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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참선

gincil 2013. 11. 6. 10:28

1988년 *월 *일 (참선의 시작)

 

 

 

최고의 종교라고 하는 불교에서 


최상승법이라고 주장하는 참선으로 

 

궁극적인 해결을 찾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기의 정체가 과연 무엇이며 생명과 어떤 관계가 있고 

 

우주의 근원과 어떤 의미가 있는가에 대해 

 

화두를 잡고 참선에 들어갔다. 

 

 

 

그러나 집중해야 할 과제가 


내단과 화두 두 가지이기 때문에 혼동이 생긴다. 

 

그래서 이 둘을 마음자리(중단전)에 모아놓고 


같이 삭이기로 했다.

 

 

 

1988년 *월 *일 (화두를 잡다)

 

 

 

인식이 끊어진 곳에 무엇이 있는가 하는 화두를 잡았다. 

 

아찔한 황홀경을 느끼며 그 속으로 계속 들어갔다. 

 

허공이 떠오르고 하단전에 푸른 백광이 생기고 

 

다시 금광이 황홀하게 온몸을 감싼다.

 

 

 

1988년 *월 *일 (나는 무엇인가)

 

 

 

화두를 잡은 이래 꿈이 사라졌다. 


모든 것을 비워버리기 때문인 듯 하다. 

 

보는 넌 누구인가? 


의문이 끊어진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인가? 

 

모든 것이 사라진 곳에 홀로 남은 ‘인식하는 나’는 무엇인가? 

 

그것은 충맥의 텅빈 허공이며 오직 홀로 남은 황홀한 주체이다. 

 

그것은 곧 자아의 빛이다.

 

 

 

1988년 *월 *일 (물아일여)

 

 

 

요즘에는 아무리 사람이 많은 곳에서도 쉽게 정적으로 들어간다. 

 

과거 글을 읽다가 


‘무념무상 물아일여’의 경지라는 표현을 보고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꿈속의 일처럼 궁금했는데 

 

이렇게 일상 속에서 항상 체험하게 되다니 


인생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1988년 *월 *일 (최면의 응용)

 

 

 

최면기법으로 명상에 드는 기술이 매우 늘어 


아주 쉽게 깊은 명상에 젖어든다. 

 

내단의 힘이 크게 작용한 탓도 있으리라.

 

 

 

1989년 *월 *일 (무자 화두)

 

 

 

통근버스 속에서 '無'자 화두를 잡았다. 


일 분 뒤 깊은 명상으로 젖어 들었다. 

 

모든 것을 지우고 또 지우고 


계속 無! 無! 無! 하고 파고 들어갔다. 

 

그러던 중 갑자기 인당이 확 밝아져오면서 


세상이 하나로 다가왔다. 

 

온몸이 비에 씻긴 것처럼 깨끗해진 느낌이다.

 

 

 

1989년 *월 *일 (통근버스 속의 무)

 

 

 

엔진소리가 시끄러운 통근버스 속에서 


마음이 사라지는 묘한 체험을 했다. 

 

마치 망치로 얻어맞은 멍한 느낌이라고 할까? 

 

온갖 마음이 허공 속에 헛되이 오가고 있었다. 

 

허공이 뚜렷이 관하여지고 


모든 시방법계가 허공 속에서 오가고 있었다. 

 

한치의 어김없는 인과의 이치가 일어나 


세상을 꾸미고 있었다. 

 

세상이 흘러가는 인연법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완전한 법계 속에 이 세상 모든 것이 


스스로 생겨나 돌고 있었다. 

 

모든 것이 하나되어 거대하게 돌고 있으니 

 

어찌 그곳에 어찌 내 것 네 것이 있겠는가? 

 

불성은 오직 하나일 뿐이다.

 

 

 

1989년 *월 *일 (대 자유는 어디에)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비친다는 


대원평등지(大圓平等智)를 이해하다. 

 

완전한 대자유의 경지인 성소작지(成所作智)는 


언제 나에게 다가올 것인가?

 

 

 

1989년 *월 *일 (허공장에 들다)

 

 

 

오늘 하루종일 허공장 속에 들어있었다. 


그 속에서는 모든 것이 사라졌다. 

 

몸도 사라지고 마음도 사라진다. 


남은 것은 분명한 세상의 실체밖에 없었다. 

 

허공 속에서 나의 감정과 마음과 세상일이 


다 흘러가고 있었다.

 

 

 

1989년 *월 *일 (존재의 비밀)

 

 

 

존재의 비밀을 깨치다. 


본디부터 불성은 이 우주에 오롯하다. 

 

완전하므로 존재하고 스스로 뜻을 내며 영원히 움직인다. 

 

완전히 존재하는 것은 완전하게 움직이며 


일체의 것을 관장한다. 

 

모든 것이 한치의 어김없이 움직이며 


완전한 뜻으로 자존한다. 

 

그리고 모든 우주의 부분은 


다시 거대한 완전성 속으로 흡수된다.

 

 

 

어설피 깨달은 사람은 세상이 짓고 또 짓고 돌고 또 돌며 

 

헛된 뜬구름같이 부침을 되풀이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를 완전히 알면 세상은 영원히 돈다는 것을 안다. 

 

왜냐하면 신성은 존재하기에 움직이는 것이며 


완전하기에 완전한 의미와 뜻으로 

 

자신을 영원히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세상의 참모습이다. 

 

 

 

1989년 *월 *일 (생명의 의미와 가치)

 

 

 

인과의 이치는 법계 속에 철저히 흐른다. 

 

 

 

우리가 생명을 지니듯 생명은 우주자체의 근본 실체이다. 

 

그 신비를 안고 살아가고 있으니 우주는 생명 그 자체요, 

 

우리는 신성 그 자체이다. 

 

나의 행동 하나 하나가 신성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니 

 

얼마나 장엄하고 신비로운가?

 

 

 

1989년 *월 *일 (농사의 이치와 인간의 열매)

 

 

 

세상은 완전한 인과의 이법에 따라 움직이는 


신성한 표현임에랴? 

 

악한 행동에서 악한 결과를 보고 


선한 행동에서 선한 결과를 가져가니 

 

그 행동에 따른 결과를 겪으면서 


사람은 점차 완성에 가까워간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문명을 발전시키고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완성시키며 신성에 도달하기 위해서 

 

생명의 꽃을 피우기 위한 것이다. 

 

 

 

완전한 우주는 자신의 씨앗을 의식으로 뿌려놓나니 

 

무한한 의식의 씨앗은 


유한한 물질세계 속에서 제약을 받으며 성장하다가 

 

그 체험으로 완성의 열매를 얻는 것이니 


이것이 살아가는 모습인 것이다. 

 

 

 

사람이 고통을 느끼는 것은 


어린 신성이 완전성의 열매를 다시 얻을 때까지 

 

비바람에 시달리는 것과 같다. 

 

어떤 인간의 의식은 


이를 견디지 못하고 쭉정이에 이르게 되고 

 

어떤 씨앗은 거친 환경을 잘 견뎌내 


마침내 완전한 열매를 맺는다. 

 

 

 

농사의 이치는 사람의 정신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1989년 *월 *일 (진짜 공과 거짓 공)

 

 

 

논리적으로 공을 이해하는 것과 

 

내 스스로 고요히 진공이 되어 우주와 하나되는 것, 

 

그리고 단순히 세상을 보는 것과 

 

행주좌와 어묵동정((行住座臥 語默動靜) 간에 

 

우주와 하나되는 보는 것은 하늘 땅 차이만큼 크다. 

 

 

 

어떻게 해야 마지막 껍질을 벗어 던지고 


우주와 합일을 얻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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