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진실을 찾아서

기수행, 명상은 안하는 게 좋은겁니까? 본문

☆ 진실의 근원

기수행, 명상은 안하는 게 좋은겁니까?

gincil 2013. 4. 27. 12:46

종교, 명상, 기수행은 할 필요가 없고 선행을 해야 한다 이렇게 이해했는데

그럼 그냥 보통 사람이  종교 등에 관심 안 갖고 착하게 사는 것과 같지 않는가?


그렇다! 진리는 일상생활 속에 있는 것이다.

진실은 우리 주변의 삶과 세상 속에 있는 사실들이고

진리는 그러한 사실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이치를 말한다.


그러니 삶을 떠나 어디서 진실과 진리를 찾고

어디에서 자신을 농사짓는단 말인가?


인간은 삶을 살기 위해 세상에 나온 것이지

종교나 수행과 같은 곁가지 일을 살기 위해 세상에 나온 것이 아니다.

따라서 현실을 떠나서는 생활이 존재할 수 없고

현실의 삶이 없이는 인간 농사가 불가능한 것이다.


수행이 착하게 사는 것과 다른 것이 없지 않는가 하고 물었다.


그렇다. 착하고 바르게 사는 것이 가장 올바른 삶의 길이며 참된 수행법이다.


하지만 세상사람들은 삶의 실상과 이치를 몰라

어떻게 해야 착하고 바르게 사는지

어떻게 해야 공덕을 쌓아 영혼을 열매 맺을 수 있는지에 대해 모른다.


그럼 어떻게 우주의 실상과 진리를 알고 삶의 길을 볼 것인가?


참된 진실과 진리는 요즘 과학이 추구하는 바와 같다.

과학이란 사실에 근거하여 진리를 밝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은 진실을 보는 눈이 없는 중생들이 

자신들의 한정된 시각에 근거하여 추론을 정립해놓은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사실에 근거하기는 하지만

본질적인 면에 이르게 되면 전혀 실상과 다른 경우가 많다.


물질과학은 어느 정도 사실에 근접하였지만 물질의 근원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고 있고

생명과 진리와 관련된 부분은 거의 어린아이 수준이거나 오히려 일반인보다 못하다.

자신이 확인할 수 있는 부분까지만 언급하면 좋은데 

인간의 거짓됨이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부분까지 함부로 단정하기 때문이다.


생명과 영혼과 기운과 삶과 이치와 현상과의 관계에 대해서 전혀 모르면서

일반인들이 항상 삶속에 느끼고 있는 영혼과 기운의 존재마저 부정한 채

유물적 논리만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지금 물리학자들은 물질의 근원을 물질에만 한정하고 의식의 존재를 도외시하여

이 우주 속에 물질보다 더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는 의식과 생명 현상의 출현에 대해서는 

접근조차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영적 문제를 인간의 정신적 착각으로 해석하고 

인문학자들은 자신의 편견과 논리로 세상을 제멋대로 재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뿌연 안개 속에서 세상을 자기 생각으로 그리고 있는 학자들의 가설을 근거로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따라서 과학은 실상을 파악하는데 참고사항 정도인 것이다.


내가 기존의 모든 수행법과 종교를 벗어나 좋은 생활을 강조하는 것은

기존의 종교와 수행과 과학이 모두 큰 문제를 안고 있어

오히려 인간의 삶을 망치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는 성자들이 밝힌 진리를 전하는 곳이다.

그러나 지금의 종교는 성자들이 밝힌 진리의 법음을 그대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성자들이 밝힌 진리가 구전과 기억을 통해 전해오다 수백년이 지난 후에 문자화된 관계로

당시의 생명력과 내용은 거의 사라지고 대강의 뜻과 요지 정도만 남았다.


따라서 지금 전해지는 것은 성자들이 가르친 기본 뜻 위에 

후대의 제자들이 생각으로 각색해 놓은 이야기를 정리해 놓은 것이다.


지금의 불교에 힌두교적 색채와 관념이 가득하고

기독교에 유대교적 신앙과 관념이 가득한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의 종교는 진리의 본질적 면을 잃어버리고 관념과 환상이 가득해 

실상과 이치를 중시하는 진리적 측면에서 보면 

생생한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 종교에 몰두하는 것보다 

더 진실하고 소중하며 가치가 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종교인들은 극렬히 반대하겠지만

종교를 믿지 않고 현실을 충실하게 사는 사람들이 

종교를 믿는 신자들보다 구원을 받을 가능성이 더 크다.


왜냐하면 지금 기독교는 자신의 농사를 짓는 것보다 신의 가호와 은총을 더 중시하며

잘못된 교리로 죽어서도 구원을 받을 줄 알고 떠나지 못하고 이승을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죽은 교인들의 영혼은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끝없는 고통에 시달리며

아무리 기다려도 구원이 오지 않자 자기가 머물던 교회에 머물며 

성령현상을 일으키는 주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교인들이 일반인보다 구원을 쉽게 받을 수 있겠는가?


불교도 마찬가지이다. 불교가 깨달음의 종교라 하는데

요즘 불교신자들은 깨우침과 실천을 통해 자신을 닦을 생각을 하지 않고

공덕이나 진리와 아무 관계가 없는 염불과 명상으로 시간을 보내고

수능기도와 같은 각종 기원제가 성행한다.


명상과 참선도 마찬가지이다.

자신 속에 업이 많은 중생이 깨닫는다고 가만히 앉아 

아무 원인도 짓지 않고 헛되이 마음만 비추어보고 있으니 

인과의 이치상 과거로부터 물려온 영혼을 변화시킬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마음에는 깨우침이 없고 지은 공덕이 없어

전생에 지은 업을 제거하여 영혼의 완성을 이룰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현실의 생생한 삶 속에 참된 인간농사를 짓는 길이 있으니 

그동안 전해져오던 곁가지 삶인 형식적이고 관념적인 수행은 잊고

삶의 바탕인 현실 속에서 완성에 이르는 생명의 길을 열심히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참된 삶이며 참된 수행인 것이다.


삶을 통해 참된 인간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먼저 진리와 실상을 보아야 한다.

탐욕과 환상에 물든 중생의 시각으로서는 

바른 삶과 바른 세상을 위한 공덕을 지을 수가 없는 것이다.


지금 사회 각 분야에서 모든 사람들이 자신과 세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모두 열심히 최선을 다해 일한다고 말하는데

세상은 인간상실과 인류파멸의 위기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그 이유는 길을 보지 못하는 장님들이 자기 딴에는 좋은 일을 한다고 하는데 

속으로는 개인적 욕심이 앞서 자신과 세상을 망치는 잘못된 원인을 짓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세상은 아무 곳에서도 길을 찾을 수 없는 상실의 시대, 불확실성의 시대라 한다.

그러니 참된 진리를 만나지 않으면 다람쥐가 쳇바퀴 돌 듯 어둠 속을 헤매게 될 뿐이다.


따라서 먼저 세상의 진실과 이치를 알아야 할 것이니

실상과 일치한 참된 깨달음의 인연을 만나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바른 진실을 만날 것인가?


전생에 큰 공덕으로 선한 근본이 있어야 한다.

좋은 근본이 없는 자는 진실을 싫어하고 환상과 거짓을 좋아하기 때문에

진리를 만나도 알아보지 못한다.

따라서 인연이 있어 이곳을 찾아오신 분들은

매우 큰 전생의 공덕이 있고 진실이 큰 분이다.


그럼 이곳에서 가르치는 진실은 무엇인가?


먼저 이 세상이 완전한 조물주의 뜻에 의해 나타난 완전한 법계라는 것이다.

조물주의 전능한 뜻은 완전한 이 세상과 진리로 나타나 

한치의 어김없는 이치로 끝없이 순환하며 세상을 영속시키고 있다.


그 속에 생명과 인간이 가는 길이 정해져 있으니

인간은 정해져있는 생명의 길을 찾아 완성에 이르러야 하는 것이다.


인간은 거짓없이 이치대로 살면 마음이 맑고 평안해져

세상을 바로보고 좋은 결과를 얻게 되며

맑고 좋은 영혼을 얻어 영생과 완성에 이르게 된다.


이 길을 잃어버리고 탐욕에 눈이 어두워 거짓을 하고 죄를 저지르면

그 마음이 어둡고 병들어 삶속에 불행이 나타나고

그 영혼을 망치고 세상을 파멸시키며 지옥에 떨어져 자신의 영혼마저 잃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완전한 하늘의 뜻이니 열심히 바른 뜻을 전하고 실천해

자신의 영혼을 농사짓고 잘못된 세상을 정화하여

좋은 영혼과 좋은 세상을 거두어야 하는 것이다.


즉 좋은 마음이 좋은 원인을 낳고 

좋은 원인이 좋은 삶과 좋은 영혼과 좋은 세상과 이어지는 것이니

이러한 이치를 깨쳐 세상을 보는 눈과 지혜를 익혀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깨우침이 계속 커져 세상을 보는 눈이 생기면

세상이 이루어지고 흘러가는 모습이 보이게 되고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알게 된다.


자신이 태어난 보람과 가치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나타나고

자신의 욕망보다 더 소중한 일들이 드러나 

거짓과 사심을 버리고 바른 이치와 세상을 위해 노력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영혼을 망칠 거짓된 허명과 권세가 그 중요성을 잃고

다 놓고 떠나야 할 재물에 마음을 뺏기지 않는 것이다.


삿된 욕심을 채우는 것보다 

어두운 세상을 밝히고 아파하는 인류를 구하는 일이 더 중요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깨우침이 계속되어 선근이 자라면 

양심과 용기가 커져 공덕을 짓게 된다.


그러면 각자의 근기에 따라 열심히 자신과 세상을 위해 농사지으면 된다.


자신을 닦고자 하는 자는 

거짓을 버리고 부지런히 노력하여 좋은 영혼과 안정된 삶을 얻으면 될 것이고


세상을 구하고자 하는 자는

바른 이치를 세상에 전하고 실천해 진리와 정의를 구현하고

거짓과 불신과 불행이 없는 공정하고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각자의 근기와 공덕에 따라 영혼의 결실이 나타날 것이니

완전한 깨달음을 얻고자 한다면

어둠과 고통 속에 헤매는 인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어야 한다.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하늘도 꺽을 수 없는 용기와 땅이 꺼져도 움직이지 않는 양심이 있어야 한다.


그 선근이 우주만큼 큰 자가 아니면 우주의 열매인 인간완성에 이를 수 없는 것이니

깨달음을 얻고자 욕심을 부릴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세상을 사랑하고 진실하고자 하는 마음이 

과연 세상을 담을 수 있을만큼 크고 완전한지를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만약 근기가 되지 않는 이가 욕심으로 깨달음을 얻고자 하면

그 몸이 망가지거나 환상 속에서 거짓을 보게 되며

귀신의 노예가 되는 불행한 일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참된 삶의 길은 단순한 봉사활동 정도의 일이 아니다.


건실하고 부강한 경제를 만드는 일이며

참되고 유능한 인간을 육성하는 교육을 살리는 일이며

부정부패없고 공정한 정치를 만드는 일이며

인간완성으로 이어지는 영혼을 구하는 길이며

변화기에 처한 인류를 구원하는 길이다.


그러니 이러한 중요한 삶의 길을 버리고

가만히 앉아 어디서 자신을 깨닫고 세상에 복을 지을 것인가?


그리고 매일 잘하겠다는 다짐의 기도를 해야 하는지 

드물게 해도 상관없는지 물었다.


인간의 소망은 삶을 살아가면서 매우 소중한 일이다.

자신을 좋은 곳으로 나아가게 하는 나침반과 같은 것이다.


신에게 의지하는 기도가 아닌

자신의 결심을 다지고 잘못된 자신을 회개하는 기도는 진정 필요한 것이다.




>허해구선생님의 책을 읽고 종교, 명상, 기수행은 할 필요가 없고 선행을 해야한다 이렇게 이해했는데요.

>그럼 그냥 보통 사람이  종교 등에 관심 안갖고 착하게 사는 것과 같지 않나요?

>그리고 선업은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는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그 밖에 또 뭐가 있을까요?

>선업이 어떤 것인지 확실하게 안떠오릅니다.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선업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또 그게 사람들을 위한 거라면 선업인 것 같기도 하고. 

>선생님께서 이상적인 생활의 모델을 좀 적어주셨음 좋겠어요. 

>매일 잘하겠다는 다짐의 기도를 해야 하는지 드물게 해도 상관없는지 그것도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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