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진실을 찾아서
처벌을 안받으면 벌을 어겨도 됩니까? 본문
질문 : “저번에 제가 질문을 도중에 드리다가 대답을 잠깐 다른 식으로 하신 것 같은데 찬이 질문한 것 중에 사람들이 안 보기 때문에 자기가 법을 어기더라도, 그러니까 아무도 못 보면 처벌을 안 받잖아요.”
안 받지.
질문 : “그런 경우에는 법을 어겨도 되는가? 그런 질문이 이었거든요.”
자, 이 법칙의 세계에서는 하나의 사람이 안 볼 때 법을 어겨도 되는가? 그것은 안 좋은 일입니다. 분명히 안 볼 때 법을 어겼다, 그것은 안 좋은 거예요. 안보면 질서를 파괴해 버린다는 것 아닙니까? 이 자연의 법칙 속에서는 안 볼 때 나무뿌리에 기름을 부어도 사람이 안 봤다고 해서 그 나무가 안 죽는 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가 안 볼 때 법을 어겼다. 그런 것이 습관화이 된다면 그 사람은 불행하죠.
질문 : “그러면 그런 식으로 피해를 봤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에 그게 깨달음 아닙니까? “내가 그런 일을 하면 안 된다.” 그런 일을 아는 것이 깨달음 이예요.
질문 :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봤다면 그걸 밝혀야 되는 겁니까, 아니면......”
자, 내가 다른 사람으로 인해, 어떤 사람에게, 거 참 질문이 여기서 나온 거하고 좀......
질문 : “남이 안보는 과정에서 피해를 보게 했을 때......”
자, 안 보는 과정에서 상대가 모르는 순간에 내가 한 일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됐다면 언젠가 기회를 봐서 그 사람에게 솔직하게 고백을 하고 내가 언제 이런 일을 하므로 해서 당신에게 피해가 됐는데 나는 항상 이것을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되는가, 해달라.
질문 : “피해를 본 사람의 경우에는 또 어떻게 해결하면 됩니까?”
피해를 본 사람은 자, 이럴 때 어떻게 해결해야 될 것인가 할 때에는 세상에는 유형 무형의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례를 하나, 어떤 사람이 어떤 일을 해서 내가 어떤 피해를 입었는데 이 일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하는 것은 자연의 있는 일을 봐서 당신은 얼마만큼 피해를 봤는데 이럴 때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다 하는 내 견해를 밝힐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의 견해라는 것은 하나의 공식, 법칙에 의해서 나타나는 하나의 현실을 그대로 여러분에게 말하는 것이니까 이것은 바로 진리 속에 있는 일을 보고 그 해답을 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어떤 피해를 입었을 때 이 일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이렇게 말한다면 거기에 대해서 대답하는 것은 매우 힘듭니다. 왜냐하면, ‘내가 어떤 학교에 가서 수학을 들었는데 그 해답은 무엇입니까?’ 이렇게 말할 때, “수학을 네가 배웠다면 여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공식을 아는 일이다. 그것이 수학을 네가 거기서 들었다면 어떤 수학에 대해서 배웠다면 그것이 곱하기더냐, 나누기더냐, 더하기더냐, 빼기더냐, 그 공식을 먼저 말하라. 그렇다면 네가 본 숫자에 대해서 나는 대답하겠다.” 이렇게 설명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수학이 존재하는 것은 법칙 속에도 많은 일들이 존재합니다. 이건 헤아릴 수 없는 문제들이 존재하는데 이 헤아릴 수 없는 문제의 해답을 하나로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하나로 대답을 할 수 있는 것은 거짓과 진실뿐입니다. 거짓을 들었느냐, 진실을 들었느냐. 여러분들이 말을 들었다면 이렇게 질문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로 규정해 버리면 그렇게 뿐이 말 못 합니다. 그것을 세분화해서 말한다면 “문제가 무엇이드냐?” 이렇게 질문합니다. 그러니까 이곳에서 문제를 분명하게 밝힐 수 없는 것은 개인적으로 말씀을 하셔도 됩니다.
자, 여러분들이 날 보고 나쁜 사람이라고 해도 좋고,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왜냐, 그것은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시각에 그렇게 보였을 뿐입니다. 여러분들이 시각이 완전하다면 사실 여기에 올 필요도 없습니다. 여러분들도 나처럼 나가서 가르치겠다고 방 하나 구해 놓고, 사람 청해놓고 아는 거 말하면 되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시각이 어두운 사람이 무엇을 잘못보고 잘못 본 것을 이야기했다고 해서 어떻게 내가 그들을 탓할 수 있겠습니까? “시간이 지나서 있는 일 다 확인해 봤으면 마 이자 여기 오너라. 다시 시작하자!” 왜냐, 잘못된 건 그 사람의 시각에 그리 보였는데 뭐라 하겠어요. 그러니까 내가 하는 말이, 우리가 어떨 때 힘이 없고 좀 거석할 때는 사람이 하나도 둘로 뵐 때도 있는데. 그래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 자신의 시각이 좋아지느냐, 좋아져서 있는 일을 바로 보고 바로 설명할 수 있고 하느냐?
사랑이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있는 일 똑 바로 알고 있는 일을 통해서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일을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면 그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여러분들이 남자 여자가 껴안고 입맞추는 이것은, 그것은 하나의 애정 행위입니다. 그것은 좋았다가도 나빠질 수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있는 일을 제대로 알고 있는 일을 제대로 가르치면 이것은 끝없이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랑이 뭐냐?
“사랑은 나의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축복이 되게 하는 일이다.”
98.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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