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참과 거짓 (19)
삶의 진실을 찾아서
상대가 불쌍할 때 돕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그것이 항상 큰 공덕이 된다고는 할 수 없다. 모든 일은 분명히 알고 행할 때 결과도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이 나쁜 집단에 붙들려 구걸에 나서고 있다면 그것을 돕는 것은 악한 자의 배를 불리는 것이므로 이는 공덕이 아니라 악업을 짓는 것이며 세상을 더욱 어지럽히는 일이다. 인생을 자포자기하여 구걸로 먹고 살겠다고 나선 자에게 돈 몇푼을 준다면 그 돈은 라면 사먹고 술먹는데 쓰일 뿐 거지 짓을 연장시키는 결과밖에 가져오지 않으므로 이것도 그 사람에게 큰 도움이 안되며 공덕 짓는 일이 못 된다. 그 사람을 진정으로 안타까워 한다면 단순한 적선이 아닌 인간으로 태어난 보람과 가치를 가질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즉 인간으로 태어난 고귀..
사람들은 욕망이 인간의 존재이유라 말하고 종교에서는 욕망을 버리라고 말한다. 여기에 많은 오해가 있어 그 이치에 대해 분명히 밝히고자 한다. 자기에 대한 탐욕은 자신의 업을 두텁게 하고 세상에 대한 소망은 자신의 업을 가벼이 한다. 똑같은 욕망 같아 보이지만 자신의 탐욕을 위해 애를 태울 때는 세상에 대한 분노가 일고 내가 더 무거워지지만 세상을 위한 사랑과 자비심에 애를 태울 때는 마음이 연민에 안타까워 나에 대한 집착이나 사심이 사라진다. 여기에 밝은 길을 가는 가진 자와 어두운 길을 가는 자의 차이가 있다. 세상을 위해 바른 이치를 밝혀 열심히 소망하는 일을 행할 때 그 마음이 밝아져 마침내 인간완성에 이르고 자신의 탐욕을 위해 이치를 어겨서 세상을 어둡게 만들 때 그 마음에 바른 기운이 사라져 마..
누구는 불행하게 살다가고 누구는 행복하게 살다간다. 누구는 악하게 살다가고 누구는 선하게 살다간다. 누구는 가난한 곳에 기형아로 태어나 불행한 삶을 살고 누구는 복된 곳에 건강하게 태어나 행복한 일생을 보내고 산다. 이를 종교인들은 신이 또 다른 뜻을 실현하기 위한 복안이라고 해석하거나 신의 영광을 보이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러나 만약 이것이 신의 뜻에 의한 것이라면 인간을 불행의 노예로 사용하는 그러한 신은 저주받아 마땅하다. 아무리 신이라도 모든 것을 자의적으로 적용해서는 안되는 것이며 특정한 자에게만 악역이나 고통스러운 역을 맡겨서는 안되는 것이다. 만약 감독이 있어 그대에게 항상 비천한 역을 하라고 한다면 누가 승복할 것인가? 모든 것을 마음내키는 대로 좌우하는 그런 작위적인 신은 없다. 완전한..
그는 물질위주의 서구문명사조에 동양의 유심론적 사고방식을 제시함으로써 서구문명에 새로운 조망을 제시했다. 그러나 그는 깨달음의 실체를 보지 아니하고 전래의 철학적 관념을 소화하여 자기나름대로 논리를 제시함으로써 논리적으로는 서구에 대항할 수 있었으나 실체는 왜곡하는 과오를 저질렀다. 그는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완전한 신의 실체를 감싸고 있는 환영이므로 어느 것 하나 부정할 것도 긍정할 것도 없으며 모든 것에 대해 잘 잘못을 따지지 말고 그저 신의 몸짓으로 느끼며 일체가 되어 살면 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모든 것을 신의 몸짓으로 보아 슬픔이나 기쁨, 고통이나 행복, 잘잘못에 대한 모든 구분을 놓아 버리고 신과의 일체감 속에서 자유를 얻어야 하며 그 방법으로는 명상을 통해서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 ..
성인(聖人)은 절대로 그의 사후에 자신이 일반사람들의 우상(偶像)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또한 종교라는 것을 만들어 우상을 섬기는 것을 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석가부처도 깨달음을 얻고 나서 가장 먼저 사람들에게 일깨우려고 했던 일이 우상타파였다.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구제하려 했고, 거짓 속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깨우치기 위해서 가장 먼저 내세운 구호가 우상타파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들은 그들의 사후에 그들이 인간들에게 우상이 되는 것을 절대 원하지 않았다. 성인들은 그들이 밝혔던 진리 속에 있는 일들이 세상에 널리 퍼짐으로 해서 모든 인간이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기만을 진정으로 바랬다. 오늘날 웅장한 종교건물과 많은 기념탑은 종교의 그릇된 이기심이지 진리와는 아무 관계가 ..
선가에서는 이상적이지만 절대무가 가능하다고 본다. 그래서 선정에 있어서도 인식이 소멸하고 인식하는 주체도 사라지는 경지를 수행의 최고 단계로 보고 최종적인 화두도 無자 화두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無자 화두를 깨면 모든 수행이 끝난다고 선지식들은 이야기 한다. 선가에서는 모든 것이 시작되고 사라지는 우주의 근원을 순원무잡한 불성으로 보아 세상에 피어난 모든 것은 불성을 더럽히는 탁하고 덧없는 것으로써 이러한 번뇌에서 벗어나 절대무에 이르는 것을 최고의 경지로 삼는 것이다. 즉 마음이 절대무에 이르러 순원무잡한 우주의 근원인 불성과 하나되는 것을 인간이 가야할 최고의 경지인 해탈의 경지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이 세상은 무명에서 나타난 고통스러운 것이므로 하루빨리 무의 경지를 깨쳐 윤회를 벗어나야 한다고 ..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 인간다운 인간으로 다시 나기 위해서 비우라는 이야기가 많다. 왜 자신을 채우지 않고 비워야 하며 이 세상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버려야 하는가? 여기에 많은 오해의 소지가 있어 그 뜻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비우라는 이야기는 위선과 잘못된 관념과 탐욕을 버리라는 말이며 세상을 버리라는 말은 탁한 욕망의 세계가 추구하는 헛된 출세와 권력과 명예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는 말이다. 왜 버려야 하는가? 그 이유는 탁한 욕망을 극복하고 최종적으로 정화된 마음만이 남을 때 인간완성이 이루어지는 비밀이 세상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며 이때 사람은 우주의 근원인 신성과 하나되어 세상의 모든 실상과 이어지고 모든 이치와 통하게 되는 신비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때서야 비로소 인간은 자신이 태어난 의미와 ..
세상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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