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진실을 찾아서

유명한 영적선각자들이 보았다는 사후세계의 진실.. 본문

☆ 진실의 근원

유명한 영적선각자들이 보았다는 사후세계의 진실..

gincil 2017. 8. 9. 13:56

높은 차원의 신은 이 세상에 함부로 나타나 기적을 보이지 않는다.

세상에 나타나 현상을 보인 신들 중에 진리를 전한 신은 없고 모두 환상적인 지엽적인 일만 하고 갔다.

즉 완전한 조물주의 뜻을 이 세상에 짓고 간 신은 없다는 말이다. 즉 세상에 나타난 신들은 그들의 세속적인 한을 풀고 유치한 심령현상만 남기고 간 유혼이라는 말이다.

 

소위 세상에 나타나 영적 선각자라고 추앙을 받은 사람들 중에 과연 성자들처럼 세상의 실상과 진리를 밝히고 인간의 길을 안내한 분이 있는가?

있으면 제시해주기 바란다.

 

그들은 모두 영적 장난만 하고 사람들을 영적 환상에 빠뜨려 인간정신을 감염시키고 세상을 어둠에 빠뜨리고 갔을 뿐이다.

 

그동안 이곳에서 그러한 영적 지도자들의 실체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었다.

 

그들의 말을 듣게 되면 생명의 진실을 모르는 그들을 영적 환상에 빠져 점점 자기를 상실하고 현실을 잃고 결국 자신의 영혼을 망치고 만다.

오늘날 업이 많은 이들은 사실보다 환상을 좋아하므로

이렇게 자신을 망치는 곳은 스스로 찾아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지만

사실과 이치를 밝혀 자신을 일깨우는 곳은 너무 사실적이고 평범하여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사실적인 이치에 따라 부지런히 일하는 곳은 맘에 안들고

쉽게 놀고 편하게 모든 것을 이루는 일확천금만 좋아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망치는 마약은 당장 효과있고 황홀하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지만

진정 자신에게 소중한 보약은 입에 쓰고 당장 효과가 없어 찾지 않는 것이다.

 

아래에 실려있는 영적 스승에 관한 글들을 참고하기 바란다.

 

 

 

> > > 유명한 영적선각자들이 보았다는 사후세계의 진실이 저마다 다릅니다. > 뉴턴이후 인류최대의 천재로 불리던 스웨덴보그는 최고의 과학자이기도 했는데. > 중년이후 20년이 넘는시간동안 천사의 부름으로..영계를 드나들었다고 하는데요.. > 내용을 보면 그냥 만화영화에 등장하는 그런 구조더군요... > 유치하기도하고.. > 이사람은 그냥 유혼의 장난에 놀아난건가요? > 그렇다면 그가 본 사후세계는 환영이었는지 궁금합니다. > > 일본의 인간붓다로 불리는 다카하시 신지도 수많은 초능력을 보여주고 눈물을 금으로 만들고 수많은 신유와치병 > 그리고 사후세계도 많이 왕래하였는데 스웨던보그의 사후관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 이사람도 조상영가의 장난에 놀아간것이며 그가본 사후세계등은 모두 환영인지도 궁금합니다. >



[민족신의 비밀]


그렇다면 각 종교단체에서 모습을 나타내며 불합리한 행동을 하는 신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 그것은 한과 욕망에 얽매여 세상을 떠도는 조상신이나 지역신일 가능성이 크다. 그들은 자기 민족과 관련된 한과 욕망을 풀기 위해 죽어서도 계속 후손들에게 나타나 민족의 이기심을 고취하고 전쟁을 부추기는 것이다. 그래서 각 민족과 관련해서 나타난 신들은 대부분 『구약』의 신처럼 타민족을 정복하여 자기 민족의 한을 풀어주기를 요구한다.

이들은 세상을 떠도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에 사람 몸속으로 들어와 안락하게 지내기를 바라며, 큰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 자신들을 섬겨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예로부터 신들이 나타난 곳에는 반드시 큰 사당이 지어졌던 것이다. 무당들이 제단과 사당을 만드는 것은 거기에 붙은 신이 자신을 달래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며, 옛날 그리스·로마 시절에 수많은 신전이 생겨난 것도 그곳을 떠도는 수많은 신들이 각자 자기의 안락한 보금자리를 지어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며, 종교가 생기면서 어마어마한 교회와 절들이 생겨난 것도 그곳에 머물러 있던 낮은 차원의 신들이 자기를 섬기며 위로해 주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진정한 하느님이라면 사람들의 고혈을 짜서 자신의 집을 짓게 하지 않는다. 온 세상이 그의 집이요 터전이며, 온 인류가 자신의 일부일진대, 굳이 인간의 재물과 피땀을 짜모아 모래알처럼 작은 집을 지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낮은 차원의 신이 거룩한 창조주 하느님의 이름을 도용하여 큰소리치며 살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영적 존재인 신은 의식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연극배우가 분장하듯이 마음먹기에 따라 다른 형태로 변하여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느님의 모습을 가지고 나타나는 ‘성령(聖靈)’이라는 존재는 기독교인들이 주장하듯이 하느님이나 천사의 현현이 아니라 기독교적 배경을 가진 유혼들이 자신들의 종교적 집착과 한을 풀려고 하느님의 베일을 쓰고 나타난 것일 가능성이 크다. 우주를 관할하는 신성한 하느님이 사사로운 인간의 욕망을 들어주기 위해 죄 많고 나약한 인간의 몸속에 그렇게 함부로 나타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런 못된 짓을 하는 신들을 왜 하느님은 가만히 두는지 의문을 품을 수 있다. 하느님은 인간들이 잘못 행동할 때 곧바로 천벌을 내리지 않고, 완전한 인과의 법칙을 통해 그 과보가 무르익을 때 심판한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 곳곳에서 나쁜 짓을 일삼는 작은 신들에 대해서도 일일이 나타나서 바로 벌을 주지 않으며, 과보가 무르익을 때 진리로 심판하는 것이다. 그래서 심판의 시간이 올 때까지 악은 악대로 선은 선대로 움직이면서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며 악이 성하면 세상은 고통스러운 것이며 선이 성하면 세상은 조화롭고 평안한 것이다.

결국 인간 속에 나타나 섬김을 받는 신들은 신성하고 공명정대한 창조주 하느님이 아니라, 인간이 죽어 생겨난 낮은 차원의 영적 존재로서 한과 집착과 욕망이 있기 때문에 인간들로부터 세속에서 자신이 누렸던 식욕, 색욕, 물욕 등 온갖 욕망으로 섬김을 받으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하느님의 영을 받았다고 하는 많은 사이비 교주들이 성적으로 문란하며 재물을 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하급 신을 섬기는 집단들은 신의 편파적인 사고와 계시에 빠져 사실과 이치를 멀리하고 스스로 신(ghost)의 종이 됨으로써 위안을 받으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삶 속에는 바른 이치가 없고 무지와 미신만 있으므로 결국 그러한 사회는 패망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 증거를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스의 이성과 철학을 바탕으로 찬란한 고대 문명을 꽃피웠던 로마가 기독교를 받아들인 후 시름시름 앓다가 멸망하고, 고대사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던 서구 사회가 환상적인 신의 영광 속에 머물다가 1,000여 년간의 중세 암흑기에 빠져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의 비밀]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그 가르침이 명확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자들은 각자가 배우고 깨친 것에 근거해서 진리의 말씀을 전하게 된다. 그러던 중 예수님이 전한 정통적인 가르침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그것을 주도한 사람은 사도 바울이었다. 그는 기독교계에서 직계 제자인 ‘12사도’보다도 더욱 ‘사도’의 역할에 충실했다고 칭송받고 있지만, 정작 그는 예수님의 직접 가르침은 고사하고 그분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던 사람이었다.

그는 바리새파 율법학자로 유대 유력가의 아들이었으며 로마와 밀접한 관계로 시민권까지 가지고 있는 로마 시민이었는데, 당시 그는 예수를 믿고 따르는 이들을 처벌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가 그 와중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접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저주를 받아 눈이 멀게 되었고, 성령의 은사를 받아 눈을 뜨고는 예수님을 영적으로 섬기게 된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참된 삶의 길을 전하는 진리의 스승이 아니라 그가 전통적으로 섬겨온 여호와와 같이 영적으로 섬기는 믿음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이 가르친 진리에 관한 말씀이나 율법보다는 과거 유대교에서 익혔던 신앙처럼 성령에 의한 구원을 강조하고 손쉬운 구원의 교리인 믿음을 통한 대속론(代贖論)을 주장하게 된다. 이것이 오늘날 기독교의 핵심교리가 되고 있는데 이러한 그의 견해를 가장 잘 대변하는 것이 바로 「로마서」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율법(律法)의 행위들이 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단정하노라.” 이로써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인과의 이치가 아니라 믿음이 주가 되는 종교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이 말한 것과 배치된다. 예수님이 안식일에도 병자를 고치고 여러 가지 일을 하자 유대인들이 왜 율법을 어기느냐고 따졌다. 그러자 예수님은 “나는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러 왔다.”고 하면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은 형식적인 규정의 준수가 아니라 참된 사랑의 실천으로 진정으로 세상을 축복하는 데 있다고 한 것이다. 율법이란 인간이 걸어가야 할 길로서, 거짓말하지 말고 살인하지 말고 도둑질하지 않고 세상을 사랑함으로써 인간의 마음을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만들어 천국에 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강조한 요체로 그래서 입으로만 주를 외지 말고 주의 뜻을 행하라고 한 것이다.

당연한 귀결로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팔복을 강조한다. 영혼이 가난한 자, 애통해하는 자, 박해를 받는 자, 고통받고 모함받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온유한 자, 자비로운 자,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면서, 이런 참된 삶을 살고 진리를 세상에 실천하며 자신의 마음을 정화할 때 비로소 복을 받는다고 구원의 원리를 밝힌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밝힌 이 팔복에 관한 성경 구절이 현재 기독교의 기본 교리하고 달라서 많은 혼란을 겪고 있다. 왜냐하면, 오늘날 기독교의 틀을 세운 바울이 「로마서」에서 “인간은 율법의 행위들이 없이도 믿음만으로 의롭게 된다.”고 선언(declare)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죄를 지어도 용서받을 수 있는 자신들의 종교가 가장 세상에서 우월한 종교라고 자랑한다.

그러나 이처럼 율법을 중시하지 않는 바울의 교리는 직전제자(直傳弟子)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혔다. 살아생전 예수님을 옆에서 모시면서 그 가르침을 직접 들었던 제자들이 볼 때, 예수님을 전혀 만난 적이 없고 진리의 가르침도 전혀 들은 적이 없었던 바울이란 자가 나타나 제자를 자처하고 스승의 가르침 대신 기존 유대교에서 여호와를 섬기듯 예수님을 신앙으로 섬기는 교리를 전하자, 제자들은 바울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어 이단으로 배척하고 죽이려는 시도까지 한다. 「사도행전」을 보면,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부터 그곳에 몰려와서, 무리를 부추겨 바울을 돌로 치게 했다. 그들은 그가 죽은 줄 알고 그를 도시 밖으로 끌어내었다.”는 구절이 있다. 그만큼 당시 유대 지역의 교회를 주관하고 있던 직전제자들과 외지에서 자기 나름대로 신앙을 전하던 바울과의 사이에는 깊은 정서적 교리적 간극이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진리를 이해함에 있어서 성자로부터 그 가르침을 직접 들은 것과 남으로부터 말로 전해들은 것과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울의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이해는 제자들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상태였으니, 오늘날 기독교가 바울의 교리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예수님의 원 가르침과 달라졌을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유대 지방에서 쫓겨난 바울은 당시 로마제국으로 근거지를 옮겨 독자적인 전도를 해나가게 된다. 그 후 기원후 68~70년에 일어났던 이스라엘 민족의 반란 여파로 로마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기원후 74년에 최후 저항지였던 마사다(Masada) 요새가 함락됨으로써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했던 초기 기독교 정통 세력은 크게 약화되는 역사적 과정을 겪는다. 반면에 로마제국으로 활동의 중심지를 옮긴 바울은 당시 하층 계급이던 노예나 부녀자를 대상으로 영적 신앙을 전함으로써 크게 교세를 일으키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 이후 최종적으로 바울파가 현실적 우세를 점하게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에게서 들었던 정통적인 진리의 가르침은 약화되고 유대교와 같은 형태의 신앙 중심의 교리가 기독교의 본류가 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에서 예수님이 밝힌 가르침이 희미해지고 유대교와 같은 영적 신앙이 강조된 역사적 배경이다. 그래서 진리를 밝힌 다른 여느 성자들과 같이 예수 또한 완전한 창조주의 뜻과 진리를 밝혔으나 그 가르침은 약화되고 원시 신앙 형태의 인격적인 신과 믿음이 중심이 되어 2,00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육조 혜능의 비밀]


부처님의 제자라면 세상을 밝히는 인과법을 보았을 것이며

제자가 아니라면 세상을 망치는 공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가 기존 부처님법을 부정하는 공법을 밝히자

오랫동안 중국불교를 이끌어오던 정통적인 가르침은 빛을 잃었습니다.

 

일자무식으로 절에서 곡식을 찧고 나무를 패던 행자 혜능이 절에 온지 8달만에

도를 깨치고 입에서 나오는 말이 모두 공이요 자유요 법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무엇을 볼 수 있을까요?

우리는 여기서 그에게 신이 붙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이 붙는 자의 공통된 현상은

자기가 몰랐던 일들을 갑자기 이야기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근기가 약하다는 것입니다.

근기가 약하니 현실을 살아갈 힘이 없어서 현실과 인연을 끊고 살게 되며

그 기운이 약하고 마음에 망상과 애착이 많으니 신이 붙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자무식이 갑자기 아는 소리를 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심령적 종교가의 대표적 징표입니다.

 

인과의 이치에 의하면 무엇이든 갑자기 이루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정상적인 경우

자기가 깨친 것만 아는 것이지 모르는 것을 갑자기 아는 경우는 없습니다.

육조단경에 나와있는 가르침도

공한 이야기 뿐이지 그 속에 세상을 밝히는 법이 없습니다.

 

오늘 힌두교의 깨달았다는 자들의 대부분이

현실에 도움이 되지 않는 관념적 소리를 하는 것은

그들이 진정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정각을 얻은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공귀가 붙어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일반인이 알지 못하는

영적 현상이 그에게 많이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신기가 없고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가 오조 홍인의 의발을 가지고 도주하다가 추적자가 따라 붙자

의발을 바위에 놓았는데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는 현상이 있습니다.

이것은 대표적 심령현상으로 상사병으로 죽은 총각의 상여가

황진이의 집앞에서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는 현상과 동일한 원리인 것입니다.

신의 술이 작용한 것입니다.

 

신수의 제자가 몰래 숨어 혜능이 설법하는 장면을 보았는데

이것을 알아차리고 꾸짖었다는 점 또한 신기가 없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알아차리지 못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조계사를 짓기 위해

산주에게 보자기에 덮을 만큼만 땅을 허락해달라고 요청하여

산주가 보니 너무 작기에 이를 허락했는데 보자기를 펼치자 조계사 전체 산을 덮어

그곳이 조계사터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모두 상대의 눈을 속히는 귀신의 조화를 부렸다는 뜻입니다.

 

이런 증거를 볼 때 그는 진정한 깨달은 자가 아니라

공귀에 들어 심령적 술을 부리며 관념적 소리로 인도를 망쳤던

힌두교의 거짓 깨달은 자와 같은 사람인 것입니다.



[성 프란시스코의 진실]


기독교에서는 많은 심령현상을 나타낸 성 프란치스코를 높이 보는지 몰라도, 이치에서 볼 때는 그는 우리나라 불교에서 도술을 부린 사명대사를 높이 보는 것과 같이 이상한 행동을 한 사람에 불과할 뿐입니다.

 

진리적인 관점에서 성 프란치스코는 자기 정신을 버리고 신령이 들려 산 사람입니다.

기독교인들이 볼 때 그는 자신을 하나님께 바친 가장 신실한 하나님의 종이겠지만

세상에 나타나 심령현상을 일으키는 신이 창조주 하느님이 아니라면,

그는 떠도는 신에게 자신의 영혼을 바치고 신놀음으로 인생을 헛 산 불행한 사람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는 큰 병을 앓고 환시를 본 후 성령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그동안 이곳에서 밝힌, 몸의 보호막이 사라진 사람에게 신이 접하는 현상과 같습니다. 만약 창조주 하느님이라면 이렇게 몸이 허약하거나 병에 걸린 사람에게 나타나지 않을 것이며 건강하고 사회의 지도자들에게 나타나 세상을 한꺼번에 밝게 인도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들어온 신은 다미아노 성당에서 그가 기도하고 있을 때, “허물어져 가는 나의 집을 고쳐 세워라”고 하여 성당을 세울 것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그는 부친 가게로 가서 값비싼 옷감들을 가져다가 시장에 내다 팔아 성당 보수비를 마련하였습니다.

바로 여기에 그에게 들어온 신이 창조주 하느님이 아니라 떠도는 신에 불과하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진정한 창조주 하나님이라면 자신을 찾는 나약한 인간에게 진리를 가르치지 자신의 전 재산을 바쳐 자신의 집을 지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왜 떠도는 신들이 자신의 집을 지으라고 할까요?

그것은 그들이 떠도는 유혼이기에 이 세상을 헤매며 떠돌아다니는 상황이 매우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유혼들이 세상을 떠돌게 되면 육체가 없기 때문에 오직 의식만 남아 끝없는 상념 속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다가오는 모든 세상의 환경이 끝없는 환상과 고통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그래서 조그만한 추위같은 것도 얼음지옥처럼 그렇게 느껴지고, 뜨거운 태양 빛은 화염지옥처럼 느껴지지요. 왜냐하면 육체가 없고 의식체만 살아 있으니깐 뭐든 다가오는 환경이 끝없는 환상으로 극대화 되어서 나타나는 겁니다.

 

 

그래서 너무나 고통스러우니깐 자기를 믿는 신자들에게 붙어서 자기에게 제사를 지내주기를 원하고, 섬겨주기를 원하는 거지요. 그래서 신들을 섬기는 곳에서는 사당같은 게 생겨납니다. 무당들이 제단과 사당을 만드는 것은 거기에 붙은 신이 자기를 달래주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옛날 그리스 로마 시절에 수많은 신전이 생겨난 것은 그곳에 떠도는 신들이 그렇게 많았기 때문입니다. 종교가 생기면서 그렇게 큰 절과 어마어마한 성당들이 생겨난 것도 그곳에 머물러 있는 신들이 자기를 섬겨주며 위로해 주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하느님이라면 성당을 짓게 하지 않습니다. 온 세상이 그의 집이요 그의 터전인데 인위적인 집을 지을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이를 봐서도 프란치스코에게 성당을 지으라 한 신은 떠도는 낮은 차원의 신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낮은 차원의 신이 창조주 하나님을 도용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영혼은 의식으로 존재하기에 연극배우가 분장하듯이 마음먹기에 따라 다른 존재로 변하여 인간의 의식에 나타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모습을 가지고 나타나는 성령이라는 존재는 기독교인들이 주장하듯이 하느님이나 천사의 현현이 아니라 기독교적 배경을 가진 유혼들이 자신들의 종교적 집착과 한을 풀려고 하느님의 베일을 쓰고 나타난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못된 짓을 하는 잘못된 신들을 하느님이 왜 가만히 두느냐? 고 의문을 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잘못된 사람들을 법칙으로 심판하듯이 잘못된 신들도 진리로 심판하지 일일이 나타나셔서 벌을 주고 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심판의 시간이 올 때까지 악은 악대로 선은 선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그가 성자라고 하지만 그가 한 일이 무엇이 있습니까?

남의 자선을 받아 봉사활동을 한 것과 성령으로 병을 고친 것 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이곳에서 많이 밝힌 적이 있지만

남의 돈을 희사받아 봉사활동을 하는 것은 세상에 아무 빛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성령치유는 일시적으로 그 사람의 이름을 날리고 희사를 받는데 도움이 되었을 뿐 세상을 좋게 하고 인간을 진정으로 축복하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병을 고치는 것은 무당들도 다 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행한 성령치유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까요?

기이한 영적 체험을 거쳐 독실한 신자가 된 기독교인들은 자신은 하느님의 빛과 모습을 분명히 보았으며 그로 인해 황홀한 구원의 은사를 받고 치병의 기적을 체험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미안한 일이지만 그들이 보고 느꼈다는 은사와 체험 어디에도 하늘의 은총은 담겨 있지 않으며, 제아무리 기적의 환희 속에 젖어 있다 해도 그것은 창조주 하느님과는 조금도 관계가 없습니다. 창조주 하느님이 인간세상에 나타나 죄많은 인간의 사사로운 욕구에 응해줄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본 것은 무엇일까요?

신을 받게 되면 마음이 평안해지고 황홀경을 느껴 마치 구원을 받은 듯한 착각이 듭니다. 어떤 자는 몸에 전율과 진동을 느끼며 앓던 병이 낫는 체험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경험은 이전엔 전혀 느껴보지 못한 것이기에, 자연히 세상 어디에서도 겪지 못하는 나에게만 주어진 하느님의 은총이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느끼는 이유는 신은 기운에 의식이 붙은 에너지의 형태로 되어 있어, 그 자체에 의식 현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식을 띤 기운이 사람의 몸에 들어오면 인간이 가진 의식과 상호 반응을 일으켜 온갖 환상을 일으키기도 하고 그 에너지의 작용으로 몸에 맺힌 것을 풀어 병을 낫게도 합니다.

 

그것은 마치 무당이 귀신을 불러 사람의 병을 낫게 하는 것과 근본적으로 같은 원리입니다. 세상은 하나의 이치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무당은 칼과 창 같은 위험한 물건으로 사람의 몸에 들어와 있는 의식적 존재인 귀신에게 겁을 주거나 더 큰 귀신을 불러 몸속에 있는 작은 귀신을 쫓아내는 방식을 취하는데, 소위 성령의 치유 은사란 것도 바로 이처럼 큰 신의 기운으로 몸안에 있는 작은 신기를 몰아내는 이치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독으로 독을 제어하는 이독치독(以毒治毒)의 원리와 같습니다. 큰 한과 집착으로 강하게 엉켜 떠돌던 기운을 이용하여, 몸에 붙어 병을 일으키고 있던 작은 탁기를 쫓아냄으로써 병을 고치는 원리입니다. 그러나 떠도는 신이란 존재는 워낙 변덕스럽기 때문에 그러한 효과는 일시적입니다. 잡신이 겁을 먹고 도망갔다가 다시 들어올 수도 있고, 큰 귀신 또한 헤매는 영혼이니 들락날락하며, 인연이 다하면 다른 기운이 들어와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른 영적 의식체가 사람의 몸에 들어오면, 그 신은 인간의 의식을 억눌러 지배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자기 의식을 상실하니 그동안 고통스럽게 짊어지고 있던 모든 고뇌를 내려놓은 느낌에 평안함을 느끼며 황홀해집니다. 마치 마약을 맞으면 모든 것을 잊고 마음이 평안해지고 황홀해지는 것은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겁니다.

 

그래서 영적 체험으로 빛을 보고 환희에 빠지지만, 그것은 떠도는 신의 영향으로 인한 일시적인 심리 현상일 뿐 현실의 문제는 그대로이니 완전한 해결책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현실의 무거운 짐이 그대로 느껴지게 되고, 다시 이를 피하려고 황홀경과 평안을 찾으러 종교단체로 가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마치 마약에 빠지면 마약에 의존하여 비현실적인 인간이 되듯이 신에 씌어 신에 의존하면 정상적인 사고를 상실하여 현실을 소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러한 악순환이 커지면 마침내 생활도 가정도 자기도 버리고 오직 신에게만 의존하는 광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체험을 했다는 사람들은 자신이 구원을 받았다고 신이 나서 이야기하지만, 그 진실은 구원과는 거리가 먼, 일종의 자기 상실 상태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인간은 자기 의식으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외부의 신기가 들어오면 그 사람의 정신은 기생충에 감염된 식물처럼 정상성을 상실하고 비실비실하게 되며 자기 의사로 올바르게 사고하지 못하고 모든 의식작용에 다른 의식에 의해 간섭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판단력이 흐려지고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나 아닌 또 하나의 의식작용 때문에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되며 작은 심리적 충격도 견디지 못하고 안절부절 못하며, 심하면 정신분열증까지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성령의 심각성은 신을 받음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큰 문제가 시작된다는 데 있습니다. 자신 속에 들어온 신이 이 우주를 창조한 완전한 신이 아닌 세상을 떠도는 잡신이 들어오면, 이를 받은 사람은 영적으로 감염이 됩니다. 영이 든다 함은 자기의 몸속에 죽은 기운이 들어오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생체에는 많은 좋지 않은 현상이 생깁니다. 몸에 붙으면 특별한 이유 없이 붙은 부위에 통증이나 이상한 현상이 생기고, 정신을 감염시키면 맑은 정신을 유지하지 못하고 갖가지 정신질환을 앓게 됩니다. 이러한 병증들은 영적 오염으로 야기된 문제이니, 오늘날 진단도 되지 않고 병명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이상 증세가 생겨나는 것도 바로 이 같은 영적 감염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을 떠도는 신들이 인간의 나약함을 이용하여 인간을 지배하는 비밀이니, 이러한 진실을 알지 못하고 작은 영적 현상을 하늘의 계시라도 되는 줄 알고 좋아하다가는 한순간에 자신의 몸을 다른 유혼에게 내어주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잘못된 신이 쳐놓은 미끼에 걸리는 경우를 보면, 무지하고 욕망이 많은 자일수록 그런 기적을 쉽게 믿고 또 자기 자신을 그에 더욱 의지하려 듭니다. 그리하여 치병(治病)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정과 사업의 성공마저 신에게 맡기는 어리석음을 범하며 결국 떠도는 잡신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받았던 상처인 오상(두 손과 두 발, 옆구리에 난 상처)의 흔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상처는 1224년 라베르나 산에서 단식 기도를 하던 도중 생겨났는데, 이후 그는 건강이 급속히 안 좋아져 눈이 반쯤 멀었고 심한 병까지 얻어 2년 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이것이 그가 예수님의 성령을 받은 성자의 증거라고 하지만, 이것은 잡신이 자신이 예수임을 흉내낸 것에 불과합니다. 그에게 오상의 흔적을 나타낸 신이 진정한 예수님의 성령이라면 그를 더욱 건강하게 만들지 큰 병이 나게 하여 죽게 만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은 그에게 든 잡신이 자신을 나타내기 위한 잔재주를 부린 것에 불과합니다.

그에게 든 신은 오상의 흔적으로 프란치스코의 몸을 이용하여 나타냄으로써 자신이 예수님임을 보이고 사람들에게 자신을 섬길 것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그 댓가로 그 신은 성 프란치스코의 목숨을 가져갔던 것입니다. 그가 진정 예수님의 영이라면 오상의 흔적을 내보일 것이 아니라 인간세상을 축복할 진리를 전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상이 신비롭거나 하느님의 영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에게 들어온 신이 진정한 창조주 하나님이나 예수님의 영이라면 인간의 몸에 이상한 상처를 내는 그런 해괴한 현상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증거를 다른 오상의 흔적을 나타낸 비오 신부한테서 잘 확인할 수 있습니다.

'비오' 신부는 1887년 이탈리아 남동부의 피에트렐치나 지방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는 어릴 적부터 매우 허약해 다섯 살 때부터 귀신과 접했고 환시도 보았다고 합니다.

 

그는 신부가 되고자 수도원에 들어갔으나 영적 현상이 심하여 매우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식사를 하면, 토하는 일이 많아 21일간을 영성체로만 산 일이 있다고 합니다. 그는 매우 허약한 체질로 갑자기 열이 올라가 수도원의 체온계가 터지는 일은 한두번이 아니었으며 밤마다 귀신과 치열한 싸움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이것은 그에게 잡신이 들렸기 때문에 나타나게 되는 당연한 현상인 겁니다. 그는 1910년 사제로 서품되었는데 그의 미사는 성령에 취하여 끝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는 성령에 몰입하여 무한정 긴 시간을 메멘토(죽은 이들을 기억)와 감사기도 속에 빠져들었다고 합니다.

 

이런 여러 가지 일 때문에 수도원에서 나오게 된 그는 양친의 농가 뒤에 짚으로 된 작은 암자를 하나 만들어 신에 대한 기도와 깊은 침묵에 몰두했다고 하는데, 여기서 그에게 오상의 흔적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 후 의학적 치료와 과학적 설명이 불가능한, 아물거나 덧나지도 않는, 오상의 고통을 50년 동안 간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1968년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데, 수사들이 '비오' 신부를 입관하려 할 때에도 50년 동안 그렇게 존재하던 '비오' 신부의 오상의 흔적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피나고 뚤린 상처 자리에는 갓 떨어져 나간 부드러운 외피만 남아 있었고, 그 피부는 갓난아이의 피부와 같이 매끄러웠다고 합니다. 이것은 그가 죽음으로 그에게 술을 부리던 잡신이 떠남으로써 나타난 현상입니다.

 

이러한 비오신부의 오상이 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에게 들어온 신이 허약하고 제정신을 못 차리는 사람에게 들어온 저급의 신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그에게 들어온 신이 진정한 창조주 하나님이나 예수님의 영이라면 이처럼 허약한 인간에게 들어오지 않고 사회에서 중책을 맡은 힘 있고 정신이 강한 지도자들을 택하여 당당하고 장엄하게 나타나실 것입니다. 따라서 병약하고 삶에 큰 상처를 받아 심신의 균형이 깨친 사람이나 수행으로 몸이 쇠약해진 사람들에게서 주로 나타나는 신들은 낮은 차원에 신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이 나타나는 모습도 그것이 진정 이 우주를 창조한 하느님의 영이라면 그 능력이 실로 엄청나야 합니다. 모세와 같이 바다를 가르는 초능력으로 민족을 구하거나 세상을 밝히는 영원한 진리를 밝혀야 하며 인류의 미래를 구하는 예언을 하거나 자유자재한 치유 능력을 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에게 나타난 성령현상은 진리를 밝힌 것도 아니고 인간의 몸에 상처를 내는 조잡스런 현상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예수님의 영이 할 일이 없어서 자신의 몸에 난 상처를 인간의 몸에 나타내어 그 사람을 섬기라고 하겠습니까? 예수님은 자신을 섬기라고 하지 않았으며 진리를 실천하라고 하셨을 뿐입니다.

 

따라서 허약한 자에게 나타나 오상을 일으키고 죽이는 조잡한 현상은 창조주 하느님이나 예수와 같이 거룩하고 밝은 존재가 할 일이 아닌 것이니 세상에 떠도는 낮은 차원의 신이 자신을 섬기도록 하기 위해 잔재주를 부린 것에 불과합니다



[브루노 그뢰닝의 진실]


[밴드 질문] 요가난다 2017년 2월 23일 오후 8:25 ·39 읽음

 

브루노 그뢰닝은 누구인가 ?

브루노 그뢰닝은 어려서부터 병든 사람들과 동물들을 치유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는데 성인이 된 후에도 사망하기 전까지 전통의학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한 난치병을 앓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치유한 것으로 유명하다. 1949년 독일 허포트(Herford) 에서 루게릭 병으로 불치 판정을 받고 걷지도 못한 채 침대에만 누워서 지내던 7세 소년이 단 한 번의 브루노 그뢰닝과의 만남을 통하여 다음 날 바로 기적과 같이 걸을 수 있었다. 이 일이 독일지역 신문을 통해 알려지는 것을 계기로 독일 전역에서 브루노 그뢰닝의 도움을 받고자하는 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집앞으로 몰려오기 시작하였다. 그가 한 것이라고는 그의 도움을 필요로 오는 사람들 앞에서 어떠한 신체접촉도 없이 그저 가만히 신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신의 뜻을 전하는 것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서에 기록된 것처럼 걷지 못하던 이가 걷고, 보지 못하던 이가 보게되는 기적과도 같은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치유를 경험함에 따라 독일 전 지역 뿐만 아니라 가까운 유럽을 시작으로하여 멀리 미국 등 전세계에서 그의 도움을 받고자 하는 이들과 취재진이 몰려오게 되었고, 순식간에 기적의 치유자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매일 수백에서 수천명 심지어는 하루에 3만명(1949년 9월 뮌헨 로젠하임 외곽의 트라버호프) 이 그의 집앞으로 모이기도 하였다. 그의 이러한 치유는 의학계와 종교계에 많은 논란을 일으켰지만, 그를 통해 치유를 경험한 이들은 의학적 검사를 통해 완전한 치유가 일어났음을 확인 받을 수 있었다. 부르노의 활동을 치료 (treatment)보다는 치유(healing)로 표현하는 것은 그가 어떤 물리적인 의료행위를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즉 그는 이 우주의 신성과 우리 생명체들 사이에 하나의 통로(channel) 역할을 함으로써 신성한 에너지 (Divine Force)로 하여금 고통과 질병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치유토록 하는 기적을 이루어냈다. 브루노 그뢰닝의 가르침 인류 역사를 통틀어 수천년 동안 인류에게 도움을 주고 또한 치유를 일으키는 신성한 힘(Higher Force)의 존재는 모든 발달된 인류문명의 역사에서 언급되어지고 있다. 브루노 그뢰닝은 이 힘을 하일스트롬(Heilstrom)이라 칭하였고,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 힘을 흡수할 수 있는지 가르쳐 주었다.

 

 

 

이분은 다 무료로 했는데..이분도 영적감염인지 궁금합니다..

 

[답변]

 

어떻게 사실과 이치를 보고도 믿지 못하면서

남의 말만 듣고 그렇게 믿을 수 있을까?

 

거짓이 범람하는 시대라 자신이 직접 확인한 것이 아니면 절대 믿어서는 안된다.

그런 기적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졌다면, 왜 공식적인 의학계에서는 그를 연구하지 않았을까?

그는 대표적인 성령치유가였다.

그는 다른 성령치유가들처럼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 많은 연설을 했으며,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 진정한 기독교 생활 방식의 필요성에 호소했다. 그래서 그의 강연 중에서만 아니라 그의 부재에도 수많은 치유가 일어났다고 전해진다.

물론 그 진실 여부는 검증이 되지 않았다.

그가 진정한 하느님의 사도였는지는 그의 이력을 보면 여러분이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일대기를 찾아보니 그 속에 그의 정체가 잘 나타나 있었다.

 

1906 - 1927년

Bruno Gröning (원래 Bruno Grönkowski)은 1906 년 5 월 31 일 Danzig-Olivia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적부터 신기가 있어 치유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아이를 그의 부모님은 싫어했고 결과적으로 부모와의 관계는 원만하지 못했다.

 

1928년

Bruno Gröning은 Gertrud Cohn과 결혼했다.

 

1940년

첫째 아들 Harald가 Danzig 병원에서 심각한 병이 나면서 9 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1945년

브루노 그로 닝은 러시아에서 전쟁 포로가 되었다. 구금 시설에서 수종으로 고통당하는 동료 포로들은 그로 잉 (Gröning)의 도움으로 치유를 경험했다.

 

1947년

둘째아들 귄터 (Günter)가 8세로 심하게 아프다가 죽었다.

 

1948년

많은 사람들은 그의 명성을 듣고 찾아와 도움과 치료를 요구했으며 많은 기적을 행했다.

 

1955년

브루노 그로닝 (Bruno Gröning)은 지속적으로 신비한 성령치유를 하다 당국에 의해 금지를 당했고 어떤 사람(Ruth Kuhfuß)은 잘못 치유하여 죽음에 이르게 함으로써 살인 혐의로 기소되었다.

같은 해, 첫부인인 거트루드 그로닝 (Gertrud Gröning)과 이혼하고 비서였던 Josette Dufossé와 결혼 한다.

 

1958 년

브루노 그로 닝 (Bruno Gröning)은 지방법원의 제 2 형사법부에 의해 8 개월 형을 선고 받았고 5000 DM 또는 50 일 형을 선고 받았다.

 

그 해 연말에 Gröning은 급속하게 몸무게가 빠지고 파리로 가서 검진을 받은 결과 위암으로 진단 받았다.

 

1959 년 1 월 26 일 파리에서 암으로 죽었다.



[지중해의 성자 다스칼로스]


그런 이상한 현상에 혹하지 말라.

그렇게 이상한 말을 신기하게 여기고 자꾸 빠져드니 삶에 이상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 책은 믿을 것이 못된다.

다스칼로스 자체도 그 책을 부정하고 자신과 저자가 끝이 났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했다. 그 이유는 채널링 계통의 저자가 자기 멋대로 상상력을 발휘하여 쓴 것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그 책은 다스칼로스에 의해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저자에 의해 마음대로 조작된 책인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다스칼로스 같은 영적인 형태의 마스터들이 나타난다.

그러나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그들은 큰 신을 띤 영매들이다.

큰 신이 들린 자들이 스승이 되는 모든 것이 거꾸로 보이는 말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들이 전부다 깨달은 스승이라면 세상이 천국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신들린 징표는 있어도 깨달음의 증거는 없다.

그들이 깨달은 자라면 그 말에 사실과 이치에 맞는 진리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뒤에서 나오겠지만 그의 말에는 그러한 증거가 없는 것이다.

이런 자들에 관심을 갖고 가까이하게 되면 비현실적인 환상과 영적인 감염과 불행한 운명 이외에는 오는 게 없다.

 

그렇다면 다스칼로스에 대해 알아보자!

그는 어릴 적부터 온갖 유혼과 접촉한 것으로 보인다.

성 도미니코, 성 요한, 성 힐라리온 등등

그들 문화 속의 말대로 하자면 성스러운 천사와의 접촉이지만

우리나라 이야기하자면 단군신이나 강감찬 신 을지문덕신과 같이 그들 문화적 전통 속에 있는 신들과 접촉한 것이다.

그들 신앙에서 그러한 성인들이 특별한 신이니까...

 

그가 만난 신들은 창조주 하느님이 아니다.

성자와 조물주와 같은 높은 차원의 신이라면 이 세상에 떠돌아다니지 않는다.

이 세상에 나타나고 있는 신들은 거의 전부 한과 집착에 의해 현실에 매여있는 신이라 보면 된다. 그러한 신들은 자기가 원하고 있는 것을 다 못 이루고 죽어 한과 집착에 의해 세상을 떠돌며 사람들에게 붙어 그것을 풀려고 온갖 수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예수 때 모시던 어린 소년이었으며 이집트에서도 많이 환생했다고 한다.

이것은 죽은 자가 모든 것을 잊어야 다시 날 수 있는 생명의 이치에 어긋나는 것이니

수많은 죽은 자들과 영적 교류로 그들의 전생의 기억들을 유추해내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여기서도 그의 영적 감염이 매우 지저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스칼로스는 어릴 적부터 다른 사람의 의식을 읽을 수 있다고 했다.

그것은 전형적인 무당현상이다.

우리는 점집에 가면 무당이 “너 어제 저녁 개고기 먹었지?” 하고 묻는다.

그래서 맞추면 용하다고 탄복하면서 단골이 된다.

그것은 무당 속에 있든 귀신이 의식과 통하는 영의 속성을 이용하여 자신의 내면을 훔쳐보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가 신들린 자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깨달은 자는 절대 남의 마음을 훔쳐보는 일을 하지 않는다.

 

다스칼로스는 병을 고치는 신유현상을 지녔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병을 고치는 것은 무당들이 병을 고치는 것이나 종교단체에서 병을 고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고치는 것은 고치고 못 고치는 것은 못 고치는 것이다.

즉 그들이 고치는 것은 신에 감염되어 나타나는 현상을 고치는 것이다.

사람의 몸에 나쁜 사기가 붙으면 정체를 알 수 없는 고통과 장애가 생긴다.

이때 그들이 하는 수법은 큰 귀신을 불러들여 작은 귀신을 쫒아내는 것이다.

이때 운이 좋으면 도망나간 귀신이 다시 돌아오지 않지만 독한 귀신은 다시 돌아온다.

그래서 옛날 남00이란 유명한 여배우가 유방암을 성령 은사로 나았다고 큰 소리 치다가 다시 재발하여 죽었던 것이다.

한 마디로 영적 치유는 믿을 게 못된다.

그가 그러한 신유의 능력이 있다면 의학적으로 증명이 되어

세상의 권력자나 재벌들이 다 이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결과가 남아있지 않을 걸 보면, 그는 단순한 무당의 치유능력에 불과했을 뿐이다.

 

어릴적 다스칼로스의 이야기를 보면 수학공부를 안했는데

성 도미니크라는 신이 영접해 로그문제를 풀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성 도미니코가 어느 때 귀신인데 로그 수학문제를 푸는가?

로그함수는 1619년에 존 네피어가 발견한 것이다.

 

신이란 자신이 살았던 시절에 알았던 사실과 감정에 집착해 그것을 풀려고 세상을 떠돌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 나타나 수학문제를 풀게한 신은 성 도미니크가 아니라 근대에 살았던 어떤 귀신이 성 도미니크라고 흉내내는 것이다. 신은 의식적 존재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의식에 조금만 조작해도 다른 신의 모습으로 변장해 나타날 수 있다. 마치 잡신이 단군신이라 칭하는 것과 같다.

채널링에 나와있는 지식들이 대단히 범종교적이고 철학적인 것 같아도, 그러한 지식들은 거의 전부 근대에 나타났던 지식들이다. 그길로 나갔던 관념적인 자들이 자신들의 추상적인 지식에 대한 집착이 커서 죽어서도 그 논리를 부여잡고 세상을 떠돌며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는 것이다. 자기 딴에는 자기가 알게 된 지식이 세계 최고의 지식이라서 깨달은 자가 되거나 죽으면 당연히 높은 차원에 올라가야 하는데 죽어보니 천국은 보이지 않고 세상을 떠돌며 지옥을 헤매고 있으니 자기의 집착과 한을 풀고자 자기가 안 지식을 세상을 떠돌며 사람들에게 붙어서 자신의 지식을 채널링으로 풀고 있는 것이다. 즉 지금 채널링으로 나타나는 높은 차원의 신이라고 하는 존재들은 거의 전부 근대에 신지학과 연결되는 자들의 유혼현상인 것이다. 이들이 거룩한 신으로 변장해 나타나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그가 남긴 가르침 속에서 그의 말의 진실성을 살펴보자.

그의 말을 사실과 이치에 비추어보면,

그가 세상을 본 성자인지 아니면 기이한 소리만 하는 신들린 무당인지 분명히 드러난다.

 

그는 사랑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다.

 

사랑은 모든 주파수로 진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상에 내려오는 모든 인간을 비추는 빛 말입니다.

 

사랑이 무슨 주파수란 말인가?

하늘에서 무슨 사랑이 빛처럼 내려온단 말인가?

 

하늘에서 사랑이 그렇게 빛처럼 내려 비친다면,

수천 년 간 인류가 그렇게 전쟁과 고통 속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불행스럽게 살아야 했단 말인가?

그는 말도 안 되는 관념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이란 그렇게 하늘에서 내려오는 축복이 아니다.

하늘은 완전한 세상을 지어놓고 인간의 일에 아무 관여도 하지 않는다.

하늘은 인간이 짓는대로 공정하게 심판할 뿐이다.

 

사랑은 인간의 내면 속에 빛나는 맑고 좋은 양심이다.

인간은 이 양심을 밝혀 완성에 이르는 것이다.

양심 속에 있는 밝은 마음을 밝혀 사실과 이치로 상대를 축복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이 사랑을 제대로 행하기 위해서는 진리를 만나 세상을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중생은 장님이라 자기 눈앞의 일도 바로 보지 못한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각자 좋은 뜻을 지으며 착하게 살려고 하는데도 세상은 계속 어두워지고 불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앞 못 보는 중생이 흐린 자신의 마음을 밝혀 좋은 자기를 얻고 좋은 운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진리의 인연을 만나 무지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옳고 그름을 보아 잘못된 원인에서 벗어나야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고 세상을 축복하는 좋은 원인을 지어 진정한 사랑과 공덕을 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랑은 이러한 이치 속에 있는데, 그는 전혀 뜻도 이치도 닿지 않는 관념적인 이야기로 세상을 허무맹랑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편지봉투에 이름은 쓰지 말고 돈만 넣어 보내라.

 

이 말은 받는 자에게 자기 멋대로 쓰라는 이야기와 같다.

이것이 오늘날 자선이 세상에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이유인 것이다.

그래서 자선하는 자는 그대로인데 세상은 좋아지지 않고 불행한 자는 계속 그대로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사실과 이치를 보고 세상에 축복이 될 때 보시하라고 한다.

주는 자는 분명히 보고 좋은 곳에 쓰도록 주어야 할 것이며

받는 자도 분명히 자기가 약속한 곳에 써야 하고 분명히 결과를 발표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많은 자선단체들이 그 돈을 목적한 곳에 쓰지 않고

자기 집단의 생활에 쓰거나 목적 외로 쓴 경우가 많은 것이다.

즉 자신이 좋은 곳에 쓰라고 준 돈이

진정 세상을 축복할 때에 안 쓰여지고 딴짓 하는데로 오용되고 있는 것이다.

즉 자신이 하는 일이 공덕이 아니라 비공덕이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 나온 자선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기부금을 받는 공익법인은 2만9,509개인데 이 가운데 공시의무가 있는 3,991개 중 단체의 투명성, 효율성을 검증할 정도로 재정 정보를 공개한 곳은 0.47%인 19개이며 여기에는 연말 거리모금의 상징이 된 구세군 자선냄비조차 상속세 및 증여세법 상 공시 의무사항인 ‘월별 기부금 모집 및 지출명세’를 공개하지 않아 여기에서 제외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19개 단체 또한 총 지출액에서 순수 사업비로 본래 목적대로 사용하는 비중이 단체별로 최대 80%까지 차이가 벌어진다고 한다.

 

이것이 오늘날 좋은 뜻으로 자선한 현실의 결과이니 자신이 한 행동이 좋은 결과로 세상에 나타나기 위해서는 분명히 그 쓰임새를 알고 바른 곳에 기부해야 하는 것이다.

무엇이든 명확한 게 좋은 것이다.

 

그리고 다스칼로스는 해탈을 일러 심령의 힘과 능력을 얻는 것이라는 망발을 한다.

 

해탈이 무엇인지 보고 들은 지식 밖에 없으니

이처럼 어처구니 없는 망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심령의 힘과 능력을 얻는 것은 전형적인 신들린 자의 능력을 말하는 것이니,

신접한 영매인 자신을 해탈한 자로 미화하고자 이렇게 불경스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해탈은 진리의 인연을 만나 스스로 인간의 선한 마음을 밝혀 완전한 창조주의 경지에까지 그 마음을 정화시켜 인간완성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신이 들었다는 것은 자신의 영혼을 다른 기생충에 감염시키는 것과 같아서

영혼의 맑음을 잃고 불행 속을 헤매다가 소멸하는 운명을 맞게 되는 것이니

그는 해탈한 자가 아니라 인간 중 가장 천한 신들린 자에 불과한 것이다.

 

예전 우리나라에서 가장 천한 자를 꼽자면 백정과 무당이라 했다. 무당이 천한 이유는 자기 정신을 가지고 살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 문제는 스스로 신이 들려 무당이 되고자 하는 자가 그리 많다는 것이다. 이것이 채널링 계통의 영적으로 감염된 글들이 번지고 있기 때문이니 그대는 이를 명심하고 벗어나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스칼로스는 지옥에 떨어진 영혼이 스스로 자각하면 자유와 선택으로 천국에 까지 도달할 수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다. 영혼은 결과체인데 어떻게 스스로 자신을 좋게 만들어 좋아질 수 있단 말인가?

하나의 열매가 스스로 좋아지는 것을 봤는가?

 

열매가 좋아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새로 자신을 땅에 묻어 잘 가꾸어야 새로운 개량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세상은 만법귀일이니 인간의 영혼도 반드시 현상계에서 다시 나서 자신의 영혼을 더 좋게 농사지어야 좋은 영혼을 얻어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삶이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은 지옥에 빠진 영혼이 스스로 자각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명의 이치에 어긋난 말을 하고 있으니 진리는커녕 생명의 이치에 어긋나는 헛된 말로 세상을 오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다스칼로스의 경우는 살아생전에 한 행동도 무당 그 자체이며

그의 가르침 또한 진리와 생명의 이치에 하나도 맞지가 않다.

 

그런데 그대들은 지금 이상한 말에 현혹되어 스스로 자신의 삶을 귀신 소굴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러한 행동을 하게 되면, 하는 일마다 영적 존재가 작용하여 액운이 끼고 집안에 이상한 일이 생기며 어두운 운명을 만나게 된다. 귀신은 세상이치를 보지 못하고 한과 욕망과 집착으로 헤매는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세상을 망치기는 쉬워도 축복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지금 그대는 생명의 길에 반하는 너무나 무서운 영적 어둠의 길을 가고 있다.

지금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악마들이 이 세상을 감염시키기 위해 신기한 소리로 그대들을 유혹하고 있다.

이제 진실의 근원과 인연이 닿았으니 사실과 이치에 맞지 않는 모든 말을 거부하고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

여기에 그대의 영원한 후생이 달려있다.

이 생애에서 영적 감염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자신의 영원한 생명의 종자인 영혼을 시들게 만들어 마침내 영원히 생명의 흐름에서 퇴화되어 소멸해 버리기 때문이다.

 

벗어나야 한다.

기존의 모든 책과 홈페이지, 인연과 연결을 끊어버리고 오직 눈앞의 사실과 이치에 충실하라!

눈앞의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기 때문이다.

진실 속에 있는 원인과 결과를 보게 될 때

그대는 세상을 바로보는 눈을 얻어,

좋은 운명을 얻고 좋은 공덕을 지으며 바르게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신지학의 실체]



[질문]

신지학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런 저런 책과 모임을 통해, 신지학이라는것을 알게되었습니다.

배경도 배경이려니와 주장의 내용과 근거가 일리있어 보입니다만, 

한국에서는 사실상 사라지고 세계적으로도 움직임이 정지된듯 합니다.

개인적으로 흥미가 있지만 배울곳도, 조언을 해줄이도 없네요.

선생님의 고견을 청합니다.

                                                  * 질문자 : 최호(2013-09-25)

 

 

 

[답변]

그곳에는 보기 좋고 듣기 좋은 아름다운 꽃노래만 있을 뿐 진리가 없다.

깨달음은 분명한 실체가 있어야 한다.

신지학이 깨달은 성자들에게서 나온 것도 아니고

신지학을 해서 깨달은 자가 나온 적도 없는데 

어찌 그 논리가 그럴듯하다고 해서 진리인양 확신을 갖고 따르고 있는가?


신지학을 창시한 헬레나 블라바츠키는 어릴 적부터 영이 들어

오컬트 현상에 빠져든 영매인 것이지 깨달은 자가 아니다.

스승께서도 우연한 기회에 미국 신지학회에서 헬레나 블라바츠키의 사진을 보시고

그녀는 큰 귀신이 붙은 여자라 하셨다.


그녀에게는 깨달았다는 아무런 징표가 없는데 그녀가 창시한 신지학에

세상을 이끄는 영원한 진리가 있다고 믿고 따를 수 있겠는가?

만약 그것이 진리가 아니라면

그만큼 자신의 삶을 거짓으로 망치는 일이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신지학은 과거 서구의 영지주의와 오컬티즘 그리고

힌두교의 명상법이 가미된 영적 환상이 가득한 관념적인 지식체계이다.

그들은 세상 속에 있는 실상과 이치를 보지 못하고

영적 교류를 통해 세상을 보려고 한다.

그들은 이 우주에는 현실에 작용하는 고차원의 높은 신들이 있어

이들이 세상을 구원하는 지식과 지혜를 주며 세상을 완전하게 이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오늘날 채널링과 같은 계통의 영적 흐름이다.


그러나 어찌 신이 세상에 진리를 밝히겠는가?

진리는 오직 인간으로 태어나 깨달음을 얻은

살아있는 각자(覺者)에 의해 나타난다.

 

이 세상에 나타나는 신이란 고차원의 신성한 신이 아니라

대부분 한과 집착에 의해 세상을 떠도는 유혼에 불과하다.

생명의 이치를 깨닫지 못해 세상을 떠도는 신이

세상을 밝히는 진리를 전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영이 든 자의 말은 신계의 말로서 세상을 떠도는 유혼들의 말이며

세상을 지배하고자 하는 어둠의 세계의 음모인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한스러운 처지를 위로받기 위해

인간세상을 지배하여 인간들의 섬김을 받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신의 계시에 의지하는 이러한 주장은

실상과 진리를 강조한 성자들의 가르침과 배치되며

인간이 가야 할 생명의 길과 어긋난다.


신지학은 영적 비의를 강조하고 있다.

진리에 접근하는 방법으로 영적 체험을 중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는 사실 속에 존재하며 생생한 삶 속에 작용하고 있다.

즉 눈앞에 보이는 이 세상 모든 것이 진리인 것이다.


그런데 어찌 영을 알아야 진리를 알겠는가? 

영을 알아야 진리를 안다는 오컬티즘은 결국 신놀음에 빠지는 첩경인 것이다.

따라서 영적 신비가 세상을 지배하게 되면

진리와 생명의 세계가 어지러워지는 것이다.


자기 속에 있는 업으로 인해 이러한 영적 환상을 좋아하여 

신지학의 화려함에 이끌려 환상을 보는 자들을 따르게 되면 

결국 그는 영원히 사실을 보지 못하고 거짓과 환상 속에서 인생을 소모하게 될 것이다.


그들의 말은 아름답지만 진리를 알지 못하니 그 속에 길이 없다.

길을 보지 못하고 아름다운 말들만 짜깁기해서 만들었으니 

꽃노래에 불과할 뿐 그 속에 생명력이 없는 것이다.


세상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좋은데

어떤 것이 사랑인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대표적인 사례가 크리슈나무르티이다.

초기 신지학회 회원들은 크리슈나무르티에게서 '메시아' 내지 '세계의 스승' 이

될 것 같은 오로라를 보고 크리슈나무르티를 점지하여 특별교육을 시켰다.

1911년 '세계의 스승'을 맞이하기 위해 신지학회 내에 '별의 교단(the order of the star

in the east)'이 창립되었다. 그들의 특별교육 속에서 성장한 크리슈나무르티는

지도자가 되어 교단을 이끌었고, 세계적인 강연에 나섰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점차 자기 철학을 정립한 크리슈나무르티는

자기 신념에 충실하고자 1929년 네델란드의 옴멘에서 열린 한 모임에서 돌연

'별의 교단'을 해체했다. 그리고 추종자를 원치 않는다고 선언했다.


"누군가를 따르는 바로 그 순간부터 그대는 이미 진리를 따르지 않는 것이다.

 진리란 온갖 형태의 얽매임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그 어떤 집단이나 종교를 통해서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그 선언의 핵심이었다.

생활 속에서 나의 모든 행동을 객관화시키고 관찰하며 어떠한 종교나 단체에 소속되지

말고 자유롭게 모든 현상을 바라보고 자신의 에너지가 전부 기울여지는 가운데 그것들을

바라보는 관찰자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깨달음을 자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이 바로 오늘날 힌두철학의 일반적 흐름이며

오늘날 유행하고 있는 동양 명상법의 주류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 속에는 길이 없다.


업이 많아 마음이 캄캄한 자들이 가만히 앉아 자기를 응시하거나

화두를 잡는다고 해서 홀연 깨달음이 찾아올 수 없다.

지은 것이 아무 것도 없고 마음이 어둡고 욕심이 가득한데

맑고 집착 없는 해탈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가만히 마음을 응시하거나 무위에 젖거나 공을 자각하면

깨달음이 온다는 류의 현대 명상법들은 모두 기술에 치우친 길이 없는 말법으로

짓지 않은 것을 얻고자 하는 허망한 말법인 것이다.

 

이처럼 현재 수행법의 근본적 문제점은

생각으로 모든 것을 지우고 공을 얻었는데

자기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숙생의 업의 움직임을 극복하지 못했으니

머리로는 깨달았는데 실제 깨달음의 증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말세가 되면 이러한 화려하고 거짓된 지식들이 번져

소박하고 사실적인 참된 지식을 경시하고 부정하게 만들게 된다.

그리하여 거짓이 인간의 마음을 병들여 진실이 발붙일 곳이 없게 되면 

이 세상은 진실이 사라져 망하게 되는 것이다.

  

진실이 사라지면 세상이 망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 것이다.

세상을 살아남는 이유는 그래도 진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깨달음의 길은 성자들의 가르침 속에 있으며

실상과 진리 속에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정법은 오로지 세상을 이루고 있는

한 치도 어김없는 진리를 배우고 깨우치고 전하고 실천하면서

자신 속에 진리와 사랑을 가득 채우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짓지도 않는 일이 이루어질 리가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진실로 모든 악과 거짓을 버리고

자신에 대한 사사로운 욕망과 이기심을 버리고 마음이 깨끗해지고 진실해지면

한 점 흐림 없이 맑은 자신의 해탈된 마음을 보게 되고

그 맑은 마음에 세상이 비치게 되는 것이다.

  (2013-09-26)



[채널링 사이트와 유란시아에 나오는 신들의 실체]


[질 문]

 

글들을 보면  자기들이 우주의 주인인양 지구는 이름이 유란시아로 네바돈 지역우주의 몇번째 행정구역에 소속되었으며 이 우주는 7개의 큰 우주로 나뉘어있고 하나님이 거하시는 하보나 중앙우주와 파라다이스 등으로 이루어져있다며 공상 과학과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있습니다. 또 지구인들을 고기옷을 입었다고 비유하며 낮은 의식 어쩌고 저쩌고 말들을 하며 이들보다 하등하다는 느낌의 내용도 나옵니다.유란시아서라는 글에 태양계가 생성된 내용이 나오는데 이게 과연 진짜인가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여튼 이런 글들의 주인공들은 어떤존재인지 그것이 궁금합니다.과연 진짜 외계인들인지 아니면 유혼들인지.. 그리고 어떻게 전해진걸까요? 채널링? 채널링이라면 채널을 한 지구인은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길래 이런사람들과 소통이 된건가요? 또 이 정보는 아무리 그럴듯해도 증거가 없으면 믿으면 안되는건가요?

 

 

 

[답 변]

 

 

 

정신이 맑은 사람은 그와 같이 영적 존재들과 대화를 하지 않습니다.

정상적인 사람은 몸의 보호기능이 있어

외부의 의식과 소통하고 외부의식이 몸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근원적으로 차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안 그러면 인간의 의식이 여러 개가 되어 정상적인 삶을 살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채널링과 같이 영적 대화를 하는 자들은 신이 들린 무당과 같이 된 존재로서

의식이 허약하거나 몸이 허약하여 몸의 방어막이 뚫려 신의 침입을 받게 된 자들로서

정신이 흐리고 삶이 비현실적이서 현실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불행한 삶을 살게 됩니다.

 

지구의 이름이 유란시아로 네바돈 지역우주의 몇번째 행정구역에 소속되었으며 이 우주는 7개의 큰 우주로 나뉘어있고 하나님이 거하시는 하보나 중앙우주와 파라다이스 등으로 이루어져있다고 하는데,

어찌 조물주가 만든 이 우주에 그런 이름이 붙어 있겠습니까?

그런 이름은 누군가가 생각으로 지어낸 단어일 뿐입니다.

 

이 우주에는 본래 아무 이름이 없습니다.

본래 이 우주에 그런 이름이 붙어 있다면

깨달음을 얻어 삼계를 보는 눈을 가진 성자들이

그런 세계에 대해 말씀하지 않았을 리가 없습니다.

 

그전의 성자들이 아무도 그런 말을 한적이 없는데

갑자기 누가 나타나 그런 우주의 실상을 밝혔단 말인가요?

어떤 깨달은 자가 나타나 그런 신비를 밝혔던가요?

아니면 신과 접한 어느 영매가 밝혔던가요?

결론은 뻔한 것입니다.

근대에 들어서 영적 환상을 추구하는 의식이 허약한 자가

영적 계시를 받고 자기도 알지 못하는 말을 하고 자기 생각을 덧붙여 만든 것일 뿐입니다.

 

사람은 자기 그릇만큼 하늘의 뜻과 세상의 이치를 봅니다.

따라서 그들의 말이 신뢰성이 있기 위해서는

그들이 삶이 얼마나 그 사회에서 신뢰받고 있으며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느냐를 보고 판단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현실에서 소외된 비정상적인 사람들이라면

그들의 가르침 또한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이론을 만든 단체가 영적 신비를 추구하는 기독교 계통의 단체임을 볼 때

그러한 사실이 더욱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근대에 들어서 서양에서 계속 나타나는 신지학회나 뉴에이지 계통의 신비단체들은

어둠의 세계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크리슈나무르티를 키운 별의 교단도 그러한 단체의 한 유형입니다.

스승님께서는 신지학회를 설립한 블라바츠키 여사의 사진을 보고 큰 악령이 붙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유대의 카발라와 기독교 영지주의, 동양의 철학과 종교, 성자들의 가르침을 더하고 거기다가 외계인과 과학지식들을 짬뽕하여 어둠의 세계의 계시를 받으며 결국 신에 종속되는 환상적인 어둠의 이론들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럼 그런 것을 조종하는 어둠의 세계는 어떤 존재인가?

떠돌아다니는 유혼들도 세상을 떠돌다 보니 고통스러워 자기들끼리 모여 세력을 형성해 살면서 세상을 장악하기 위한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살아있을 때의 의식을 그대로 가지고 유혼이 된 존재이기 때문에, 살아있는 사람들과 똑같이 의식을 가지고 자기들끼리 소통하며 이 세상 어딘가에 어둠의 세계를 형성하고 있으면서 인간 세상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유혼의 삶은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산자에게 접근하여 그 속에 들어와 평안을 얻고 생기를 빨아먹으며 살아남으려고 애를 쓰기 때문에 계속 현실에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줄을 모르고 그 속에 엄청난 신비가 있고 기적이 있는 듯 미혹되어

계속 신의 노예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즉 그러한 신의 소리를 전하는 곳에는 어둠의 세계가 깃들어 있기 때문에 그곳을 인연하여 가까이 하면 반드시 그러한 어둠의 신들이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신을 섬기는 종교가 영적 감염을 통해 신자들을 늘려가는 것과 같이

그곳에서도 어둠의 신들이 그들의 가르침을 통해 영적 감염을 일으키며 신도를 늘려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한번 그런 곳에 빠지면 어둠의 신들에 감염되어

정상적인 사고를 잃고 한번 뿐인 인생을 망치게 되며

자신의 근본인 영혼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기 때문에 인간으로 나기 어렵게 됩니다.

 

건강한 정신과 사실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은 그런 어둠의 유혹에 잘 빠지지 않습니다.

현실과 증거가 중요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런 곳에 빠져 자신을 망치는 것은

그런 나쁜 이론을 함부로 만들어낸 악령들과 신에 감염되어 전한 영매들의 책임도 크지만

그것보다 더 큰 책임은 그러한 환상과 허황됨을 좋아한 자기에게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업이 그러한 거짓과 환상을 좋아하여 그곳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눈이 열린 깨달은 자가 직접 세상을 보고 육성으로 명확히 밝히는 것이지

보이지 않는 영의 계시로 세상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성자도 밝히지 못한 우주의 신비를 어떤 신이 있어 밝힌단 말인가요?

 

이 세상에 나타난 모든 진리는 성자들의 가르침을 통해 나타났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따라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로부터 나타나는 수많은 신의 계시란 것은

대부분 떠도는 귀신의 소리인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나 부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신들의 말을 전하고 있는데,

그런 성자들은 이 세상일을 하고 이미 다른 차원으로 가버렸기 때문에

이 세상에 계속 남아 떠돌며 그렇게 영적 계시로 이상한 말을 전하지 않습니다.

 

그곳에서 나타나 스스로 성자라고 칭하며 이상한 말을 전하고 있는 신들은

이 세상을 헤매는 귀신들이 성자의 가면을 쓰고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한 영적 존재들은 의식적 존재이기에 사람들에게 마음만 바꾸기만 하면

항상 원하는 모습으로 변해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말세에는 온갖 영적 현상이 일어납니다.

어둠의 세계의 영들이 번성해 인간세상을 오염시켜

결국 세상이 그로인해 혼란해져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이 만든 한과 악이 유혼과 어둠의 세계를 만들고

어둠의 세계는 산자의 세계를 오염시켜 결국 함께 멸망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영적 스승들의 진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주문으로서 많이 쓰는 게 천수경입니다. 천수경이란 게, 옴 아제아제 바라아제 못지사바하, 수리수리 마하수리 하는 그 경인데 옛날에 처음 불교를 배울 때 나도 조금 해봤지요. (일동웃음)

그래서 천수경 주문을 해서 깨달음을 얻은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경허의 첫 제자인 수월선사입니다. 그는 일자무식이었는데 천수경을 열심히 외워가지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하지요.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세상이 보이니까 여러가지 신기한 소리를 하고... 경을 보면 뜻을 알게 되어 막힘없이 법을 설하게 되었다는 게 바로 우리나라 근세불교의 역사지요.

그 다음에 천수경으로 깨달음을 얻었다는 사람이 바로 00사 00조사이며 그 다음으로 유명한 사람이 00스님입니다. 00스님은 세상을 떠돌며 매우 비천하게 살다가 천수경에 목을 매고 외우다가 깨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천수경을 외우면 깨달음이 올까요? 그 이유는 바로 천수경이 힌두교의 신이 주인공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즉 천수경을 왼다는 것은 힌두교의 신을 부르는 것입니다. 이 천수경은 대승불교의 말기에 이르러 힌두교의 주문을 받아들인 밀교의 경전입니다. 원어의 내용을 분석해보면 비슈누 신이 11번 시바신이 8번 인드라신이 1번 나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천수경의 주문을 외우게 되면 바로 그런 신이 내려와 영통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00스님의 경우도 신이 든 증거는, 세력이 커지고 하니까 여러 군데서 법문을 요청하는 경우도 많고 해서 그 수제자가 강의를 하게 되었데요. 그런데 신놀음 하는 자들이라서 무슨 가르침이 있겠어요? 그래서 제자가 00에게,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걱정이 태산 같으니까 00이 하는 말이 주인공에게 맡겨라! 그랬답니다. 그래서 그 제자는 강의에 나가기 전에 모든 것을 주인공에게 맡기고 자신을 잊어버렸답니다. 그랬더니 말이 저절로 술술 나와 강의를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합니다. 그것은 자기가 말을 한 것이 아니라 주인공이라는 신이 말을 한 것이지요. 이처럼 신이 들면 말을 화려하게 잘 하지만 그것이 과거에 신이 배웠던 지식일 뿐 참된 진리는 아닌 게지요. 인과의 이치상 모르는 자가 갑자기 아는 것이 생겨나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다른 의식이 들어와 작용하는 것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영과 통하게 되면 영놀음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신을 보내 꿈에 현몽을 하게 합니다. 주변 사람들의 꿈에 나타나 저기 어디가면 산부처가 도를 닦고 있으니까 그 사람을 잘 섬기면 큰 복을 받는다 하고 술을 부리는 거지요. 그래서 사람들이 가 보니까 거적대기 움막 속에 초췌한 몰골의 사람이 앉아서 기도하고 있거든. 그래서 먹을 거 갖다 주고 하니까 병도 낫고 그러거든. 그래서 그 사람이 용하다고 소문내고 해서 자꾸 입소문 나서 번져 큰 세력을 이뤘다는 거지요.

그럼 어떤 원리에 의해 병이 낫고 자꾸 입소문이 나서 사람을 끌게 되는가? 그것은 뭐냐 하면 그에게 붙은 신이 그러한 술수를 부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을 시켜 가지고 어떤 사람의 꿈에 나타나 자기를 찾아오게 하도록 하고, 그 사람에게 붙어서 어디 아프게 한다거나 일이 안 풀리게 하는 거지요. 그런게 영이 하는 짓이거든. 그래서 자기를 찾아오면 병을 낳게 해주고 문제를 풀어주는 거지요. 그러면 용하다는 소문이 돌아 세력을 키우는 거지.

그래서 00사의 00조사는 사람이 아파서 오면 생강물을 먹어라 이렇게 합니다. 그건 신과 약속으로 먼저 사람 몸에 들어가 괴롭히다가 생강물을 먹으면 떠나도록 이렇게 암호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00사에 가면 찾아오는 사람마다 병에 관계없이 다 생강물을 주는 생강물 처방을 합니다. 그러면 거의 다 낫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바로 신놀음으로 병 주고 약주는 거지요.

그러면 어떻게 신자를 늘려 나가는가? 여기에 의식을 통한 영적 감염의 비밀이 있습니다. 즉 감염된 신자가 누구를 생각해서 저 사람을 내가 00사로 데리고 가야겠다고 의식하면 영이 신자의 의식을 통해 그 사람한테 가서 아프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신자가 그 사람을 찾아가면, 나 어디 아픈데 하고 호소합니다. 그러면, 00사 찾아가자. 그분은 법력이 커서 모든 병과 문제를 해결해 준다고 권합니다. 그래서 찾아가 생강물을 먹으면 낫거든요. 그런 식으로 급속도로 영적 감염이 나타나고 입소문이 번져서 오늘날 그렇게 커진 거지요.

 

그런 일을 바로 00교 문00씨도 했습니다. 문00씨도 옛날 6.25 이전에 이북에서 감옥에 갇혔다고 그래요. 어떻게 갇혔느냐. 그 사람이 받은 하느님이 바로 색기가 끼어있는 신으로 성적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영체교환(피가름)논리에 의하면 태초에 아담과 이브가 있는데 이브가 사탄과 관계를 맺어가지고 나쁜 피가 이브에게서 내려오면서 인류의 원죄가 생기고 인류가 악하게 됐다는 거지요. 그래서 자기가 구세주이니까 자기의 피를 받으면 탁한 유전자가 사라지고 그때부터 원죄가 사라지고 진짜 선한 인간들이 태어난다는 거지요. 그래서 여자들이 들어오면 자기랑 관계를 하고 그 순수한 피를 다른 사람과 관계하여 계속 전하도록 했어요. 그래서 초기에 그런 좋지 않은 추문들이 번져가지고 감옥을 가게 된 거지요.

그래서 전쟁이 터지기 전에 이북에 있을 때 감옥에서 초기 00교의 핵심적인 역할을 한 박00씨를 만났는데, 그 사람이 어떻게 문00을 섬기게 됐냐 하면, 꿈에 왠 백발노인이 나타나 문00이 바로 구세주이니 그 사람을 섬겨라고 해서 문00씨가 자기보다 나이가 더 어린데도 섬기게 됐다는 겁니다. 어떻게 했느냐 하면, 아침에 일어나 박정화씨가 문00씨를 만났는데 “당신 꿈에 어제 누가 나타나서 뭐라 그러지 않더냐?” 하고 먼저 물었다는 거예요. 그것은 문00씨가 신을 보내 그런 장난을 쳐놓고 이미 그걸 다 알고 있었다는 거지요. 즉 문00씨는 신을 부리는 큰 귀신이 들어와 영적 장난으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감염시켜 자신의 노예로 만드는 무서운 일을 한 거지요.

이 00교의 신은 초기 우리나라에 번진 무속성을 띤 신으로 영적 감염을 통해 사이비 기독교를 퍼뜨린 색기가 낀 신 계통이지요. 1927년 함경도 원산에 예수가 자기 몸에 들어왔다고 주장하는 여자가 나타났는데 원산 감리교회에 다니는 유명화라는 신도로 많은 부흥집회를 인도했는데, 그녀의 부흥회의 하이라이트는 예수의 영이 몸에 내린다는 ‘강신극’이었습니다. 그것은 전통 무속신앙의 신내림굿과 유사했는데 이처럼 하느님이란 존재가 무당의 신처름 내려온다는 것은 그러한 신이 진짜 하느님이 아니라 떠도는 큰 귀신이 변장하여 나타나고 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이로부터 김백문, 정득은, 조희성, 박태선, 문00 정명석으로 이어지는 사이비 하느님의 흐름이 이어지고 있지요. 이들은 색귀가 끼어있어서 피가름으로 원죄를 씻는다 하여 혼음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의 중심역할을 한 사람이 정득은이라는 여자인데 그녀는 자신을 대성모(大聖母)라 부르며,자신이 죄없는 깨끗한 몸이기 때문에 "나와 영체합일이 되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는 소위 <피가름 교리>를 실천하며 박태선, 문00과 교류를 하여 피가름 교리를 전파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잡스런 하느님이 나타나는 이유는 한국의 많은 토속적인 무속신들과 한들이 모두 성령으로 변장하여 자신을 하느님이라 속이며 성령 현상을 불러 일으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나라에는 그런 이상한 행동을 하는 하느님들이 바글바글 하고 또 우리나라증산도 계통으로 구천상제라고 하는 강증산도 처첩을 많이 거느렸지요. 그 이후 백백교주도 피를 깨끗이 한다고 60여명의 부녀자들과 사고를 쳐가지고 결국 죽음을 당했지요. 이들은 모두 다 구세주라 하고 하나님이라고 하지요. 알라와 같은 신들도 자기들은 창조주 하느님이라고 하지만 자기들끼리도 맨 날 싸우고, 인간의 목숨을 파리목숨처럼 여기는 자살특공대를 만들어 신의 영광을 위해 함부로 죽게 하는 것을 봐서 그런 신들은 인간을 수단으로 여기고 세상을 욕망과 파멸로 이끄는 어둠의 신들이지요.

천도교를 창시한 최제우도 처음에 어떻게 신을 받았느냐 하면, 몸살 나고 떨리고 하면서 무당 접신할 때처럼 똑같은 증상을 겪어서 받은 신이 천도교의 신이거든요. 그러니까 이런 신들이 전부다 스스로를 구세주 하나님이라고 한다는 거지요. 그런데 어찌 하나님이 그렇게 함부로 세상에 내려와서 그런 이상한 행동을 하느냐고? 그리고 순00교회 조00 목사도 성령치유로 그 많은 신도를 모르고 큰 교회를 만들었는데 최근에 그는 재산 욕심에 횡령시비에 말려들고 여자문제도 불거졌지. 그렇다면 과연 그에게 든 신이 진짜 하느님일까 하는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어요.

 

2015. 7. 18 정기모임 녹취(서울 강남)




출처: 진실의근원 http://ginc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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