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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법과 유위법의 진실 본문

☆ 사실,이치 나눔글

무위법과 유위법의 진실

gincil 2016. 6. 7. 22:07

1. 불교의 시작


부처님은 끝없는 전생을 돌며 선근과 공덕을 쌓으시고 마침내 이 땅에 오셔서 수많은 수행을 거쳐 마침내 인연이 무르익어 어느날 새벽 자신 속에서 마지막 업이 사라짐을 보시고 해탈심을 얻어 마침내 삼계의 실상을 보는 일체지자가 되셨다.

그리하여 업이 사라진 맑은 마음에 온 세상이 있는 그대로 비쳤으니 그분께서는 태초이래 인간세상을 오랜 동안 짓눌려오던 신의 우상과 미신의 어둠을 깨트리고 참된 우주의 실상과 실상을 이루는 인과의 이치를 밝히셨던 것이다.


부처님의 말씀은 삼계를 있는 그대로 보는 법안으로 실상을 밝힌 것이기에 중생들은 그 말씀에 따라 행하면 모두 현실로 증명이 되어 부처님법은 인류 최고의 진법이 되었으며  부처님을 인류 최고의 스승으로 모시게 되었던 것이다.


부처님은 일체지자로서 모든 세상을 하나의 시각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어떠한 문제도 막히는 게 없었고 어떠한 말씀도 서로 모순되는 것이 없었다. 그분의 가르침은 삼계를 한눈으로 보신 것이기에 모든 것이 명확했고 간단했다.


즉 이 세상은 완전한 법계이며 한치의 어김없는 인과의 이치로 이루어지고 있으니, 진리의 가르침에 따라 무명에서 벗어나 좋은 원인을 지으면 천상에 이르고, 나쁜 원인을 지으면 지옥에 떨어지니, 끝없이 도는 생명의 윤회 속에서 팔정도를 열심히 배워 이고득락의 복을 짓고 인간완성의 경지인 해탈에 이르라는 것이었다.


부처님이 살아계실 때는 이러한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 아무런 의문이 없었다.

따라서 오늘날 문제가 되고 있는 윤회의 유무, 업의 주체의 유무, 무아와 비아, 이 세상의 실체성과 공성에 대한 의문은 생겨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모르거나 궁금한 것이 있어 물어보면 실상이 비치는 대로 바로 답을 해주셨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요즘 쟁점이 되고 있는 문제에 대해 기록된 것이 없으니 한치 앞도 보지 못하는 눈뜬 장님들이  생각 속에서 신기루를 만들며 헤매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이 살아계실 때는 문자가 제대로 발명되지 않은 옛날 옛적이었다. 그래서 부처님은 평생동안 인연에 따라 구술로만 법을 설했을 뿐 체계적으로 이를 정리하거나 경전을 편찬한 일이 없다. 그리고 돌아가실 때도 교단을 이끌 지도자를 두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당시 부처님 이외에는 깨달은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경전을 살펴보면 당시 많은 깨달음을 얻은 아라한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실상 부처님과 같은 해탈에 이른 이는 없었다. 부처와 같은 정각자가 있어 법을 부처님과 같이 올바르게 볼 수 있었다면 교단을 이끌도록 하지 않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비록 마하 카샤파와 같은 두타 제일의 수승한 제자도 있었지만 완전한 부처를 이루고 실상을 보는 법안을 지니기 위해서는 그 또한 다음 생을 기약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중생이 중생의 귀의처가 될 수 없었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수행 중에 있는 자가 세상의 스승이 될 수 없었기에 인연에 따라 법이 전해지도록 하신 것이다. 초전법륜에서 망서렸듯이 청정한 불법은 영원히 계속될 수 없으며 선근있는 자들에게만 인연에 따라 전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신 것이다.


그래서 열반시 유훈하시기를 ‘법에 의지하고 자신에 의지하여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라’고 하신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불교역사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고 불교는 결국 불자 개인의 책임과 노력에 의해 성취되는 형태를 취하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 깨달음을 얻는 자는 흔히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한 인류역사에 오직 한 부처가 난다고 하기도 하고 다음에 나타나는 미륵부처는 3천년 또는 수만년 뒤에 난다고 하는 말이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희귀한 현상이니 초기불교에 있어서 중생이 깨달음의 경지를 함부로 이야기하는 것은 아만이었고 불경스런 일로 비쳤다. 따라서 초기에 제자들의 입장은 부처님에 대한 깊은 존경심에 스스로 목적하는 바를 아라한과에 두어 아라한과 불타의 거리를 엄격히 유지하는 것이었다.


즉 초기에 제자들의 기본입장은 열심히 선근과 공덕을 닦아 깨달음에 이르는 선근을 쌓는 것으로 족하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절대자이신 부처님이 남긴 말씀을 잘 보존 정리하여 널리 세상에 전하는 일이었다. 비록 힘든 일이었지만 희유한 진리의 말씀을 세상에 전한다는 것만으로 세상에서 가장 보람있고 가치있는 일이었으며 엄청난 공덕을 짓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부처님이 돌아가시자 육친제자들은 법이 훼손될 것을 우려해 법을 가능한 완전히 정리하여 보존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들은 완전한 깨달음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법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고 각자의 기억과 이해에 따라 부처님 법을 받아들인 것이 다 달랐다.


기본적으로 부처님 사후 바로 칠엽굴에서 1차 결집이 있고 100여년 이후 10사(十事)를 토론하기 위한 2차 결집이 있다고 하지만 이것은 공식적인 모임에서 거론된 주요한 가르침에 대한 것이었고 그것도 완전한 합의를 이룬 것이 아니었다. 구사론의 저자인 세친이나 그와 논쟁하였던 중현이 전하는 글에 의하면 부처님 사후 바로 이루어진 제1결집은 순탄하게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한다. 계율제일이었던 교범파제는 율장을 결집할만한 이로 추천되었지만 이를 거절하였고(『대지도론』), 설법제일로 알려진 부루나는 결집의 추인을 거부하고 자신이 직접 들은 것만을 전승하였으며(남전 율장 소품), 가섭이 주도한 1차 결집과는 별도로 다른 결집이 이루어지기도 했다고 한다(『대당서역기』). 이러한 정황을 살펴보건데 불경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처음부터 완벽한 체계로 만들어지지 못한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어쨌든 부처님 사후 육친제자들은 부처님에게서 전해들은 희유한 정법인 불사의 진리를 세상에 널리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충만하여 인도 전역으로 흩어져 법을 전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부처님의 원음이 지켜졌으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직전 제자들이 모두 돌아가시고 구전에 의해 불교가 널리 퍼지면서 생생한 부처님의 가르침은 그 실체가 점점 흐려져 갔다. 이러한 흐름은 불법이 기록에 의하지 않고 구전에 의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것이 그 경향을 더욱 가속화시켰다. 부처님이 이미 정법 500년 설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정법 또한 세월의 무상함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2. 부파불교의 형성


시간이 흘러 육친 제자들이 모두 떠나시고 나자 불교교리의 정립과 전파는 육친제자들의 몫이 아니라 그들에게서 배운 제자들의 몫이었다. 그들은 구전되어왔던 부처님의 참 진리를 세상에 널리 전하기 위해 각 부파별로 자신들이 전승해온 것을 기초로 교리를 만들어 나갔다. 이것이 부파불교(아비달마)의 시작이었다.


아비달마라는 말은 전통적으로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즉 유부에서는 '부처님법(dharma)을 본의에 맞게 밝히는 것'이라는 대법(對法)의 뜻으로, 팔리 상좌부에서는 '뛰어난 법(勝法 혹은 增上法)'의 뜻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양자는 결국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불타가 설한 가르침을 뛰어난 지혜로 부처님법의 원음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비달마에 의하면 초기 부처님의 가르침은 모든 것이 깨달음을 설하는 법이 아닐 뿐더러 설사 그것이 깨달음과 관계하는 법문이라 할지라도 듣는 이에 따라 다양하게 설해졌기 때문에 그 요체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마땅히 어떤 표준적 근거에 의해 정리 해석되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것이 바로 '아비달마'라는 것이다.


당시 논사들은 ‘불설(buddha vacana)’과 부파에 의해 결집된 ‘성스러운 가르침(聖敎, buddha ´Sa-sana 즉 아함과 니카야)’을 분명히 인식하고 엄격히 구분하였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아함이나 니카야는 부처님의 친설이라기 보다는 아비달마 논사들에 의해 부처님법으로 취사선택되고 정리된 체계로서, 제 부파간의 불설/비불설의 논쟁 또한 이러한 구분에 의한 것이었다. 즉 자신들의 경전이 부처님의 친설에 해당되는가 아닌가가 불설 비불설 논쟁의 주요한 근거가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초기의 아비달마는 크게 네 단계를 거쳐 발전되었다.


첫 번째 단계는 부처님의 원음을 있는 그대로 정리하는 단계였다. 숫타니파타나 이띠붓따까와 같은 초기 경전들이 그러한 성격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경전들은 부처님이 일상의 삷속에서 제자들과 자연스런 문답을 하는 과정을 그대로 기술했기 때문에 문구가 자연스럽고 순수하며 사실을 놓고 그 인과법을 설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것이 깨달은 분이 법을 설하는 기본형태인 것이다. 왜냐하면 깨달은 자는 생각이 없기 때문에 사량으로 논리를 만들지 않고 맑은 반야심에 비치는대로 그대로 자연의 실상과 이치를 묘사하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아비달마적인 경향을 띠는 경장(經藏)이라 할 수 있다. 초기 부처님의 말씀은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인연에 따라 자연스레 이루어졌기 때문에 초기에 부처님의 말씀은 비체계적으로 설해져 있거나 그 의미가 불명료한 개념들이 많았다. 그리하여 초기에는 주로 이러한 말씀을 정리하고 조직하며 해석하고 설명하여 완벽한 체계를 갖추려고 했다. 이를테면 『증일아함경』이나 증지부 경전, 혹은 『중집경(衆集經, Sangiti suttanta)』이나 『십상경(十上經, Dasuttara suttanta)』과 같은 단경(單經)에서는 부처님 법을 수에 따라 분류하여 1법에서 10법, 혹은 11법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잡아함경』이나 상응부 경전은 경의 주제나 내용의 유형에 따라 정리되어 있는 것이다.


세 번째 단계는 첫 단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경장을 더욱 세밀하게 정리하고 체계화하여 그 주제에 따라 정리하는 단계이다. 이를테면 유부의 『집이문족론(集異門足論)』이나 『법온족론(法蘊足論)』의 경우, 전자는 앞의 『중집경』의 내용을 부연 설명한 것이며, 후자는 아함경전 중에서 21가지 중요한 교설을 선정하여 이에 대해 상세히 해석하는 형태의 논서이다. 이 단계의 논서는 아직 경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것이 아니며, 말 그대로 다만 불타교법에 대한 해석 정리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다른 부파와 공통되는 요소도 많이 포함하고 있다


네 번째 단계는 정리하고 해석하여 명료해진 개념들을 가지고 여러 논사들이 독립적인 해석을 가하여 거대한 불교학의 체계를 성립시킨 단계이다. 이렇게 종합적으로 해설된 각 교설은 점차 부파에 따라 매우 복잡한 체계로 해석되고, 각 술어 사이의 상호관계에 대해서도 극단적일 정도로 자세한 분석이 이루어져 방대한 분량의 논서가 만들어지게 된다. 이때는 경장으로 실릴 단계를 넘어서기 때문에 독자적인 연구논문으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예컨대 『아비달마발지론』(20권)에서는 이전의 개별적인 논의를 근거로 하여 유부학설 전반을 주요범주에 따라 8장으로 정리 조직하여 논술하고 있으며, 나아가 『아비달마대비바사론』(200권)과 같은 이에 방대한 분량의 백과사전식의 주석서가 작성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아비달마 논사들의 노력에 의한 불교교리의 발전이 최종적으로 경, 율, 논 삼장으로 정립되어 오늘날 불교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방대하고 체계적인 초기 교리의 성립은 바로 이러한 아비달마 논사들의 피땀어린 정성과 노력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법안이 열려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분들이 아니라 불교를 이론적으로 연구한 학승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정리하고 사유한 불교교리에는 아직 깨닫지 못한 중생의 습이 묻어있었다. 또한 그들은 인도에서 태어나 힌두적 관념과 논리 속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그들이 불교를 정립하면서 만들어낸 아비달마 이론 속에는 자연스레 염세적이고 관념적인 힌두교의  논리가 자리잡게 되었다. 즉 오늘날 불교교리는 부처님의 생생한 깨달음의 원음이 아니라 부파의 논사들이 철학적 사유로 정리 보완하고 취사선택한 이론적 체계로서 힌두교의 염세성과 마야(환, 공, 무실체)성이 강하게 묻어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인 것이다.


그들은 다양한 부처님의 가르침 가운데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선택하여 각각의 의미에 대해 상세히 해설하고 나름대로의 정의를 내렸으며 이를 정리할 필요성에서 일정한 체계로 틀을 짰다. 이때 가장 두드러진 방식은 관계있는 교설을 숫자에 따라 정리하는 방법으로 일법(一法), 이법(二法), 삼법(三法)과 같은 순서로 배열하는 방법과 동일한 주제를 한 곳에 모아 정리, 배열하는 방법이었다. 즉 삼법인, 사제, 육근, 육경, 팔정도 12연기라는 분류들도 원 가르침에는 평범한 언어로 상황에 따라 사실적으로 표현된 것밖에 없었으나 부파불교의 논사들에 의해 숫자적인 개념으로 알아보기 좋게 새로 정의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불교를 체계화하고 자신들의 언어로 열반, 무루, 무상, 무아, 중도, 공, 삼법인, 사성제, 육근, 육경, 팔정도, 12연기 등과 같은 개념과 이론들을 구축해나가면서 이러한 단편적인 정의들이 부처님의 전체적인 말씀과 모순되는 현상을 가져오게 되었던 것이다. 즉 부처님 살아계실 때는 모든 것이 하나의 삶의 이치로 조화되었으나 중생들이 자신들의 생각으로 이론화하자 서로 모순되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지금 우리가 토론하고자 하는 무위의 범위에 관한 주제도 바로 부처님의 원음이 아니라 아비달마 논사들에 의해 삼장 중의 논장으로 성립된 내용들이니 그 속에 있는 논의들이 바로 진리라고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따라서 우리는 논의과정을 통해 과연 참된 정법이 무엇인지를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3. 부파의 분열과 교리의 대립


경·율·논 삼장이 최초로 성문경전의 형식으로 편찬된 것은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 대왕 때로 알려지고 있다. 부처님 사후부터 이때까지 약 200여년의 구전의 시간이 흘렀는데 그 사이에 불교계 내부에서 어떠한 일이 벌어졌는지 기록이 남아있지 않으니 아무도 알 수가 없다. 다만 인간으로서 부처님의 실체는 점차 신비화되고 신화로 채색되어 갔으며 생생한 사실적인 가르침은 중생들의 생각과 논리에 의해 조금씩 변질되어 갔고 문자가 발명되어 초기의 성문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으며 부파간의 경전 결집과 교리논쟁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이들 아비달마가 구전으로 맥을 이어오다가 제3차 불전결집 이후로 부파에 관한 기록이 역사 속에 처음 등장했을 때 이미 교리의 진화는 상당히 진행되어 있어서 두개의 정반대의 교리가 불교계에 자리잡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하나는 부처님이래 가섭존자로부터 전통적으로 교리를 이어내려온 고승들이 즐비한 상좌부의 견해로 부처님이 깨달음의 눈을 얻으시고 세상의 실상과 사실간의 인과의 이치를 밝혔다는 주장이며 다른 하나는 힌두교의 영향을 받아 관념적인 철학성을 강조하는 진보적 개혁파인 대중부로 그런 사실적인 가르침은 어리석은 중생들을 위한 방편에 불과하고 진정한 가르침은 비의로 전해진 고차원적이고 철학적인 공성이라 주장한 것이다. 문제는 이 두 부파의 주장이 부처님법의 근본을 파괴할 만큼 정반대의 주장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며 이는 그동안 부처님법에 엄청난 변질이 있었으며 부파간에 치열한 교리투쟁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두 가지 교리 논쟁은 불교가 힌두교의 영향으로 7세기 중엽부터 급속히 밀교화되고 불교의 본질인 열반이 힌두교의 탄트리즘과 동질시되어 힌두교의 한 지파가 되어 힌두세계로 흡수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반목하며 부처님법의 정통성을 놓고 다투게 된다.


오늘날 아비달마는 20개 부파가 알려지고 있는데 크게 상좌부 계통과 대중부 계통으로 나뉘어진다. 상좌부는 인도불교의 주류를 형성하며 오래 유지되다가 불멸 후 300년 무렵부터 분열이 시작되어 11개의 부파로 나누어진다. 먼저 설일체유부 ․ 설산부로 갈리고, 설일체유부에서 다시 독자부가, 독자부에서 법상부 ․ 현주부 ․ 정량부 ․ 밀림산부가 독립되어 생겨나고, 또 설일체유부에서 화지부가, 화지부에서 법장부가, 다시 설일체유부에서 음광부가, 이어서 경량부가 독립되어 생겨났다.


그리고 대중부는 불멸후 200여년이 지나 네 번의 분열로 8개 부파가 성립되었고 대중부를 포함하여 본말 9부파가 형성되었는데 처음 일설부․ 설출세부 ․ 계윤부로 갈리고, 이어서 다문부 ․ 설가부가, 또 제다산부 ․ 서산주부 ․ 북산주부 등으로 분파되어 상좌부 11개파 대중부 9개파로 총 20개의 부파불교시대가 있게 된다.


아비달마 시대는 그동안 구전되어온 부처님의 말씀을 경으로 정리하는 초기단계였기 때문에 각 부파별로 자신들이 보고 듣고 이해한 것을 기초로 경전을 만들어 나갔다. 그래서 각 부파마다 경전이 있었으며 부파별 특징에 따라 경전의 내용은 많은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예컨대 구사론의 세친과 논쟁을 벌인 중현은 “상좌 슈리라타는 잡아함 제322경을 [불설로] 인정하지 않을지라도 결집에 포함된 것이라는 사실마저 부정해서는 안 된다”거나 “각 부파에서 전승한 교법에 따라 서로의 경을 부정하게 되면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고 기술하고 있는데 이는 그만큼 상좌부와 대중부의 부처님 법에 대한 입장도 달랐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하여 각 부파에는 나름대로의 경전이 있었다고 하는데 오늘날 남아있는 경은 BC 3세기 아소카왕의 3차 결집 때 상좌부가 주도하여 공식적으로 만든 『니까야』와 AD 2세기 카니시카왕의 4차 결집 때 설일체유부 중심으로 만들었다고 하는 『아가마(아함경)』 뿐이다. 그 이유는 니까야의 경우 아소카대왕의 명으로 인도에서 멀리 떨어진 섬나라인 스리랑카에 불교를 전한 상좌부의 분별설파가 니까야를 지금껏 잘 보존하여 왔기 때문이며 또한 아가마는 북인도에서 번성한 쿠샨왕조에서 보호되다가 북방으로 전래되어 오늘날 동북아시아에서 아함경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그 외 나머지 경전들은 인도의 정치적 격변기에 이슬람세력의 침입과 힌두교의 포섭으로 불교가 소멸되었기 때문에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경전이 만들어지고 결집되는 과정에서 부파간 정통성을 둘러싼 치열한 교리논쟁이 벌어졌다. 대중부는 보수적이고 전통적이고 계율에 엄격했던 상좌부에 비해 진보적이고 개방적이었다. 그들은 불교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전통에 얽매기 보다는 개인의 사유와 논리를 중시했다.  따라서 엄격한 계율을 가지고 전통에 얽매는 기존 상좌부의 보수적인 입장과 달리 힌두교의 영향을 받아 가능한 개별적으로 자유롭게 사유하는 입장이었다. 그들은 생각속에 사는 학승들로서 부처님 말씀에 입각한 사실적이고 과학적인 인과법보다는 관념적이고 철학적인 사유에 더욱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들은 당시 최고의 철학적 사유를 자랑하는 관념적인 힌두논리를 불교에 들여오는데 적극적이었다. 대중부의 기본흐름은 부처님이 사실을 중심으로 완전한 인과의 이치를 제시한 것을 차원이 낮은 하위법이라 경시하고 모든 것이 실체가 없다는 철학적 관념인 공성을 도입하는 것이었다. 오늘날 대중부의 공사상이 힌두교의 마야사상과 연결된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대중부 논사들이 부처님법의 실상법과 인과법을 부정하고 모든 것이 실체가 없는 공이라고 주장하자 초기부터 가섭존자의 정통성을 받들어 부처님의 유위법과 인과법을 지켜오던 기존 상좌부에서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기존 상좌부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시도는 힌두교의 추상적인 말법으로 부처님의 사실적인 정법을 파괴하려는 악마의 음모로 보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상좌부와 대중부는 사활을 건 투쟁을 벌이게 된다. 사실 싸움이라 할 것도 없었다. 상좌부는 인도사회로부터 불교 자체로 인정받는 정통성있는 교단이었지만 대중부는 기존 제도권에 이견을 가진 소수의 반항아적 집단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래서 교리논쟁은 상좌부에서 대중부 논사들의 이단을 단속하는 정도로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일반적인 불교는 상좌부의 실상법과 인과법이었다. 이러한 상좌부의 대중부에 대한 단속과 제재는 불전결집과정에서 대표적으로 나타난다.


처음 부파간의 분열이 일어난 것은 부처님 사후 약 100년 후에 벌어진 다섯가지 계율상의 문제 때문이었다. 즉 승가가 대중들에게 보석을 받아도 되느냐? 음식을 먹어도 되느냐? 여러 곳에서 보시를 받아도 되느냐? 하는 계율상의 문제로 대중부는 현실에 맞게 발전적으로 해석해 가능하다고 했는데 인도불교를 책임지고 있던 권위있는 상좌부에서는 기존의 전통적인 금욕주의 입장을 강조해 이를 불가한 것으로 결정하였다. 이에 반발한 승려들이 따로 나와 따로 부파를 형성한 것이 바로 대중부인 것이다.


하지만 부처님 사후 236년 경에 이루어진 제3차 결집 이후의 부파 분열은 매우 심각한 상황을 야기했다. 최초로 인도를 통일하여 마우리아 왕조를 세운 아소카 대왕은 국론 통일을 위해 당시 최고의 진리로 인정받던 불교를 국교로 정하고 최초의 성문경전을 편찬하여 교리의 통일을 기한다. 그는 당시 불교교리가 부파간에 다 다른 것을 보고 전국에서 1,000여명의 고승들을 모아 논의를 거친 끝에 모든 것이 존재한다는 유부의 상좌불교를 정통으로 인정하고 공성을 주장하며 부처님법의 실체성을 부정하는 대중부를 이단으로 규정하여 대중부 논사들을  모두 흰옷을 입혀 불교계에서 쫒아냈다고 한다. 여기서도 우리는 부처님법이 신을 섬기는 힌두교나 관념적 주장을 하는 다른 부파의 논리와 다르게 초기부터 실상을 밝히고 인과의 이치를 밝히는 과학적인 진리체계를 가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은 쫒겨났지만 불교 속에 여기저기 머무르며 자신들의 논리를 계속 주장해 나갔다. 그들이 기성 종단으로부터 밀려 났다고 해서 속인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던 일이 불교이기 때문에 승려로서 생활했을 것이며 자신들을 받아 주지 않는 주류불교에 대항하여 비밀리에 세를 만들며 대항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들은 비주류이기 때문에 기성 교단과 달리 음성적인 활동을 많이 했는데 각종 대승 불경들이 저자없이 만들어진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실제 인도불교사에 있어서 대중부와 대승은 거의 존재가 없다. 중국의 구법승 현장이 인도에 체류하던 7세기 『대당서역기』에 남긴 글을 보면, 기존 부파 불교인들이 갖가지 상이한 교리적 입장에 따른 대립·쟁론을 벌이는데 “대부분 소승을 배우고 대승은 믿지 않는다”라고 기술하고 있는 것은 당시 인도에서 대승과 그를 뒷받침하던 대중부의 세력이 매우 약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대승불교는 인도 내에서는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하나의 금서로 존재하다가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지고 동북아시아로 불경이 한꺼번에 넘어오면서 이러한 사실적 관계를 모르는 중국인들이 대승불교가 갖는 추상성과 논리성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여 부처님의 법음인 아함경보다 중생들이 만든 관념적이고 철학적인 대승경전을 더 높이 쳐주면서 동북아에서 대승불교가 원음 불교보다 더 차원높은 불교로 인정받게 되는 역사적 아이러니를 보인 것이다.


그리하여 인도불교의 제도권에서 쫒겨난 대중부 논사들은 불교계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한다. 종교인으로서 그들이 할 수 있었던 일은 인도 불교계를 이끌어가던 정통성있는 상좌부의 기본 교리를 깨고 자신들의 교리의 정당성을 입증하여 주도권을 회복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문제삼은 것은 상좌부의 기본교리였던 실상법과 인과법이었다. 그들은 정통적인 불교교리였던 유부이론에 대해 고도의 철학적인 힌두적 관념과 논리를 활용하여 비판을 가했다. 그들은 부처님의 모든 사실적인 가르침인 유위법에 대해 마야(환, 공, 무실체성)성을 확장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그들이 의욕하는 것은 부처님법의 실체성을 부정하고 모든 것이 공하고 허망하다는 공성으로 대체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모든 부처님 법에 공성을 확대하는 노력을 계속해 나갔던 것이다. 인도불교사에 있어서 무위법의 확대는 바로 이러한 대중부파의 기본적인 입장과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하여 부파불교간의 논쟁에서 대중부는 일체 법(현상)의 실체를 부정하는 무위의 범위를 확대해 나갔고 그것이 최종적으로 완성된 것이 바로 용수의 중론사상인 것이다.


4. 무위법의 확대과정


그럼 부처님법이 유위법에서 무위법으로 변혁되면서 대승불교의 공사상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살펴보자.


초기에서부터 부처님법을 전통적으로 계승해오던 상좌부 계통은 원칙적으로 모든 것은 실체가 있다는 유부의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유부는 이처럼 변치 않는 자성의 개념을 가진 법의 이론을 바탕으로 광대한 교리체계를 세웠다. 이러한 교리의 바탕에는 ‘삼세실유(三世實有) 법체항유(法體恒有)’라는 기본개념이 있었다. 즉 모든 법은 이 세상을 유지 보존하는 근거로서 과거, 현재, 미래의 3세에 걸쳐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법들이 3세에 걸쳐 존재할 수 있는 것은 각각의 현상에 고유한 성질인 자성(自性; 혹은 自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부가 일체를 유라고 말할 때, 존재하는 모든 것이 변치 않는 성질인 자성이 있어 서로 간에 영향력을 주고 받는데 이것이 인과법에 의해 일체를 구성한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기본교리를 바탕으로 유부는 삼세양중인과, 업감연기설, 오온상속설 등 다양한 교리체계를 전개하며 모든 불교이론을 완비하려고 노력하였다. 오늘날 불교의 기초가 되는 기본적인 교리체계는 초기부터 부처님이 밝히신 실상법과 인과법을 세상에 널리 전하고자 하는 전통있는 상좌부의 피나는 노력의 결과인 것이다.


유부는 법계가 모두 실체가 있으며 서로 인과로 이어진다고 보기 때문에 삼세에 걸쳐 존재하는 법들이 어떠한 관계를 유지하며 존재하는가를 탐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왜냐하면, 부처님은 일체지자로서 삼세의 모든 실상을 밝혔기 때문에 그 제자들이 해야 할 일은 삼세에 있는 일체 현상(법)들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으며 어떤 관계로 놓여있는가를 밝히는 것이 그들의 의무이자 사명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유부는 현재를 중심으로 현재와 미래, 현재와 과거와의 관계, 그리고 그 속에 항유하는 법과의 관계성을 논구하여 삼세에 존재하는 법의 관계를 크게 인과 연으로 보고, 그것을 세분하여 6인·4연·5과로 인과관계를 분석한다.


또 이와 같이 법계의 모든 현상을 하나의 사실과 인과관계로 분석하는 틀을 갖춤에 있어서 가장 중심이 되는 개념은 바로 해탈이었다. 부처님이 더 이상 변하지 않는 무루의 경지이며 영원한 자유인 불사의 경지인 해탈을 성취하신 후 해탈은 모든 불제자들이 꿈에도 소망하는 유일무이한 목적지였던 것이다. 법계의 모든 현상은 무상한 인과관계를 거쳐 최종적으로 더 이상 변하지 않는 영원한 해탈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일체법(현상)을 열반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나 보조적인 조건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불법의 교리체계를 영원한 무위법(무루)과 변화하는 유위법(유루)로 분류하여 우주의 일체현상을 설명하고자 했던 것이다.


초기 불교에 있어서 영원불변하는 무루의 경지는 오직 부처님의 깨달음의 경지만을 의미했다. 이는 오직 부처님만이 이룬 개인적인 체험의 경지로서 여기에 대해 아는 체 하는 것은 불경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초기 상좌부에서는 이러한 초기의 열반관을 그대로 계승하여 무위에 관한 더 이상의 이론적인 전개를 하지 않고 오직 부처님의 해탈지경 만을 무루로 인정하였다. 그런데 부파불교가 생겨 부처님법을 지식적 체계적으로 연구해 나가기 시작하자 불교의 기본 교리체계는 이러한 구분에 바탕을 두어 부처님이 이룬 인류 최고의 목적지인 열반과 일반중생이 그에 도달하는 길로 구분하여 일체현상을 상세히 설명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초기 상좌부에서는 해탈을 목적으로 하여 해탈에 이르는 과정 속에 있는 모든 요소들을 유위법으로 분류하여 해탈에 도움을 주는 25개의 선법, 방해하는 14개의 불선법, 그리고 13개의 중성적인 법들의 3범주로 분류한다. 그리고 이상과 같은 81개의 유위법 외에 열반이라는 무루의 경지 한 개만을 무위법만을 인정하여 모두 합쳐서 82개의 법으로서 세계의 일체 현상과 인간의 체험세계를 분석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러한 초기의 가르침은 점차 발전하여 최종적으로 상좌부의 핵심부파였던 설일체유부에서 세친의 『구사론』으로 최종 완성된다. 설일체유부는 부파의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모든 있는 일에 관해 설명하는 부파라는 뜻이다. 이들은 세상의 모든 현상을 5위 75법으로 분류하여 모든 일을 설명할 수 있다고 보아 일체법을 유위법과 무위법으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유위법에는 11가지 물질적인 요소(色法), 47가지 정신의 작용과 정신작용의 요소(citta와 caitta, 즉 心과 心所), 14가지 정신적 물질적 요소에 포함되지 않는 요소(色心不相應行)가 있으며 무위법에는 사성제 중 열반에 해당되는 도제만이 해당되며 여기에는 3가지가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설일체유부의 무위는 열반 만이 무루라는 초기불교의 기본적인 상식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설일체유부에서 인정하는 무위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허공무위(虛空無爲)로 모든 존재가 나타나는 근본 장을 가정하여 말한다. 유위법이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를 막론하고 십방세계에 가득차서, 모든 세계가 끝없이 일어나고 멸하는 근본세계를 말한다.


둘째 택멸무위(擇滅無爲)로 해탈의 지혜를 말한다. 우리가 지혜로써 정도를 수행하여 해탈하여 성불한 경지를 말한다. 즉 나쁜 것을 가려내고서 참다운 진리를 선택하여 성취하는 무위법을 말한다.


셋째 비택멸무위(非擇滅無爲)로 인간이 선택하는 것과 관계없이 저절로 우주가 성주괴공이 되어 공이 되듯이 저절로 무위법인 참다운 진리의 도리에 들어간다는 뜻이다.


그러나 무위에 관한 상좌부의 기본입장은 일체 현상(법)이 존재한다고 보기 때문에 오직 부처님의 열반에 한하여 무루를 인정할 수 있으며 원칙적으로 무위법을 부정하는 것이 기본입장이다. 이러한 시각은 상좌부 계열의 법상부, 신주부, 정량부, 밀림산부, 음광부 그리고 경량부에서도 같은 입장이다.


하지만 삼세실유로 대표되는 상좌부의 실체법에 대해 대중부와 힌두철학 부파들은 이를 부정하며 강력히 반발한다. 그들은 모든 것이 실체가 있다는 것이 무상, 무아라는 불교의 기본개념과 맞지 않으며 부처님이 말씀하신 모든 것은 무지한 중생들을 위해 방편으로 설한 것으로 실제 아무 것도 설한 게 없으며 모든 것은 실체가 없는 공이라는 주장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다툼은 부처님 살아계실 때는 아무런 이의가 없는 문제였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완전한 법계이며 그 속에 있는 모든 일체 현상들은 인과관계에 의해 끊임없이 변하며 서로 영향을 준다는 하는 사실적이고 이치적인 불교의 진리체계는 당시 힌두교라는 신의 우상과 미신을 깨부수고 관념적인 철학유파들을 모두 입다물게 한 부처님법의 유일한 특징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파불교에 들어서 부처님법의 실체가 흐려지고 불교교리가 철학적으로 발전하면서 부파의 논사들이 교학적으로 만들어 놓은 무아, 무상, 연기, 중도라는 개념들이 하나의 독립된 교리로 성립하면서 부처님법의 근본인 실상법과 연기법 자체를 의문시하고 철학적 논란거리로 만드는 관념적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눈을 뜨고도 있는 일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눈뜬 장님인 중생들의 사유가 부처님의 본질적인 가르침을 농단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힌두교의 영향을 받는 대중부 계통에서는 이 세상의 실체를 공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기 에 그들은 부처님 법의 실유성을 부정하기 위한 모든 수단을 강구한다. 그래서 그들은 부처님이 가르친 일반적인 가르침 이외에 비밀리에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공함을 전하려 했다고 주장하면서 가능한 많은 부분을 무위화시키려는 경향을 보였다. 그리하여 이러한 진보적인 개혁성은 전통을 강조하고 실체를 강조하던 상좌부와 지속적으로 충돌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부파불교가 전개된 부처님 사후 100여년부터 구사론이 만들어진 AD 5세기에 이르기까지 약 천여년에 걸친 부파불교의 발전과정 속에서, 처음에는 오직 부처님의 열반만이 무루였으나 대중부에 의해 많은 부분이 무위로 바뀌고 최종적으로 중관론에 의해 일체 현상이 모두 공이며 환이라는 관념적인 결말로 변화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대승불교가 출현하게 된 근본배경이며 대승불교 철학의 중심인 중관론이 성립하게 된 사유인 것이다.


대중부에  의할 것 같으면 제불세존은 모두 출세간적이며 모든 여래는 유루법이 없으며, 그의 말은 모두 설법이고, 그의 몸과 위력과 수명은 끝이 없으며, 그는 물음에 답하되 생각이 없으며 일찰나에 일체법을 안다고 한다. 대중부는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중생의 심성은 본래 깨끗하나 객진과 같은 번뇌에 의하여 더럽혀질 뿐이라고 하여 모든 중생이 불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유위법은 현재에만 존재한다고 하여 법이 삼세에 항상 존재한다는 유부의 법체항유 사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럼 대중부에서 무위를 확대 주장한 논리와 내용을 살펴보자.

그들은 유부에서 주장한 허공, 택멸, 비택멸 무위는 기본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외 가능한 많은 것을 비실체로 해석하여 일체법을 무위화하려는 시도를 한다. 팔리 논서『캇타밧투』에서 산재되어 예시된 대중부의 11가지의 무위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결정무위 : 결정이란 말은 아라한과에 대한 확신(assurance), 확정성을 의미한다. 여기서 말하는 무위는 아라한과에 대한 확정성이다. 왜냐하면 아라한과는 불퇴전을 의미하며 혹은 모든 번뇌에서 벗어난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중부 안달라파(Andhakas)에서 무위로써 인정하고 있다.


  2) 연기무위 :  초기경전에서 연기법은 부처님 깨달음의 원리적인 이법으로서 설명되고 있다. 그래서 상좌부에서는 현실 세계를 구성하는 하나의 당연한 법칙으로서 간주되어 유위법의 범주 안에 설정되고 있다. 그러한 입장에서 유부는 분명하게 "연기법은 유위법이다. [반면] 연기법이 아닌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말하여 무위법이라 한다."라고 단정하고 있다. 이와 유사한 어구가『중사분아비담론』에서도 비연기법이 무위의 의미로 유부에서 인정되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반대 입장에서 연기를 무위로 인정하는 부파로는 대중부를 위시하여 화지부가 있다. 또한『대비바사론』에서 보여지는 분별론자[대중부]가 있다.『순정리론』에서 예시된 대중부의 연기 무위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연기의 원리는 누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상주불변의 진리이기 때문에 무위로 인정되고 있다. 왜냐하면 여래가 이 세상에 출현하든지 않든지 이 원리는 항상 존재하는 이법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항상 존재하는 이법으로 인하여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음으로 12연기 각각을 모두 무위로 보는 것이다.


처음에는 열반만 무위법이라 했는데 점차 학문적으로 발전하여 조건없이 본래부터 존재하는 것을 무위로 이해하기 시작하자 연기와 같이 이 우주 속에 영원히 내재하고 있는 법을 무위로 만든 것이다. 이것은 본래의 무위의 개념이 아니며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도 아니다. 이렇게 연기가 이론적 발전에 의해 무위로 만들어진 후 용수에 의해 연기법의 상의성을 강조하여 상의하는 것은 자성이 없다 하여 결국 모든 존재는 실체가 없는 것이 되어 버렸고 부처님의 모든 실상법이 공한 것으로 변질되어 버린 것이다.

  

  3) 사성제 무위 : 유부는 더 이상 변하지 않는 무루를 기본적으로 무위법의 범주로 삼아 사성제 중 무루에 해당되는 도제만을 무위법의 범주에 넣고 있다. 그러나 동산주부와 화지부는 사성제가 최고의 진리로서 초기불교에서부터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었다는 사실에 기인하여 이를 무위로 주장하고 있다. 즉 사성제는 '일반적인 사실'과 대비되는 '궁극적인 진리’를 설명한 것이기 때문에 절대적 진리로써 무위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중에 용수에 의해 진제 속제 이원론으로 발전하게 된다.


  4) 사무색무위는 무색계의 사선정을 대표하는 것으로 하여 특히 사무색정 가운데 공무변처를 말한다. 더 넓은 의미로 해석한다면 식무변처, 무소유처, 비상비비상처까지 포함하고 있는데 이러한 사선정의 세계는 비물질적인 세계로써 '선험적인 고요성'(aneja)을 강조하고 있으므로 무위라는 것이다. 이것은 초기에 부처님의 정등각의 경지만을 무루로 인정한 것에 비해 범위를 확장시킨 것이다.


  5) 멸정무위는 멸정의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인식의 완벽한 중단' 단계를 의미한다. 대중부에서는 멸정을 하나의 궁극적인 진리로써 이해하여 멸진정보다 한 차원 높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다만 초기불교와 상좌부의 입장을 받아들여 입정상태의 안온적정의 의미로써 멸정을 위로 설정하고 있다. 멸정을 무위로 간주하는 부파는 대중부의 안달라파와 제다산부가 있다.


  6) 허공무위는 일체 현상을 포함하는 공의 의미로 안달라파에서 주장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대중부에서 허공계가 보이고 인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견성'이 적용된 것이다.


  7) 사문과 무위는 입정 상태의 사문과(예류과, 일래과, 불환과, 그리고 아라한과)의 아뢰야식을 의미한다. 그래서 순수한 정신적인 세계인 입정 상태를 무위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문과는 아라한과를 지칭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이러한 구별은 사문이란 욕계 이상의 선정의 단계를 성취하고, 또한 탐·진·치 삼독을 여위고 있기 때문에 대중부의 동산주부는 사문과를 무위법으로 인정하고 있다.


  8) 증득 무위 : 여기서 증득이란 의미는 ‘열반에 도달된 상태’를 의미한다. 그래서 동산주부는 '열반을 획득하였다는 것'이란 사실에 입각하여 무위법으로써 '득'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유부의 5위 75법의 분류에서 '득'은 불상응행법으로 표현되어지지만 동산주부는 득이란 것은 열반을 증득한 것으로 보아 무위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9) 진여무위 : 진여란 영원불변한 자아의 실체로 해석되어 진다. 이러한 진여라는 개념은 상좌부에서는 별로 중시되지 않는 개념이다. 대중부에서는 힌두교의 영향으로 아트만의 존재를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으므로 이와 같이 진여성을 궁극적인 진리의 실체로 하여 무위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대중부의 일파 중에 특이하게 북산주부가 일체법의 진여성을 무위로 간주하고 있으며 화지부 또한 진여성을 인정하여 무위법의 범주로 하고 있다.


10) 일체법 무위는 일체 현상이라는 것이 오온의 확정성으로 이해된다. 여기서 확정이란 '필연적으로 결정되어 진 성질의 것'을 의미한다. 초기불교에서는 오온을 궁극적인 실체로 있는 것으로 보았는데 대중부에서는 오온과 같은 일체 현상의 무상함를 강조하여 실체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11) 업 무위는 일체현상 속에서 업이란 것은 어떤 필연성을 내포하는 것으로 ‘과거로부터  필연적으로 확정되어 진 성질로부터 나타난 것’이라 본다. 이러한 업의 성질로 인하여 대중부에서는 현재와 현세적인 결과[업]로써 숙명적으로 내세에 이어지는 것이라고 상정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불변적인 업은 숙명성을 띤 것으로 업은 과거로부터 항존하는 것으로 결국은 무위의 대상으로 이해되어 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중부의 11종 무위법은 최종적으로 9종 무위설(택멸, 비택멸, 허공, 공무변처, 식무변처, 무소유처, 비상비비상처, 연기지성, 성도지성)로 정착된다. 이것은 유부의  3무위법 이외에 선정의 사단계, 연기법, 팔정도 같은 것을 영원한 실재나 진리로 간주한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대중부 계통의 부파에는 일설부, 설출세부, 계윤부 등이 있다.


그중 안달라파는 무기, 결정, 멸정, 업, 일체법 결정을 무위법의 범주로 하고 북산주부는 멸정, 허공, 일체법 결정, 업을 무위법의 범주로 하고 있으며 동산주부는 연기, 사성제, 사무색, 사문과, 득을 무위법으로 인정하고 있다.


특히 대중부 계통의 안달라파와 정지부는 무기를 무위법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들은 자작도 아니고 타작도 아닌 것을 무위라 정의하고『잡아함경』에 보여지는 무기는 자작도 타작도 아니며 자타작도 아니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무기를 무위법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유부는 부처님이 무기에 대해 말씀하지 않으려고 하신 것이지 구체적 사실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보아 무기는 무위가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와 같이 아비달마의 무위법 고찰은 부처님처럼 사실을 검증하고 파악하려는 실상적인 깨달음이 아니라 관념적이고 철학적인 사유로 형이상학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논사들의 공리공담이라고 볼 수 있다. 무위를 정의한다고 해서 있는 사실이 무위가 되는 것이 아니고 또 그로 인해 깨달음에 가까이 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부처님의 실상법은 대중부 논사들의 사유에 의해 실체가 없다는 논리가 발전하여 마침내 모든 것이 공이라는 식으로 관념화된다. 즉 부파불교에 있어서는 부처님의 말씀이 불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중생들의 사유에 의해 불교가 만들어지는 단계가 된 것이다. 그리하여 부처님의 생생한 깨달음의 경지인 반야지경이 논사들의 관념적 사유에 의해 우주의 모든 것이 실체가 없는 공이라는 존재론으로 변질되어 불교는 부처님의 뜻과는 전혀 관계없이 관념적 우주철학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처럼 아비달마교학을 특징짓는 기본개념인 무위법은 대중부를 위시한 여러 부파들의 확장적 해석으로 실상법의 무위화를 확대시켰고 결국 이는 불법 자체의 비실체화로 대승불교로 이어지는 바탕이 된다.


5. 중론의 출현


이러한 과정을 거쳐 대중부를 중심으로 무위의 범위 확대, 연기법의 비실체성을 주장하는 상의성 논리 등과 같은 이론적 토대가 충분히 갖추어지고 정당성 확립을 위한 근거로서 중도론이 성립하자 대중부에서는 유부의 이론을 전면적으로 뒤집고 세상의 실체가 환과 같다는 공성을 도입하기 위한 전면적인 쿠데타를 도모하게 된다.


그 대표 인물이 바로 용수이다.

그는 기존 대중부의 이론을 총 종합하여 초기 상좌부의 실상법과 인과법이 무상, 무아라고 하는 부처님의 기본가르침과 어긋나며 연기하는 것은 서로 의지하여 자성이 없으므로 모든 일체 법(현상)은 실체가 없는 공이라고 주장한다.


대중부와 용수는 이러한 자신들의 주장의 정당성과 권위성을 입증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 용수가 용궁에서 대승경전을 가져왔다는 말도 바로 이와 같이 자신들의 주장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의 한 예인 것이다. 그리하여 용수는 자신의 주장의 정당성을 위해 자신들이 주장하는 공이 부처님이 그토록 오랜 세월 감추어 두었던 중도에서 근거한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저서를 중론으로 이름짓고 중도대선언을 공표한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중도가 부처님의 최고의 가르침으로 강조되고 있는 이유인 것이다.


즉 중도대선언은 그동안 핍박받던 소수 진보파인 대중부와 대승부파가 축적된 모든 무위이론을 총 결집하여 초기 상좌불교의 기본적인 교리였던 사실적인 유법을 파기하고 그 자리에 관념적인 힌두교 마야사상의 무실체성을 도입하기 위한 공개적인 도전장인 것이며 중도가 그 수단으로 활용된 것이다.


오늘날 용수는 부처님 다음가는 깨달음을 성취한 보살로서 대승불교의 핵인 공사상을 정립한 제2의 부처라 일컬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는 깨달음의 법안을 얻어 공이라는 진리의 실체를 본 것이 아니라 그동안 대중부에서 축적된 여러 가지 무위와 관련된 이론들을 모아 이를 총 결집하여 공사상을 정립한 학승으로 그의 중론은 대중부 논사들의 철학적 사유의 진전에 의해 만들어진 관념의 산물인 것이다.


왜냐하면 깨달은 자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생각을 굴리지 않기 때문이다. 맑은 반야심에 비친대로 실상과 그 뜻인 이치를 밝히기 때문에 항상 사실에 근거하여 그와 관련된 인과의 이치를 밝힌다. 따라서 중론과 같이 관념적인 명제를 논리적으로 분석하여 결론을 이끌어내는 인식론적 접근법은 학자들의 대표적인 사유방법인 것이지 법의 실체를 직관하는 깨달음의 방식이 아닌 것이다.


용수는 기존 상좌부의 소승불교가 실상법과 인과법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왜곡했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중도대선언으로 모든 것이 공하다고 한 부처님의 정법으로 돌아왔다고 파사현정 했다고 자찬한다. 그러나 불교사적 입장에서 보면 이는 파사현정이 아니라 불교의 완전한 힌두화이며 정법 500년설이 사실로 나타나 마침내 불교의 본격적인 변질이 나타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로서 불교는 힌두교의 마야사상과 거의 동일한 교리를 갖게 되었으며 힌두교에서 불교를 지파의 한 형태로 인정하여 힌두교로 편입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시기가 정법이 500년까지만 유지될 것이라고 부처님이 말씀이 이 시기와 일치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는 삼계의 실상을 보시는 부처님이 미리 이런 경고의 말씀을 하셨다는 것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된다. 부처님 말씀이 항상 진실만을 말씀하셨다고 믿는다면 초기부터 부처님의 실상법과 인과법을 지켜오던 상좌부의 가르침을 정법이라 보아야 할 것이며 힌두교의 영향을 받은 나타난 대중부와 대승불교의 주장은 결국 정법을 망치는 말법이라는 결론이 되는 것이다.


그럼 무위사상의 결정판인 용수의 중관론을 살펴보자!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 5~6백년간 초기 인도불교를 이끌어나가던 정통성있는 상좌부의 기본교리는 모든 것이 있다는 유법(有法)이었다. 세상의 일체현상이 모두 영원불변한 실체가 있으며, 이들 실체 간의 상호 인과관계에 의해 끝없이 이어지면서 과거, 현재, 미래의 세상을 구성하고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기본교리는 초기부터 부처님의 교설을 계승해온 기존 상좌부의 엄격한 전통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초기 부파불교에서 교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조직화하는 과정에서 부파의 논사들은 "무상, 무아, 연기, 중도, 공"이라는 새로운 개념들을 정립하였고 이러한 개념들은 부처님이 최초로 본 실상법과 인과법이라는 근본 가르침과 충돌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그래서 나가르주나는 기존 상좌불교가 부처님의 원뜻을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부처님의 종지인 무상, 무아, 공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무상, 무아란 정의에서 알 수 있듯이 부처님이 말씀하려고 한 진법은 본래 이 세상이 아무 실체가 없다는 공임을 밝히는 것이었다고 주장하며 중도 법칙에 따라 일체가 공임을 논증한다.


그는 양 극단을 부정한 중도라는 법칙에 의해서도 알 수 있듯이 공이라는 절대진리는 언설로 표현할 수 없으며 부정을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극단의 부정을 통해 실상을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팔부중도를 주장하며 이 팔부중도가 초전법륜에서 부처님이 전하고자 한 중도진리의 결정판이라고 한다.


그에 의하면 이 세상의 일체 사물은 다른 것에 의존하여 생기기 때문에 자성이 없어 공이다. 그런 까닭에 연기하는 모든 것을 공으로 본다. 따라서 이 세상에 진실로 존재하는 것은 <존재>, <비존재>, <그 둘> 및 <그 둘 모두 아닌 것>이라는 네가지 논점(四句分別)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으로 연기로부터 벗어난 것만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나가르주나 자신도 어떠한 견해도 갖지 않고 어떠한 입장도 취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모든 단정적 주장에는 근거가 없으며, 인간의 모든 사고가 모순 속에 빠져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나가르주나는 <타트바>라 부르는 진실된 존재는 연기하지 않으며 생기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는다고 본다. 이 타트바는 실로 불생인 까닭에 인간의 사고에 의해서는 결코 파악되지 않는다. 그래서『중론』 서두의 문구로서 유명한 귀경게는 대담하게 팔불(八不)을 선언한다. 팔불이란 사물의 <소멸>, <생기>, <단절>, <영속>, <동일성>, <부동성>, <도래>, <퇴거>에 대한 부정을 말한다.


그는 우리가 존재한다고 느끼는 일체법(현상)을 <불생>으로서 이해했다. 따라서 생겨나지 않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불가하다. 왜냐하면 생겨나지 않는 사물은 본래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사고의 대상으로 하고, 그것을 인식에 의해 확인하려고 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존재하지 않는 사물이 소멸한다고 보는 것은 논리의 모순이므로 팔부중도로 여덟가지를 모두 부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용수는 이러한 존재부정의 근거로 활용한 논리가 바로 연기법이다. 그는 인과법을 실체간의 원인과 결과의 전후관계로 해석하여 존재의 실체를 밝히는 수단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상호 의존하고 있다는 관념성에 초점을 두어 실체를 부정하는 수단으로 활용한다. 즉 일체 존재는 원인과 조건에 의하여 생겨났기 때문에 다른 것에 의존하는 복합적인 존재이고 무상하므로 영원불변한 실체는 없다고 본다. 따라서 모든 존재는 고유한 자성이 없으므로 실체가 없으며 공하다고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진실로 존재하는 것은 다른 사물에 의존하지 않고 그 자신만으로 존재한다고 본다. 따라서 이러한 존재를 이성 내지 사고를 통하여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일체 사물은 다른 것에 의존하고 다른 것과의 관련에 있어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다른 것에 의존하고 다른 것과 관련하여 존재하는 상태를 연기(pratitya-samutp da)>라 이름하고 이를 공이라 한다.


"다른 것에 의존하고 있는 것(=연기)을 우리들은 空性이라 이름한다. 그것은 비유적인 명칭이다. 그것은 곧 중도이다.(『중론』24-8)"  


중관파의 논리에 의하면 이 세상의 일체 사물은 자성에 있어 공이다. 사물은 다른 것에 의존하여 생기한다. 그런 까닭에 <연기>가 바로 공인 것이다.


그리하여 나가르주나는 연기에 의해 나타나는 모든 현상을 실체가 없는 환으로 본다. 즉 모든 현상은 “환영과 같고 꿈과 같으며 건달바성과 같다. 생기도 그와 같고 지속도 그와 같고 붕괴도 그와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로 나가르주나의 중관론은 결국 힌두교의 마야(환)사상과 연결되며 불교의 힌두화를 불러왔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이었다.


이로서 초기부터 시작된 힌두교의 감염은 마침내 부처님법의 사실성과 인과성을 부정하고 모든 것이 환이며 존재하지 않는 공이라고 부처님법을 변질시켜 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날 대승불교가 성한 나라에서는 불교를 믿게 되면 눈앞의 현실 마저 부정하고 현실의 분별마저 환이며 집착이라고 부정하여 판단력이 흐려지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중관론의 주장에 대해 같은 대승불교인 유식론자들마저 ‘그들은 일체가 이름뿐이고 실체가 없다고 보는 것이 올바른 관찰이라고 주장하지만 모든 것이 허망하며 오직 이름일 뿐이라면 어느 곳에 진실이 있겠는가? 라고 반박하면서 '그들은 최고의 허무론자들로 차라리 아견(我見)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들과 같은‘악취공자’보다 낫다' 고 중관론을 비판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인과법의 본질과  상의성에 대해 생각해보자


부처님은 세상을 바로 이해하는 원리로서 인과법을 밝히셨다. 모든 현상은 원인과 결과로 인해 이루어지고 있으니 이를 제대로 파악하면 실상을 명확히 볼 수 있다고 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아무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깨달은 자만이 완전하게 볼 수 있다. 그래서 연기를 보는 자는 법을 보며 법을 보는 자는 깨달은 자라고 하신 것이다. 따라서 연기를 보게 되면 세상의 모든 일을 훤히 보게되는 것이니 더 이상 볼 것이나 말할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의하므로 실체가 없다고 하는 것은 부처님이 말씀하신 깨달은 자만이 볼 수 있는 연기법이 아닌 것이다.


즉 상의성은 연기법을 존재의 실체를 사실적으로 이해하는 원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형식을 관념적으로 이해하는 원리인 것이다. 물론 모든 것이 상호 인과관계로 의지해있다. 그렇다고 의지하고 있는 것을 관념적으로 이해한다고 달라지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우리가 필요한 것은 모든 존재가 의지하고 있는 형식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 그렇게 의지하고 있는지 상호관계가 어떻게 되는지를 정확히 앎으로써 어떻게 그 현상을 해석하고 대처할 것인지 답을 도출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과법은 현실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여 좋은 삶을 만드는지, 밝 은 세상을 만드는지, 해탈에 이르는 원인을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상의성으로 봄으로써 서로 의지하는 것은 실체가 없고 공이라고 하는 허망한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이 바로 대중부와 용수가 만들어낸 관념적 결론인 것이다. 가장 과학적으로 일체현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연기의 법칙을 세상을 부정하는 관념적 원리로 만든 것이 바로 용수의 상의성인 것이다.



6. 결 론


이처럼 대중부의 무위이론과 그 결정판인 중관론이 불교의 중심이론이 되자 부처님이 신본주의의 어둠과 무지를 부숴버리고 인류 최초로 밝힌 사실적이고 과학적인 진리는 사라지고 기존의 힌두교와 같은 관념적이고 신앙적인 종교와 동일해지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중생의 관념적 사변이 부처님의 법안의 시각을 능가하고 불교의 중심이 되는 말법적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즉 부처님이 인류 최초로 삼계를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법안을 얻어 오늘날 과학이 바라고 있는 모든 우주의 실상과 세상의 이치를 완전하게 가르쳐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참된 가치를 모르는 눈뜬 장님인 중생들이 관념적 사유에 의해 부처님법을 부정함으로써 최고의 과학이며 진리로서 인류문명을 이끌어갈 수 있었던 부처님 법은 그 생명력을 상실해 버리고 눈앞의 현상도 부정하는 극단적인 관념적 종교로 변질되고 만 것이다.


인도종교사적 입장에서 볼 때 이러한 공성의 도입으로 불교는 힌두교의 마야사상과 거의 유사한 우주관을 갖게 되었고 유식론의 도입으로 불교의 본질적인 열반이 힌두교의 탄트리즘과 유사하게 됨으로서 불교는 고유한 진리를 가진 종교로서의 존재 이유를 상실하였으며 힌두교의 한 지파로 인도사회 속에 받아들여지는 계기가 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오늘날 과학이 중시되고 있는 이유는 과학이 사실과 진리를 있는 그대로 밝혀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인류 문명을 이끌어 나가는 유일무이한 수단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날 과학자들은 사실과 진리를 밝혀내기 위해 온갖 조사와 실험을 거쳐 실상을 파악하고 그 속에 있는 이치를 가설로 짐작한다. 그러나 부처님은 삼계를 보는 법안을 얻어 이미 2,500년 전에 인간세상의 모든 진실과 이치를 밝히신 것이다. 불법과 인연이 된 우리들이 만약 2,500년 전에 그 가르침을 진리로 충실히 받들어 모셨다면 인류역사는 그 혹독한 어둠과 빈곤의 역사가 없이 밝고 풍요로운 이상사회를 순조롭게 맞이했을 것이다.


더구나 부처님의 가르침은 단순한 물질적 인과관계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물질과 정신, 육체와 영혼의 관계까지 모두 하나의 이치로 관통하셨으니 오늘날 문제되고 있는 현대사회의 인간소외현상도 모두 다 해결되는 최고의 과학이며 진리였던 것이다.


그런데 힌두교의 영향을 받은 관념적인 대중부 논사들이 이러한 인류 최고의 진리였던 부처님의 실상의 지혜를 힌두교의 관념적 논리보다 유치하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이 실체가 없다는 공으로 이를 대체해 버리자 불교는 진리로서, 실천불교로서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불교를 믿는 나라는 선진국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고 사실과 이치가 사라진 우매한 인습적인 국가로 전락해버리고 만 것이다.


오늘날 불교인들이 주로 하는 말 중의 하나가 대승불교의 공법이 나타남으로써 초기불교는 기초적인 유위법의 단계를 벗어나 중도공법의 깊은 지혜를 얻음으로써 차원높은 불교교리의 완성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 증거로 그들은 불교가 부처님 이후 나타난 수많은 히말라야 수행승들과 동북아의 고승들이 깨달아 얻은 진리들로 보완됨으로써 초기불교와는 비교도 할수 없을 만큼 엄청나게 발전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크게 잘못된 것이다.

부처님은 최고의 정등각을 이룬 분이다. 그 이후에는 그분과 같은 법안을 얻어 삼세의 실상과 진리를 밝히신 분이 없다. 그런데 그분의 가르침을 능가하는 제불조사들의 가르침이 있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정등각의 법안을 얻어 실상과 연기법을 보지 못하는 한 어떠한 희론도 부처님법 앞에 설 수 없다. 이는 모든 조사들의 가르침도 다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말로만 깨달은 자들이 생각으로 지어내는 흰소리를 크게 경계해야 한다. 부처님이 밝힌 사실적인 가르침과 이치 이외에 다른 고차원적인 법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만큼 중생들이 만든 관념적 군두더기가 부처님의 완전하고 청정한 법을 흐리고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현실과 별도로 진리의 세계가 존재하며 부처님의 사실적인 가르침과 별개로 존재하는 비의가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되짚어보아야 한다. 과연 부처님이 평생동안 하신 사실적인 가르침과 별도로 상근기를 가진 자들을 위해 비밀리에 따로 공을 설했다는 논리가 과연 설득력이 있는 것일까?


부처님은 삼계의 실상을 보시는 일체지자이시다. 그런 분이 다른 뜻을 숨기고 방편적으로 가식적인 말을 하며 평생을 사셨을 리가 없다. 그분은 돌아가실 때 두 손을 펴 보이시며 밝히지 않거나 숨긴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하셨다. 그리고 우리가 다 아는 바와 같이 여래의 실상은 진실만을 말하는 분이며 두말을 하지 않는 분이며 거짓을 말하지 않는 분이다. 깨달은 자는 생각이 없어 비치는대로 모두 밝히니 비밀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부처님은 자신이 깨달은 것을 평생동안 모든 경우에 처하여 수없이 밝히셨으니 숨겨둔 다른 비의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깨달은 자는 법을 보며 법을 보는 자는 연기를 본다. 따라서 부처님이 보신 연기의 법은 모든 인간과 우주와의 관계, 삶과 사후의 관계, 중생과 해탈의 관계, 현생과 삼계와의 관계가 모두 하나로 풀리는 것이니 따라서 삼계의 실상과 원리를 본다면 더 이상 밝힐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이 우주의 일부로 태어나 우주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우주의 뜻과 이치에 따라 살아간다면 조금도 헛됨이 없이 자연과 조화되어 보람있게 살아갈 수 있다. 따라서 부처님이 밝힌 이 우주와 인간의 존재 이유와 일체법의 실상과 이치 이외에 다른 비의를 찾아야 전정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추상적인 문제와 가치를 추구하는 학자들이 생각 속에서 만들어낸 관념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면 오늘날 모든 실체를 부정하는 공불교가 세상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살펴보자.


첫째 공관론자들이 일체법이 꿈 같고 환상 같고 거품 같고 그림자 같은 것이라고 세상의 실체를 부정하자 삶의 근본적인 전제인 현실의 중요성을 망각하게 됨으로써 말 그대로 관념에 빠져 현실을 무시하는 가장 비현실적이고 비진리적인 종교가 되어 버렸다.


그들은 인과가 연기하여 서로 의지하므로 자성이 없으니 모두 공하다고 한다. 그러나 눈앞의 존재하는 현실을 두고 모든 것이 변하여 실체가 없다고 이를 부정한다면 이보다 더 어리석고 세상을 속이는 일이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이 서로 의지하며 존재한다고 그 실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물리법칙에 의하면 실체가 없는 진공과 같은 공은 영원히 없는 것이며 실체가 있는 모든 존재는 원소의 변화를 통해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중관론은 극단적 관념화를 통해 진공과 같은 절대무만이 자성이 있고 영원하며, 연기하며 변화하는 모든 존재는 무상하므로 실체가 없고 자성이 없다고 형식논리를 주장하고 있어 현대과학의 상식이나 논리와는 정반대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존재는 변화하는 인연 속에 존재하는 것이며 현재 나타난 세상은 그동안 온 우주의 모든 원인들이 모여 있는 이 우주의 실체이며 전부인 것이다. 만약 눈앞에 보이는 이 생생한 현실을 부정한다면 그는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할 가치가 없으며 자기가 선택한 말법의 인연에 따라 소멸되고 말 것이다.


둘째 인과법을 유위법이며 유루법으로 보아 참된 진리가 아니며 집착이고 분별에 불과하다고 결론짓자 불교를 믿는 사람들에게서 합리적인 사고가 사라지고 세상을 통찰하는 힘과 해결하는 능력이 약화되게 되었다.


이들은 모든 연기가 자성이 없으므로 실체가 없어 공이며, 공이 곧 진실이고 진제라 한다. 그러나 연기법의 본질은 상호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원인에 의해 현재의 모든 현상으로 나타나며 현재의 모든 일들이 후대의 원인이 된다는 원인과 결과의 과학적인 이치이며 실상의 구성원리인 것이다. 이처럼 현상을 가장 잘 설명하는 완전한 인과의 이치를 두고 상호 의존하므로 세상의 실체가 없다는 허무론으로 이용하는 것은 힌두적 염세론이지 실상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다. 이것은 세상을 무상한 환으로 보는 힌두교의 마야사상으로부터 영향받은 것이다.


이처럼 공관에 의해 세상을 가장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인과법이 유치한 분별이며 희론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되어 버리자, 대승불교를 믿는 사회에는 올바른 이치란 것이 존재하지 않게 되고 이치에 의해 움직이는 밝은 사회를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런 사회에서는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면 어리석은 집착에 불과하다고 하고,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으며, 옳은 것 자체도 별 의미없다는 비이성적 사고가 성행하게 되니 이러한 비과학성과 비이치성이 동양의 합리성을 약화시켜 결국 서양과의 경쟁에서 뒤져 식민지화되는 불행을 겪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부처님의 과학적인 인과법 속에 이치를 부정하는 관념적인 공관이 들어옴으로써 야기된 지독한 폐해인 것이다.


셋째 대승론자들은 옳고 그름을 밝히고 악업을 멀리하고 선업을 짓는 팔정도에 의한 노력을 유법이라 하여 하근기에 대한 방편적인 가르침으로 경시하고, 실제 부처님 가르침의 정수는 상근기를 위한 공으로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모든 일체 현상이 환임을 자각하고 선정으로 공함만 깨치기만 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업 자체도 미망이니 본래 없는 것이라 하며 선근을 닦아나가는 팔정도의 수행마저 인위적 분별이라 부정한다. 그러나 업이란 과거에 삶을 통해 지은 실체적인 것이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고 관념적으로 환이라고 우기며 그냥 무시하려 하니 업이 사라질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업의 실체와 선근 공덕의 중요성을 중시하지 않는 선가의 수행법이 정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깨닫기 위해서는 먼저 선근 공덕을 지어야 한다.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다음 생에 부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수기를 준 이유도 자신의 밑에서 바른 이치를 배우고 팔정도를 행하여 부처가 될 선근공덕이 쌓였기에 수기를 준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선가에서는 대승불교의 영향으로 업의 존재를 환으로 보니 그 업을 지울 길이 없어 기왓장으로 거울을 만들려는 헛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선업과 공덕행에 의한 노력의 중요성을 경시하자 불교 속에는 자신과 세상을 좋게 만들려고 하는 노력은 사라지고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공함만 깨쳐 바로 해탈을 이루려는 욕심만이 가득하게 되었으니 사회 속에는 세상을 밝게 만드는 좋은 원인이 사라지고 무기력이 넘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대승불교가 성행한 사회에는 정의가 사라지고 가난과 불행과 고통이 넘치게 되어 불교는 현실에서 아무 소용이 없는 비현실적인 종교가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염세적인 무위법과 공관으로써 부처님의 실상법을 오염시킨 대승불교의 영향이니 우리는 부처님의 초기 가르침인 실상에 대한 정견과 인과에 따른 바른 이치를 알아 이 세상을 바로 보고 이 우주의 원리와 일치한 올바른 삶을 살아야 할 것이며 선업과 공덕으로 좋은 자기와 밝 은 세상을 만들어 나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그 동안 ‘소승은 이기적이며 원시적이고 대승은 이타적이며 고차원적인 불교’라는 관념 속에서 한번도 공개적으로 그 잘못을 따져보지 못했다. 깨달았다고 하는 수많은 조사들의 권위에 눌려 그들이 전하고 있는 가르침이 과연 무엇이며 그것이 세상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 따져보지 못하고 그들의 가르침을 그저 받아들이기만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날 불교는 급속히 변하가는 세상에 대해 진리로서 아무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소외된 집단으로 자기 혼자 흰소리를 하는 말법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깨달았다는 이들은 구체적으로 세상에 도움이 되는 말은 없고 이치에 닿지 않은 소리나 하며 세상문제에 관심을 쓰지 않으니 불교의 존재 이유를 찾기 어려운 것이다.


이제 말보다는 실천하는 불교가 되어야 한다.

본인이 깨우치지 못했으면서 모든 것을 다 아는 듯이 전해들은 이야기를 깨달음의 진실인 듯 함부로 이야기해서도 안되고 깨우치면 모든 것이 다 된다고 가식을 떨어서도 안된다. 지금 불교계는 부처님이 전혀 하신 적이 없는 관념적 말이 산무더기처럼 불교를 가득 채우고 있어 부처님 가르침의 요체조차 알아보기 어렵게 되어 있다. 만약 부처님이 지금 오셔서 중생들이 만들어놓는 고차원적인 불교 이야기 즉 열반 (涅槃), 반열반(般涅槃), 대반열반(大般涅槃),무여열반, 유여열반, 인과불매, 분단생사, 변역생사, 중도연기, 유전연기, 환멸연기 등의 말을 들으면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를 것이다. 부처님 살아계실 때는 깨달은 자와 깨닫지 못해 그 법을 배우는 제자만 있었는데 깨달은 경이제 오른 자가 얼마나 많았기에 그경지에 대해 그리 상세히 밝혀 놓았단 말인가? 이제 진정한 깨달음과 진리의 실체는 사라지고 인간이 만들어 놓은 추상적인 관념만이 어지러이 난무하며 불교의 생명력을 약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제 불교는 반성하고 다시 부처님법의 원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부처님은 모든 것이 사실과 인과법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으니 세상의 이치를 배우고 팔정도를 행하여 선근공덕을 쌓으면 이고득락의 과보를 얻고 다음 생에는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삶과 인간완성의 모든 면에서 완전한 원리를 제시하셨다.


따라서 이제부터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인과의 이치를 실천하는 종교가 되어야 한다. 깨달은 자는 연기를 보며 연기를 보는 자는 법을 안다. 따라서 부처님이 밝힌 세상의 이치를 배우면 세상이 무엇인지 어떻게 이루어지며 인간완성이 어떻게 오는지 깨우침이 오는 것이다. 바른 이치에 따라 열심히 선근공덕을 쌓으면 밝 은 세상이 오고 마음이 정화되어 인격이 완성되고 그 선근이 무르익으면 해탈은 저절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환으로 여겨 세상을 바르게 보려는 분별과 노력을 버리고 한 소식하여 깨달음을 얻겠다는 욕심만 내지 말고, 인과의 이치에 따라 부처님이 밝힌 실상과 이치를 하나 하나 체득하여 현실을 축복하며 열심히 살아나가는 것이 진정한 불교이며 불제자의 자세인 것이다.

 

 

출처 진실의 근원(http://www.gincil.com/) 사실과 이치로 삶의 의문을 밝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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