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진실을 찾아서
윤회(輪回)에 대하여 본문
[질문] 윤회(輪回)에 대하여 생각해 봅니다.
“세상의 모든 일을 존재하게 하는 뜻은 단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인과의 법이요 다른 하나는 윤회입니다.
좋아지고 나빠지는 현상은 이 인과의 법에 의해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또 영원히 존재하게 하는 일은 다시 돌아오는 윤회가 있어 가능한 것입니다.“
-업이란 무엇인가? -여래님의 말씀 중에서
윤회(輪回)란 바퀴 륜, 돌 회 글자 그대로 돌아가는 바퀴를 뜻한다고 하겠습니다.
바퀴는 중심축이 있어서 바퀴라고 부릅니다.
오이는 오이로 돌듯이 참외는 참외를 돌아서 참외라고 말합니다.
오이나 참외라는 축을 계속 돈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호박에다 수박을 접붙이면 호박의 뿌리에서 수박이 달리게 됩니다.
그렇다면 윤회의 축을 어느 관점에서 바라보는가에 따라 윤회의 성격이 달라진다고 보여 집니다.
또 비유하자면 한강물을 놓고 볼 때
눈앞에 흐르는 한강물은 분명히 같은 곳을 흘러 한강물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잠시도 머물지 않고 윤회하는 물의 흐름만 있을 뿐
고정된 한강의 윤회는 따로 없음과 같은 이치라고 보여 집니다.
태초에는 물질이 먼저 나타나고 세월이 흘러 탁함과 맑음이 나뉘면서
물질 속에 함께 들어있던 생명의 씨앗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진기가 모여서
최초 생명의 씨앗이 나타나고
씨앗이 자라서 지금의 사람의 의식으로까지 발전했다고 배웠습니다.
사람이라는 윤회바퀴 축만을 놓고 볼 때는
사람의 의식을 가지고 있을 때만이 사람의 윤회라고 봐야 하겠지만
물질과 생명의 흐름이라는 큰 틀에서 본다면
사람이 잘못된 삶의 결과로 의식이 탁해져서
미물이나 동, 식물의 단계로 떨어지는 것도 큰 의미에서의 윤회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운영자 2017.09.13 10:42:34
답변
작은 문제에 신경쓰다보면 생각에 빠지고 전체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관점을 한강물에 두면 윤회는 없지만,
크게 보면 한강이 바다가 되고 수증기가 되어 다시 한강으로 흐르는 물의 순환은 있습니다.
동물로 윤회하게 되면
이미 인간으로서의 근본과 인연을 끊어버리고
전혀 나와 관계없는 기운이 되었기 때문에
인간의 윤회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천상 영생 윤회 지옥의 4가지 차원만 이야기하는 것은
인간의 근본과 의식을 가지고 도는 것은 이 4가지 차원 뿐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동물로 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윤회가 아니라
있는 일이 있는 일을 만나 새로운 있는 일을 만들어내는 인과법으로 봐야 합니다.
인간의 형태가 아니라 자연의 일부가 되어 돌고 있기 때문입니다.
박** 2017.09.13 10:58:00
답변
선업의 결과로 의식이 맑아져 인간계나 천상계로 나는 것은 이해됩니다.(선인선과)
악업의 결과로 의식이 탁해져 지옥계나 축생계로 나는 것도 이해됩니다.(악인악과)
그러나 악업의 결과로 의식이 탁해져 미물이나 식물로 나는 것은 이해 안됩니다.
미물, 식물과같은 무정체로 윤회한다면 이는 윤회가 아니라 단멸론 입니다.
(식물도 고통과 즐거움을 느끼는 유정체로 보면 얘기는 틀려지겠지만요)
악업에대한 과보를 받아야 하는데 받는 주체가 없으면 누가 받는지요?
콩에서 콩이나고 팥에서 팥이 나는게 모태법, 인과법인데, 탁해진 의식이
콩,팥과 같은 식물로 나는 것은 인과법과는 관련이 없어 보입니다.
뭇삶들은 자신의 업을 소유하는 자이고,
그 업을 상속하는 자이며,
그 업을 모태로 하는 자이며,
그 업을 친지로 하는 자이며,
그 업을 의지처로 하는 자입니다.
업이 뭇삶들을 차별하여 천하고
귀한 상태가 생겨납니다. (맛지마니까야135)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운영자 2017.09.13 22:35:52
답변
부처님은 중생들이 육신과 욕망에 지나치게 집착해 진정으로 소중한 자신의 의식을 소홀히하는 것을 보고,
오온이 모인 몸뚱아리가 나의 실체가 아니라고 했지 나가 없다고 하지 않았다.
그러한 몸뚱아리가 진정한 너가 아니라 진정한 실체가 있으니 그것을 찾으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후대 논사들이 나(我)가 없다는 무아론으로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어찌 나의 실체가 없겠는가?
그렇다면 끝없는 생을 돌면서 공덕을 쌓아 마지막에 해탈에 이르는 주체가 없다면
어찌 해탈에 이르는 공덕을 쌓을 수 있겠는가?
따라서 나의 실체가 있는 것이 진실인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실체가 없다고 한 무아설은 잘못이다.
상주론이나 단멸론은 모두 무아설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든 이론이니,
거기에 얽매여 상주론, 단멸론을 주장할 필요가 없다.
영혼의 실체를 정확히 알려고 노력해야지,
상주론 단멸론에 얽매여 영혼을 판단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사실이 중요한 것이지 학자들이 만든 이론이 우선시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상주론은 고정된 영혼이 있어서 천상의 복을 받거나 지옥의 벌을 받거나 모두 동일한 영혼이 있어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계속 돌며 모든 책임을 감당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단멸론은 죽으면 영혼도 없고 모든 것이 다 끝난다고 보는 것이다.
유물론자들의 견해가 그것이다.
그러나 영혼의 실체는 그것이 아니다.
4개의 차원에서는 인간의 근본을 가지고 계속 돈다.
그러나 그 근본 생기(진기)가 인간에서 타락해 떨어지면,
이제는 저차원의 생기로 변해 다른 생명체로 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근본이 인간수준에서 동식물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이지,
그 생명의 기운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말씀하시고자 한 비아론이 나오는 것이다.
만약 인간의 영혼이 상주론처럼 벌이나 고통을 받아도 변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한다면
오온이 영원한 너가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영혼의 실체가 영원하지 않고 다른 것으로 변해 사라질 수도 있기에
오온이 너의 영원한 실체가 아니라고 말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대의 말은 이해가 어렵다.
미물, 식물과 같은 무정체로 윤회한다면 이는 윤회가 아니라 단멸론이라고 했는데
용어에 있어 생명이 있는 것이 유정물이고 생명이 없는 것이 무정물이다.
어찌 그대는 자기 마음대로 식물이 고통과 즐거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무정물로 해석하는가?
생명이 있는 것은 유정물인 것이며 다만 식물은 의식 작용을 하지 못하는 매우 미약한 생기(진기)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인과법은 있는 일이 있는 일을 만나 새로운 있는 일을 만들어내는 법이다.
그것을 부처님은 유법이라고 했다.
그래서 초기 부처님의 가르침을 해석하는 부파를 있는 일을 가지고 모든 것을 해석한다고 해서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라고 한 것이다.
의식이 강한 높은 차원의 진기를 띤 생명의 기운이
잘못된 인연을 만나 의식이 미약한 낮은 차원의 진기로 변하는 것이
어찌 인과법이 아니며 받는 주체가 없겠는가?
박** 2017.09.14 12:53:34
답변
말씀 감사합니다~
무아 비아에 관해서는 어떤단어로 불리던 그 의미를 "고정된 실체가 없음"으로
이해하고 있으면 될듯합니다
"미물, 식물과 같은 무정체로 윤회한다면 이는 윤회가 아니라 단멸론이라고 했는데
용어에 있어 생명이 있는 것이 유정물이고 생명이 없는 것이 무정물이다."
==> 용어에 있어 생명이 있는것이 유생물이고 생명이 없는 것이 무생물이라 분류하는게
맞지 않을까 합니다.
"어찌 그대는 자기 마음대로 식물이 고통과 즐거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무정물로 해석하는가?"
==>식물은 정(情)(마음)이 없습니다. 마음이 없어 고통과 즐거움을 못느끼니 무정물(無情物)
이라고 해석하였습니다.(가끔 500년 묵은 나무에 의식이 서린다 등의 예외적인것은 제외하고요)
"의식이 강한 높은 차원의 진기를 띤 생명의 기운이
잘못된 인연을 만나 의식이 미약한 낮은 차원의 진기로 변하는 것이
어찌 인과법이 아니며 받는 주체가 없겠는가?"
==>생명의 기운,진기로 설명하면 인과가 맞습니다. 그런데 악인악과라는
업의 인과로 봤을때는 인과법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악업에대한 과보로
식물로 났다?그리고 그 식물이 과보를 받는 주체가 된다? 마음이 없는데(고통,즐거움)
어떻게 과보를 받을 수 있는지...이걸 말씀드린것입니다.
윤회는 돌아야지 윤회입니다. 식물차원으로 떨어지면 위의 차원으로 돌아올 수 없기에
단멸이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도 4개의 차원에서만 인간의 근본을
가지고 계속 돈다고 하셨습니다. 4개의 차원을 돌지못하는 식물은 인간의 입장에서
단멸이고 자연입장에서는 순환입니다. 순환이 윤회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윤회의 개념을 생명체의 연속성과 재생에 한정시킬 것이 아니라, 죽음을 맞아 육체를
화장하고, 화장 후 남은 재를 나무 밑에 뿌리고, 그 나무의 열매를 사람들이 먹게 되고,
새들도 먹게 되고.... 결국 질량보존의 법칙대로 내 육체의 질량과 에너지 많큼은
우주에 윤회되는,..(성법스님) ==>이건 윤회가 아니라 그냥 자연의 순환이라고 해야
옳지 않을까 합니다.
운영자 2017.09.14 13:33:24
답변
그대가 알고 있는 불교이론은 부처님의 진음이 아니라 후대에 학승들에 의해 만들어진 논리이다.
부처님 때는 그러한 관념적인 단어들은 없었고 그냥 평범한 언어로 눈앞에 비치는 사실과 그 이치를 설명했을 뿐이다.
그대가 있는 일을 있는 그대로 알려면 지금 가지고 있는 관념적 언어들을 다 잊어버려야 한다.
자기 속에 들어 있는 만들어진 말을 버리지 않으면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호박이 수박이 되자면 자기의 순을 쳐버리고 수박순을 붙여야 하는 것이다.
인과법이면 인과법이지
생명의 기운,진기로 설명하면 인과가 맞는데, 업의 인과로 봤을때는 인과법이 아니라는 것은 무슨 말인가?
인과법은 있는 일이 있는 일을 만나 있는 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것은 수학의 공식과도 같은 것이다.
3+4=7도 인과법이고 3-4=-1 도 인과법이다.
어찌 마이너스가 나온다고 인과법이 아니라고 하는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을 말을 잡고 헤매지 말라.
그것은 그대가 진실을 아는데 아무 도움이 안 되며 오히려 방해가 된다
박** 2017.09.14 15:23:15
답변
이글을 마지막으로 말을 잡고 헤매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답변 주셔서 감사합니다.
생명의 기운, 진기로 설명하면 인과가 맞는것은 자연의 순환원리에
초점을 맞춰 원인과 결과가 합당하다는 말씀을 드린것이고,
업의 인과로 봤을때는 인과법이 아니라는 것은 말 그대로 원인(악업)과
결과(과보)가 합당하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있는 일이 있는 일을 만나 있는 일을 만들어내는 것을 두고 인과법이라고
하지만 여기에는 원인과 결과가 합당해야 인과법 아닙니까?
(있는숫자)+(있는숫자)=(있는숫자)가 인과법이 아니라 있는숫자 안에
원인가 결과에 해당하는 합당한 숫자가 들어가야 인과법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운영자 2017.09.14 16:06:18
답변
원인(악업)과 결과(과보)가 합당하지 않는다는 말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사람이 자신이 어두운 업을 지어 그 의식이 흐려져 미물로 떨어지는 것이
어떻게 악업에 대한 과보가 아닌가?
이것은 수학의 공식과 같이 명확한 법이며
한치의 어김없는 인과법이다.
박** 2017.09.14 17:13:53
답변
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무정물에게는 마음이 없어 고통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식물로 떨어져 영혼이 소멸하는 것이 악업에대한 과보라면
외도의 주장대로 이생에 어떠한 큰 죄를 저질러도 결국 소멸되니, 마음껏
돈빌려서 값지말고 즐겨도 된다는 주장과 다를 바 없어보입니다.
반면 지옥계나 축생계는 고통을 받습니다. 지옥계는 말 할 필요없이 고통을
받는 곳이고, 축생계도 사육되는 경우 자유가 박탈되어 목이 잘리고 비틀어지고
감전되고 정수리를 둔기로 맞아 죽는 고통을 계속 되풀이 하는곳이 축생계입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고통 받는것 자체가 악업에대한 과보로 해석했으며,
그 악업이 크면 클수록 더큰 과보를 오래동안 받는다고 알고있습니다.
하지만 식물은 마음이 없어서 고통이 없습니다. 상추를 뜯어먹는다고 상추가 아파하지
않으며 생쌀을 씹어먹는다고 쌀이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그래서 과보가 아니라고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사람을 10명 살인한 사람이 내생에 식물로 났다면 10명을 살인한 과보를
충분히 받았다고 생각하십니까?
선생님께서는 내생에 인간이나 천상에 꼭 나고 싶으신 욕망이 있으십니까?
운영자 2017.09.14 22:07:04
답변
그대는 악업에대한 과보로 미물이나 식물로 나면
그러한 존재들은 마음이 없기 때문에 과보를 받을 주체가 없어서 단멸론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대는 사후에 인간의 영혼이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의식을 지니고 그 과보를 인식해야 한다고 보는가?
그렇다면 항상 과보를 인식하는 영혼이 상존해야 하는데 그것은 상주론이 아닌가?
그리고 그대가 크게 잘못 아는 것이 있다.
인간으로 나서 가장 큰 소망은 자기 삶을 축복하여 완성에 이르는 것이며
가장 잘못된 삶은 이 우주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인 인간의 근본을 살리지 못하고 소멸해버리는 것이다.
잘못된 삶으로 미물이나 식물로 떨어지는 것은 인간의 근본인 의식을 망치는 가장 절망스런 일인 것이다.
그대는 부처님이 돌아가실 때, 열심히 노력하여 해탈에 이르도록 하라는 인간의 소망을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가?
박** 2017.09.14 23:36:57
답변
부처님께서는 바라문의 상주론을 인정하시지 않으시고
또한 사문 외도의 단멸론을 인정하시지도 않으셨습니다.
단상중도로서 연기법을 설하셨습니다.
상주론은 영원 불변의 아트만, 참나, 진여가 있다는 것이
고, 부처님은 조건에따라 변하기때문에(무상) 고정 불변의
실체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연기법은 조건과 결과, 원인과 결과의 연기법입니다.
악업을 조건으로 축생계에서 수백, 수천의 윤회를 통해 고통으로
과보를 다 받았으면 다시 인간계로 날수 있으며, 선업을 조건으로
천상계에서 과보를 다 받았으면 다시 인간계나 축생계로 날수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윤회입니다.
연기의 순관이 발생이고, 연기의 역관이 소멸입니다. 조건에 따라 연기가
회전하지만 조건만 소멸하면 연기의 회전은 멈추게 됩니다..
오온이라는 대상에 집착하기 때문에 괴로움이 발생하는 것이다==>순관
오온이라는 대상에 집착이 없어지면 괴로움이 소멸한다==>역관
부처님께서 돌아가실 때 방일하지 말고 정진하여 해탈에 이르도록 하라는
말씀을 기억합니다. 해탈 열반은 있다 없다의 희론을 떠난 자리이며, 체험으로서의
해탈 열반입니다. 언어로 전달된다 하나, 이는 체험이 전달되는 것이 아니며
체험을 하지 않고서는 부처님의 해탈 열반을 이해했다 말하기 힘든 것이라 봅니다.
개구리가 뭍의 체험을 올챙이에게 언어로 아무리 자세히 설명한다 하여도, 올챙이는
뭍을 경험하지 못했기에 개구리의 체험을 전달받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운영자 2017.09.15 06:36:14
답변
부처님께서 돌아가실 때 방일하지 말고 정진하여 해탈에 이르도록 하라고 했다면
그대는 왜 내생에 인간이나 천상에 나 더 나은 자기를 이루고
해탈에 이르는 좋은 일을 욕망이라고 부정적으로 말했는가?
그대는 식물로 나서 업을 받지 않고 아무 것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마치 복인 것처럼 말을 한다.
그대는 그렇게 살고 싶은가? 여기에 대해 답을 해야 할 것이다.
지금 불교의 지식들은 바르고 힘찬 생명의 길을 버리고
무기력과 소멸로 인간을 빠뜨리는 잘못된 지식들이다.
그것은 중간에 힌두교의 관념들에 의해 오염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릇된 지식을 담고 있으면 그 어둠으로 인해 절대 있는 일을 바로 볼 수 없으며 법을 볼 수 없다.
부처님은 이 세상 속에 있는 생명이 완성에 이르는 축복의 길을 보고
인간이 밝고 행복하고 힘차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밝히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금 불법이 그러한 길을 밝히지 않는다면 그것은 불법이 아니다.
세상은 하나의 이치로 인과법에 의해 나타난다.
그래서 만법귀일이라 하는 것이다.
인간 또한 자신이 지은 것에 따라 천상과 영생과 현생과 지옥과 동물과 미물과 식물로 떨어진다.
다만 인간의 의식을 가지고 도는 4개의 차원, 즉 천상과 영생과 현생과 지옥은 중요하므로 이곳에서 인간의 윤회로 중시하고 있는 것이며
이미 인간의 의식이 사라진 동물과 미물과 식물은 자연의 일부가 되어 기운으로 순환하고 있으므로 하나의 인과의 이치로만 보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이치에서 생명의 완성과 소멸을 모두 설명하고 있는데
있는 일을 있는 그대로 알면 되지 무슨 복잡한 말을 그렇게 하고 있는가?
이** 2017.09.15 00:32:35
답변
박**님
그렇게 과거에 불교의 교리와 관념에 빠져계시면 절대 마음의 진실을 깨울수 없습니다.
생각과 관념에 빠져있으면 간단한 있는일조차 분별하지 못하고 옳고그름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제발 이제는 거짓을 버리세요. 지금까지 배워왔던 불교적 교리와 개념들은 다 버리세요.
거짓을 버리지 않으면 아상(잘못된 시각,이해)을 벗어나기가 매우 힘들고
거짓을 버리지 않으면 자신을 축복한다는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쉽지 않은 일인것을 압니다. 하지만 그것이 님을 위한 귀한 첫걸음입니다.
박** 2017.09.15 11:01:29
답변
많은 글을 통해 선생님의 가르침을 자세히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 공부에 큰 도움을 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의 글을 질문과 답변, 그리고 여래님 말씀으로 요약해 보겠습니다.
질 문 : 미물,식물의 단계로 떨어지는 것도 윤회인가?
박** : 윤회가 아니다. 이유는
1. 윗단계로의 윤회가 불가하기때문(인간입장에서 소멸)
2. 악인과보의 인과를 충촉시키지 못하기때문(무정체는
마음이 없어 과보를 받을 주체가 없어짐)
선생님 : 윤회가 맞다. 이유는
1. 자연의 일부가 되어 기운으로 순환하고 있으므로
2. 소멸하는것 자체가 큰 과보를 받는것이다(인과에 어긋나지 않는다)
여래님 : 좋아지고 나빠지는 현상은 이 인과의 법에 의해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또 영원히 존재하게 하는 일은 다시 돌아오는 윤회가 있어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정우님... 해탈 열반 단멸론 상주론 반야 육사외도 선업 악업 윤회...등등의
말을 쓴다고 불교의 교리, 관념이 아닙니다. 부처님 태어나시기 이전부터 썼던 용어들이고,
여래님도 쓰셨고 선생님도 쓰고 계십니다. 여기서 자주 인용하는 칠불통계, 대기설법은
부처님 말씀이 아니죠? 후대에 학승이 만들어낸 용어이죠? 꽃을 똥이라고 후대의 학승이
변질시켰다 하더라도 꽃의 향기와 모습은 변하지 않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초기에는 부처님말씀 인용을 잘 안하시다가 2013년 이후로 초전법륜경
담마빠다, 숫따니빠다, 니까야에 실린 글들을 올려주시고 해석해 주심은 그 경전에서
진리의 글을 보셨기때문이 아니신지요? 그 전에 읽으신 한역된 법구경, 아함경을 보실때는
뭔가 빠져있고 틀어져있고 어긋나있던 경전이 전재성박사, 일아스님, 각묵스님의 빠알리어
번역본에서는 완벽?까지는 아니지만 그나마 진리에 가깝게 다가오지 않으셨습니까?
그래서 선생님께서 본 세상과 부처님께서 본 세상이 틀리지 않으며, 내가 하는말이 부처님말씀
과 일치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 아닌가 합니다.
선생님의 "그대는 그렇게 살고 싶은가? 여기에 대해 답을 해야 할 것이다." 에 대한 제 대답은
악업을 저질러 식물로 나고자하는 욕구도 없고, 열심히 자기완성을 하여 해탈 열반에 들어
천상에 나고싶은 욕구도 없습니다. 단지 현생에 18계 지키려 노력하고 팔정도 열심히 닦아서
청정한 삶을 살아가는게 제 목표라면 목표입니다.
장** 2017.09.15 12:42:35
답변
박**님의 공부에 도움이 된다고 하셨는데 그 공부는 그저 본인의 이론체계를 단단히 하고자 함이었나요..? 공부를 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동안 박**님의 글과 답변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이렇게 쉬운 것들을 왜 그렇게 복잡하고 어렵게 이해하는 것일까 하는 것이었습니다.용어가 문제가 아니라 설명해주시는 전체적인 내용들이요
이곳의 말씀들은 이론이 아닙니다. 그냥 있는 사실들이에요 사실적인 것들을 가르치고 있고 그것을 배워가며 사실적인 시각을 키워가는 겁니다.
이곳에 여러 해 있었던 분들은 한 번이라도 내가 기존에 갖고 있었던 지식과의 혼란을 경험하셨을거라 확신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버리는데도 힘들어 하셨을 것입니다. 글 써주신 이정우님의 글도 제가 본 기억이 있는데 기존의 것들을 버리는데 힘든 결정을 하셨다 하셨었습니다. 저 또한 이전에 올렸던 글을 보셨으니 아시겠지만 그런 부모님 밑에서 얼마나 관념적이고 비현실적인 것들이 많이 입력되어 있었을까요? 그외 기존에 책에서 배웠던 지식들과의 혼란이 없을 수가 없었습니다.
기존에 내가 갖고 있는 지식들이 옳다는 전제하에 이곳에서 전하는 내용들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 하는 것보다는 그 반대가 되어야 합니다. 이곳에서 전하는 것들이 진실이고 이것을 기준으로 내가 갖고 있던 지식들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셔야 합니다.
다른 건 몰라도 18계는 지키려 한다 했으니 이곳에서 했던 조언들을 흘려듣지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박** 2017.09.15 14:18:04
답변
장**님. 제 공부에 도움이 된다고 한것은 제 이론체계를 단단히 하고자함은
아닙니다. 시각을 키워 보여지는 대로 세상을 보고자 함이 제 공부의 목적입니다.
보고싶은 대로 보는것도 아니고, 봐야하는 대로 보는것도 아니고 "보여지는대로"
공부의 첫 시작은 4대 성인을 알아보자 였습니다. 처음에 공자를 공부하고, 다음에
소크라테스를 공부하고 그다음에 공부한것이 석가모니 였습니다. 천주교를 40년
넘게 다녔으니 예수는 따로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공자를 공부하면서 "왜 이사람이
4대 성인일까"라는 의문을 떨칠 수 없었고, 이후에 공부한 노자를 통해 제 스스로
4대성인의 명단에서 공자를 노자로 바꿨습니다.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곳이 있을까?하고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유일하게 여기
진실의 근원에서 노자를 4대 성인으로 분류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 제가 여기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저는 한 사상(이론, 종교)에만 깊이 빠지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 사상의 기준이
너무 강하면 다른 사상을 배척하는 도그마로 발전되기 때문입니다. 40년 이상
다니던 천주교가 제 사상의 기준이 아니고, 노장사상이 기준도 아니며, 또한
독학한 불교가 사상의 기준도 아닙니다. 만약 제가 도그마를 가졌다면 아마
그것이 천주교여야 하지 않을까요?
공자, 노자, 석가모니, 소크라테스, 마하리쉬, 나가르주나, 마하시 사야도, 아잔차
유지 크리슈나무르티,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헤르만헤세, 마르케스, 카잔차키스,
베르나르베르베르... 등등 근래에 이 사람들을 통해 사고의 다양성을 배웁니다.
선생님을 통해서도 제가 가진 편협한 사고를 깨게되니 어찌 공부에 도움이 안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선생님께 감사드린다고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영원히 존재하게 하는 일은 다시 돌아오는 윤회가 있어 가능한 것입니다"
이 말씀의 해석을 두고 윤회이다 아니다 맞다 틀리다 있다 없다의 결론이
중요한게 아니었습니다. 부처님은 5도윤회, 대승에서는 6도윤회, 선생님은
4도윤회...중생은 윤회의 시작을 알 수없고, 윤회를 경험하지 못하고, 윤회를 볼 수
없는데 무엇이 맞다 틀리다 라고 제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그 결론이
도출되기 까지의 논리와 당위성이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논파될 수 없는 가르침이
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선생님께서도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상이나 가르침도 맹목적으로 그냥 받아
들이지 말고 항상 의심하고 사실, 인과에 비춰 확인하라고. 그래서 인과에 비춰
이렇게 해석하는게 맞지 않을까요? 하고 의견 한번 내본것입니다.
이곳에서 오래동안 공부하신 김태영님도 그 글을 반복해서 많이 읽으셨을텐데
글속에 묻히지 않고 밖으로 나와 다시금 그 글을 관조하시니 대단해 보입니다.
장** 2017.09.15 16:54:48
답변
시각을 키워 보여지는대로 보고싶다면 내 안에 잘못 쌓았던 것들을 고치는 것이 그것의 출발점이 될 것이기에 하는 말들입니다..
잡다한 지식들을 넣고 그것으로 재단하면 세상은 절대 보이지 않습니다.
사실을 보려면 사실적인 시각의 말들을 계속 접해야 하는데 성인들의 경전이나 책들이라고 해도 아무것도 모르는 시각에서 그런 책들을 보면 사실적인 부분을 캐치 못하고 다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 말들 중에도 오염된 것들이 많으니 가려서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성인들의 말씀은 모두 같은 세상의 진리를 전하는 것이기에 같은 말들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노자의 말씀과 부처님의 말씀이 다르지 않으며 예수의 말씀과 부처의 말씀이 다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단지 현생에 18계 지키려 노력하고 팔정도 열심히 닦아서 청정한 삶을 살아가는게 제 목표라면 목표입니다.', '시각을 키워 보여지는대로 보고싶다'는 말들이 이미 박**님은 자기를 더 좋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어있는 것입니다.그렇게 하다보면 욕심을 내지 않아도 자연히 꺠달음은 따라오는 것이구요. 만약 그것도 아니라면 그런 시각을 키워서 대체 어디에 쓰려고 하시는 것이고 왜 청정하게 살려는 것인가요..
여태 많은 분들이 박**님의 생각을 읽고 그것의 문제점에 대한 조언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이제 어떻게 할 지는 박**님의 몫이겠죠. 더이상 저는 참견 안 하겠습니다.
박** 2017.09.15 18:20:47
답변
글을 가지고 그 글에대한 진실을 판단하고, 조언하고, 인정했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라는 잣대로 말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판단하면 그 잣대가 나이어야 하는데 나라는 잣대가 다른사람을 판단할
기준이 될만큼 훌륭하고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너는 잘못됬다. 너는 시각이 틀렸다. 인생을 그리살면 안된다... 뭐가 기준인가요?
선생님과 논점에대해 글과 글로 이어가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논점은 없어지고 사람에대한
판단과 사람에대한 지적과 조언으로 바뀌었네요.
너 안에 잘못 쌓았던 것 고쳐라, 잡다한 지식들을 넣고 재단하면 세상이 보이냐. 모르고 책보면
사실을 못본다 오염된거 많은데 가릴 수 있겠느냐. 시각을 키워 어디에 쓰려고 하냐. 왜 청청하게 살려하냐...
잘 쌓으셨습니까? 훌륭한 지식을 넣고 계십니까? 다 알면 책 왜 보십니까? 오염된거 다 가릴 수
있는 눈을 가지셨습니까? 청청하게 살려는게 목표인데 왜라뇨?
혹시 님의 기준은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재단하기에 충분한 잣대라고 생각하십니까?
님의 다른사람의 글에대한 댓글이 글의 판단과 충고가 아니라 사람에대한 판단과 충고가 많다는 거
알고 계십니까? 저도 님의 글로 님을 판단하여 제 잣대로 님을 재단해도 괜찮겠습니까?
다른 사람이 나하고 다른방식의 사고를하고 다른방식의 삶을 살아간다고 그게 틀렸다고
그게 잘못됬다고 판단하지 말기 바랍니다
글에대한 조언과 충고는 성심껏 받아들이겠습니다.
장** 2017.09.15 20:10:10
답변
제 말의 의도가 그렇게 들렸다면 더이상 저도 말을 하면 안 될 거 같네요.
박**님의 말속의 모순이 보이기에 드렸던 질문들이었고 저 또한 아직 배우고 있는 입장이라 모른는 거 많고 모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박**님보다 좀 더 일찍 여기를 접했다는 그것이 진실을 보고자 한다면 최소한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았기에 알려드리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박** 2017.09.15 23:29:44
답변
"만약 그것도 아니라면 그런 시각을 키워서 대체 어디에 쓰려고 하시는 것이고
왜 청정하게 살려는 것인가요.. " 이 말이 장**님께서 생각하시는 제말의
모순이라고 판단하시는 것이지요? 깨달음에 대한 욕망이 있어서 18계 지키고
팔정도 닦으면서 왜 욕망이 없다고 하냐. 그건 모순이다. 그 말씀이지요?
다시 말씀 드리지만 깨달음에 대한 욕망 없으며, 천상에 나고자 하는 욕망 전혀
없습니다. 이해가 안되시면 그냥 제 말을 믿어 주십시요.
계를 지키려 노력하고 팔정도를 닦으니 제 삶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부처님 말씀중에 탐진치를 없애라 라는 말씀을 접하고 처음 행한것이 식탐을
없애는 일이었습니다. 방송에서 맛집이 나오면 그 음식을 먹고싶어 찾아 다니며
먹었습니다. 중국 출장을 갔는데 중국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그 이후로 1년에
5~6회 맛있는 음식을 먹기위해 출장을 갔습니다. 한달에 식비가 평균 200만원
이었고 유흥비가 평균 200만원 이었습니다. 일주일에 3~4회 음주 하였었습니다
그런데 식탐을 없애려고 노력하고 금주를 하려는 노력으로 현재는 식비가 90만원
으로 줄었고 술은 한달에 2~3회로 줄었습니다. 1일 1식 기준으로 가끔 1일 2식을 하니
현재 살이 4Kg 빠지고 건강해졌습니다. 남는 돈으로 부모님의 용돈과 장인 장모님의
용돈을 올려드렸습니다. 부인과의 관계가 좋아지고 가족과의 관계도 좋아졌습니다.
이때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내 삶이 청정해지니 주변과의 관계도 좋아지는구나 라는 것을
배운것입니다. 그래서 더 청정하기를 원하는 것이었지 청정해져서 깨달음을 얻고자 함이
아니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편안함에 익숙해지지 말자라는 다짐으로 20년 넘게 타고 다니던 자가용을 버리고
버스를 택했더니, 하루에 1시간 30분의 책읽는 시간이 더 주어지고, 하루에 9000걸음을
걸을 수 있었으며, 한달에 30만원의 기름값이 절약되었습니다.
자식에대한 큰 교육은 이렇게해라 저렇게해라 라는 강요된 가르침이 아니라 몸소 보여주는
것이 제일 큰 교육이라는 것을 알고 매일 매일 책상에 앉아 책을 읽었습니다. 1년정도 지나니
애들이 자연스럽게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강요하지 않았는데
게임대신 책을 보고, TV대신 책을 보고 있는 애들을 보고, 그 애들과 읽은 책에대해 토론하니
대화가 늘고, 대화가 느니 애들과 벽이 점점 없어지고, 벽이 없어지니 관계가 좋아지고...
다시한번 청정한 삶을 사는게 정말 인생의 정답이구나를 느낀 것입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입에 칼을 물고 태어난다 했습니다. 나의 상대에대한 가벼운 비난이
상대에게는 날카로운 비수가되어 베어버립니다. 아픕니다. 아파서 저도 님에게 상처가되는
말을 했습니다. 주워담을 수 없지만 후회됩니다. 상처드린것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장** 2017.09.16 06:03:06
답변
저는 기분 나쁘지 않게 신경써서 한다고 한 말이었는데 그렇게 들리신다기에 더 얘기를 하면 기분이 또 상할까 싶어 더 이상 안쓰려고 했는데요... 좀 더 부드럽게 전달될 수 있게 더 주의를 기울였어야 하는데 마음이 아팠다면 미안합니다.
제가 했던 말들은 박**님을 비난하고자 한 게 아니고 정말 그런 과정을 한번쯤은 거치는 것이 필요하기에 했던 말들입니다 괜히 저와 다른 사람의 경험을 들먹거리며 그런 말을 했겠습니까..
저도 처음에 여기 왔을 때 생각이 많다는 얘기도 들었고 속된 말로 질문이 씹힌 경험도 있습니다. 이런 조언에 너무 안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지 마시고 마음에 남겨서 아파하지 마세요...
그리고 모순된다 느꼈던 것은..
인간으로 나서 가장 큰 소망은 자기 삶을 축복하며 완성에 이르는 것이고 이것이 해탈인데 이것은 더 좋은 나를 만들고자 하는 소망에서 시작된다 생각합니다... 박**님이 청정한 삶을 살고 싶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자 하는 것들이 더 좋은 나를 위한 소망이고 그런 것들이 해탈을 이루는 과정의 일들이라 생각했습니다.
18계는 더 좋은 나를 만들고자 하는 방법들이고 박**님이 언급해주신 그런 생활 속의 일들도 결국은 내 삶을 더 좋게 하는 것들이고 박**님꼐서 실제 겪으셨던 그런 좋은 결과들은 박**님이 18계를 행해서 더 좋은 나를 만들었기 때문에 나타난 것들입니다.
더 좋은 나를 만들었기에 더 좋은 삶이 나타난 것이죠.
박**님께서 해탈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계신 듯 하여 했던 말입니다. 그래서 더 좋은 나를 소망하고 노력하는 것들이 결국은 나의 삶을 축복하는 것들이고 해탈을 소망하는 것이 그렇게 나쁜 쪽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는 의미에서요..
아침이 밝았네요... 편안한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유** 2017.09.22 16:33:50
답변
질문: 10명을 살인한 사람이 내생에 식물로 났다면 10명을 살인한 과보를 충분히 받았다고 생각하나요?
10명을 살인한 사람의 환경과 마음이 중요하며 이로 후생이 갈립니다.
일부러 악한마음을 내어 생명을 해친자이며, 인간의 근본이 망가진 자라면 ;살아있어도 편안한 마음은 아닐것이며 각종 악몽에 시달릴 수 있습니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여러 한에 얽매일 수가 있으며(자신이 일부러 죽인자들의 한)이로 자유로움이 없으며, 갈기갈기 찢기는 지옥의 고통을 받게 됩니다.
마음의 업이 클 수록 지옥의 고통은 크게, 잔인하게 길게 다가옵니다.
단단하게 뭉쳐있는 만큼 그게 부서져야 하기에 그만큼 고통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수세월 풍화작용에 속에 바위가 모래로 변하듯 지옥의 고통을 받다 업이 부셔져 현실을 잡고 있는 업이 미약해지면 뜻의 세계인 반야로 막바로
통하게 되어 인간의 근본이었던 핵이 망친만큼 잘게잘게 부셔져 흩어지며 생명의 세계로 복귀하지만
부서진 단계가 미물차원이라면 식물에 붙게 됩니다.
내손에 있는 한웅큼의 모래를 모래밭에 흩뿌리면 다시 그 똑같은 모래알을 그대로 주워 올 수 없듯, 살인자의 흩어진 근본이 다시 합쳐져
나는 일은 거의 불가능 합니다.
다만 흩어진 기운들이 각자 다른 기운에 붙고붙어 생명의 진화는 일어날 수 있지만 인간으로 나기까지의 여정은 인연에 따라 굉장이 길 수가 있습니다.
인간으로 나서 신성으로 향할 수 있는 기회는 과거 살인자의 온전한 영혼에게는 다시는 주어질 수 없는 겁니다.
윤회의 주체는 영혼이며, 그 육신은 아닙니다.
영혼의 신성한 성장을 위해 잠시 육신을 얻어 잘 쓰고 한줌의 재로 돌려보내는 것입니다.
나고지고, 나고지고 나고지는 과정속에 영혼의 성장을 하던 퇴화를 하던 인연에 따라 다른 육신을 얻어 돌고도는 겁니다.
육신의 집에 자신의 영혼(의식의 표출)의 표출로 인해 당당함을 보기도, 소극적임을 보기도, 비실비실함을 보기도 하는 겁니다.
유** 2017.09.22 16:43:06
답변
10명을 그사람이 전쟁통에 어쩔수 없이 적을 죽인거라면,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 문제 없는 삶을 살았다며
다음생에 전쟁이란 환경을 만나면 그 습성이 다시 피어나는 겁니다.
과거 전생에 내가 각각다른 환경속에 대쳐했던 행동들이 이생에서도 그에비슷한 환경을 만나면 그 습성이 피어나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생에 악한 환경을 만나도 내가 꺽기지 않고 올바르게 대쳐하는 능력을 키우는게 미래의 좋은 나를 볼 수 있는 원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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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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