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진실을 찾아서
신지학에 대한 질문 본문
그곳에는 보기좋고 듣기 좋은 아름다운 꽃노래만 있을 뿐 진리가 없다.
깨달음은 분명한 실체가 있어야 한다.
신지학이 깨달은 성자들에게서 나온 것도 아니고
신지학을 해서 깨달은 자가 나온 적도 없는데
어찌 그 논리가 그럴듯하다고 해서 진리인양 확신을 갖고 따르고 있는가?
신지학을 창시한 헬레나 블라바츠키는 어릴 적부터 영이 들어 오컬트현상에 빠져든 영매인 것이지 깨달은 자가 아니다. 스승께서도 우연한 기회에 미국 신지학회에서 헬레나 블라바츠키의 사진을 보시고 그녀는 큰 귀신이 붙은 여자라 하셨다.
그녀에게는 깨달았다는 아무런 징표가 없는데 그녀가 창시한 신지학에 세상을 이끄는 영원한 진리가 있다고 믿고 따를 수 있겠는가? 만약 그것이 진리가 아니라면 그만큼 자신의 삶을 거짓으로 망치는 일이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신지학은 과거 서구의 영지주의와 오컬티즘 그리고 힌두교의 명상법이 가미된 영적 환상이 가득한 관념적인 지식체계이다. 그들은 세상 속에 있는 실상과 이치를 보지 못하고 영적 교류를 통해 세상을 보려고 한다. 그들은 이 우주에는 현실에 작용하는 고차원의 높은 신들이 있어 이들이 세상을 구원하는 지식과 지혜를 주며 세상을 완전하게 이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오늘날 채널링과 같은 계통의 영적 흐름이다.
그러나 어찌 신이 세상에 진리를 밝히겠는가?
진리는 오직 인간으로 태어나 깨달음을 얻은 살아있는 각자에 의해 나타난다.
이 세상에 나타나는 신이란 고차원의 신성한 신이 아니라 대부분 한과 집착에 의해 세상을 떠도는 유혼에 불과하다. 생명의 이치를 깨닫지 못해 세상을 떠도는 신이 세상을 밝히는 진리를 전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영이 든 자의 말은 신계의 말로서 세상을 떠도는 유혼들의 말이며 세상을 지배하고자 하는 어둠의 세계의 음모인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한스러운 처지를 위로받기 위해 인간세상을 지배하여 인간들의 섬김을 받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신의 계시에 의지하는 이러한 주장은 실상과 진리를 강조한 성자들의 가르침과 배치되며 인간이 가야할 생명의 길과 어긋난다.
신지학은 영적 비의를 강조하고 있다.
진리에 접근하는 방법으로 영적 체험을 중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는 사실 속에 존재하며 생생한 삶 속에 작용하고 있다.
즉 눈앞에 보이는 이 세상 모든 것이 진리인 것이다.
그런데 어찌 영을 알아야 진리를 알겠는가?
영을 알아야 진리를 안다는 오컬티즘은 결국 신놀음에 빠지는 첩경인 것이다.
따라서 영적 신비가 세상을 지배하게 되면 진리와 생명의 세계가 어지러워지는 것이다.
자기 속에 있는 업으로 인해 이러한 영적 환상을 좋아하여
신지학의 화려함에 이끌려 환상을 보는 자들을 따르게 되면
결국 그는 영원히 사실을 보지 못하고 거짓과 환상 속에서 인생을 소모하게 될 것이다.
그들의 말은 아름답지만 진리를 알지 못하니 그 속에 길이 없다.
길을 보지 못하고 아름다운 말들만 짜깁기해서 만들었으니
꽃노래에 불과할 뿐 그 속에 생명력이 없는 것이다.
세상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좋은데
어떤 것이 사랑인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대표인 사례가 크리슈나무르티이다.
초기 신지학회 회원들은 크리슈나무르티에게서 '메시아' 내지 '세계의 스승' 이 될 것같은 오로라를 보고 크리슈나무르티를 점지하여 특별교육을 시켰다. 1911년 '세계의 스승'를 맞이하기 위해 신지학회내에 '별의 교단(the order of the star in the east)'이 창립되었다. 그들의 특별교육 속에서 성장한 크리슈나무르티는 지도자가 되어 교단을 이끌었고, 세계적인 강연에 나섰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점차 자기 철학을 정립한 크리슈나무르티는 자기 신념에 충실하고자 1929년 네델란드의 옴멘에서 열린 한 모임에서 돌연 '별의 교단'을 해체했다. 그리고 추종자를 원치 않는다고 선언했다.
"누군가를 따르는 바로 그 순간부터 그대는 이미 진리를 따르지 않는 것이다. 진리란 온갖 형태의 얽매임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그 어떤 집단이나 종교를 통해서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그 선언의 핵심이었다. 생활 속에서 나의 모든 행동을 객관화시키고 관찰하며 어떠한 종교나 단체에 소속되지 말고 자유롭게 모든 현상을 바라보고 자신의 에너지가 전부 기울여지는 가운데 그것들을 바라보는 관찰자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깨달음을 자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이 바로 오늘날 힌두철학의 일반적 흐름이며 오늘날 유행하고 있는 동양 명상법의 주류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 속에는 길이 없다.
업이 많아 마음이 캄캄한 자들이 가만히 앉아 자기를 응시하거나 화두를 잡는다고 해서 홀연 깨달음이 찾아올 수 없다. 지은 것이 아무 것도 없고 마음이 어둡고 욕심이 가득한데 맑고 집착없는 해탈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가만히 마음을 응시하거나 무위에 젖거나 공을 자각하면 깨달음이 온다는 류의 현대 명상법들은 모두 기술에 치우친 길이 없는 말법으로 짓지 않은 것을 얻고자 하는 허망한 말법인 것이다. 이처럼 현재 수행법의 근본적 문제점은 생각으로 모든 것을 지우고 공을 얻었는데 자기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숙생의 업의 움직임을 극복하지 못했으니 머리로는 깨달았는데 실제 깨달음의 증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말세가 되면 이러한 화려하고 거짓된 지식들이 번져
소박하고 사실적인 참된 지식을 경시하고 부정하게 만들게 된다.
그리하여 거짓이 인간의 마음을 병들여 진실이 발붙힐 곳이 없게 되면
이 세상은 진실이 사라져 망하게 되는 것이다.
진실이 사라지면 세상이 망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 것이다.
세상을 살아남는 이유는 그래도 진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깨달음의 길은 성자들의 가르침 속에 있으며 실상과 진리 속에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정법은 오로지 세상을 이루고 있는 한치도 어김없는 진리를 배우고 깨우치고 전하고 실천하면서 자신 속에 진리와 사랑을 가득 채우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짓지도 않는 일이 이루어질 리가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진실로 모든 악과 거짓을 버리고 자신에 대한 사사로운 욕망과 이기심을 버리고 마음이 깨끗해지고 진실해지면 한점 흐림없이 맑은 자신의 해탈된 마음을 보게 되고 그 맑은 마음에 세상이 비치게 되는 것이다.
---질문---
이런 저런 책과 모임을 통해, 신지학이라는것을 알게되었습니다.
배경도 배경이려니와 주장의 내용과 근거가 일리있어 보입니다만,
한국에서는 사실상 사라지고 세계적으로도 움직임이 정지된듯 합니다.
개인적으로 흥미가 있지만 배울곳도, 조언을 해줄이도 없네요.
선생님의 고견을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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