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진실을 찾아서
윤회가 과연 존재하는가? 본문
세상은 완전한 순환과 율동속에서 지속적으로 존재하며 살아 움직이고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중 순환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운동의 원리가 회전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모든 장치들이 순환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반복하여 움직인다. 대기의 흐름과 바다의 조류도 끝없는 순환을 통하여 살아 움직이고 물도 바다와 하천과 하늘과 세상을 돌며 끝없이 순환한다.
모든 생명체가 대대로 내려가며 순환을 통하여 생명체를 이어가고 하늘에 빛나는 태양도 핵분열과 융합이라는 순환과정을 반복하면서 영원히 자기의 역할을 계속 수행한다. 생명체의 모든 기관도 신진대사의 순환을 통하여 생명을 유지하게 하고 신진대사가 끝나는 순간 한 생을 마치게 된다.
한 생애 동안 생명체들은 자신의 씨를 뿌리고 새로운 생명을 낳음으로써 종족을 이어 나간다. 이러한 순환의 철칙에는 인류역사나 지구, 그리고 우주도 예외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것은 결과가 남는 것이며
그 결과는 다시 원인이 되어 끝없이 도는 것이다.
모든 것은 지은 대로 그에 합당한 결과를 받는 것이니
인간이라고 예외일 수가 없다.
이러한 영혼과 사후세계에 대해 생명의 실상과 우주의 진실을 꿰뚫어 본 모든 성자들이 인정한 바가 있다.
부처님이야 윤회가 본업이니 말할 것이 없고 예수는 죽은 후에 천국의 보좌 옆에 앉는 구원의 사례와 엘리야의 환생을 말했으며 소크라테스는 파이돈에서 윤회에 대해 직접 언급했다.
부처님이 윤회를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말은
힌두교의 영향으로 마야사상이 들어오면서
모든 것이 환이니 자아도 없다고 하는 교리가 만들어지면서
불교 속으로 들어온 말법이다.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은 윤회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부처님은 모든 존재하는 실상과 생명 원리를 있는 그대로 모두 보신 분이니
어찌 생명의 공통원리를 보지 못했겠는가?
초기 경전에서도 공덕을 행하면 천상에 나고 악업을 지으면 지옥에 난다는 것이 대부분 말씀을 이루는 공통된 패턴이다.
이처럼 윤회가 생명 순환의 기본원칙으로 부처님 입에서 자주 말해졌는데
오늘날 불교 속에 윤회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이다.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수기를 준 것도 바로 이러한 생명의 흐름이 윤회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윤회가 없다면 제자들이 무엇이 있어 다음 생에 부처가 될 것이라 수기를 받았겠는가?
그리고 소크라테스도 파이돈에서 윤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죽은 자는 산 자로부터 나오고 산 자는 죽은 자로부터 나오며 선한 영혼은 악한 영혼보다 더 좋은 운명을 가진다. 인간은 전생의 습관에 따라 다시금 메이게 되는데 마구 폭식하거나 제멋대로 산다거나 술에 취해 산 자는 당나귀나 그밖에 탐욕스런 동물로 태어나고 부정한 일과 포악한 일, 도적질을 한 사람은 독수리나 매 같은 것으로 태어나며 부지런하고 규칙을 즐기는 이는 개미나 벌이 되며 또 그들로부터 다시 인간이 나올 수 있다." 고 하여 생명의 순환원리를 잘 설명했던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는 윤회사상을 인정하지 않으며 이것을 본래 기독교리인 듯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초기 기독교에서 윤회와 환생은 정식으로 인정되던 교회신학의 일부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순환과 윤회의 원리는 이 세상을 움직이는 기본원리로서 진리를 깨친 모든 성자들이 세상에서 발견하는 공통된 진리이며 예수님은 제자들을 가르칠 때 기본원리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순환과 인과의 이치를 들어 제자들을 가르쳤다.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 <마태복음 7장 16~21>
『나무도 좋고 실과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실과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실과로 나무를 아느니라.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마태복음 12장 33~35>
이처럼 예수님은 지은대로 이루어지는 영원불변의 순환원리를 보셨던 것이다. 즉 좋은 원인이 나쁜 결과를 맺는 일은 없으며 좋은 결과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좋은 원인이 있어서 각자가 지은 대로 가시나무는 가시를, 포도는 포도를 낳으며 잘못된 삶을 지은 자는 불에 태워지는 지옥의 벌을 받게 되는 것을 은유적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그래서 초기 기독교리가 성립되는 과정에서 윤회는 당연한 교리로 여겨졌다. 기독교가 자리를 잡으면서 뛰어난 통찰력을 가진 교부들이 나타나 초기 기독교 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세계적 종교로 발전하고 있는 기독교를 세상에 널리 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차원의 신도들에게 합리적인 교리를 전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이를 위해서는 당시 선진문화였던 그리스 로마 철학을 활용하여 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러한 초기 교부들로는 서기 2세기경 로마에 최초의 기독교학교를 설립했던 순교자 유스티누스(Justinus)와 그리스의 신학자 오리게네스(Origenes), 성 히에로니무스(St. Hieronimus), 성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us),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Clement) 등이 있는데 이들은 공통적으로 환생설을 가르쳤다.
초기 기독교 교리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그리스 저술가 오리게네스(기원 185년경-254년)에 이르러 처음 결실을 맺게 되었다. 오리게네스는 「제1원칙들에 대하여」(On First Principles)라는 논문은 그리스 철학을 통해 기독교 신학의 주요 교리들을 설명함으로써 고차원적인 신자들을 대상으로 한 수요에 대처했던 것이다.
오리게네스는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대표적 신학자로 그리스도교 최초의 체계적 사색가로서 이후의 신학사상 발전에 크게 공헌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데 그는 성서의 영적 의미를 진리적으로 이해하였다. 이러한 관점은 초기 영지주의의 흐름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리스 철학 사상의 전통을 가진 지중해 남부의 알렉산드리아의 이성적인 기독교인들에게 이러한 믿음은 절대적이었다. 그리하여 성 그레고리(St. Gregory)와 성 제롬(St. Jerome)같은 성인들도 그를 "기독교 학문의 왕자" 또는 "그리스도 이래 가장 위대한 교사" 라고 극찬했다.
그는 예수를 하느님의 아래 위치시키고 영혼의 윤회환생과 업(Karama)의 개념을 핵심적인 원리로 편입시켜 설파하였다. 오리게네스는 자신의 주요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명백히 환생의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 모든 영혼은 전생의 승리(善業)에 의해 강해져서 태어나거나, 아니면 패배(惡業)에 의해 약해진 상태로 이 세상에 다시 돌아온다. 이 세상에서 그 영혼이 겪는 명예로움이나 불명예스러운 일들은 전생의 공덕이나 악업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오리게네스는 생각하기를, 인간의 영혼은 육체로 태어나기 이전에 존재하며, 신과 재결합 하기까지 한 육체에서 다른 육체로 옮겨가면서 경험을 통해 배워나간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더 이상 육체의 형태를 취할 필요가 없을 때, 궁극적으로 모든 영혼들은 비로소 하나님의 세계로 돌아간다고 믿었다.
그는 또한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이러한 신과 조화되거나 일치되는 과정을 상당히 촉진시킬 수는 있으나, 여기에 개인적인 노력이 병행되지 않고서는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보았다. 이어서 그는 인간이 자신의 자유의지로 인해 신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타락한 이래 인간은 또한 자신의 결단에 의해 하나님과의 재결합을 다시 이루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그는 "영지주의자들이야말로 진정한 기독교인이다." 라고 자신의 저술을 통해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영지주의자들은 각자의 내면에 있는 신성의 빛을 되찾아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까지 인간의 영혼은 몇 번이고 육체로 다시 태어나 세상의 경험을 통해 배우면서 궁극적인 구원에 이른다고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윤회환생에 대한 믿음은 초기 기독교 신앙의 근본토대를 이루는 것이었으며 예수의 진리적 가르침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하지만 신앙주의자들과 교회론자들은 오리게네스의 이러한 학설에 반대했고, 이 이론이 지나치게 개인적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신성과 믿음을 강조한 교회의 입장에서는 환생사상이 현생에서의 구원의 필요성을 경시하게 만들고 교회와 그리스도의 역할을 최소화시킨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영혼이 자기가 지은 바에 따라 반복해서 계속 태어나고 결과를 받는다면, 생존 시에 교회를 통해 예수를 믿느냐 안믿느냐에 따라 구원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노력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교회와 예수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교리가 무의미해지고 교회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 초래되기 때문이었다.
이는 황제의 입장과도 맞아 떨어지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이치에 따라 이루어진다면 교회를 통해 최고의 권위와 정당성을 인정받으려고 기독교를 국교로 선언한 황제의 의도 또한 확립되기 어려운 것이다. 황제의 명령보다 자연의 이치와 양심에 따라 모든 것을 행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초기 기독교 시대의 교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오리게네스의 사상은 서기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신약성경에 실려 있던 윤회에 대한 언급들을 없애기로 결정하였고 서기 325년 니케아 공의회 이후 모든 복음서에서 삼위일체설을 선택하면서 환생을 암시하는 구절들을 완전히 삭제해 버렸으며 윤회를 가르치던 당시의 교리적 용어인 '선재론(先在論)'이란 개념도 교회신학에서 완전히 삭제되었다.
즉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오늘날 기독교가 세계종교가 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지만 반면에 교회와 교리에 대한 전권적인 행사를 하면서 기독교의 기본 교리를 왜곡하는 대죄를 저지른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기독교의 창시자는 예수가 아니라 콘스탄틴황제이다"라고 했던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사후세계에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과 내생이 있다는 것은 의심 없이 믿고 있으나 전생이 있다는 것은 이러한 기독교의 역사 때문에 모두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일은 반드시 원인과 결과의 법칙이 통용되는 것이다. 내생이 있다는 것은 곧 전생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기독교인들은 외면하고 있으니 초기 기독교인들보다 그 수준이 더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지금은 삭제되고 왜곡된 경전이지만 아직까지 전생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많은 구절이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그제야 제자들은 예수의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마태 17장 11~14]
+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은 내 날을 보리라는 희망에 차 있었고 과연그 날을 보고 기뻐하였다." 유다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당신이 아직 쉰 살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단 말이오?" 하고 따지고 들었다. 예수께서는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 하고 대답하셨다.[요한 8:56~58]
어쨌든 초기 기독교에서 일반화되고 있던 윤회사상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국교화시키면서 이단으로 단죄했지만 사람들의 마음 속에 개별적 신앙으로 지켜져 오던 윤회의 원리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당시 로마황제와 교회권력은 이를 제거하기에는 지속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서기 553년 오리게네스의 사상을 비난했던 독재적인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콘스탄틴노플에서 소집된 제 5차 종교회의에서 〈윤회환생론〉은 다시 이단으로 결정하였다. 즉 로마 황제의 들러리 정도에 불과했던 전체 대다수의 동로마 출신의 주교들(159명)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심의를 제안했던 〈오리게네스에 대한 15개 조항의 이단 선고문〉을 황제의 명에 따라 비준하여 채택했던 것이다.
그 15개 조항 가운데 4개가 윤회환생에 관한 것이었고, 그 첫 번째 조항은 이러하였다.
1. 그 누구든 터무니없는 (태어나기 전의) 영혼의 선재(先在)를 주장하거나 영혼이 다시 태어난다는 소름끼치는 환생을 주장하면 파문할 것이다. (IF anyone asserts the fabulous pre-existence of souls, and shall assert the monstrous restoration which follows from it: let him be anathema.)
결국 기독교는 AD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아타나시우스파의 삼위일체설을 세우면서 아리우스파의 단일신론(예수를 인간 중 완성된 자로 보고 하나님만 신으로 인정)을 이단으로 정죄하여 몰아내었고 이어 6세기에 윤회사상마저 이단으로 낙인찍음으로써 사실상 기독교에는 예수님의 핵심 가르침의 대부분이 빠져 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5차 종교회의의 선고에 따라 전 유럽에서는 이단으로 낙인찍힌 윤회환생을 믿는 기독교인들을 잡아 화형에 처하는 피비린내나는 박해가 수백년간에 걸쳐 일어났다. 그리하여 자연과 생명의 기본 원리인 윤회론은 기독교에서 사라져버리고 기독교는 진리적 가르침보다는 믿음만을 강조하는 신앙 위주의 종교가 되어버린 것이다.
출처 진실의 근원(http://www.gincil.com/) 사실과 이치로 삶의 의문을 밝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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