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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투쟁

14. 정당에 입당하다

gincil 2014. 2. 7. 02:02

종로 2가의 큰 길가에서 찾은 대중당의 간판이 붙어 있는 한 정당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구좌석 형은 망설임 없이 당수실이란 팻말이 붙은 앞에서 노크를 한다. 비서인 듯한 사람이 처음 보는 두 사람을 두고 용건을 물어왔다. 구좌석 형이 나를 대신하여 모든 사정을 말한다.

나는 처음으로 호남아로 소문이 나 있던 노정객인 서민호 의원을 만날 수가 있었다. 구좌석 형은 전부터 아는지 자기 이야기와 근간의 안부를 그곳 정당의 대표이자 국회의원인 선생께 물었고 선생도 구좌석 형의 말에 쉽게 대답도 해주었다.

특히 그 분은 처음 본 나에게 많은 관심을 가져준다. 선생은 또 선생의 전 비서관이었으며 그곳 당의 조직국장인 장재철씨를 불러 나에게 소개를 시켜주었다.

나는 그 곳에서 젊은 청년지사들을 장재철씨로부터 소개를 받았다. 그곳에 모이는 젊은 사람들과 자리를 같이 하는 동안 나는 많은 공감과 친근감을 느꼈다. 나도 그들과 사귀며 좋은 뜻을 같이 찾아보고 싶었다.

나는 그때서야 서울에 온 것이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로 여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대중당에 입당원서를 내니 금방 내가 유명한 정치인이 되는 그런 기분이었다.

그래서 신 앞에 맹세까지 했다.

「저는 앞으로 제 행복보다 민족의 영광을 위해 제 몸과 마음을 바칠 것입니다.」

나는 그 순간을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하면 이 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애국자가 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처음으로 사나이다운 포부가 생겨났다. 조금 전까지만 하여도 모르던 사람들이 내가 당원으로 입당 원서에 서명을 했다는 사실에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마치 10년지기처럼 처음 만난 나에게 흉허물 없이 대하여 준다.

나는 그곳에 있었던 젊은 당 간부들과 잠시 동안의 시간이었지만 내가 궁금하게 여기던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다. 또 내가 그곳 사무실을 나올 때는 모두 나의 손에 악수를 해주며 건투를 빈다는 인사까지 받았다.

한낮의 종로 길은 사람들로 길을 메웠다. 나 혼자 같으면 건너버릴 점심을 나를 위하여 시간을 내어 안내까지 해 준 구좌석 형을 생각하며 청진동 해장국 집에 들러 소주 1병과 해장국을 시켜 점심을 먹었다.

남자들끼리 마음이 통하다보니 금방 백년지기 같은 우정을 느낀다.

거리에 나선 두 사람은 서울역 방면의 차를 탔다. 서울역 광장에서 지방으로 떠나고자 하는 사람, 서울로 들어오는 사람으로 한창 북적대었다.

나는 부산행 보통급행 열차의 승차권 1매를 구했고 구좌석 형은 떠나는 나를 보면서 작별인사를 하였다.

객차의 좁은 공간에서 입석손님으로 만원인 사람들 틈에서 운좋게 의자에 엉덩이만 낀 나는 스치는 창밖을 내다보면서 가슴을 활짝 폈다.

머리 속에는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의 쇳바퀴 소리가 가슴 속에서 고동치는 젊음의 한처럼 느껴졌다.

밤이 깊어갈 무렵, 기차는 부산역에 도착했고, 다음 날부터 나는 지구당을 창당하려고 한 사람 한 사람 동지를 모았다.

관록과 금력, 권력이 없는 나의 출발은 한 마디로 고난의 길이었다.

애기가 커서 어른이 된 사실만 믿으며 언제인가 이런 일들도 성숙할 것이란 생각을 했다.

하루는 10여명의 세상살이에 지친 순박한 사람들을 나의 하숙집인 누나 집 작은 방에다 불렀다.

소주 한 병과 막걸리 주전자를 방 가운데 놓아둔 채 그 주위에 사람들을 앉게 해서 지구당 창당을 위해 요식 절차를 서둘러 댄 것이다.

서로 권한 술로 몸에 술 기운이 도는지 아무도 이론을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모인 사람들은 나를 알고 있기 때문에 나의 행동이 신기한지 그저 놀라는 눈치들이다.

나는 이 때부터 사람들한테 주민등록증을 내어 놓게 하여서 창당 준비위원회에 필요한 서류를 만들면서 도장을 받아 내었다.

내가 하는 행동이 나쁜 짓이 아닌 줄을 안 사람들은 안심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당을 만든다니까 혹시 무슨 연줄이나 잡힐까봐 스스로 협조하는 형태를 취해 준 것이다.

별 어렵지 않게 내가 만든 서류를 선거 관리위원회 정당과에 접수까지 시키고 접수증을 받았다.

나는 다음에 남은 요식 절차를 서둘렀다. 우체국을 다니면서 서울의 대중당 중앙당 조직담당 국장한테 장거리 전화를 걸었고 구좌석 형한테도 전보를 쳤다.

이런 일은 내가 서울에서 헤어질 때 그곳 사람들과 약속된 일들이었다. 모든 일은 순조롭게 되어갔다.

창당대회 날도 받았고 정해진 날짜에 대회장으로 쓸 예식장 1실을 예약도 했다.

대중당 중앙당에서는 지구당 창당대회에 사무총장을 내려 보냈고 구좌석 형이 서울에서 부산까지 참석을 하였다.

꽤 넓은 예식장 안에는 가난한 동리 사람들과 친구들, 그리고 나의 창당대회에 협력해 준 노무자들로 좌석을 메웠다.

짜여진 식순에 따라 순서가 연결되며 대회가 진행된다. 나는 난생 처음 청중이랍시고 동리 사람뿐인 낯익은 얼굴들을 보며 연설을 시작한 것이다.

미리 문구를 작성하여 외어둔 것이 없었기에 약간 두근거리는 마음과 상기된 얼굴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부담감을 느꼈다.

웅변대회의 연사로 나갔을 때처럼 청중을 보며 인사를 했다.

한 사람이 박수를 치니 따라서 박수를 친다. 열려진 창에서는 시원한 바람이 들어왔다.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쳐다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 이 자리를 만들기까지 수고해 주신 당원 동지 여러분! 그리고 이 자리를 더욱 빛내 주신 내빈 여러분!

지금 이 순간 여러분과 나 자신을 위해 무어라고 인사의 말을 올려야 할지 제 마음이 자꾸 당황해집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이러한 저를 앞으로 이끌어 주시고 채찍질을 해 주셔서 이 땅에서 쓸모있는 사람이 되도록 키워 달라고 말씀을 올리고 싶습니다.

제가 오늘 이런 일을 통해 여러분 앞에서 약속 드릴 수 있는 분명한 말은, 어떤 일이든 더 열심히 임할 것이며, 바라는 것이 있다면 고난과 역경 속에서 살아온 제가 앞으로의 일을 통해서 제 자신을 여러분과 여러분의 친구들에게 알리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저는 신의 뜻을 믿으며 진리를 믿는 쪽의 사람입니다. 우리가 오늘 부족한 것이 있다면 과거가 잘못된 것이 있다는 것뿐입니다.

잘못된 것이 있다면 앞으로는 고쳐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매우 어렵게 생각되어 왔으나 그 일을 하는 사람에 따라 매우 쉬운 일입니다.

위선과 거짓을 일삼는 자는 일생을 통해 이루지 못할 것이나 행동과 실천을 통하여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 땅에 생명을 가진 자 중에 행복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드뭅니다. 그렇지만 그 세대를 위해 불의와 싸우기를 원하는 사람은 흔하지 않은 게 세상 인심입니다.

이런 일들이 신의 뜻일까요? 분명한 것은 축복받는 사회, 축복받는 민족의 길을 위해서는 진리가 통하는 쪽에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제 소신입니다. 이 소신만으로 저의 인사를 대신합니다. 감사합니다.」

나의 인사말이 끝나자 사람들은 힘차게 박수를 쳤다.

모두 놀라는 표정들이었다. 식순은 쉬지 않고 계속되었다.

중앙당의 사무총장이었던 이 몽 선생께서는 대중당의 당수였던 서민호 선생이 바쁜 일정 때문에 이 대회장에 참석 못한 사실을 설명하고 치사를 해 주셨다. 만세 삼창에 이어 창당대회는 끝이 났다.

모였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져 갔다. 험난한 앞길이 길게 길게 뻗쳐 있는데도 나는 마냥 즐거운 마음이었다.

씨름판에서 상대를 내동댕이치던 때를 생각하면 자부심도 생겼다.

이렇게 해서 양심과 자신의 용기만으로, 저 하나 살아가기에도 급급한 판국에 국가와 사회 민족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현실 속에서 분노와 비애를 느끼는 자신의 시간을 만들어갔다.

인간의 생존에는 꿈과 현실이 엄연히 존재한다.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나의 인생이었다.

누구처럼 나에게도 삶의 원칙은 있기 마련이다. 허기진 뱃속을 채우기 위해선 투쟁이 아니라 노동을 하여야 했다. 힘드는 일이거나 위험이 따르는 일도 거절하지 못하는 것은 현실에서 피할 수 없는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선소에서 어깨에 철판을 메고 먼 곳까지 날라야 하는가 하면 용접기에서 불똥이 튀어와 살에 닿는데도 몸을 털지 못할 때가 있었다.

그러나 내가 하는 일들이 고통보다는 미래에 대한 애정으로 느껴져서 그런대로 자신을 위로했던 것이다. 시간은 계절을 바뀌게 하였고 한 해를 넘겼다.

나는 내 자신이 억울한 일을 당할 때도 있었지만 견딜 수 없는 고통은 선한 사람들이 권력 밑에서 피해자로서의 슬픈 일들을 당하는 때였다.

세상을 보는 나의 마음 속에는 허탈과 허무가 쌓였고 생각과 생각 때문에 잠 못드는 밤을 맞이해야 했다.

민족의 비애를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부모는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 자기 자식이 씩씩하고 용기있게 크기를 원하는데 이 땅의 왕들은, 오늘의 권력자들은 제 자식은 사랑할 줄 알면서 남의 자식은 사랑할 줄 모르는가.

무조건 억누르며 인간의 가장 숭고한 용기와 개인의 투쟁을 말살하려는 비겁한 수단은 수 천년의 역사 속에서 변변한 영웅 한 사람을 길러내지 못한 왕조의 포악성과 절대 복종의 전통을 오늘날에 와서 꼭 지키겠다는 것인가.

이렇듯 비애에 빠져버리는 슬픈 감정 속에서 나는 나의 사명감이 무엇인가고 마음 속에 물었다. 비로소 번민하던 중에 내가 할 일을 처음 결정한 것이다.

내가 정당에 입당하여 정당인이 된지 반년이 된 겨울이었다. 나는 현실을 잊고 사는 동포들에게 무서운 미래가 닥쳐오고 있음을 알리기 위해 강연회를 주선하게 된 것이다. 그 이름을 민주시민 단합대회라고 붙였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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