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진실을 찾아서
정법은 생활 속에 본문
[질문]
현재 수행이니 호흡이니 하는걸 하고 있지는 않지만...
수행이나 호흡이 세상을 축복하는데 도움이 되는것이 아닌지 궁금합니다.
왜냐하면 허해구님께서도 수행을 통해 궁극의 경지까지 가보셨다니 잘 아실테지만 기 수행을 통해서 하단전이 완성되면 심신이 건강해지고 편안해집니다. 경락을 통해 몸안에 양기가 흐르면 건강한 몸을 가지게 되지요. 또한 수행을 통해 중단전이 완성되면 마음이 열려 세상을 축복 안할려고 해도 자동으로 축복이 됩니다. 이렇듯 인간의 마음이란것도 몸이 편안하고 건강할때 더욱 마음이 열리고 세상을 축복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자동으로 나오게 되는것이 아닌가요?
억지로 인위적으로 아무리 밝음을 지향한다 할지라도 구체적인 방법은 없이 너무 막연하게만 말씀해 놓으시는데요. 누구나 다 이세상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세상을 축복하고 사랑하고 싶지만 그게 되지 않을뿐이지요. 혹자는 업때문이라고도 하고 혹자는 유혼때문이라고도 하고 여러가지 이유가 많습니다만.
그럼 세상을 축복하고 사랑하기 위해선 어떤 구체적인 방법으로 접근해야 되는지는 별 설명이 없습니다. 그냥 막연한 내용의 글만 있습니다. 물론 제가 아직 의식이 못따라가서라고 말씀하신다면 방법이 없겠지만. 깨달은자가 가르침을 베풀때 본인의 눈높이로 설명하고 못따라온다면 공덕이 부족해서다 의식이 부족해서라고 한다면 형편성에 맞지 않는 논리이겠지요.
여러 방법들이 주문이나 기호흡 최면 자기암시 등등이 그렇게 세상을 축복하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가질수 있도록 하기위한 방법이겠지요.
건강한 심신에 건강한 정신이 깃듣다고 했습니다. 음식을 조절하고 적당한 운동을 하고 단전호흡을 하여 하단전이 완성되어 항시 하복부가 따뜻하며 중단전이 열리면 내가 그렇게 하지 않을려고 해도 자동으로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고 행복해지는거 아니겠씁니까?
내가 행복하고 내가 건강하고 나를 사랑해야 세상도 축복하는것이고 사랑으로 밝음을 이어 나가는 것이지 내가 죽을거 같고 내가 힘들다면 과연 그것이 얼마나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또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호흡을 하신걸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허해구선생님께서도 단전호흡의 최고경지까지 가셨으며 참선의 최고경지까지 가셨습니다. 그것이 기본이 되어 밑바탕이 되었기에 더더욱 세상을 축복하실수 있는것이고 지금의 경지까지 가신것이 아닐까요?
기 호흡도 세상을 축복하고 사랑하면서 공덕을 쌓는 하나의 수단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이 부분에 대해서 어찌 생각하시는지 허해구님의 의견을 구합니다. 너무 선문답같은 내용의 글보다는 눈높이를 맞추어 일반사람들이 누구나 다 공감할수 있는 의견이었으면 좋겠네요.
[답변]
수행이나 호흡이 세상을 축복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닌지 궁금하다고 했습니다.
수행을 통해 초기에 변화가 일어나면
평상시 없던 변화가 일어나니 모든 게 신기하고 좋은 것 같이 느껴지지만
받아들인 기운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결과가 나타나며
심각한 경우 자기 정신을 버리게 됩니다.
세상에 떠도는 기운은 천차만별이니
순수한 기운부터 죽은 음기에 이르기까지 갖가지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단전호흡이나 참선이 꼭 좋은 결과를 가진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특히 요즘 유행하는 대부분의 단전호흡은 단체마다 고유한 기운줄이 있어
특이한 영적 현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즉 유혼의 기운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참선과 단전호흡과 같은 명상법들은 갖가지 부작용을 나타내고 있으며
실제 그것으로 깨달음을 얻었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처럼 증명되지 않았으면서 인간의 기대와 환상 속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이유는
이치에 없는 일확천금을 노리는 인간의 어리석음은 업 때문입니다.
내가 구체적인 방법이 없이 너무 막연하게만 말하고
세상을 축복하고 사랑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물론 길이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합니다.
중생은 눈뜬 장님과 같아 눈앞에 있는 일도 바로 보지 못하거늘
어찌 내가 말하는 평범한 말들이 마음에 와 닿겠습니까?
만약 내가 말하는 것을 바로 이해한다면
그대는 이미 사실을 사실대로 보는 눈을 가졌을 것입니다.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법이 퍼뜨려놓은 환상과 거짓에 물들어
사실적인 평범하고 진실된 이야기는 아무 가치없게 보고 있으며
특별한 방법으로 한번에 확 깨쳐 초능력을 얻는 방법만이 눈에 들어 옵니다.
그러나 세상 속에는 그런 특별한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 방법에 솔깃하는 것은
그 마음이 진실되지 못하고 환상에 물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일은 사실 속에 이루어지고 있으니
수행은 삶속에 있는 것이며 삶을 통해 원인이 쌓여야 결과가 오는 것입니다.
인간을 삶을 살려고 태어난 것이지
수행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삶을 통해 인간은 자기의 운명을 짓고
자기의 정신을 짓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삶 속에 수행이 있는 것이지
삶과 별도의 수행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수행이란 정신의 완성을 이루는 노력이니
삶을 통한 깨우침과 실천과 감동을 통해서만
정신의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영혼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사실을 사실대로 바로 보아야 합니다.
자신의 영혼의 실체를 바로보고 있는 일을 바로 볼 때
자기의 문제를 바로 알아 자신에게 좋은 원인을 지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이곳에서는 진리의 길을 찾아야 하며
진리의 인연을 만나 깨우침을 얻어야 한다고 합니다.
길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진리의 길을 보지 않는 한
공덕을 짓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정법과의 인연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정법과의 인연이 없이는 결코 자신을 완성에 이르게 하는 선근을 지을 수 없습니다.
물론 전생에 진리와 인연이 있어 스스로 깨달음에 이르는 예외적인 독각의 경우가 있지만
그러한 선근이 없는 일반인인 경우 진리와 인연을 만나지 않고서 스스로 정법으로 향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원인이 없으면 결과가 생겨나지 않는 것이 완전한 인과의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이곳의 설명이 부족하며 깨달은 자가 가르침을 베풀 때처럼
각 사람의 수준에 맞게 설명해 주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과연 내 설명이 부족할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사람들은 과거의 성자들이 완전한 말과 설득력으로
모든 사람을 감동시켰다고 생각하겠지만
과거에도 깨달은 자가 정법을 전하는 곳에는
소수의 제자들 이외에는 사람이 없었으며
대부분의 무지한 자들은 깨달은 자와 법을 조롱하고 떠났습니다.
그래서 노자는 하근기의 사람들은 도를 경멸한다고 진리 속에 있는 이치를 밝힌 것입니다.
그래서 성자들은 법을 전할 데가 없어 계속 떠돌아 다녔으며
당시의 화려한 거짓에 의해 모함을 당해 죽음을 당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나의 말이 모든 사람의 입맛에 맞게 설명되어야 한다는 기대는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진리를 보고 감동에 기뻐하는 상근기의 자도 있을 것이고
반신반의 하는 중근기의 자도 있을 것이고
아무리 봐도 가치가 없는 하근기의 자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자들의 생전에는 정법은 전할 데가 없었지만
후세에 종교가 생겨 거짓된 가르침을 만들어 깨달은 자를 팔아먹을 때는
그 거짓 구원과 화려한 꾸밈 말을 듣고 사람들이 불같이 몰려든 것이
바로 종교의 진실인 것입니다.
단전호흡을 하여 하단전이 완성되어 항시 하복부가 따뜻하며
중단전이 열리면 자동으로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고 행복해지니
기 호흡이 세상을 축복하고 공덕을 쌓는 수단이 되지 않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물론 건강해야 정신이 좋아집니다.
하지만 아무리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중단전이 열려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고 행복해진다 한들
사회적으로 건강하지 않고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해 생활에 충실하지 못한다면
단전호흡은 혼자만의 일장춘몽일 뿐입니다.
기를 한다고 앉아 있으면 먼저 시간이 뺏기고
중단전이 열려 마음이 편하다고 하나 혼자 세상보는 눈이 밝아질 리가 없으며
기의 신기함에 빠져 현실을 소홀할 수 있으며
기의 부작용에 의해 자신을 망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어찌 일시적인 현상만 보고 단전호흡이 정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단전호흡과 같은 명상법은 정법이 아닌 것입니다.
지금 전통에 대한 복고주의 열풍으로 명상과 수행이 강조되고 있지만
현실을 생각해볼 때 지금의 바람은 한바탕 환상과 무지의 열풍입니다.
말법의 유행에 빠져 정법이 아닌 아닌 길을
자기생각만으로 길이라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길이 아닌 길을 가면 결국 구렁텅이에 빠지고 맙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이미 수행이란 현실과 다른 것이어야 한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좋은 삶을 살라는 말이 너무 평범하고 길이 아닌 것으로 느껴질 것입니다.
하지만 생활을 벗어나 도가 없으며 수행이란 없습니다.
생활을 벗어난 도란 관념적이며 환상적인 곁가지 삶에 불과합니다.
좋은 생활이 도에 이르는 길입니다.
자신의 현실을 좋게 만들고, 영혼을 좋게 만들고, 내세를 좋게 만드는 길이
현실 속에 있는데 다른 곳에서 길을 찾아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생활을 수행의 방편으로 삼으면 모든 순간이 수행이 됩니다.
깨어있는 정신으로 모든 일의 뜻과 이치를 보고
자신의 정신을 맑게 하기 위해 어떠한 거짓과 죄를 범하지 않으며
사실에 충실하게 살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인다면
생활이 안정되어 자신을 바로 세울 수 있으며
사실을 바로보아 옳고 그름을 가려 살아갈 수 있으며
안정된 생활 가운데 다른 사람에게도 모범이 되어 좋은 생활을 권할 수 있으며
남을 축복하고 세상을 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거짓이 없으면 항상 마음이 밝고 떳떳하며
성실함과 밝은 정신이 있으면 양심과 용기가 생겨
맑은 정신과 강한 의지로 어떠한 세상 일도 능히 헤쳐갈 수 있으며
세상의 욕망과 사사로움을 벗어난 영혼을 얻어 곧 완성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일이 나의 모태가 되어 영원히 돈다고 생각하면
자신의 근본을 망칠 어떠한 일도 하지 않게 되며
자신의 완성에 이르게 할 모든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자들이 신을 이용하여 초능력을 부리는 신통을 하지 않고
자신의 정신을 차려 진실한 깨달음을 이루고 형극의 길을 가는 이유는
신을 부리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일은
자신을 거짓되게 만들어 자신을 지옥에 빠뜨리고 영원히 불행하게 되는 일이며
세상을 위해 자신을 불사르는 이유는
그것이 결국 자신의 영혼을 완성시키는 생명의 길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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