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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투쟁

18. 「유신」이라는 혁명

gincil 2014. 2. 7. 02:00

어제의 일이 옛날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은 긴장을 감추려고 표정을 꾸몄지만 질식할 것 같은 답답함이 가슴을 짓눌러 왔다.

나의 양심은 누구에게선가 속고 있다는 느낌이 자꾸만 일어났다.

정권은 지능화된 방법으로 무서운 위협들을 남발하면서도 순종하는 사람들한테 공약(公約)은 절대하지 않는 추상적인 주장에는 신을 믿어온 나의 마음 속에 언제까지나 우리를 도와 주지 않는 신에 대해 부정하는 마음이 일기 시작했다.

세상 사람들의 심정을 몰라 분연히 절규하고 싶은 혼자의 충동을 억누른다. 이렇게 가슴을 아파하며 한편으로 생활 때문에 쫓기며 며칠이 지났는데 매스컴에서 유신(維新)이란 생소한 말을 들먹이기 시작했다. 선전하는 것인지 단순히 기사화하는 것인지 지면이 특종으로 엮어지고 있었다.

나의 짧은 생애에 있어 처음 듣는 생소한 말인 「유신」이란 것이 어떻게 우리를 기대 속에서 구해줄 것인가 궁금하기만 했다. 권력자나 권력에 빌붙으려는 사람들은 우리의 생존 때문에 유신을 해야 한다지만 그렇게 좋은 유신이라면 사람들은 금방 알게 될 것인데 무엇 때문에 열을 올리며 억지로 사람들의 지친 머리 속에 이해시키려고 노력하는지 어떤 땐 납득이 안 갔다.

거리에 나와보니 온 거리의 벽에는 공고문이 온통 나붙었다. 법, 법, 정말 이 나라가 법이 없어 이렇게 휘청거리고 있는가. 아니면 결국 이 법의 남발로 망해버릴 것인가. 내 가슴 속엔 표현은 할 수 없지만 슬픔이 솟구쳐 올랐다.

정말 그 사람들 말대로 조국이 번영되고 통일이 될 수 있다면 하는 마음은 아무도 자신있게 공약하지 않는 내용들의 뒤가 가슴 속에 의문으로 쌓여 버린다. 나의 심중에는 조국의 앞날과 민족의 장래가 어둠 속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혹이 일어났다.

스스로에게 생기는 의문을 자기한테 또 물어본다. 이와 같은 행동을 반복하다 보면 머리 속에는 별별 상상이 다 떠올랐다. 젊은 가슴 속에 쌓였던 조국과 동포에게 바치고 싶었던 뜨거운 정열이 식어갔다.

이제 내가 이 땅에서 지켜야하는 사명이 무엇일까, 진정 동포를 위할 수 있는 몸이 될 수만 있다면, 안타까워지는 마음 속에서 단순하지 않은 조건이라도 찾아보기 위해 잠이 부족한 밤을 만들며 시간을 메웠다.

정말 불행한 사람들...

권력이 무엇이며 인생이 무엇이라고 자신의 영혼을 짓밟는 행동을 서슴지 않는가, 불행한 동포를 위해 헌신하지 못하고 온갖 원성과 우려의 말에 귀를 막고 진리를 외면하는 슬픈 행동에 걱정이 많은 내 사정보다 더 딱한 그 사람들의 사정에 동정이 갔다.

동포의 권리를 동포를 위해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들의 양심에 공포를 느껴야 했고 어리석은 판단으로 자신마저 망치려는 행동에는 분노를 지나 연민을 느껴야 했다.

더욱이 연일 신문에 발표되는 사회단체와 야당 인사들의 지지 성명들은 나를 허탈감 속에 빠지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런 어느날 소속 정당의 동지였으며 부산의 인근 지구당 위원장이었던 S동지가 오래간만에 나를 찾아왔다. 울적한 심정 속에 지내고 있던 나는 무척이나 반가웠고 그도 반가운 표정으로 나를 대했다.

우리는 다방으로 들어가 자리를 같이 했다. 그는 내가 말을 하기도 전에 야당인사들이 모두 유신을 지지하는 성명을 내었으니 나도 거기에 동조하라고 했다.

가만히 있어야 별 볼일 없으니 어느 곳으로 찾아가면 된다고 하면서 강력히 권하는 말 뒤에는 잘못하다가는 저들에 의해서 병신이 될 것이라고 위협적인 말까지 했다.

참으로 충격적이고 슬픈 말들이었다. 어떻게 잘못되어 가는 정국을 두고 정치인으로서 반대는 고사하고 무조건 찬성만 하라니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싶었다.

결국 나의 주위에 있었던 인근 지구당의 동지들도 어떤 이유였는지 지지대열에서 행동을 한 모양이었다.

다음날 신문에는 부산지역의 몇몇 대중당 위원장들의 지지성명이 있었다고 밝혔다. 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봐서 예측은 했지만 막상 사실을 눈으로 보니 가슴이 떨리고 왈칵 슬픔이 올라왔다.

견딜 수 없는 허탈감에 안주없는 소주병을 기울이며 혼자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는 소리없는 절규를 내어 놓았다.

「나는 결코 출세나 영달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 아니다. 오직 양심에 따라 사명을 따르기 위해 살아갈 뿐이다.」

이런 소리가 나의 가슴에는 아직 남아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나에게는 시험이 시작되었다. 일을 마치고 단골다방에 들어 갔더니 면식이 있는 모기관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사람들은 나를 두고 유신에 대한 나의 의견을 물었다. 잘 모르겠다고 얼버무리고 말았지만 3, 4일이나 끈덕지게 찾아다니며 지지성명을 하라고 권했다.

참으로 난처한 입장이 되었다. 불현듯 고함을 치며 발악을 하고 미쳐버리고 싶었다.

동시에 눈만 감으면 당장 어떤 불행을 당하는 자신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그럴 때는 비통스러운 심경이 생기며 억울하게 당하기는 싫었다.

나의 고집에 면식있는 기관원은 연일 찾아와서 지지를 강요했고 방법을 설명했다. 당황한 나는 이런 날이 계속되자 변명마저도 힘들었다.

나는 상대 앞에서

「나 한 사람의 지지성명이 무슨 의미가 있겠소. 이렇게 나를 사람 대접을 해주니 지지해 버리는 것은 문제 없으나 사람들이 알면 무식한 이 삼한의 지지까지 얻어 유신이 성공했다고 농담처럼 말을 할 것이오.」

나는 어떻게 하더라도 내손으로 지지 성명서는 제출할 수가 없었다.

진리가 없는 곳에 어찌 희망이 있으리요 하는 심정으로 나의 양심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 날도 헤어지는 순간 상대는 인상이 좋지 않았고 한 번 더 기회를 줄 터이니 다시 생각해보라고 위협적인 말이 섞여 나왔다. 그러한 그의 최종 제안에 나는 생각할 시간의 여유를 달라고 하며 그와 헤어졌다.

혼자 남아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국민의 자유를 유보하고 헌법의 기능을 약화시키겠다는 조치가 국가를 위하는 길이 될 수가 없다는 생각을 털어버릴 수 없었다. 그리하여 마음 속에다 다짐을 한다. 결코 지지는 하지 않겠다고......

마침내 정권은 「유신헌법」을 국민투표에 부쳐 찬반을 결정하겠다고 발표를 했다.

참으로 기막힌 일뿐이었다. 할 테면 그냥 유신해야 하겠다 할 일이지 무엇 때문에 국민까지 끌어들여 같이 놀아나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찬반에 있어 반대자들에게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억지로 그들은 민중의 자유를 말살하려 하였다. 악인만이 성공할 수 있는 사회가 한 발 한 발 확실하게 다가왔다.

세상의 일이 겁이 나니 말은 한 마디도 못하면서 가슴만 태웠다. 아직도 희망을 지닌 젊은이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하는 절망이 가슴을 쳤다.

하늘이 원망스러웠고 내 자신이 산다는 것이 한스러웠다. 그리하여 이제는 독한 소주가 나의 유일한 벗으로 변하고 말았다.

술에 취해 있는 나에게 동리의 반장이 투표를 하라고 통지표를 전달해 주었다. 그런 다음날 국민투표가 실시되었고 절대다수의 찬성이라는 발표가 나오면서 차라리 내 마음은 오래간만에 홀가분해졌다. 이것은 결국 견딜 수 없는 기대를 버린 좌절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미련스럽게 조국의 장래가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것만은 떨쳐버리지 못했다.

정의에 대해 근본을 버린 사회에 분노가 생겼다.

정말 이 땅에는 양심을 가진 사람들이 현실을 구할 수 없단 말인가? 아니면 유신헌법 같은 희한한 법이 있어야 국력을 신장 시킨단 말인가? 여러 가지 의문들만이 나의 몸을 순간순간 알콜에 시달리게 했다.

인심은 하루가 다르게 변했다. 나의 표정은 무거워졌고 약간 남아 있던 웃음도 사라졌다. 각박한 세상 일이 희망을 잃게 했다.

이런 날이 있고 나니 사람들 속에서는 협잡이 더 많이 일어났다. 믿음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한 사람 두 사람 낭패를 당했다.

영리한 사람들의 판단은 법이 상식에서 권력으로 변한 것이 아닌가 느꼈다. 옳고 그름을 잊어버린 세상에서 피해자가 하소연할 곳이 없어 또 낭패를 당했다.

정의를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은 견뎌내지를 못했다.

나는 술병과 더불어 시간을 보냈다. 취하지 않으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세상이 싫어졌고 사람이 싫어졌다.

1972년의 겨울은 유달리 춥고 길게 느껴졌다.

마침내 나는 술 때문에 얼굴이 검게 변색되었고 코가 붉게 변해 갔다.

그런 속에서도 계절은 역시 정확하게 바뀌면서 나무에 싹을 돋게 했고 해풍이 훈훈한 1973년의 봄을 세상에서 보게 된 것이다. 이런 봄에 나는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을 안고 몸을 떨고 있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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