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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진실을 찾아서
상식과 이치가 통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상식과 이치가 통하는 정의로운 사회에는 법이 필요 없다.비정상적이고 옳지 못한 것은 밝은 빛에 의해 부끄러워 숨어버리고 모든 것이 양심과 이치에 따라 저절로 움직이기 때문이다.따라서 법이 우선시되는 사회가 아니라 상식과 이치가 우선시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정의가 사라지고 법이 우선시되는 사회는 권력을 가진 자가 이현령비현령으로 법을 적용하여 모든 것을 좌지우지 하므로 국민들의 삶이 고통스럽게 된다.가장 좋은 사회는 법이 없는 사회고 법이 필요 없는 사람이다. 모든 것은 사실과 이치에 근거해서 보아야 한다.사실은 우리나라의 범죄환경이며 범죄자들의 사악함이다.이러한 험악한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법이론에 빠져 정당방위를 해석하면 안 된다. 어두운 밤에 도둑이 ..
언제나 진리의 가장 큰 적은 순수하지 못한 지적인 자였다.과거 성자들을 고통스럽게 한 것도 지적 교만을 가진 자들이었다.예수를 죽인 것도 당대 최고의 지식인인 유대교의 성직자들이었으며소크라테스를 죽인 것도 당대 최고의 지식인인 소피스트, 위정가, 극작가였다. 소크라테스는 당시 지식인들에 의해 젊은이들을 오도한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다.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그리스의 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가 지은 『구름』이라는 연극이다.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죽음을 언도받는 법정에서 자신의 죽음이 아리스토파네스의 극중 왜곡이 큰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연극의 내용은 이렇다. 스트레프시아데스라는 노인이 그의 소원인 재판에서 이길 수 있는 언변술을 소크라테스에게 교육 받는다. 그러나 스트레프시아데스는 나이가 많아 머리가 굳어 중..
현대는 길을 잃은 세상이다.사람들은 자신이 왜 사는지 모른다.인간의 의식은 항상 깨어있어서 자신을 돌아보며 내가 왜 사는지, 이 세상이 무엇인지, 내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찾고 있다. 이것을 알아야만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은 이를 전혀 알지 못하고 어둠 속에 미아처럼 내버려지고 있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난파선에 실려 떠내려가면서 부딪치는 파도 속에서 어떻게 될지도 모르면서 망망대해를 해매고 있는 그런 심정이고, 수천장 낭떠러지의 심연 속으로 끝없이 떨어지면서 정신은 깨어서 앞으로 다가올 불행과 공포와 절망을 뼈저리게 직시하고 있는 그런 상황인 것이다. 인간이 이러한 상황에 처한 이유가 무엇인가?그 이유는 중생은 눈뜬 장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그래서 ..
우리나라에는 전통적으로 천지신명에게 기도하는 풍습이 있었다.이러한 풍습은 모든 인류에게 보편적인 것으로,인간에게는 조금의 흠이나 부족함을 용납하지 않는 완전함을 추구하는 마음이란 존재를 가지고 있어서 자신의 불완전함을 전지전능한 절대자에게 의지하여 보완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천지신명이라고 하는 절대적 존재를 상정하여 그에게 의존하여 가피를 구하려 했다.이러한 절대자에 의존하는 신앙 형태를 원시신앙이라고 한다. 원시신앙은 장엄한 자연 현상 자체에 초월적인 힘과 정신이 깃들어 있다고 보고엄청난 자연 전체에 대해 절대적인 권능을 부여하여 가장 큰 신으로 섬겼던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절대적 존재는 인간의 감정 속에 불명확하게 생겨난 신이기 때문에 그 실체가 애매하다.자연..
오늘날 악인이 벌을 받지 않고 큰소리치며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은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며 실제 현실 속에도 그런 면이 많다.그러나 세상이 그렇게 악으로만 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그 속에도 완전한 인과법은 살아 숨 쉬고 있으니그 이치를 잘 알아야 세상을 바로 이해하게 된다. 태초에 사람들의 양심이 빛나고 모든 것이 이치대로 돌아가는 밝은 세상이 있었다.그런데 문명이 발전하고 인간의 무지와 욕망과 업이 커지면서 세상은 점점 더 어두워져갔다.그러자 지은대로 받는 인과의 이치를 어기고 악을 지어 자기 욕심을 차리려고 사람들이 생겨났다.그들은 지은대로 받는 인과의 질서를 흐트러뜨려 자기가 지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 얕은꾀를 부렸다. 그리하여 질서를 무너뜨리는 원인을 짓자, 인과의 이치상 당연..
이 세상에는 세상의 실상을 보신 눈뜬 사람과 눈앞의 일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눈을 뜨신 분을 우리는 성인이라고 하고 보지 못하는 자를 중생, 다른 말로 눈뜬장님이라고 한다. 인류는 중생의 삶을 살아 왔다.그래서 인류는 자신이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죽어 어디로 가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그래서 현대는 죽음에 대해 이렇게 헤매고 있는 것이다. 과거 세상을 보신 성자들은 깨달음의 눈을 얻어 생명의 길을 분명히 일러 주셨다. 그러나 지금 인류는 욕망과 어리석음으로 인해 그 길을 망각하고 또 다시 어둠과 무의미 속을 헤매고 있다.따라서 눈앞의 일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장님들끼리 아무리 코끼리를 만지고 코끼리의 모습을 이야기해도 진짜 코끼리는 알 수 없는 법이다. 따라서 죽음의 실상을 알고자 한다..
좋은 일에 대해 오해가 있는 것 같아 좀 자세히 이야기하겠습니다. 좋은 일을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것이 좋습니다. 자기가 돈이 많고 동정심이 많아 남을 도와주는 것은 안하는 것보다 하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다만 남에게 이용당하거나 위선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의 선한 마음과 동정심을 이용하여 자선사업을 벌여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선사업가들 중에는 봉사활동을 이용하여 자기의 이익을 도모하는 자들이 많으며 연예인들은 기부행위를 자신의 인기관리를 위해 이용하는 경우가 많고 종교인들은 복지사업을 통해 종파의 이익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일은 큰 공덕이 되지 못합니다. 따라서 참된 사랑에는 반드시 진실과 정의와 양심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없으면 위선적일 수..
세상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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