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진실을 찾아서
경쟁에 관한 질문입니다. 본문
삶이란 엄중한 현실로 각자가 자기 살길을 찾는 것이다.
그리하여 살길을 찾아 열심히 노력한 자는 풍요로워 지지만
살길을 찾지 못하면 죽게 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이러한 각자의 삶의 결과로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가 생겨나는데
이러한 자연스런 삶의 흐름을 인간의 생각으로 판단하여
가난한 자를 정당화하고 많이 버는 사람을 탓해서는 안된다.
부유한 자들은 열심히 노력하고 지혜를 내어 세상에 널려있는 돈을 벌었을 뿐인데
가난한 자에 비해 돈이 많다고 비난받아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열심히 일한 기업가와 대기업을 비난하지 마라.
우리나라의 국민 총생산중 대기업의 비중은 거의 70%에 달한다.
그들은 국가 운영에 필요한 대부분의 세금을 내고 방대한 인원을 고용하며
엄청난 외채에 의한 국가부도를 막도록 수출로 외자를 조달해준다.
왜 그들을 욕하는가?
단지 돈이 많다는 이유로, 사회사업을 안 한다는 이유로 비난하는가?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그런 일을 하는가?
부유한 자들은 돈을 번만큼 세금을 냄으로써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나라에서는 그 돈으로 나라를 꾸려가고 가난한 자를 도움으로써 자기 역할을 다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대기업이 있는 자본주의에 사는 것이
대기업이 없는 공산주의에 사는 것보다
더욱 풍요롭고 커다란 복지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자본가들에 대한 비판은
현재 우리 사회에 팽배한 반 자본주의 이데올르기적인 측면이 강하다.
자본주의가 자본의 집중으로 대량생산과 소비의 축소를 가져와 붕괴한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자본론의 요지이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세상을 보지 못한 자이며
공산주의란 세상을 보지 못한 자가 만든 관념적 이론에 불과하다.
공산주의 이론은 겉으로는 그럴 듯 하지만
현실을 너무 단순화시킨 관념적 논리이기 때문에 현실과 맞지 않다.
공산주의의 기본적인 모순은 재화의 기본적 가치를 노동에 둔 것이다.
그러나 재화의 가치는 노동 뿐 아니라
자원과 자본과 지대와 창의성에도 크게 의지하며 수요적 측면도 강하다.
그런데 이를 단순화시켜 논리를 전개한 것이 바로 공산주의 이론인 것이다.
자본주의가 자본의 집중으로 대량생산과 소비의 축소를 가져와 붕괴한다는 것도
현실을 너무 단순화시켜 본 논리이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공산주의는 망했지만 자본주의는 오늘날 국제적 경제의 본류로 자리잡지 않았는가?
자본주의는 공산주의 이론과 다르게 살아있는 현실적 생명력으로 영원한 진실이 된 것이다.
경제가 폐쇄된 지역에서만 이루어진다면
그리고 세상의 부가 한정되어 있다면 자본론의 논리는 성립된다.
그러나 경제는 인간이 사는 모든 지역으로 끝없이 팽창하고 순환하며
그러한 순환을 통해 경제규모가 확대되고 부는 지속적으로 증가한다.
재화도 부이고 노동도 부이고 아이디어도 부이고 파급효과도 부이다.
과거에는 공짜로 주고 받는 물이 이제는 큰 재화가 되었듯이
과거에는 재화가 아니었던 것도 경제가 활성화되면 부가 되는 것이다.
한곳에서 덩치가 커져 사업을 크게 일으키면
그 전후방에 새로운 산업의 흐름이 나타나고
그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경쟁업체들이 생겨난다.
그런데 어찌 자본이 한곳으로 몰려 최종적으로 경제가 파탄이 나고
모든 사람이 가난해진다고 하는가?
이러한 허구성은 현실을 보면 알 수 있다.
오늘날 모든 것을 평등화한 공산주의보다 자본주의는 훨씬 잘 살고 있으며
평등한 인민들보다 소득 수준이 훨씬높은 수많은 중산층이 생겨나 있지 않은가?
관념적으로 생각하면 경쟁에서 탈락하면 다 죽을 것 같아도
또 다시 새로운 분야가 전개되어 먹을거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지혜를 가진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생동하는 자유경제의 실상인 것이다.
인간의 도덕성을 격려하고 고무시키지 않는 무한 경쟁의 자본주의가
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돈 많은 자가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배 아프기를 좋아하는 불평분자의 이야기이다.
자기가 스스로 남을 도와주는 것은 별개의 문제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은 자기가 성실하게 번 것을 남에게 줄 의무가 없다.
이런 이야기는 자기 것은 남에게 잘 주지 않는 자가 남을 비난할 때 하는 이야기이다.
돈버는 것과 인격적인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현실에 충실해서 열심히 노력해 정당하게 돈을 버는 것은
어떠한 문제도 없으며 오히려 사람을 건강하게 한다.
그리고 자식과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 돈을 버는 건
사랑의 대상을 위해 노력하는 진정한 사랑의 발로인 것이다.
한 민족이 어두워지고 악업을 많이 지으면 민족이 사라진다는 것에 물었다.
이 질문도 그대의 생각 속의 질문이다.
국민성이 망할 때 나라가 망한다는 것은 번성한 사회가 멸망하는 경우에 해당되는 말이다.
한 생명체가 사라지는 경우는 스스로 붕괴하는 경우와 강한 외적 힘이 닥치는 경우가 있다.
스스로 붕괴하는 경우는 스스로 지은 과보를 받는 것이며
외부의 힘에 의해 붕괴할 때는 인연을 만났다고 한다.
인간의 운명은 과보에 의한 경우와 인연을 만나는 경우에 의해 결정된다.
악한 세상 속에는 악한 인연을 만나기 쉽다.
인디언이나 아프리카인이 파멸한 것은 그러한 악연을 만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악연 또한 인류라는 공동체가 만든 공업인 것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 악이 성해지면 한 나라가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온 인류가 멸망하게 되는 것이다.
>1. 개인간의 경쟁에 관하여
>우리나라는 지금 자본가 노동계층 너 나 할 것 없이 한 마음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허 선생님의 말씀은 지당하십니다.
>
>그런데 질문이 있습니다.또 관념적인 발상이라고 야단치실지 모르겠네요. 죄송합니다.
>자본주의의 자유경쟁은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댓가라고 하지만
>자본주의 체재에서 자본의 축적에 한계가 없다는 사실은 인류가 풀어나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재벌들의 축재정도는 세계적 재벌에 비하면 별거 아니라고 봅니다.
>(제 말은 특정 재벌을 겨냥하고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인류의 몇 프로가 굶어죽어가고 있는데
>소수의 사람들에게 천문학적인 부가 쏠려있다는 것은 분명 비도덕적인 것이라 생각됩니다.
>모든 재벌들이 워렌 버핏같이 도덕적은 아닙니다.
>동물은 본능대로 살지만 인간은 남을 배려하고 이웃을 생각하지 않나요?
>이러한 인간의 도덕성을 격려하고 고무시키지 않는 무한 경쟁의 자본주의는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요?
>선생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
>2. 나라간의 경쟁에 관하여
>
>선생님은 한 민족이 어두어지고 악업을 많이 지으면
>민족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하셨습니다. (주요문답 15번 경쟁의 의미 참조)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역사상 민족이나 국가가 사라진 경우는 위의 경우보다는
>강대국의 탐욕을 저지할 만한 힘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로, 미 대륙 원주민, 2차대전 때 사라진 약소국가들, 현재위기상태인 티벳
>특히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았던 아메리카인디언들이
>백인들에 의해 말 그대로 씨가 마른 것을 보면 정말 이 세상에 진리란 있는가? 의심이 갑니다.
>이런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
>따지고 든다고 야단치지 마시고 저의 우매함을 불쌍히 여기시고
>너그러히 설명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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