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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를 의식하고 행하는 선과 무작정 행하는 선은 어떻게 다른가요? 본문

☆ 진실의 근원

결과를 의식하고 행하는 선과 무작정 행하는 선은 어떻게 다른가요?

gincil 2013. 4. 27. 12:59

지금 그대는 선행이나 진리를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선행이나 진리는 생각이 아닙니다.

분명한 사실의 흐름인 것입니다.


씨를 뿌리면 싹이 나는 것과 같이

좋은 원인을 지으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납니다.


그대가 일을 하면 결과가 생기고

남을 해치면 화를 당하게 됩니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인과의 진리입니다.

따라서 알고 모르고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이곳에서 바른 이치를 깨쳐 좋은 원인을 바로보고 열심히 좋은 원인을 지으면

마음에 어둠이 없어지고 의식이 밝아져 세상일을 보게 되고

자신과 세상이 좋아지는 일을 하게 되어

그대 자신이 완성에 이르게되고 세상이 밝아지게 됩니다.


따라서 이것은 그대가 알던 모르던 아무 관계가 없이

지은대로 이치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대의 질문에 대한 답이 저절로 나옵니다.


가령,

진실의 근원에 와서 많은 가르침을 듣고서 의식적으로 선을 행하는 사람.

그리고 영혼이나 윤회에 대해서는 믿지도 않고 한번 죽으면 그걸로 끝이라 믿지만 천성이 착해서 불쌍한 사람들 잘 돕는 사람.

이 두가지 사람이 행한 선은 어떤 결과를 낳게 될까요?


아무리 좋은 말을 많이 들어도 

인과를 보지 못하고 자기 생각만으로 선이라고 행하면 

그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 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합니다.


그리고 천성이 착하다고 하더라도 

그 행동이 이치를 맞지 않고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는 한 선행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이치를 깨쳐 인과를 바로 보고 좋은 원인을 지어 좋은 결과를 얻는다면 

그것은 좋은 선행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계속 좋은 원인을 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치와 관계없이 우연히 지은 원인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냥 좋은 일일 뿐입니다.

다음에도 좋은 결과를 얻을 기약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가지 더 궁금한 건,

선한 의도로 선을 행하였으나 결과는 오히려 나쁜 경우와

악한 의도로 악을 행하였으나 결과는 오히려 선한 경우,

이 두가지는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까요?


아무리 선한 의도라도 

세상을 바로보고 바른 원인을 짓지 않으면

좋은 결과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인과에 따른 올바른 원인이 지어져야만

결과가 좋아지는 것입니다.


상황에 맞는 올바른 원인을 선행이라 하는 것이지

자기 생각만으로 선과 악이라고 구분해서는 안됩니다.


따라서 좋은 결과가 나타나는 악한 원인이란 없습니다.

좋은 결과를 추적해보면

그 상황에 맞는 가장 좋은 원인이 지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박정희가 나쁜 의도로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는데

산업화에 기여한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많이 합니다.


비록 정권을 잡는것은 불법적인 나쁜 원인을 지었지만

국가를 발전시키는 것은 좋은 마음을 내어 좋은 원인을 지었던 것입니다.


즉 좋은 원인은 좋은 결과를 낳고

나쁜 원인을 나쁜 결과를 낳는 것이 진리인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의 이치를 보지 못하고 

하나의 시각에서 모든 것을 일률적으로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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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의 질문은 생각 속의 질문입니다.

선의 개념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없으니

자꾸 질문과 답변이 겉도는 것입니다.


선이란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좋은 원인을 말합니다.

따라서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져도 

세상일과 이치를 모르고 선한 결과와 관계없이 무조건 짓는 행동은 선행이 아니며


아무 것도 모른 채 우연히 짓는 일이라도 

다행히 세상의 흐름에 맞아 현실을 축복하면 좋은 일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경우는 선행이라기보다는 

마치 아침에 해가 떠 세상을 축복하는 것과 같이 자연스러운 일일 뿐 

자신에게 공덕이 되는 선행이라고 하기 어렵겠지요.

왜냐하면 우연이기에 다음 번에는 선행을 할 수 있는 지혜와 근기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금 그대가 하는 두가지 질문 모두는

세상의 사실과 이치를 바로 알고 축복하는 올바른 원인을 짓는 것이 아니라

길을 모른 체 단순히 자기생각만으로 선행이라는 것을 하는 것과

어떤 결과가 올지도 모르며 이치도 모른 채 자기 생각만으로 선행이라는 것을 하여

우연히 세상에 도움이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모두 선행이라고 하기에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질문이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선행이 인간의 영혼의 발전이나 인간의 완성이라는 측면에서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세상을 보는 눈을 떠

현재의 문제를 가져온 인과를 보아야 하며

그 인과에 따른 올바른 원인을 지어야

자신과 세상에 도움이 되는 좋은 결과가 오는 선행이라는 공덕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실과 이치를 알고 밝은 의식 속에 짓는 선행 만이

그 마음을 밝게 하여 자신 속에 공덕으로 남게 되며

후생에도 세상을 바로 축복할 수 있게 되어 인간완성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질문으로 

선한 의도로 선을 행하였으나, 천재지변이나 불운과 같이 예측하지 못한 변고와 겹쳐져, 

그 결과는 오히려 나쁘게 되는 경우와

악한 의도로 악을 행하였으나, 천우신조나 행운과 같이 예측하지 못한 우연과 겹쳐져, 

그 결과는 오히려 좋게 되는 경우에 대해 물었습니다.


사실의 흐름을 무시한 선은 없습니다.

좋은 원인은 사실 속에서 정확히 처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재지변은 잘하던 못하던 관계없이 전혀 예상밖에 일어나는 일이니

그것은 사실 판단 속에 넣어서는 안됩니다.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변수를 넣어 이치와 사고를 혼동시키는 것은

오늘날 현대문명이 무의미와 판단정지에 빠져 길을 잃어 버린데서 나타나는 사고방식으로

결국 올바른 사고를 마비시켜 인과법을 흐리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라는 변수는 나중에 일어났을 때 대책으로 강구하면 되지

미리 원인의 일부로 생각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며 어리석은 일입니다.


생각 속에는 그러한 온갖 변수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그러한 천재지변은 거의 일어나지 않으니

그대의 질문이 올바르지 않은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농부가 농사를 짓는데 

지진이 일어나거나 유성이 떨어져 농사를 망치는 걱정을 하는 것으로

생각 속에서 살아가는 관념적인 사람들이 많이 하는 쓸데없는 걱정일 뿐입니다.


세상을 보지 못할 때는 세상이 온통 안개 속에 보이고

운명이 자신의 통제 밖에서 움직이지만

세상을 보게 되면 모든 것이 명확하며

업에 의해 나타나는 운명의 힘은 더 이상 작용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진리를 찾으려하고

인간완성에 이르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대는 악인이 복을 받고 있는 현실을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대가 보는 세상이 정확하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그대가 선량하다거나 악인이라는 판단하는 사람이

진정 그러한 사람인지도 의문이며

어찌보면 그대가 선량하다고 보는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일 수가 있고

악하다고 보는 사람이 매우 합리적인 사람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자기가 지은대로 받는 것입니다.

어두운 세상에서는 일시적으로 선인선과 악인악과의 인과가 꼬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마저 인과의 법칙이 완전하기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인과의 이치가 흐르는 세상에서 

누가 인위적으로 질서를 어겨 이익을 챙기는 원인을 지으면

당연히 질서를 어긴  것에 대한 인과의 왜곡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누가 새치기를 해서 먼저 차를 타겠다는 원인을 지었다면

질서를 어기겠다는 마음과 원인에 의해 질서가 흐트러지는 결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세상은 어지러워지며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고통을 받게 되고

그를 싫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두번은 그냥 통과되어 개인적인 이익을 챙길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정의와 인간의 마음은 밝기 때문에 

언젠가는 이러한 이치에 어긋난 짓이 탄로나 세상의 지탄을 받게 됩니다.

현실에서 잘 나가는 자들이 한순간 감옥으로 가는 현상은 

바로 이러한 세상의 엄정한 인과법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도 습의 이치가 적용됩니다.

세상의 이치를 어기는 업을 지은 자는 

모든 경우에 세상의 이치를 어기고 이기적인 탐욕을 부리고 싶은 습이 발동되기 때문에

그 잘못된 행동이 언젠가는 세상의 인심과 법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눈앞의 탐욕을 위하여 함부로 이치를 어기고 자신 속에 지은 습은 

그 정신을 혼탁하게 만들어 그 마음을 불안하고 어둡게 만들고 불행한 인연을 만나게 되며

죽어서도 탐욕에 눈을 감지 못하고 세상을 떠도는 유혼의 과를 받게 되어

결국 지옥을 보고 자신의 영혼마저 파멸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의와 양심, 진리가 사라진 망해버린 세상은 너무나 어둡기 때문에

개인의 악이 밖으로 드러나 처벌받지 아니하고 지속적으로 세상을 망치게 되어

결국 모두 함께 망하는 운명을 지니게 됩니다.


양심과 정의와 같은 인간의 미덕이 사라지고 부정부패가 극심한 나라가 망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이 개개인이 지은 잘못이 치유되지 못하고 

계속 세상을 어둡게 만들 때 나타나는 파멸의 결과인 것입니다.


한 사회가 버틸 수 있는 죄의 무게가 있습니다.

겨울에 나뭇가지에 내리는 눈이 어느 무게까지는 견디지만

일정 무게를 넘어서면 나뭇가지가 부러져 설해목이 되고 맙니다.


우리 사회도 정의와 양심을 상실하고 기본적 도덕성을 지키지 못할 때

개인이 짓는 악업은 치유되지 않고 세상을 지속적으로 무겁게 억눌러

결국 사회 전체의 붕괴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개인의 악과 개인의 업과 후생,

사회 전체의 운명과의 인과관계입니다.


>선업을 쌓으면 현세이든 내세이든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행하는 선과,

>아무런 결과를 바라지도 않고 혹은 어떤 결과가 올지도 모르며 행하는 선,

>두가지 중 어떤 것이 바람직한 것이고 어떻게 다른지 궁금합니다.

>

>가령,

>진실의 근원에 와서 많은 가르침을 듣고서 의식적으로 선을 행하는 사람.

>그리고 영혼이나 윤회에 대해서는 믿지도 않고 한번 죽으면 그걸로 끝이라 믿지만 천성이 착해서 불쌍한 사람들 잘 돕는 사람.

>이 두가지 사람이 행한 선은 어떤 결과를 낳게 될까요?

>

>한가지 더 궁금한 건,

>선한 의도로 선을 행하였으나 결과는 오히려 나쁜 경우와

>악한 의도로 악을 행하였으나 결과는 오히려 선한 경우,

>이 두가지는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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