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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ncil 2013. 4. 20. 21:49

인간은 밝은 세상에서 마음 편하게 살며 세상에 좋은 일을(공덕)을 하기 위해 태어났다.

 

왜냐하면 생명의 본질은 자비와 사랑으로서, 사랑을 행함으로써 자신이 태어난 의미를 다하게 되며 자신의 열매를 완성하게 되어 신성한 우주의 근원과 하나가 되는 축복을 얻기 때문이다.

그러면 공덕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공덕을 잘 지을 수 있는가?

 

한마디로 공덕이란 세상을 이치에 따라 이루어지도록 축복해 주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남을 축복한다는 것과 무조건 남을 돕는다는 것은 매우 다른 것이다. 자칫 남을 잘못 도우면 그것은 상대와 자신에게 모두 해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세상사람들이 모두 좋은 일을 한다고 말하는데도 세상이 어두워지는 것은 좋은 일을 한다는 것이 나쁜 결과가 나타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좋은 예로 자식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지나친 집착으로 자식을 망치는 경우와 거지를 돕는다고 하면서 독립성을 상실시켜 영원한 거지로 만드는 경우가 있다.

 

진정한 공덕이란 각자에게 필요한 것을 주는 것이며 그 사람이 인간적 가치를 가진 주체적 인간으로 서도록 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을 축복하기 위해서는 생명의 길과 올바른 이치를 알아야 제대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공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남에게 무조건 베풀어주는 자선이 있는가 하면 부의 축적과 고용의 창출로 세상사람들이 먹고 살수 있도록 해주는 공덕도 있다. 범죄를 타파하여 악을 억제하는 공덕도 있으며, 인간으로서의 의미와 가치를 다하도록 밝은 삶의 길을 가르쳐 주는 진리의 공덕도 있다.

 

하지만 말은 쉽지만 실제 올바른 공덕을 행하기는 매우 힘이 든다. 무조건 베푸는 자선은 받는 사람의 자립능력을 약화시키고 인간으로서 자질을 저하시켜 공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악덕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혜는 받은 자에게는 불행이 되며 세상에는 부담이 되는 것이다.

 

자선은 베풀되 받는 사람이 고마움을 알도록 하여 세상에 보답하려는 양심을 일깨워 주는 것이어야 하며 받는 것을 부끄러이 여겨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각성시켜 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경전에도 고기를 주지 말고 그물 던지는 법을 가르쳐주라고 하신 것이다. 이 말은 곧, 진정한 축복이란 인간으로 태어난 가치와 의미를 키울 수 있도록 주체적인 능력을 향상시켜 주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삶은 단순한 생존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성장시키기 위해 태어난 것이기에 남의 도움으로 생명만 연장하는 것은 오히려 그의 인간적 가치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남의 도움이 육신을 살리고 그 영혼을 망친다면 그러한 도움은 아니 받느니 만도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축복은 한 사람의 삶을 주체적으로 성장시켜 나갈 수 있도록 스스로 자존할 능력과 바른 삶의 길을 가르쳐 영혼이 성장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우리가 축복이라고 하는 일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생각해 볼 만한 것들이 많이 있다.

 

부의 창출을 위한 고용의 증진은 사람들에게 성실히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의식주를 걱정 없게 하는 공덕을 지으나, 욕망과 소유욕이 강한 자에게 부를 제공하는 것은 오히려 인간으로서의 의미와 가치를 망치며 세상의 소유와 집착을 자극하여 사회에 착취와 불신을 가져오고, 인간정신의 붕괴를 가져오기 쉽다.

 

권력을 통한 사회질서의 정착은 모든 것을 정의와 이치대로 움직이게 하여 맑은 사회를 유지하는 큰 공덕이 되나, 개인적 욕망이나 자의에 의해 이용될 경우 사회전체를 꼭대기에서부터 흔들어 나라의 근본마저 붕괴시켜 버리는 해악을 범하게 된다.

 

역사를 살펴보건데 현재까지 인류사에 가장 큰 해악을 끼친 요인이 개인의 탐욕을 위해 권력을 오용하였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권력을 쥐는 것은 결코 자랑이 아니라 하늘이 부여한 사명이기에 경건하고 헌신적으로 이를 행사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의미와 가치를 갖도록 진리의 길을 가르쳐 주는 공덕은 세상 무엇보다 큰 공덕이 되지만 문제는 현실에서 그 길을 발견하기가 매우 어렵다는데 있다.

 

요즘 매스컴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는 사이비종교의 문제는 잘못된 종교가 얼마나 사회에 큰 해악을 가져올 수 있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올바른 공덕을 짓기 위해서는 세상의 실체를 밝게 드러내고 올바른 삶의 길을 제시하는 진리를 밝히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다.

 

그러나 현대는 정법이 사라진지 오래이며 종교는 생명력을 상실해버린 상태로서 세상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를 찾기 위해서 진리를 깨달았던 성자들이 살아 계실 적에 제자들에게 직접 가르쳤던 초기의 순수한 가르침을 되찾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의 종교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는 진리의 왜곡 중 가장 대표적인 현상이, 올바른 삶의 실천을 통하여 세상을 축복하는 진리를 가르치지 않고, 기도나 성령, 보시나 헌금으로 복을 짓거나 죄를 사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잘못된 관념의 전달은 인간의 삶 전체를 왜곡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매우 큰 악덕이 된다.

 

사람들이 행동을 통하여 저지르는 악은 그 한번에 그치지만 잘못된 가르침은 많은 사람의 영혼을 영원히 망쳐버린다는 점에서 현재 잘못된 종교가 저지르는 해악은 끝을 헤아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왜곡된 종교가 이와 같이 잘못된 가르침을 종교란 미명하에 아무런 망서림 없이 당당히 전한다는데 있는 것이다.

 

지금 성하고 있는 교회나 절에 가면 어김없이 수많은 신자들의 영혼이 저승으로 떠나지 못하고 이승에 떠돌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잘못된 가르침이 얼마나 인간의 영혼을 망치는 지를 잘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종교집단에 가면 성령이 번창하고 방언이 성하며 기도가 잘 듣는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모른다. 이러한 현상은 축복이 아니라 어둠의 대표적 현상으로 세상의 불행인 것이다.

 

바르고 맑은 종교는 모든 영혼을 이승의 짐에서 해방시켜 모두 저승으로 돌려보낸다.

 

그리고 좋은 행동이 세상을 축복하고 자신에게 복을 준다는 것을 가르친다.

 

이것이 바른 종교와 잘못된 종교의 차이인 것이다.

 

기도해서 일이 잘되기를 바라는 것은 마치 씨만 뿌리고 농사는 짓지 않은 채 풍년이 들기만을 기도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늘은 자기대신 인간에게 세상의 주인으로서의 역할을 맡겨 놓았기에 결코 신이 나서서 직접 세상의 일을 처리하는 경우는 없다.

 

간혹 기도가 효험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유혼이 장난을 치는 경우로서 유혼이란 한과 욕망에 의해 생전의 기억을 지우지 못해 이승을 떠돌아다니는 것이기에 그 능력이란 천박한 것에 불과하다.

 

이와 같이 유혼현상은 비정상적인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것을 믿으면 정신이 더욱 어두워지고 삶이 더 불행해진다.

 

영적인 현상에 관심을 가지면 유혼과 인연이 생겨 연달아 다른 유혼들이 접근하게 되어 주변에 불행이 계속 잇다르게 되고 이들이 산자의 몸에 들어오게 되면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이라든가 정신병이 나타난다.

 

의학계에서는 부정하는 일이지만 정신병의 반 이상이 다른 영혼이 몸에 들어와 작용하는 것으로 이들은 이중인격을 나타낸다.

 

한 사람은 하나의 영혼으로 하나의 행태를 가지는 것이 원칙이기에 또 다른 행동을 보인다는 것은 다른 의식이 작용하는 것으로 밖에는 볼 수가 없다.

 

이러한 현상은 종교나 영적인 접촉을 많이 한 사람에게 주로 나타나는 것이다.

 

종교집단에서 치병의식을 주관하는 것은 주로 사람의 몸에 들어온 유혼을 겁을 주어 쫒아내는 방법으로 유혼들은 산자와 같이 의식을 가지고 있으므로 굿이나 안수기도와 같은 치병의식으로 공포를 주어 일시적으로 쫓아낼 수도 있지만, 유혼이 산자의 몸에 들어온 것은 인연이 있어 들어온 것이기 때문에, 한번 들어온 것은 쉽게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종교집단에서 병을 치료하면 일시적으로 효험을 보이다가 다시 재발하는 것은 유혼이 숨어있다 다시 나타나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이치를 알아 어두운 유혼과 인연을 맺지 않도록 미리 조심하는 것이 중요하며, 다가온 인연은 생명의 이치를 잘 설명하여 떠돌지 말고 저승으로 돌아가도록 타이르며, 원한이 있는 것은 상대가 원하는 것을 행하여 용서를 빌고 그 마음이 풀리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종교에서는 병을 고친다는 수법으로 교세를 확장하고 있는데 이것은 정법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종교에서 이것이 성행하는 것은 이것이 가장 사람들을 현혹하기 쉽고 돈벌이가 좋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들은 귀신들끼리 서로 장난을 치며 겁주는 일에 불과한 것이지 한과 집착을 풀어줄 수 있는 진정한 해결방법이 아닌 것이다.

 

한국에서 유독 이러한 심령현상이 많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한국이 성령의 축복을 받은 나라여서가 아니라 종래 수많이 들끓던 무속신들과 많은 한들이 기독교의 미신적인 성령현상을 가면으로 하여 나타나고 있는 현상인 것이다.

 

지금 매스컴에 어느 무당이 자신을 괴롭히는 명장들과 왕들의 영들을 막고자 그 무덤에 칼을 꽂은 것이 화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그러한 명장들이나 왕의 영이 실제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잡스런 영혼들이 마치 배우가 가면을 쓰고 나타나듯 스스로 '나는 누구다!' 라고 가면을 쓰고 나타나는 것이다. 영들은 의식의 자유가 있기에 마치 꿈에 사람들이 여러 가지 형태로 변모할 수 있듯이 스스로 변화한 듯이 착각하면 상대에게 그렇게 비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비밀을 모르고 무당이나 신이 든 자들은 왕이나 장수가 나타나면 그것을 실제인양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한국보다 더 독실한 서구 기독교에서는 안 나타나는 성령현상이 한국에서는 불끓듯 일어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신흥 종교계에서는 한 민족이 성령의 은총을 받은 나라라고 주장하지만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세계에서 한국과 같이 어둡고 무질서하고 독한 민족이 없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즉 심령현상이 많이 일어나는 나라는 이치에 맞지 않고 무지한 나라라는 증거인 것이다. 그것은 IMF 사태로서 이미 잘 확인하였던 것이다. 정신과 물질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부실이 우리나라의 현실인 것이다.

 

심령현상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모든 성자들은 엄금한 일이다.

 

이와 같이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을 행하여 도움을 받으면 일시적으로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 같아도 그것은 오히려 그 영혼을 더욱 흐리게 하여 더 깊은 어둠과 영적인 불행을 맞이하게 된다.

 

오늘날의 삶은 이러한 문제 속에 있기 때문에 그 병폐와 올바른 진리의 길을 명백히 알지 않으면 세상을 위한 공덕을 짓기는 매우 어렵다.

 

여기에 진리의 중요성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가장 큰 공덕은 올바른 삶의 실체와 인생의 길을 밝히는 진리를 가르치는 것이다.

 

우리가 사람을 가르치는 것은 그 지식이 그 사람의 일생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되어 삶을 이끌어 주기 때문이다.

 

만약 바른 진리를 가르쳐 그 사람의 일생을 인간적 의미와 가치를 증진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주면 그보다 큰 공덕이 없겠지만 만약 잘못된 지식을 전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가르치지 않음보다 못한 것이다. 잘못된 가르침을 받은 자는 일생을 잘못된 지식과 욕망에 이끌려 어둠 속을 걸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언인가 남에게 전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뿐만 아니라 영원한 후생까지도 책임지는 일이기 때문에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오늘날 학교와 사회에서 배우는 지식과 경험들이 대부분 진리에 근거하지 아니하고 인간의 얄팍한 경험과 가설에 바탕을 두고 나온 것이어서, 배우면 배울수록 사람이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인간적 가치를 상실시킨다는데 있다.

 

세상인심이 나날이 악해지는 것은 현실에 나타나 있는 지식과 사고와 논리들이 거의 잘못되어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우리의 눈앞에 나타나고 있는 현실이 그것을 잘 증명해주고 있는 것이다.

 

진리는 배우면 배울수록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만들며 세상을 축복할 수 있어야 한다.

 

세상에 나타나는 현상이 진리를 판단할 수 있는 척도이기에 현실을 생각해보면 현대학문과 생활의 흐름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진정한 공덕은 세상을 축복해야 하는 것이어야 하며 사람을 진리의 길로 이끌어주는 것이어야 한다.

 

진리의 길만이 세상을 밝게 만들고 바른 길로 인도하여 모든 사람을 축복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길 속에 인간완성이 있고 신성에의 도달이 나타나는 것이다.

 

공덕의 크기는 결과로 나타난다. 그것만이 현실을 사실적으로 파악하여 바른 원인을 지었는가 하는 판단의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즉 공덕을 얼마나 지었느냐는 세상을 얼마나 바른 이치에 따라 밝은 세상을 만들었느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세상을 밝게 했다는 것은 그만큼 사실을 밝게 하는 바른 이치를 행했다는 증거이며 그 마음이 그만큼 실질적으로 밝아졌다는 증거인 것이다.

그래서 밝은 마음은 밝은 세상을 만들고 밝은 세상은 그 속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에게 밝은 이치를 전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밝은 세상을 만든 공덕은 그 복덕이 한량이 없게 되는 것이다.

 

달마가 양나라의 황제인 양무제를 만났을 때 양무제는 물었다. "내가 불교를 위하여 수많은 절을 짓고 많은 스님들에게 공양을 했는데 그 공덕이 얼마나 되는가?" 그러자 달마는 "공덕이 되지 못한다"고 했다.

 

그 이유는 아무리 공덕을 지었다 해도 그 속에 올바른 이치가 없어 그 결과가 좋지 않은 것은 그 공덕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즉 달마가 중국에 와서 중국의 불교를 보니 정법은 사라지고 바른 법을 말한 곳이 없었기에 십년간 벽만 바라보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이 진리가 없어 세상에 복을 짓지 못하는 불교계를 도운 것은 스님들의 배만 불린 것이지 진실로 세상을 축복하고 진리를 전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뜻인 것이다.

 

만약 지금의 불교와 기독교에 세상을 좋게 하는 진리가 없다면 (다른 집단도 물론 마찬가지다) 그 속에 희사하는 것은 공덕은 커녕 오히려 죄를 짓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신흥 사이비종교집단에 잘 못 들어가 가산을 탕진하는 것은 복을 짓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망치는 악업을 저지르는 것이다.

 

공덕은 자신의 마음속에 쌓는 것이다.

 

좋은 삶과 좋은 세상을 만드는 진리는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기에 우리들의 인생 속에서 그것을 추구하며 살아갈 때 비로소 인간다운 가치가 쌓이는 것이다.

 

인간은 성스러운 의미와 가치를 지닌 고귀한 존재이며 하늘이 정한 진리에 따라 삶을 지음으로 자신의 의미를 완성해야 하는 가능성의 존재인 것이다.

 

바른 이치와 밝은 마음이 열매 맺을 때 그 속에 인간이 가진 오묘한 신비가 피어난다. 즉 사람의 몸 속에는 우주의 근원과 이어질 수 있는 마음이란 영묘한 신비가 들어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도 "하나님의 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너희 안에 있느니라.(누가 17 21)"라는 말씀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의 결실이 있기에 부처나 예수와 같은 성자들은 올바른 삶의 결실을 자신의 마음속에 쌓아 현세에서 신성과 이어지는 열매를 맺으신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의 정신이 결실을 맺게 되면 욕망이 모두 사라지고 신성한 근원의 세계와 이어지며 우주와 하나되어 그 마음속에 세상의 모든 일이 밝게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고통스럽고 어두운 세상일수록 올바르게 살아가려는 의지가 꺽이기 쉽지만, 힘든 만큼 어둠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강해지고 그에 따른 노력도 커지게 되어 공덕짓기와 인간정신의 정화에는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부처가 나기 위해서는 세상이 모두 악으로 뒤덮힌 오탁악세가 되어야 가능하다는 말이 전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어두운 세상일지라도 그럴수록 더 큰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는 것을 인식하여 진리를 실천하고 올바른 삶을 짓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세상에는 분명한 의미와 진리가 있고 인간으로 가야할 분명한 길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 눈앞에 스쳐가는 일시적 지위나 재물이나 명망을 얻으려고 그토록 애를 태울 필요는 없는 것이다.

 

안타까워해야 할 일은 부와 명예와 권력을 얻지 못했음이 아니라 진리를 알지 못하고 보람 있게 살지 못한 채 세월만 헛되이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길을 아는 자는 높은 지위에 올랐다고 거들먹거리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진실을 버리거나 체면에 얽매여 가식에 치중하지 않는다.

 

참된 인간이 되고 바르고 보람 있는 인생을 산다는 것은 더욱 순수해지고 더욱 맑아지며 세상을 축복하는 인생을 부지런히 살아가는 가장 인격적인 모습이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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