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진실을 찾아서
완전한 하늘의 뜻 본문
하늘(신성,불성)이 순원무잡하고 완전함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이 무질서하고 혼돈스럽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이 우주자체가 본래 불완전하거나 무의미해서가 아니라 정반대로 너무나 완전하기 때문이다.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은 이 세상은 완전한 조화체이며 신성한 생명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아는 것을 정견이라 하는데
오늘날 세상 속에 빛이 사라지고 무질서가 횡행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이 세상의 근본이 되고 삶의 기준이 되는 정견을 종교와 학문이 가르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 세상이 어둡고 무의미하며 악과 고통이 범람하는 듯이 보이는 것은 하늘의 뜻과 진리를 외면한 채 인간이 악과 거짓을 함부로 저지런 결과,
한치의 어김없는 인과의 이치에 의해 고통과 부조화가 나타나 사회가 붕괴하고 있는 현상인 것 이다.
하늘은 인간에게 자신의 속성인 자유의지와 창조성을 주고 지은 대로 결과를 받게 하는 완전한 이치를 통하여
좋은 원인을 지으면 복된 결과를 받고 나쁜 원인을 지으면 불행한 결과가 오는 완전한 세상을 만들어 놓았다.
그리하여 바른 삶으로 맑고 깨끗한 결실을 이룬 영혼은 완성되어 풍성한 결과와 영생을 누리게 되고 탐욕에 혼탁해진 영혼은 골라져 버려지는 정화과정을 거치면서
세상은 계속 완전한 모습으로 순환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거짓과 죄악으로 어두워진 말세에는 종말의 시간에 다가오는 대재앙의 고통을 통해 탐욕과 집착으로 혼탁해진 영혼은 지옥의 고통 속을 헤메다 메마르고 갈라져 소멸하고,
참된 사랑으로 맑고 순수해진 영혼은 지옥의 공간대를 뛰어넘어 신성한 세계에 머물다 새로운 세상에 태어나 새 시대를 열어가게 된다.
이러한 말세의 현상에 대해서는 모든 성자들이 공통적으로 말씀하신 바가 있는데 그들이 말씀하신 요체는 현 세상은 이미 탁한 욕망이 극에 이르러 심판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올바른 진리와 삶으로 그대의 마음을 정화시켜 영원한 생명을 구하고 태어난 보람을 살려 세상에 조금이라도 좋은 뜻을 짓고 가라는 것이었다.
종말의 시간에 이와 같은 완전한 심판을 행하는 하늘의 뜻과 모습에는 한치의 사정이나 어김이 없어서 소돔과 고모라성를 멸망시킬 때도 하늘은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았다.
작은 인정에 흔들려 큰 이치를 어지럽히는 것보다 한치의 어김없는 완전한 이치를 실천하는 것이 만물을 조화시키고 좋은 세상을 가꾸는 완전한 덕이며 자비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이러한 완전한 뜻 속에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바른 이치와 좋은 원인을 짓는 사회는 밝은 질서와 행복이 넘치게 되고 거짓과 악을 선택한 사회는 혼돈과 불안 속에서
악과 고통이 넘쳐 붕괴하는 현상을 나타낸다.
이러한 이치 속에 있는 인간이란 존재는 하늘의 뜻과 가능성을 모두 지니고 태어난 신령스런 존재로서
하늘의 뜻을 이 땅에 실현하고 하늘의 완전함을 이생에서 열매 맺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 신성(불성)의 씨앗인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신성함과 고귀함을 알아 어두운 세상에서 끝까지 자신의 밝음을 꺽지 않고 마음을 정화시켜 나간 이는 마침내 마음의 꽃을 피워 신성의 열매를 맺게 되는데
우리는 이와 같이 맑고 깨끗한 해탈지심을 얻게 된 분들을 완성된 자(성자)라고 부른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하늘(불성, 신성)은 자신의 씨를 뿌려 또 다시 완전한 열매를 얻은 것이 되어 완전성의 순환을 이루게 되며
이러한 과정 속에서 하늘(불 성, 신성)은 자신의 완전함을 나타내고 또 완전성을 계속 이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신성(불성)은 완전한 근원이며 한치의 어김없는 현재로서 미래에도 영원히 완전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오파린은 원시지구에서 간단한 무기물이
번개와 같은 강한 압력과 에너지에 의해 유기물로 합성되었고
이들은 계속 반응하여 생명체로
발전하였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화학진화설도 메마른 먼지 밖에 없는 우주에서
자연적으로 생명과 의식이 생겨났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은
결국 자연발생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학설은 자연계에서도 시간이 오래 흐르면
저절로 생명이 생겨난다는 결론을
완곡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에 과학의 자기 모순이 있다.
실험을 통해 생물이 자연적으로 발생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려놓고
다시 최초의 생명체는 자연 발생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파스퇴르의 실험은
환경과 시간이라는 변수를 고려하지 않은
실험실 내의 조작에 불과하다.
즉 파스퇴르의 실험을 엄청난 기운이 흐르는
원시대기 상태에서
수억년을 계속 실시한다면
그곳에서는 반드시 생기와 의식이 생겨나게 되어있는 것이다.
이처럼 우주 속에서 저절로 생명과 의식이 생겨나는 현상은
우주 자체가 살아있다는 증거이며
그 속에 생명과 의식의 씨앗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우주에는 언제 어디서나 생명이 나타나게 되어 있으며
정신은 우주의 주인이 되어 세상을 꾸미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자연과 인간을 완전히 분리해서 생각하는
서구문명의 유물적이고 비인간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세상을 하나로 보는 만유일체의 우주관을
회복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그 동안 감춰졌던 생명의 비밀을 밝힘으로써
이 문제를 둘러싼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자 한다.
이 우주는 근본적으로 살아있으며
그 속에는 생기와 의식의 원인이 깃들어 있어
오랜 세월이 지나면 저절로 생명이 나타나게 되어 있다.
아무런 생명의 흔적도 없는 원시대기 상태에서
우주를 가득 채우며 돌고 있는 기운들은
수억년의 세월을 서로 스치고 부딪히게 되면
그 기운들은 우주 속에 내재된 뜻에 의해
스스로 의식을 띠게 된다.
이러한 생기와 의식은 인연과 생명력의 순환과정을 통해
생명체와 정신으로 발전하는데
이를 베르그송은 어떤 비물질적인 요소로
생명의 비약(elan vital)을 야기하는 생기라 했으며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은 엔텔레키(entelechy)로 표현했다.
그래서 우리가 숨쉬는 현실공간에서부터
깊은 산골 낙엽 속에까지,
수만 미터 깊은 심해의 화산폭발지점에서부터
공기가 희박한 성층권에까지
지구촌 어느 곳이든지 생명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어릴 적에 오래된 나무가지를 꺾으면
해를 당한다거나,
국가적 변란이 있으면 우는 신목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러한 이야기는 선인들의 경험에서 나온 근거 있는 이야기다.
즉 나무도 오랜 세월 수많은 기운과 인연을 겪게 되면
의식을 갖게 되고
그 의식은 위험을 감지하는 자기방어본능을 가지게 되어
이러한 영적 현상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러한 의식 현상은 생명이 있는
모든 곳에서 나타나는 일로서
자연계를 돌고 있는 기운은
오랜 세월 서로 부딪히고 스치게 되면 의식을 띠게 되고
의식은 인연과 생명력의 순환을 통해
자연과 만나 여러 생명체와 정신으로 진화해 나가는 것이다.
우리들은 자연계에서 갖가지 나쁜 현상이 나타나고
독성 있는 생명체가 생겨나는 것을 보고
창조주의 뜻을 오해하기도 한다.
만약 해롭고 독한 세균이나 생명체들을
모두 창조주가 지어내는 것이라면
그렇게 재주 없고 표독한 창조주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생명현상은
창조주가 하나하나 직접 지어내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마치 인간이 환경에 적응하면서
인생을 개척해 나가듯이,
우주에 가득 차 있는 생명력이
악한 환경에서는 악한 모습으로
좋은 환경에서는 선한 모습으로
자신의 모습을 지어가고 있는 모습인 것이다.
우리가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생명체가 나타나고
AIDS와 같은 새로운 병균이 생겨나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지구를 가득 채우고 있는 살아있는 생명력이
환경에 적응하면서 여러 가지 생명체로
스스로 나타나고 있는 모습인 것이다.
바로 여기에 살아 움직이는
우주와 창조와 진화의 비밀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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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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