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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시와 물질 보시를 숫자로 표시하면 어느정도 차이가? 본문

실상학회 질문답변

법보시와 물질 보시를 숫자로 표시하면 어느정도 차이가?

gincil 2014. 1. 8. 01:08

질문 : “아까 세상에서 가장 큰 보시가 법 보시라고 하셨는데, 법 보시와 물질적인 보시를 숫자로 표시하자면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겠습니까?”


참 어려운 질문을 했는데, 자, 우리는 이 법 보시는 한 번 깨우쳐 놓으면 이것을 끝없이 복을 지어가요. 이것은 그 결과가 끝이 없습니다. 그러나 물질은 아무리 많이 보시하더라도 재물은 써버리고 나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작은 것이라도 좋은 가르침이 큰 물질보다도 앞선다는 것을 의미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비교는 우리가 있는 일을 보고 말해야되지요.

법 보시라는 이것은 한계가 없습니다. 진리는 이 수학의 숫자만큼이나 진리도 많습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진리의 유형도 수학을 가지고 만들어낸 숫자만큼 계속 새로운 진리가 밝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해서 우리가 있는 일을 잡아서 이 일을 사람들의 얼마의 보시보다 크다 작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예를 들어서 농사짓는 일을 제대로 알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쳤다. 그러면 그 사람은 또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게 됩니다. 그래서 전 국토가 그 잘 개발된 농사법을 알게 되면 그 사람은 그 법 보시로 인해서 3천만 국민을 잘살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러면 이것은 수백 억, 수천 억보다도 더 큰 공덕이 됐다는 사실입니다.

결과에 의해서 모든 것은 만들어진다. 그러니까 법 보시는, 그 법 보시의 우리는, 한계를 둘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끝이 없어요. 내가 죽고 나면 또 다른 사람이 그것을 말하게 됩니다.

자, 여기서 여러분들이 배우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어떤 있는 일에 대해서 지적해주시고, 그 있는 일에 대해서 깨닫는 것입니다. 제가 인도를 여행할 때 많은 승려의 우두머리들이 제게 말했습니다. “인도에서 가르침을 펴달라.” 그 메인 템풀의 부주지를 지냈던 사람도 금년에 한국에 와서 제자가 되겠다고 이렇게 확답을 했지만도 아직 연락이 안 오고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하는 말은, 내가 그들에게 한 말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많은 것들이 시간이 오래되면 변질된다. 붓타의 가르침도, 그분도 깨달은 분이니까 그분의 가르침은 세상을 밝히는 등불, 빛이다. 그러나 그 가르침은 이미 세월이 흘러가면서 엄청나게 변질이 되어버렸다. 그러니까 변질된 음식을 먹게 되면은, 뭐...”


“식중독”(어떤 사람의 대답)


“변질된 음식물은 독과 같다. 식중독에 걸리게 하니까. 변질된 음식물은 독을 만들어 낸다. 그러니까 변질된 진리는 독과 같은 것이다.” 그런 말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내 말과 기존 불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내용과는 엄청난 차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시고, 과연 그렇다면 이런 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나를 그분들 속에 데리고 가서 대화를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질문을 하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책 속의 내용에 있어서 질문을 하면 절대 대답을 못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질문을 할 때에는 생각으로 질문을 해요. 그러니까 생각으로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질문을 할 때에는 여러분, 장님이 볼 때에는 똑같은 말 이예요. 그런데 아는 사람이 딱 보면 이것은 천지차이입니다. 나의 질문은 평범한 것 같지만, 어떤 때는 굉장한 무기로 변해버린다는 거예요. 있는 일을 물으니까 있는 일을 알아야 대답하게 되요. 여러분의 질문은 다른 사람의 견해에 대해서 듣고자 하지만, 나의 질문은 있는 일을 물으니까 있는 일을 모르면 절대 대답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세계의 최고 석학들이 아무도 나의 앞에서 나의 질문에 대답한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옥스퍼드에 가서는 철학 센타에 가서 앉아 가지고 “내가 여기에서 이 옥스퍼드 시(市) 안에 진리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그걸 아는 철학자가 있다면 나는 3년까지 기다릴 것이다. 여기 매일 나와서. 그런데 3년이 지나도 그것을 아는 자를 만나는 것은 힘들 것이다.” 하니까, 대답하는 자는 없고 기분이 상해가지고 영국의 철학자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 나가는 그런 일은 많이 봤습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문제는 여러분들이, 나의 대답도 역시 여러분들이 질문을 할 때 상당히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문제를 정확하게 모르기 때문에 내 대답이 맞는가, 틀리는가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저 분의 대답은 너무 장황하다.’ 내가 장황한 것은 여러분에게 설명을 하기 위해서 장황한 말이 필요한 것뿐입니다.

항상 우리는 어떤 일을 말 할 때는 있는 것만큼 말해야 되는데 있는 것을 빼버리면 추상적일 때에는 어떤 하나의 근사치의 대답을 한 것이지, 정확한 것은 정확한 문제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고, 좋은 가르침은 엄청난 금은보화보다 어떤 보석보다도 좋은 것이다.


9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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