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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모든 법칙은 수학의 공식처럼 되어 있다. 본문

☆ 자연의 가르침

알고 보면 모든 법칙은 수학의 공식처럼 되어 있다.

gincil 2014. 1. 5. 18:40

우리들이 알아야 하는 것은, 세상 일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세상에 어떤 문제들이 존재하고 있는가를 아는 일이다. 그리고 그런 문제들이 어떠한 과정에 의해서 풀어지고 만들어지는가 하는 것을 아는 일이다.


우리는 자기에 의해서 자기를 통제할 수 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의식 속에 있는 일에 의해서 모든 것을 판단하고 모든 것을 스스로 신뢰하게 된다는 것이다.


세상의 어느 곳에서도 이러한 법칙의 세계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지 않다. 단지 과학자들의 세계에서만 하나의 문제에 공식을 활용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자연계의 법칙을 적용하고 있다. 그래서 색깔을 만들어내고 물질을 만들어내고 또 물질이 갖는 성질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계를 통해서 자기의 의식을 더 좋아지게 하는 법을 얼마든지 배울 수 있지만 누구든지 자기 속에 있는 것들이 끊임없이 활동을 하기 때문에 진실을 받아들이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깨닫기 전에는 진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렵고, 깨닫게 되면 거짓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고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의 역사 속에 있었던 성인들의 말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노자는 말하기를,

"하인(下人)은 진리를 들으면 비웃거나 성을 내고, 중인(中人)은 반신반의하고, 상인(上人)은 기뻐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상인이 과연 어디에 있는지 만나기가 어렵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이 그를 이상하게 보고 야유를 하자 말하기를,

"너 자신을 알라."고 했다.

사람들 자신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알라고 충고한 것이다.

 

예수는 사람들이 진리에 눈멀어 있는 것을 보고 가르치려고 하니,

"아버지가 죽었는데 장례를 치르고 따라가겠다."해서

"죽은 자는 죽은 자한테 맡겨라."고 말했다.

그래서 살 자는 산 자를 따라가야 된다는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그리고 부처는 이런 말을 남겼다.

"일반 사람들은 눈뜬장님과 같다."

사람들은 있는 일을 보아도, 있는 일이 왜 그렇게 있게 되는지를 아무도 모르니까 눈 뜬 장님이라고 말한 것이다.

 

사람들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공부는 잘 외운다. 국어, 영어, 수학, 역사...... 이렇게 많은 내용들을 밤낮으로 읽고 머리 속에 집어 넣는다.


그런데 왜 이 간단한 법칙 속에 있는 일들은 아무도 들으려 하지도 않거니와 듣고도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는가?


사람은 자기 속에 있는 것에 의해서 조종을 받고 그 충동에 의해서 움직이게 되는데 자기 속에 없는 것이 나타나면 누구든지 그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 인간의 세계에 진리적인 가르침이 전해지지 않는 것은 사람들이 업을 지고 있기 때문이며, 진리를 버리고 진리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말하기를, 많은 종교학자나 철학자들이 연구하고 있지 않겠느냐고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독사에게 물을 주면 독이 되고, 사슴이 물을 먹으면 녹용이 된다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큰 업을 가진 사람이 깨닫지 못한 채 좋은 공부를 하게 되면 그것은 독으로 변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을 자기 속에서 변질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물이 왜 독으로 변하는가? 독사가 먹었기 때문에 독사 몸 속의 기관을 통해서 물이 독으로 변한 것이다. 왜 물이 녹용이 되는가? 사슴이 먹으니까 사슴 몸 속의 기관에서 변해 녹용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똑 같은 것을 누가 가졌느냐에 따라서 그것은 보물이 될 수도 있고, 흉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왜 사람들이 좋은 것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운가? 좋은 일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좋은 일을 받아들이는 게 힘들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강조하고 가장 많이 언급하는 내용은 사랑과 진리이다.


'사랑' 그리고 '진리'

진리란 현상계를 있게 하는 법칙을 말하는 것이고, 사랑이라는 것은 어떤 대상에 대한 축복을 말하는 것이다.

유럽의 헝가리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철학자인 보이드를 만났을 때,

"너는 사랑을 어떻게 배웠으며 어떻게 가르쳐 왔느냐?"라고 묻자

보이드는 "사랑은 말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이 철학자는 사랑에 대해서 모른다는 말이다.

 

자연의 가르침은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 항상 사랑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 사랑은 항상 사람들에게 양심(良心)과 정의(正義)를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양심은 마음을 밝히는 길이고, 정의는 세상을 밝히는 길이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는 것이다.


밝은 마음을 가지고 밝은 세상에 산다면 인간의 삶에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래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 빵을 주고 돈을 주고 먹여 살리는 것은 큰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과신 행위일 뿐이다. 자기가 동정심이 많고 인간애가 많다는 것을 과신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그렇게 하다가 경우가 달라지면 하지 않는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우리를 가장 많이 속이고, 많은 피해를 입히는 대상을 분류해 보면 그것은 위선자들이다. 그들은 항상 착한 사람처럼 미소를 짓고, 항상 정직한 것처럼 말하지만 이들의 이면을 살펴보면 너무나 사악하고 무서운 내막이 숨겨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랑이라는 것은 상대나 대상에게 축복이 되었을 때 사랑이라고 한다.


그리고 축복은 어디에서 보아야 하는가? 결과에서 보아야 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을 때는 '실패한 사랑'이며, 아무리 노력했지만 잘못된 현실을 있게 했을 때는 '잘못된 사랑'이다.


세상에서는 실패한 사랑이나 잘못된 사랑은 많아도 진정한 사랑은 보기가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이 어둡고, 그 세상에서는 항상 시비가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좋은 사랑에 대한 가르침이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자연의 가르침이 필요한 것이다. 아무리 세계적인 대학교수나 석학일지라도 자연의 가르침 속에 있는 진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사람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읽거나 듣거나 보아야 할 어떠한 필요성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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