육강식의 경쟁의 장으로 집어넣음으로써 욕망과 고통에 빠지게 하고 강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초래한다고 하여 이에 반대하며, 정부의 적극적 개입과 통제를 통해 자본주의시장을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대의 주장은 바로 이러한 좌파 경제학의 시각과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대는 우리나라 GDP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대기업들에 대해서도 실제 국민을 먹여 살리기보다는 착취하고 있다고 보고 있으며 그들 때문에 일반인들의 삶의 질이 더 떨어진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사실과 다릅니다.

우리나라가 경제 강국으로 부상하여 세계로부터 인정을 받고 끼니 걱정을 안하고 사는 것은 대기업이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 경제 체제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대기업이 국민들을 쥐어짜 착취와 불평등을 일삼는 암덩어리라 생각하지만, 실제 우리나라 대기업의 GDP 기여율은 GDP의 85% 정도입니다. 즉 우리나라를 먹여 살리고 국가를 유지하는 세금의 대부분이 대기업으로부터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대기업이 갑질을 하고 중소기업을 압박하며 노동자를 억압한다는 말만 듣고 대기업이 국민에게 고통만 준다고만 생각한다면 사실을 너무 왜곡해서 보고 있는 것입니다.

 

대기업은 혼자 장사해서 이익을 챙기는 것이 아닙니다. 대기업이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수많은 하청기업이 필요한 것이고 그러한 수많은 하청 중소기업들이 대기업보다 더 많은 종업원을 고용하여 경제를 함께 돌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본주의를 혐오하는 좌파 경제학의 논리에 빠져 경제의 중심역할을 하는 대기업을 욕하거나 망가뜨리려고 적개심을 가져서는 안 되며 우리나라를 꾸려가는 하나의 경제 공동체로서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현실 속에서 대기업이 지은대로 공정하게 대가를 얻으려 하지 않고 부정부패와 정실로 더러운 부를 축적하며 남의 기술을 훔치고 노임을 착취하는 일이 있지요. 그러한 현상은 어두운 사회일수록 더욱 심하지요. 그러나 현실이 그렇다고 해서 자연의 이치에 따라 움직이는 자본주의 경제체제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 되며 정부가 강제로 자연스런 경제의 원리에 개입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지은대로 받는 공정함을 기본원리로 작용하는 자유 경제질서 하에서는 그 원리에 따라 모든 것이 합리적으로 이루어진다면 불공정이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부의 불평등을 무조건적으로 잘못 되었다고 말해서는 안 되며, 능력에 따른 부의 차별은 인정하는 것이 공정하고 좋은 사회인 것입니다. 자본주의의 기본 이념이 공정한 경쟁과 노력에 따른 정당한 결과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더러운 부가 나타나는 현상은 자본주의 자체의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며 인간세상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악과 타락한 현실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만약 자연스런 자유경제의 원리에 따라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진다면 권력있는 자가 정실로 치부하는 일이 없을 것이며 더러운 부가 만들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현재 우리 사회에 나타나고 있는 여러 가지 부정부패와 갑질 논란은 공정한 경쟁과 올바른 법 집행으로 제거해 나가면 되는 것이지 그것으로 인해 대기업이 필요 없다고 말하거나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문제인양 치부해서 자본주의 경제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만약 지금 잘못 하는 것이 있다고 대기업의 정당한 몫을 뺏어 나눠주거나 힘을 약화시킨다면 대기업은 우리나라에서 일할 의욕을 상실해 외국으로 나갈 것이며 그 결과 국가경제의 약화를 가져와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좌파의 주장대로 대기업에 대한 적대감을 가지고 무조건 반대만 하면 결국 자연의 질서에 따라 이루어지는 자유경제 시스템이 붕괴되어 반드시 공멸하게 됩니다. 따라서 지은대로 받는 기본적인 자유경제질서의 기본원리는 지키되 잘못된 현상은 시정해 나가는 것이 올바른 방향입니다. 그리하여 각 개인과 기업의 자유와 창의력이 살아날 수 있는 공정한 질서를 만들어 서로의 가능성이 최대한 발휘되도록 하는 것이 우리 경제의 운영방향이 되어야 하며 정부가 경제 흐름에 개입하여 대기업을 억제하고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여 강제로 배분하는 공산주의 방식은 함께 가난해지는 길 밖에는 다른 결과가 없습니다.

 

좌파 경제학에서는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모든 것을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국가가 개입한다고 좋은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과거 미국에서 수정자본주의라 해서 자본주의 경제의 불평등성과 문제점을 국가가 적극 개입해서 해결하려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국가에서 많은 돈을 풀어 국민의 복지를 해결하고 국가가 직접 나서서 기업을 규제하려고 했습니다. 이러한 정책은 미국 경제에 많은 기여를 했지만 최종적인 결과는 통화 팽창과 정부의 비대화, 장기적인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불황인데도 물가가 지속적으로 오르는 현상), 재정적자, 기업의 경쟁력 약화를 야기함으로써 결국 국민의 삶은 나빠졌고 결국 지은대로 받는 기본적인 경제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경제의 기본 원리를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 원리는 모든 인간은 각자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지은대로 받게 하며 일하지 않으면 굶어야 한다는 사실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본적인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일하지 않아도 생활이 보장된다면 그 나라는 바로 활력을 잃고 시들게 됩니다. 일하지 않는데도 생활이 보장된다면 열심히 일할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복지 국가들의 근본 문제는 바로 이러한 경제 원리가 지켜지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제는 기본적으로 국민 개개인이 스스로 일해 자유와 창의를 발휘하여 자기의 가능성을 최고로 드높일 때 그 힘이 모여 국가의 경제력이 되며 강한 국력을 자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새장 안에 보호된 새는 자기 스스로 살아갈 수 없듯이 개인이 국가에 의존하는 나라는 결국 힘을 잃고 쓰러지고 맙니다. 따라서 국가는 모든 개인의 주체성과 자유를 북돋우어 주어 그 가능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합니다. 강한 국민이 있을 때 강한 나라가 있는 법입니다. 아무리 새장 속의 새가 배부르고 안전하더라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보다 나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국가가 좌우하게 되면 개인의 힘이 죽게 되며 결국 국가의 쇠퇴와 개인의 불행으로 귀결되게 됩니다.

 

그리고 아직 우리나라는 매우 취약한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 일본과 같이 자립적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자원도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국가와 기업의 빚도 엄청납니다. 최근 한진해운과 조선산업에서 보는 바와 같이 대기업도 한순간 넘어지는 것이 우리나라의 경제실정입니다. 국제경제가 나빠지면 취약한 국가경제는 한순간 새로운 IMF 사태를 맞을지 모릅니다. 따라서 아직까지 분배를 놓고 다툴 때가 아니라 기업이나 국민 모두 한마음이 되어 지속적으로 노력해 국가를 정상적인 수준으로 올려놓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더 이상 국가 부도의 위험에 시달리지 않고 모든 국민이 꿈에도 바라는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그대는 경쟁력 있는 곳이 살아남게 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자유시장경제'라는 미명아래 돈으로만 모든 것의 가치를 결정하여, 효율적이지 않은 분야에는 지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처럼 사태가 악화되었다고 주장하며 반론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경제는 이익이 있어야 살아남는 것입니다. 이익이 없어 살아날 가능성이 없는 기업을 계속 유지해서는 전체가 망하고 맙니다. 경제는 경제 논리로 풀어야 하며 그에 부수되는 실업 문제 등은 별도의 대책을 마련하여 다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경제는 살아 있는 생명체이니 기업의 생과 사는 피할 수 없는 숙명입니다. 자연의 이치를 살펴보면, 생과 사가 순환하면서 전체가 조화를 이룹니다. 즉, 죽을 자는 죽어야 전체가 제대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만약 썩어가는 팔다리를 미련이 남아 자르지 않는다면 결국 몸 전체가 죽게 됩니다. 이것은 경제의 경우도 동일합니다. 마음은 아프지만, 경쟁할 힘이 모자라고 이익을 내지 못하는 부실한 기업은 정리하는 것이 국가 경제 전체를 위해 바람직한 것입니다.

 

살아날 가능성이 희박한 기업에 국민의 혈세를 쏟아 부어 낭비하는 것보다 잘되는 기업을 지원하여 이들이 주도하여 경제를 발전시키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게 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인 것입니다. 즉, 지원은 망할 기업에 하는 것이 아니라 흥할 기업에 해야 하는 것이 경제를 운영하는 원칙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공정한 경쟁과 능력에 따른 보상과 퇴출이 확실하게 이루어질 때 국가 전체적으로 효율이 높아지고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장에서 경쟁력의 아주 큰 부분은 자본에서 비롯되므로 원래 자본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거대 기업과 경쟁한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미국과 같이 대기업이 즐비한 고도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마크 주커버그,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와 같은 창조적 기업인들이 지속적으로 출현하여 혼자 힘으로 페이스북이나 마이크로소프트, 애플과 같은 대기업을 만들어 수백만의 인력을 고용하고 미국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개인의 자유와 창의를 기반으로 자연의 이치대로 움직이는 자본주의 경제의 장점인 것입니다. 그대의 말대로 하자면 우리나라보다 대기업이 더 많고 자본이 집약되어 있는 미국은 그러한 혁신적 기업가가 나올 수 없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따라서 자본이 모든 것을 좌우하며 공정성을 방해한다고 하는 그대의 주장은 사실적이지 않은 말입니다.

 

돈이 안 되고 경쟁력 없는 것에 투자하지 않는다는 정부의 정책 때문에 여러 선진국에서 볼 수 있는 문화 예술 지원 사업이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미미하다고 주장하면서, 문화와 예술은 세상의 원리에 눈뜰 수 있는 기반이 되는 유연하고 창조적인 마음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되어 결국은 나라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기반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예술분야에서도 국가의 많은 지원을 바라겠지만 현실적 한계가 있다는 것을 받아 들여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당장 써야 할 재원으로는 국방, 경제, 복지, 재해, 교육, 예술 등 시급한 분야가 너무 많습니다. 주어진 예산은 한정되어 있고 써야 할 곳은 많기 때문에 예술계에서도 현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술인들은 이러한 현실적 한계 속에서 더 나은 예술 발전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먼저 길을 찾아 방안을 제시하고 국가의 지원을 요청해야 할 것입니다.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 곳에 투자하는 것은 깨진 독에 물붓기입니다. 기회는 찾는 이에게 다가오는 것이라는 진리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정부에게 먼저 바라기보다는 먼저 예술인들이 어지러운 현대문명을 밝히고 세계 문화를 리더할 수 있는 예술의 방향을 모색하여 먼저 제시한다면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진실의 근원에서 21세기의 무의미 속을 헤매는 인간의 정신을 밝히고 영혼을 정화할 수 있는 인류 최고의 예술의 길을 모색해 보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술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그대의 말처럼 예술이라고 다 유연하고 창조적인 마음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며, 국가의 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술이 사람의 마음을 정화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좋은 것이지만, 만약 인간의 마음에 어둠과 환상을 주는 것이라면 그것은 세상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예술인 자신에게도 좋지 않은 것입니다.

 

참된 예술은 맑은 정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맑은 정신은 사실과 이치에 바탕을 둘 때 나오는 것입니다. 지금 많은 예술인들이 돈을 벌기 위해 아무런 메시지도 없이 자극적 환상적인 작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작품은 욕망을 쫓는 세상사람들의 인기를 끌어 많은 돈을 벌지는 모르지만 세상에는 좋지 않은 것입니다. 그것은 예술가 본인에게도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돈만 아는 예술가가 되어 그 영혼이 탁하게 될 것이며 세상을 욕망과 환상으로 물들여 세상을 어둡게 하는 악덕을 지을 것이며 자신의 영혼을 악업으로 물들여 부실한 영혼을 얻고 불행한 사후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세상의 실상과 이치를 밝히고 옳고 그름을 전한다고 해서 차가운 이성만 있고 예술을 모른다고 생각하지 말기 바랍니다!

스승님도 시집을 냈고 나도 시를 씁니다.

진리의 길을 가는 사람은 모든 언행이 사람들의 영혼을 정화하고 일깨우는 시와 같습니다.

그래서 스승님은 자신의 시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시를 아는 자는 그 영혼이 깨어난다.”

 

그리고 이곳에서 철학, 인문을 관념적인 것으로 보고, 지적 유희나 하면서 실질적인 생활력이 없는 것으로 보는 것 같다고 하면서 진리의 빛, 올바르게 사는 법 등을 가르치는 것이 철학과 인문이 아닌지 물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오늘날 세상에 유행하고 있는 철학과 인문을 다 똑같은 중생의 학문으로 봅니다.

이곳에서는 세상의 학문을 볼 때, 자연 속에 흐르고 있는 실상과 진리를 바르게 밝히는 성자의 가르침에 부합하는지 아니면 실상과 이치와 다르게 중생이 자기 생각이나 환상을 말하는 것인지로 나눌 뿐입니다. 실상과 이치에 맞는 참된 철학과 인문학이라면 사실에 부합되어 좋은 결과를 얻고 삶의 보람과 가치를 얻게 할 것이며, 사실과 이치에 맞지 않는 중생의 생각과 가설이라면 세상을 속이고 환상을 제시하여 결국 세상을 망치게 될 것입니다.

 

지금 현대는 길을 잃어버린 세상입니다.

그래서 성자들이 가르친 완전한 실상의 진리는 사라져 보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현실 속에는 길을 모르는 중생들이 만든 산더미같은 허망한 관념들이 사람들의 의식을 흐리고 삶을 망치고 있습니다. 즉, 오늘날 학자 중에 참된 실상과 이치를 바로 보는 사람이 없는데 그들이 가르치는 철학과 인문학적 지식이 세상과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길을 보는 자를 따라 가면 결국 어둠을 환히 보고 목적지에 바로 도달하지만, 안개 속에 사는 눈뜬장님을 따라가면 결국 그들과 같이 안개 속을 헤매다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는 것이 한치의 어김없는 인과법입니다. 따라서 지금 세상에 유행하는 중생들이 지은 철학과 인문학을 따라가면 결국 길을 잃고 상대성에 빠져 무의미와 혼돈 속에 헤맬 것이니, 이곳의 가르침이 세상의 철학이나 인문학과 같은 것이라고 보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우리가 진리를 찾고자 하는 이유는 완전한 실상과 진리를 보아 거짓없고 보람있는 삶을 살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보기 위해서는 눈뜬장님인 중생이 만든 철학과 인문학을 따라가서는 절대 불가능하며 완전한 깨달음을 얻어 세상의 실상과 진리를 보신 성자의 가르침을 만나 사실과 일치한 지혜와 시각을 얻어야 합니다.

 

앞으로 이곳에서 밝히는 실상의 가르침을 배우면 그러한 중생들이 지은 학문이 아무런 근거 없는 생각으로 지은 것임을 알게 될 것이며, 그대의 마음 속에 자연만이 남아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는 것과 같은 멍한 경지를 체험하게 될 것이니, 그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맑은 마음에 세상이 바로 비치고 옳고 그름을 보게 되어 공덕행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창의력과 올바른 가치로 현실을 살아갈 수 있는 기술을 배우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겠지만 지금의 현실에서 취업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려면 시험점수와 지식을 최대한 많이 주입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 보인다고 하면서 그 해결책을 물었습니다.

 

세상이치를 모르는 사람들이 만든 잘못된 제도 때문에 창의력과 올바른 가치를 가진 사람이 제대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창의력과 올바른 가치를 가진 사람이 제대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이치대로 이루어지는 밝은 세상이 온다면, 우리나라는 지금 당장 세계 최강대국이 되고 지상천국이 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능력이 사장되고, 우리나라의 가능성은 살아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의 한계를 진리의 길을 아는 우리들이 깨어나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세상은 완전한 뜻으로 이루어지니 세상을 밝게 만드는 인과의 고리를 잡고 흔들면 세상은 움직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좋은 원인이 있으면 좋은 결과가 있듯이, 밝은 정신을 가지고 창의력을 발휘하는 유능한 기능인을 양성하면 실업은 사라지고 경제는 저절로 발전하게 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직업교육과 대학교육을 결합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학생들에게 직업교육을 시켜 현실 대처능력과 실무능력을 갖추게 하고 이들 중 뛰어난 일꾼들을 대학교육을 받도록 하면 실무와 지식을 겸비한 우수한 고등인력의 양성이 가능해 집니다. 이렇게 직업교육과 대학교육을 결합시키면 기업이 요구하는 우수인력 수급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이며 덤으로 만성적인 입시지옥 문제도 자연스레 해결될 것입니다.

 

모든 것은 사실과 이치에 따라 이루어질 때 좋아지는 것입니다.

무의미와 혼돈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세상의 실상과 이루어지는 이치를 모르니, 자기 생각 속에서 살다가 업에 휘말려 중생의 운명인 고통의 바다를 영원히 헤매게 됩니다. 그러나 수천 년 만에 나타난 완전한 진리의 인연을 만난 우리들은, 좋은 사람을 만드는 것과 밝은 세상을 만드는 것과 인간 완성에 이르는 길이 하나의 이치 속에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나에게 주어진 귀한 이생에서 만법귀일의 이치를 깨쳐 세상에 널리 전하고 삶의 주인이 되어 좋은 자기와 밝은 세상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일을 하는 것이 말세에 태어나 희귀한 진리의 인연을 만난 우리들이 세상을 위해 해야 할 일이며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며 보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질문]---


최근에 가입해서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어두운 세상에 길은 있는가'를 읽다가 질문 드립니다.  


p.64부터 나오는 '경제를 살리는 길'이라는 제목의 장에서 허해구 선생님께서는 경쟁력 있는 곳 위주로 살아남게 하며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중고등학교 교육을 인문 위주에서 직업 위주로 바꾸어야 한다고도 하셨고요. 


실제로는 '자유시장경제'라는 미명아래 경제적으로만 계산하여 효율적이지 않은 분야에 지원이 부족한 현실 때문에 돈으로만 모든 것의 가치를 결정하는 지금의 사태가 악화되어 왔다고 생각하기에 의문이 듭니다. 시장에서 경쟁력의 아주 큰 부분은 자본에서 비롯되므로 원래 자본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거대 기업과 경쟁한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국가의 GDP를 올린 몇몇 거대 기업들이 실제적으로 나머지 국민을 먹여 살리기 보다는 착취하고 있어서 일반인들의 삶의 질은 더 떨어집니다. 


교육에서 인문보다 직업적 기술을 중시하는 것은 이미 이루어지고 있는 풍토이고 그런 교육이 이러한 현실을 만드는데 일조한 것이 아닌지요. 돈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면 창조력만 가지고 경쟁구도 안에 뛰어드는 것 자체가 어려운 실정입니다. 여러 선진국에서 볼 수 있는 문화 예술 지원 사업이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미비합니다. 이유는 당장 돈이 되지 않는 것, 즉 시장 원리하에 경쟁력 없는 것에 투자하지 않는다는 정부의 정책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화와 예술은 세상의 원리에 눈뜰 수 있는 기반이 되는 유연하고 창조적인 마음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되어 결국은 나라의 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경쟁력 있는 것만 살아남게 하는 원리가 이런 것이 아닌 다른 것을 말씀하시는 것인지, 제가 모르는 다른 원리가 있는지 더 설명 부탁드립니다. 


위와 같은 구체적 사항에 대한 의문이 들지만 크게는 철학, 인문을 관념으로 배워 지적 유희나 하면서 실질적인 생활력이 없는 것을 비판하시는 말씀으로 이해했습니다.  


p.69 부터 '교육의 요체'라는 제목의 장에서는 지식을 주입하기 보다는 창의력을 키우는 교육, 삶을 소중히 하고 올바르게 사는 법을 가르칠 필요성을 강조하십니다.  인문을 배제한 직업 기술 위주의 교육에서 창의력을 키우는 일이 가능할지 언뜻 읽기에는 모순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장에서 말씀하시는 진리의 빛, 올바르게 사는 법 등을 가르치는 것이 철학과 인문이 아닌지요?  창의력과 올바른 가치로 현실을 살아갈 수 있는 기술을 배우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겠지요. 하지만 지금의 현실에서 취업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려면 시험점수와 지식을 최대한 많이 주입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아 보입니다. 이 문제를 직업 위주의 교육으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제가 더 큰 원리를 모르니 현실에 나타난 눈에 보이는 현상 일부만 가지고 해석을 해서 모순으로 들리는 것이겠지요.  선생님께서는 더 큰 그림을 갖고 글을 쓰셨을테니 이 부분에 대한 이해를 돕는 설명을 더 해주신다면 감사히 공부로 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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