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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를 가지는 의미 본문

☆ 진실의 근원

종교를 가지는 의미

gincil 2018. 8. 7. 12:19

지금 하신 질문은 많은 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깊은 궁금증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아셔야 될 것은 지금의 모든 종교가 초기 성자들의 가르침과 달리 너무나 많이 변질되고 오염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성자들은 어둡고 탁한 인간의 정신을 졸업하여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존재가 되신 분들입니다. 인간의 정신을 넘어선 완전히 정화된 맑은 영혼을 얻어 세상의 진실과 진리를 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이루어지고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모든 실상과 이치를 밝혔던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이나 예수님이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니 그들은 세상이 이루어지고 있는 진실과 이치에 너무나 어긋나게, 거짓과 위선과 죄악의 삶을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회개하라! 거짓을 멀리하고 진리에 따라 좋은 원인을 지으며 사랑을 실천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분들이 볼 때 세상은 신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하늘의 뜻에 의해 나타난 진리 속에서, 세상의 주인이 인간이 지은 원인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주여! 주여! 하며 입으로만 외우지 말고 주의 뜻을 행하라고 했던 것이며, 석가모니는 신에 대한 믿음과 기도가 근거 없는 관념과 전통에 의해서 이어지고 있음을 보시고 법에 의지하고 자기에게 의지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 성자들의 순수한 가르침에 비추어 볼 때, 지금 현재의 종교들은 너무나 오염되고 왜곡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오랜 전통과 성스러움으로 치장되어 그 정체를 파악하기 어렵지만 초기 성자들의 가르침에 비교해 볼 때 너무나 달라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자들은 오직 세상 속에 있는 참된 진실만을 말씀하셨으니 오늘날 종교가 성자들의 가르침과 다르다면, 그것은 진실이 아니며, 진실이 아니라면 그것은 거짓이며 세상을 어둡게 하는 말법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종교는 거대한 어둠과 환상과 위선의 종합입니다. 수억, 수십억 인구가 거짓된 위선과 환상에 빠져 속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자들의 진리의 가르침 대신 믿음과 기도로 구원과 행복을 얻으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도저히 진리를 밝힌 성자들의 가르침이라고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버젓이 성자의 이름을 팔며 자신들의 이익과 권위를 위해 세상 사람들의 영혼을 병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은 진실이 힘을 잃고 거대한 어둠과 위선이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참과 거짓이 바뀌고 사실과 환상이 바뀌었기 때문에 세상을 말세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겠지만 이것은 진실입니다. 김희진 씨가 나의 말을 오해하고 떠날 수도 있겠지만 이 말씀은 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만 김희진 씨가 현 종교의 거짓과 환상에서 벗어나 참된 진실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영혼을 생명의 이치에 맞게 알차게 지어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종교가 전하고 있는 신에 대한 믿음은 잘못된 것입니다. 신이 직접 세상에 내려와 인간을 도와 준다는 것은 진리의 세계에서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높은 차원의 신은 완전한 진리로 세상을 움직이지, 인간의 기도와 애원에 따라 사사로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완전한 신은 올바른 진리를 세상에 펼쳐 놓고 인간이 지은대로 받도록 하는 완전하고 공정한 진리의 신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신을 믿어 신에게 기도하여 복을 받는다고 한다면, 목사나 신부나 스님의 집에서 기르는 채소가 잘 자라고 큰 과일이 열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없습니다. 농사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많은 사람이 땅과 씨앗을 잘 살펴서 때에 맞춰 물과 거름을 주고 가지를 잘 쳐주고 김을 잘 매주어야 풍년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하나의 원리로 이루어지고 있으니 농사가 이러한 완전한 법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면, 다른 세상 일들도 마찬가지로 환경과 여건을 살펴 거기에 맞는 좋은 원인을 지을 때 비로소 그 일을 성공 시킬 수 있고 좋은 운명을 거둘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은 신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신을 믿는 종교에서는 자기들만이 유일하게 창조주 하나님이 나타나 자신들만을 특별하게 보살핀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종파 중에 자기들만이 유일한 하나님을 섬긴다고 이야기하지 않는 종파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 수많은 종파 중 대다수가 이상한 영적 작용으로 인하여 수많은 부작용을 일으킨다는 사실입니다. 모두가 똑같은 하느님을 모시고 또 보살들을 모신다고 하는데 왜 이런 이상한 영적 문제들이 일어나고 있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모시고 있는 신이나 보살이 정체불명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늘에 분명한 하느님이나 보살이 있어서 그들의 인가를 받아야만 종교활동을 할 수 있다면, 그 종교가 정통성이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런 인가를 받은 종교단체가 어디 있습니까?


 



신을 믿는 모든 종교에서는 자신들이 믿는 신이 무엇인지 모르고, 신이 어떻게 구해 주는지도 모르고, 그냥 전해들은 소리를, 관념 속에서 그러려니 하고 앵무새처럼 읊조리며, 자기가 알지 못하는 허황된 구원의 교리를 팔아 먹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람이 사후에 어떻게 되며 영생이 어떤 원리에 의해서 이루어지며 인간이 어떻게 해야 좋은 영혼을 거두는지 밝히지 않은 채 사람들을 구원의 환상에 빠뜨리고 무지와 불행 속으로 집어넣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이 알지 못하는 불확실한 이야기를 함부로 전한다는 것은 그만큼 종교인들의 마음이 흐리고 진실하지 못하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럼 그들이 말하고 있는 하느님의 정체가 과연 무엇일까요?



그들이 창조주 하나님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그 신이 창조주 하나님일까요?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우주의 근원인, 너무나 높고 거룩한 차원의 근원적 존재는 혼탁한 인간 세상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 완전하고 거룩한 근원적 창원에이 세상은 너무나 높고 신성하여 성자들 조차도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태초의 절대자는 완전한 뜻과 질서로 움직이는 이 세상을 만들어 놓고 인간들이 지은 원인에 따라 공정하게 결과를 가져가도록 완전한 법칙을 만들어 놓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탁한 인간 세상 속에 신성하고 거룩한 신이 나타나 함부로 사악한 인간들의 이기적인 욕망에 일희일비 하며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진리에 따라 사는 것이 바로 근원적 존재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이지 다른 길이 없는 것입니다.


 



만약 태초의 절대자가 스스로 지어 놓은 완전한 뜻과 질서를 어기고 잘못된 삶으로 불행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나타나서 그 소망을 들어준다면 그것은 자신이 지어 놓은 완전한 뜻을 스스로 어기는 것이니, 그것은 바로 절대자 자신의 불완전성을 의미하는 모순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 지어진 완전한 진리를 어기고 인간의 기도와 애원에 따라 함부로 나타나는 편을 드는 신은 존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이 세상에 나타나서 인간의 기도와 애원에 일희일비 하는 신은 과연 무엇이냐?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 오욕을 벗어나지 못한 채 이 세상을 떠도는 죽은자의 영혼인 것입니다.


 



지금 기독교나 통일교나 영생교나 신천지나 구원파나 안상홍이나 JMS나 다 똑같이 창조주 하느님을 이야기합니다. 회교도도 마찬가지로 유일신을 이야기합니다. 그들이 신을 이야기하지만 정식으로 하나님한테 허가를 받고 신을 섬기는 것은 아닙니다. 각자가 자신의 신념과 생각 속에서 이 세상에 돌아다니고 있는 신을 받아들이고 의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처님은 법에 의지하라고 했지 보살에 의지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보살이라는 것은 부처님 때는 없었는데 후기 대승불교에 들어서서 나타난 영적 존재입니다.


 



대순진리회에서 옥황상제를 가장 높은 차원의 신으로 섬기지만 그 신이 이 우주에서 가장 높은 신이라고 확인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중국에서 옥황상제를 섬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천상에 있는 최고의 신을 이야기 하지만, 그 신이 진정 이 우주에서 최고의 신인지, 세상을 떠도는 신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신들이 세상에 나타난다는 것은 성자들이 말한 진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며, 인간의 정신을 흐리게 한다는 것이며, 현실 속에서 많은 문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아래 댓글에 나오는 수많은 거짓 신들이 자신을 하느님이라 사칭해가며 세상을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분명히 정해진 창조주 하나님이 있다면 어찌 이렇게 많은 신들이 나와서 세상을 속이고 있겠습니까? 이것은 불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물 속으로 자신을 손짓할 때, 그것이 어찌 관세음보살이겠습니까?


 



따라서 이렇게 큰 종교나 작은 종교나 할 것 없이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신을 섬기기 때문에 누가 정통인지 누가 사이비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신도가 많다고 정통이 아니며 신도가 작다고 사이비라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각자에게 달려드는 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 존재의 진실을 알지 못하고 사람들은 자신에게 들어오는 신만은 유일한 창조주 하나님이나 천상의 보살이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어리석음에 빠져 이 세상을 떠도는 유혼에게 자신의 몸을 주는 어리석음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에는 인류의 수 보다 더 많은 유혼들이 세상을 떠돌며 지옥의 고통에 헤매고 있습니다. 이들은 사람의 몸에 들어와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애를 쓰고 있습니다. 바로 영적 종교가 귀신들의 이러한 소망을 들어 주고 있는 통로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날 많은 영적 종교에서 신과 접하는 부흥회를 갖고 백일기도를 하며 기문을 열고 신과 통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영계에서 짜 놓은 거대한 속임수 속에 인간 세상이 속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여기에 대한 분명한 시각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전통과 관습에 매여 그러려니 하고 살아 가게 되면, 성자들의 참된 진리를 알 수 없으며 좋은 운명과 좋은 영혼을 거둘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종교들은 성자들이 밝힌 참된 진리를 외면하고 허황한 믿음을 강조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거짓됨을 사랑이라는 미명으로 감추고 있습니다. 가르칠 진리가 없으니 사랑을 팔아 자신을 감추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난한 자, 불행한 자, 죄지은 자를 구한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들은 가난한 자에게 빵을 나눠주고 장애아에게 치료를 해 준다고 말합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테레사 수녀 였습니다. 그녀는 이러한 선행으로 노벨상을 타고 성자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자에게 빵을 나눠 주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면 큰 공덕이 되지 못합니다. 게으른 자에게 빵을 주고 돈을 주면 그 사람은 더욱 더 의존적이 되어 세상을 살아갈 힘을 잃고 이웃과 나라에 부담만 가중시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잘못된 사랑이 세상을 오도 하고 있기에 이 세상 속에 가난이 끝나지 않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에게는 가난한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가난한 원인을 살펴 그 사람을 일깨워 줌으로써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양심과 용기를 주고 스스로 고기 잡을 수 있는 능력을 가르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인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그 거지는 스스로 일어나서 자기 자신의 삶과 영혼을 지키고 세상에 태어난 보람과 가치를 얻게 되며 세상에 유익한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종교는 진리를 전하는 것일진데, 무조건 돕는 것은 진리를 전하는 종교의 일이 아니라 국가의 일인 것입니다.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지 못 하는 국민에게 국가는 제도로서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해야 하는 것이며, 진리를 전하는 종교는 참된 진리로 세상을 축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밭에 농사를 지을 때, 같은 값이면 쭉정이 씨앗을 뿌리지 않고 좋은 씨앗을 골라 뿌립니다. 그래야 큰 수확을 얻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전하고 공덕을 짓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치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를 전하는 곳에서는 반드시 세상을 구할 양심과 용기가 있는 밝은 영혼을 지닌 사람을 골라서 진리를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뛰어난 인물을 찾아 깨우쳐 주면 그 사람이 그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진리로 인도하여 세상을 밝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큰 공덕이 진리를 전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전하는 종교에서 성자들이 밝힌 진리를 전해 세상을 축복하지 않고 쭉정이 씨앗을 건지는데 시간과 열정을 소모 한다면 그것은 종교가 아니라 복지단체 일뿐입니다.


 



기독교를 믿어도 인간을 사랑하고 선행을 많이 하면 해탈의 길로 갈 수 있고 다만 길이 다를뿐 결국 같아 보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불교와 기독교에서 하고 있는 길은 같은 것이 아니며 둘 다 초기 성자들의 가르침과는 너무나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선행을 많이하면 해탈의 길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자들의 가르침대로 해야만 해탈의 길로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길이 바로 올바른 사랑입니다. 그러나 지금 종교에서 하는 것은 올바른 사랑이 아니라 위선된 사랑을 하고 있으며 오히려 그들은 성자의 사랑을 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랑을 팝니다.



테레사 수녀와 같이 수많은 장애아를 도왔었지만 그것이 세상에 과연 어떠한 공덕이 되었을까요? 그녀의 사랑은 식물인간인 장애아의 수명을 연장하는 역할만 했을뿐 세상을 밝히고 인간을 축복하는 진리의 역할은 거의 하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자선을 행한다는 명목으로 엄청난 규모의 성금을 받아 자신들의 단체에 배를 불리고 잘못된 종교의 가르침을 선전하는 역할만 했다는 것입니다.



과거 소쩍새 마을에서도 불쌍한 아이들을 양육한 스님이 수많은 성금을 모아 그 돈을 자신의 향락을 즐기는데 사용하다가 결국 위선이 탄로나고만 사실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오늘 날의 종교는 성자들이 가르친 참된 사랑을 행하지 않고 사랑을 빙자한 위선을 행하는데 혈안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자들의 진정한 사랑을 그들이 알고 전하지 않는 한, 그곳에서는 진정한 사랑과 공덕이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중국 양무제가 수많은 절을 짓고 수많은 스님들을 먹여 살렸지만 달마가 아무런 공덕이 안 된다고 한 것은 그가 진실한 법을 모르고 공법과 주문과 기도로 거짓된 법을 가르쳤기 때문에 그런 것이 세상을 밝히는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무소 공덕이라고 한 것입니다. 아무리 남을 돕는 일을 한다고 해도 그것이 진정 세상에 축복이 안 되면 그것은 아무 공덕이 안 되는 것입니다.


 



참된 공덕이 되기 위해서는 좋은 결과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해도 결과가 없으면 짝사랑에 불과하듯이, 자신이 공덕을 짓고자 하나 좋은 결과가 없다면 그것은 선행을 한 것이 아니라 선행을 하려고 한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따라서 부처님이나 아라한에게 보시를 하는 공덕이 큰 이유는 그들은 진실하고 법을 아는 자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공덕을 행하면 그 보시가 모두 세상을 위해 사용되기 때문에 세상이 크게 밝아지는결과를 얻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처에게 행하는 공덕이 가장 크고 그 다음으로 진정한 부처의 길을 가는 사람에게 행하는 공덕이 크다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은 부처의 길을 간다고 말은 하면서도 정법이 아닌 말법의 빠져 거짓된 길을 가는 자에게 공덕을 행한다면 그야말로 무소 공덕이 되는 것이며 오히려 악업을 짓게 되는 것입니다.


 



100년도 못사는 우리로서는 그냥 절대신에게 절대 복종하고 도움을 얻어서 잘 사는게 편한 길이 아닌가 생각도 하며 기독교인 중에 기도해서 정말 원하는 것을 얻고 편하게 사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기도를 통해서 편안함을 얻었다고 하는 것은 영적 감염 때문입니다. 진리에 의해 현실에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결코 인간은 편함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삶에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기독교를 광신적으로 믿지 않고 단지 사교적 차원으로 믿으며 현실에 충실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기도를 통해서 영적인 평안을 얻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려 드립니다.


 


 




> > > 안녕하세요 > > 전 불교입니다. 그래서 힘들 때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께 기도를 드리고는 합니다. 관음보살은 허구라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설사 이름이 관음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 그 수많은 세월동안 그런 자비심을 가진 보살이 여러분 계실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 > 마찬가지로 기독교인들은 하느님과 예수님께 힘들때 도움을 요청할 것이고 이슬람교는 알라신에게 그럴 것이구요 > 그런데 기독교 지인이 저보고 너는 안타깝다 하느님께 의지하고 모든 것을 맡기고 기도하면 다 이루어주신다고 하는데 > 우라는 하느님의 종이다. 라고 햐는데 그 "종"이라는 말이 정말 그런 뜻은 아니겠지만 기독교는 너무 신에게 복종을 해서 싫다니까 넌 건방지다고 하더라구요 > > > 물론 기독교를 믿으면서도 인간을 사랑하고 선행을 엄청 많이 하면 그런 사람도 해탈의 길로 갈 수 있겠지요? 서로 다른 종교는 다만 길이 다를 뿐인가요? > > 저는 기독교의 하나님이 계신 것은 인정하지만 그 분도 수명과 능력이 한정되어 있고 인과법에 얽매어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는데 > > 100년도 못사는 우리로서는 그냥 절대신에게 절대 복종하고 도움을 얻어서 잘 사는게 편한 길이 아닌가 때로 그런 생각도 해요 > 기독교인 중에 기도해서 정말 원하는 것을 얻고 편하게 사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아서요 > > 대승불교도 중생의 힘으로만은 성불이 불가능하고 보살이나 부처님께 의지해서 타력으로 해탈해야 한다는 설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 > > 그리고 두 번째 질문은 사람을 사랑하고 유익하게 해야 한다고 하셧는데 > > 물론 저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사람들에게 상처을 준 적이 있지만 그래도 전 주변 사람들이 말하기를 성격이 순수하고 착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 > > 그래서 제가 사람들에게 심하게 피해를 본 적이 훨씬 많고 마음이 아픈 적도 많았어요 > > 제가 지혜가 부족했던 점은 인정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싫어져서 대인기피증도 생기고 약간,,눈도 마주치고 싫고 > > 인간 자체에 대한 믿음이나 애정이 많이 사라진 상태인 것 같아요 > > 함부로 돕거나 선행을 하려다가 오히려 더 이용당할 수도 있구요 > > 예를 들어 심한 경우 인신매매범들이 할머니를 시켜서 도와달라고 여학생을 유인해서 팔아먹기도 하구요 > > 인간의 악이 끝이 없쟎아요 장기매매나 이런 사람들도 있구요 > > 어떻게 해야 인간을 바로 보고 지혜롭게 공덕행을 지를 수 있을까용? > > 세번째는 사람들을 도울 때 예를 들어 아주 가난하거나 몸이 장애자이거나 이런 분들 > > 물론 고급영중에도 수련을 하기 위해서 일부러 장애의 몸을 받아서 힘든 수련을 하는 분이 있다고는 들었어요 > > 하지만 대부분은 다 악업을 해서 그 결과 로 현생에 고생하는 조건을 타고 난 것이고 > > 그 분들이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 업이 정화되는 것 아닌가요? > > 그런데 제가 그런 분들을 굳이 도울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어요. > > 물론 그런 분들으 도우면서 제 자비심이 커지면서 영적으로 진화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요 > > > 불경에 보면 짐승이나 범인에게 공양한 것보다 깨달은 신 분들 아라한이나 그런 분들께 공양하는 것이 훨씬 공덕이 크다고 하는데 > > 악한 분들 _예를 들어 재소자들-이런 분들을 돕거나 하여간 영적으로 아직 낮은 단계에 있거나 업이 많은 분들을 돕는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 > 질문이 길었습니다. 답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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