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진실을 찾아서
명상, 수행법, 완성의 길 등에 대해 본문
1. 명상이나 호흡법등은 귀신 놀음이라는 말은 절대적인 진리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올바른 영적 성장은 오로지 행동하는 것, 그 이외의 것은 전부 가짜인지요)
일반적으로 명상은 마음을 닦아 인간완성에 이르는 비법으로 행하여져 왔다.
이곳에서 위험하다고 말하는 명상이란 그러한 형식적 수단을 통해 마음을 닦는 수행법을 의미한다.
따라서 마음을 닦는 수행법이 아니라면 굳이 명상이라 표현할 필요는 없고 그저 마음 쉬기나 반성의 시간 정도로만 말하면 될 것이다. 따라서 그대가 말하는 몸과 마음의 안정을 취하기 위해 잠시 앉아 눈을 감고 쉬는 것은 이곳에서 경계하는 명상의 범주에 들지 않는다.
그러한 깨달음을 얻기 위한 전통적인 명상방법인, 기를 돌리거나 호흡을 하거나 관을 하거나 화두를 잡는 단전호흡, 요가, 비파사나, 참선과 같이 방법들이 과연 마음을 닦는데 필수적이며 효과가 있는가?
결론적으로 말해 그러한 기나 차크라나 화두를 잡는다고 해서 마음이 닦아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마음은 이 우주에서 가장 미세한 기운으로 가장 으뜸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정기신이라는 말이 있듯이 정보다 맑고 미세한 것이 기이며 기보다 맑고 미세한 것이 신, 즉 마음이다. 따라서 정은 종이며 마음이 주인이다. 따라서 종인 정을 아무리 돌린다고 하더라도 주인인 마음을 변화시킬 수 없으며 오히려 마음에 따라 기운은 움직이게 된다. 그러므로 주인인 마음은 물리적 흐름인 기의 흐름을 통해서는 좋아지지 않으며 오직 정신의 깨우침을 통해서만 밝아질 수 있다.
따라서 의식을 깨치기 위해서는 진리의 인연을 만나 무지에서 벗어나고 마음이 감동을 받아야 한다. 이것은 삶의 생생한 체험을 통해서만 가능하지 가만히 혼자 앉아 명상을 한다고 해서 마음이 좋아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마음은 사실을 바로보고 그 이치를 깨쳐 마음속의 무지와 거짓이 사라짐으로써 밝아진다. 이와 같이 마음을 가리고 있는 무지와 거짓과 같은 어둠이 바로 악업인 것이다. 중생들은 바로 이러한 업이 마음을 가리고 있어 사실을 사실대로 보지 못하고 온갖 미신과 환상에 빠져있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세상을 바로 본 성자들의 참된 가르침이 필요하다. 그래서 진리의 인연을 만나 세상을 하나씩 바로 보게 되면 자신이 하나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비로소 인간과 세상을 좋게 하는 길을 보게 된다. 이것을 배우고 깨칠 때 자신 속에 선근이 쌓이게 되고 세상과 부딪힐 때 자신의 업을 정화해 인간 완성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부처님은 팔정도로 밝히셨다.
부처님은 길을 찾느라 온갖 수행법을 겪었다. 요가행을 통해 최고의 경지인 비상비비상처를 얻으셨지만 마음이 평안을 얻지 못했고, 갈비뼈가 드러나고 머리에 새가 집을 짓는 고행을 통해서도 완전한 길을 찾지 못했다. 그리하여 고행과 명상을 버리고 산에서 내려온 부처님은 시골 처녀에게서 우유 한 잔을 얻어 마신 후, 부다가야의 보리수 밑에서 자신의 깊은 내면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모든 것이 주마등처럼 지나갔고 수많은 생을 거쳐 중생들의 고통을 내 몸처럼 생각하며 지은 공덕에 의해 모든 업이 타버린 맑고 고요한 완전히 정화된 마음을 보게 되신 것이다. 그리하여 인류 최초의 정각(正覺)을 이루고 부처가 된 것이다.
이처럼 부처님은 자신의 깨달음이 고행이나 명상에 의해 온 것이 아니라, 수많은 생에 걸쳐 쌓아온 공덕이 비로소 이생에서 열매 맺어 깨달음을 이룬 것임을 알고, 팔정도로 바로 보고 바로 듣고 바로 행하여 바른 이치에 따라 공덕을 쌓으라고 선언했는데 오늘날 그 실체가 흐려져 또 다시 온갖 명상비법이 성하여 사람들을 어둠과 방황에 빠뜨리고 있는 것이다.
나의 경우도 많은 수행법을 겪어왔다.
단전호흡을 통해 기를 돌리고 요가행법을 통해 차크라를 관하고 화두를 통해 마음자리를 보았지만 그것으로 업이 사라진 완성된 나 자신을 볼 수 없었다.
단을 맺고 머리가 열려 천개의 꽃잎이 열리는 환희를 경험했지만 마음의 평안과 지혜의 눈이 열리지 않았다. 그 이후 오랜 방황 끝에 부처님의 가르침이 사실임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러한 나의 방황은 스승님을 만나 인과의 이치에 의한 공덕행의 진실을 안 다음 끝이 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기운을 체험했다.
기운에는 여러 가지 기가 있다. 천기와 지기, 해와 달, 산과 강과 같이 자연에서 나오는 기운과 생명의 원기와 죽은 자의 사기 등 수많은 기운들이 있다.
일반인들은 주로 호흡과 음식을 통하여 생명의 원기를 흡수하며 살고 있는데 이런 기운은 순수하고 느낄 수 없어 무기라고 한다. 따라서 좋은 음식을 먹고 숨을 잘 쉬며 운동을 열심히 하여 무기를 잘 섭취하는 것이 가장 건강하고 표준적인 일반인의 삶이라 하겠다.
건강한 일반인의 경우 몸에 보호막이 있어 외부의 기운이 몸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외부의 의식으로부터 자기 정신을 보호하며 제정신으로 사는 것이다.
그런데 명상을 하게 되면 기문이 열리게 되므로 많은 외부의 기운들을 직접적으로 받아들이기 쉬워진다.
이때 외부에서 들어오는 기운은 각자의 의식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정기신이라 기는 종이요 신이 주인이기 때문에 그 의식에 따라 나타나는 기운이 달라지는 것이다. 의식이 강하고 맑은 자는 맑은 기운을 받게 되며 의식이 허약하고 혼탁한 자는 어두운 기운을 받게 된다. 그래서 해탈한 자는 우주의 근원의 기운과 하나되며, 부와 권력을 얻기 위해 깨달음에 욕심을 내는 경우 과거에 그러한 욕심으로 도를 닦다 죽은 한 맺힌 수행자의 혼이 붙어 거짓 깨달은 자 흉내를 내게 되는 것이다.
나의 경우, 세상의 어둠과 불행을 견딜 수 없어 진리를 찾고자 구도에 나섰고 끊임없이 내가 가는 이 길이 세상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를 나의 중심 주제였다. 단을 맺어 양신 출태를 하려고 할 때도 과연 신통을 얻는 길이 세상에 무슨 도움이 되는가를 고민한 결과 그것이 정법이 아님을 알고 버렸던 것이다. 아무리 큰 능력을 얻어도 내 자신의 마음이 정화되지 않고 세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런 가치와 의미가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 많은 수행 과정 속에서도 별다른 마의 유혹을 겪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분명한 목적이 없이 욕심으로 도를 이루고자 함부로 명상에 빠지면 사기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아무 것도 모른 채 함부로 하는 명상은 매우 위험하다.
2. 공부법은 개인마다 틀릴 텐데 저처럼 몸과 마음이 많이 지친 사람은 어떠한 휴식이 가장 좋은 걸까요?
인간완성에 이르는 공부법은 사람마다 다른 것이 아니라 다 같은 것이다.
이 세상 어디서나 더 좋은 자기를 만들고 더 밝은 세상을 만드는 길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이 길을 알아 행하면 가난한 자는 부를 얻고, 권력을 얻고자 하는 자는 힘과 지혜를 얻고, 완성에 이르고자 하는 자는 모든 업을 지우고 해탈에 이르게 되며, 이 길을 세상에 실천하게 되면 밝고 행복한 세상이 온다.
이것이 바로 진리를 찾는 이유이며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야할 길이다.
세상은 법계이며 완전한 뜻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니,
흥하는 것에도 진리가 있고 망하는 일에도 진리가 있다.
그 뜻을 밝혀 좋아지고 흥하는 뜻을 행하는 것이 인간의 길인 것이다.
따라서 좋은 뜻을 찾아 행하면 좋아지고 나쁜 뜻을 찾아 행하면 나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참된 공부법은 사실과 이치를 밝혀 모든 사람들을 사실과 이치에 맞게 축복해주는 것이다.
그대는 그동안 이러한 진리의 길을 보지 못하고 자신과 세상을 망치는 환상과 어둠의 길을 갔기에, 현실과 멀어지고 많은 어둠에 휘둘려 불행한 삶을 산 것이다.
지금 세상에 참된 정법을 찾아보기 매우 어렵다.
성자들의 가르침이 거의 사라졌으니, 지금 세상에서 가르치고 있는 것은 정법이 아니라 삿된 법인 것이다. 만약 누가 보석을 가지고 있다면 항상 보석을 보여줄 수 있지만 보석을 잃고 가짜를 가지고 있다면 그는 참으로 가치있는 진짜 보석이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독교와 불교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르치고 있다고 하나 오늘날 그 정법을 잃어버렸기에 그곳에서 아무리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곳은 정법을 전하는 곳이 아니라 거짓된 법을 전하는 곳인 것이다. 하물며 신을 받거나 거짓된 깨달음으로 자신의 말을 만들어 가르치는 곳은 더욱 그러하다.
진리의 길은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며 세상을 꾸미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 세상에는 밝아지는 길과 어두워지는 길이 계속 흐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대가 밝아지는 길을 알고 정법의 흐름 속을 걸어가고 있다면
그대의 삶은 항상 보람과 가치가 있다.
모든 일이 더 좋은 자기를 만들고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하며
자신도 그러한 삶 속에 있음을 분명히 알고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완전한 생명의 길을 모르기에 삶이 무의미하며 덧없는 것이다.
이러한 밝음의 길은 한시라도 쉬어서는 안 된다.
완성의 흐름을 타고 끝없이 흘러 마침내 해탈의 바다에 이르러야 하는 것이다.
만약 그대가 편안함을 찾아 쉬기 시작하면
고여있는 물이 상하듯이 그 순간부터 부패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 모임의 진리의 도반들은 한시라도 편하기를 바래서는 안 되며
끝없이 진리 속에 흘러야 한다.
이것이 우리 모임의 자세여야 한다.
쉬지 않고 진리의 도랑물이 되어 세상과 부딪히며 흘러갈 때
그대의 삶은 생명력이 넘치고 좋은 운명과 인간 완성의 길로 걸어가고 있을 것이다.
---[질문]---
좋은 곳에 인연이 닿아 좋은 글들 많이 읽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몇가지 궁금증이 있어 질문 올립니다
1. 명상이나 호흡법등은 귀신 놀음이라는 말은 절대적인 진리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올바른 영적 성장은 오로지 행동하는 것, 그 이외의 것은 전부 가짜인지요)
(수행기를 보면 운영자님도 처음엔 단전호흡으로 육체를 기통한것으로 말씀하셨는데 그 행위 자체도 나중이 되어서 보니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시는 건지요)
(몸과 마음의 안정을 취하기 위해 잠시 앉아 눈을 감고 쉬는 것조차 명상의 범주에 드는지요<이 사이트에서 말하는 정확한 명상의 개념을 잘 모르겠습니다>)
2. 공부법은 개인마다 틀릴 텐데 저처럼 몸과 마음이 많이 지친 사람은 어떠한 휴식이 가장 좋은 걸까요?
(가난과 어릴 적 부모의 학대로 마음의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너무 애쓰다가 정신이 너무 너덜너덜해진 상태입니다
오히려 애쓴 게 독이 된듯합니다<무지하여ㅠ>...좋은 시작점이 없을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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