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진실을 찾아서
어두운 세상에 길은 있는가? 본문
너무나 어둡고 암울한 세상이다.
눈을 들어 보아도 길은 보이지 않고
무의미하고 혼돈스러운 일상이 계속된다.
선하고 정의로운 자들은 가난하고 핍박 받으며,
악하고 약은 자가 성공하고,
부패하고 탐욕스런 자들이 세상의 부귀를 누리고 있다.
그래서 어떤 철학자는 오늘의 현실을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상태를 넘어선 25시라 하였다.
이런 세상에 어찌 길이 있을까 보냐?
그저 한세상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출세를 해 세상을 내려보며
내 하고 싶은 것 멋대로 하면서 사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세상살이가 아니겠는가?"
바로 이런 생각이 오늘날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일반적인 관념인 것 같다.
그러나 이렇게 보이는 세상 속에도 분명히 길이 있다.
만약 이것이 존재하지 않고 되는대로 이루어지는 세상이라면
인류의 문명과 우리들의 삶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돌을 던질 때
그 돌이 하늘로 갑자기 치솟는다던가 아니면
계속 수평으로 날아가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우리들은 돌을 던질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이 매일 출근하고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그 일의 결과가 우리들이 바라는 바대로 이루어질 것이란
자신도 알지 못하는 무의식적인 확신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아무것도 믿지 못하고 어떠한 결과도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이 온다면
우리들은 그저 가만히 있는 것이 가장 현명한 길이 될 것이며
세상은 그 순간 죽어버리고 말 것이다.
그 동안 우리들은 우리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너무나 많이 목격했기 때문에
이러한 세상이 유지되고 있는 현실은 온통 제멋대로인 혼동덩어리일 뿐
법과 진리와 참된 삶의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나쁜 원인이 많아지면
결국 그 사회는 붕괴하게 된다는 자연의 엄연한 법칙을
우리는 국가부도사태를 통하여 현실에서 분명히 목격함으로써
아직도 우리들이 지키고 살아야 할
자연의 이법과 인간의 길이 살아있음을 분명히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세상에는 뜻이 없는 것이 하나도 없으며
자연의 이법에 걸리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세상에 생명이 존재하는 것에도 분명한 이유가 있고
신성하고 귀한 존재인 인간이 나타나
살아가는 데에도 분명한 목적도 있다.
다만 인간은 그 뜻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영원하고 불변하는 진리는 항상 그대의 주변에 머물고 있다.
정성스레 잘 키운 화초에는 열매를 맺는 이치가 깃들어 있고
술에 찌든 천한 인간에게는 지나친 욕망과 게으름으로
자기파멸에 이르는 이치가 있는 것이다.
그대의 말 한마디를 잊지 못하여 찾아오는 인연에도
정이란 깊은 이치가 숨어있으며
그대의 작은 행동 앞에 얼굴을 붉히고 화를 내는 동료의 몸짓에도
완벽한 생명의 이치가 숨어 있는 것이다.
이 우주 속에는 원인과 결과의 인과고리가
한치의 오차도 없이 그물망처럼 촘촘히 얽혀 있어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이 완벽한 이법의 고리를
조금도 벗어나 살 수가 없는 것이다.
길을 모르는 자들은 세상에 진리가 없다고 이야기하고
현대문명과 학문들도
이세상은 오직 우연이며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자신도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함부로 세상에 떠벌린다.
그리하여 삶의 의미를 찾아야만
존재가치를 느끼는 인간의 마음은
현대학문과 자본주의 물질문명의 무의미성과 탐욕 앞에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이것이 인류에게 얼마만한 해독을 가져다 주고 있는지
현대의 지식인들은 알지 못한다.
현대과학이 한 짓은 인간으로 하여금
고귀한 인간의 존재가치를 스스로 부정하게 하고
무의미와 욕망으로 이끄는 악마의 죄를 저지른 것이다.
생각해 보라!
현대문명이 이끌고 갈 우리의 미래가
과연 인류에게 어떠한 희망과 이상을 제시해 줄 것인가를........
미래의 인류는 더욱 바쁜 긴장과 고통 속에서
인간다운 삶을 더욱 상실하게 될 것이며 환경은 파괴되고
오직 동물적인 욕망과 투쟁에 부패하고 비틀어질 것이며
아무런 희망과 이상이 없는 가운데 동물적인 생존을 안타까워 하며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인간이 우주 속에 존재하는 생명의 참다운 목적과 의미를 알지 못한다면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성경의 말씀대로
인간이 지어내는 어떠한 문명과 지식들도
모두 껍질이요, 환상에 불과 할 뿐이다.
죽는 순간까지 자신이 왜 살았는지
자신의 삶의 가치가 무엇이었는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인생을 마쳤다면
그의 인생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인간이란 우주에서 의미를 느끼는 유일한 존재이고
우주자체가 인간에게 의미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존재하는 의미와 가치를 상실한다면
살아가야 할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세상이 혼동과 무의미, 무질서로
제멋대로 굴러간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의식이 깨인 사람들은
우주의 영원하고 완벽한 생명력의 조화와 율동을 보며
인간의 삶과 생명이 가장 고귀하고 의미 있는 존재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된다.
그래서 20세기 최고의 석학인 아인슈타인은
거대한 우주에는 초월자의 완전한 뜻이 깃들어 있다고
단정적으로 결론을 내렸고,
파스칼은 모든 것은 보이지 않지만
서로의 일부분이 되어 존재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고 했던 것이다.
이 우주는 생생하게 살아 숨쉬고 있는 완벽한 조화력을 갖춘 생명체다.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를 자신의 몸의 일부로서 가지고 있는 우주는
살아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인과율의 피할 수 없는 결론인 것이다.
살아있는 우주의 뇌는 생명력이며
인간의 의식은 곧 생명력의 정화이기 때문에
인간의 의식은 지금도 이 지구상에 가득 차 지구의 영혼으로서
우주의 순환과 율동의 핵심으로 정확히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영혼이 완성된 성자들은
모두 하나로 어울려 돌아가는 우주전체의 모습과 이치를 보았기에,
삼세제불의 말은 서로 전하지 않았지만 모두 하나였고
성자들의 말은 대륙을 떨어져 있어도 하나로 관통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말은 모두 하나같이 인간의 고귀한 의미와 가치를 이야기 하였고
인간정신의 완성이 인간존재의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것을
밝히 드러내셨다.
성자들의 말이 지금도 인류의 마지막 빛으로 존경되는 이유는
그들의 지혜만이 인류의 짐을 덜어주고
인간의 삶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 주기 때문이다.
이 우주 속에 인간의 정신보다 더 고귀하고 소중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인간정신이 존재함으로서 이 우주는 의미를 가지고 존재하게 되며
거대한 우주체계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우주의 근본이 본질적으로 의미이고 뜻이기 때문이다.
다만 세상사람들은 이러한 신비를 매일매일 체험하면서도
일상화로 말미암아 자신이 느끼고 생각하고 의식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오묘한가를 망각하고 있다.
그러나 만약 돌멩이가 인간의 의식과 생명을 바라볼 수 있다면
인간의 의식은 도대체 무엇이길레
스스로 뜻을 짓고 의식하면서 우주의 주인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보이지도 않는 생명의식이 우주전체를 뒤흔드는 엄청난 힘과 신비를
발휘할 수 있는가에 대해 탄복과 경탄을 금치 못할 것이다.
우주를 항상 전체적으로 보아왔던 동양의 지혜는
이를 "一體唯心造" 라는 미학적 어휘로 정확히 잘 표현했던 것이다.
인간의 생명과 정신이 이처럼 고귀하고 위대한 것이라면
우리는 존재하고 있는 이 순간을
진정 보람되고 가치 있게 꾸며나가야 하는 것이다.
생명이 우주 속에 거대한 의미로 존재하고 있고
우주전체가 완전한 인과의 이치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은
곧 우리에게 좋은 인연의 이치에 따라
바른길을 걸어가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세상에서 나쁜 씨앗을 뿌리면 나쁜 열매를 거두며
좋은 씨앗을 심으면 좋은 열매를 얻는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이치이기 때문에
우리들은 우리들의 삶이 빚어내는 인과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이 우주법계는 인과의 이치가 완벽히 성립되는
거대한 조화체이기 때문에
그곳에는 수많은 원인과 결과가 끝없는 실타레를 이루며
엮어져 가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불의에 시달리며
무의미와 혼돈 속에 헤매고 있는 현실은
바로 우주의 주체인 인간들이 설마 내게 무슨 죄가 돌아올 것인가 하고
인과의 이치를 무시한 체
자신의 욕심만 앞세워 함부로 저지른 악의 댓가를
우리들이 받고 있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인간정신과 생명의 고귀한 의미와 가치를 알고
완전한 우주의 조화를 믿는다면
인간은 함부로 살 수가 없으며
바른 선과를 지을 수 밖에 없다는 필연적인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것을 아는 자만이 삶의 의미를 가지게 되며
이와 같은 길이 있기에 세상은 살 가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 지은 좋은 뜻은 모든 사람이 마음 놓고 이치대로 살 수 있는
밝은 세상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며
우주의 열매인 정신의 완성에 기여하게 되고
살아서는 그 삶을 가치 있게 만들며
죽어서는 후손과 자신에게 좋은 생을 약속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세속의 삶은 항상 청탁의 흐름이 혼재해 있는 것이 현실이고
그 속에는 각자가 지은 업에 따라 정확한 인과의 보를 받는
순환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속에는 정신이 깨끗한 자와 혼탁한 자,
기운이 강한 자와 약한 자가 항상 같이 살아가게 되는데
이와 같이 살아가는 모습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진리를 받아들이는 정도도 각자가 다르게 된다.
소크라테스도 이야기 했듯이
뛰어난 사람은 한무리에서 항상 소수에 불과한 것이
자연의 법칙이므로
진리에 대한 이해와 인연이 깊은 사람도
소수에 그칠 수 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항상 그래왔듯이 밝은 세상을 위해 공덕을 짓는 일은
오직 정신이 맑고 깨끗한 소수의 선근 있는 자의 몫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항상 밝은 이치보다 욕망을 쫓아가게 되어있고
정과 집착 속에서 끈적끈적한 애욕에 뒹굴다
허망한 삶을 마치는 운명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세상일들이 다 그렇게 흘러간다 하더라도
세상은 유지되고 발전되어 나가는 것은
삶의 기준이 되는 인과의 법칙을 지키고
행하는 선근 있는 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원리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아무리 세상이 혼탁하더라도
세상을 지키고 밝은 사회를 만들어 나가려는
덕행과 사랑과 자비가
최고의 가치로서 자리잡지 않으면 안된다.
한나라가 건강하고 병든 정도는
바로 이러한 중심가치가 그 사회에 얼마나 똑바로 자리잡고 있으며
이를 인지하고 있는 사회지도층이
얼마나 많은가에 달려있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도 항상 말씀하셨듯이 정법의 길은
항상 선근이 있는 소수의 사람만이 좋아하고 인연을 만나게 된다.
인간으로 태어난 삶을
의미있고 보람있게 보내고자 하는 선근 있는 자는
병든 세상이 요구하고 있는
지위와 출세와 부귀라는 헛된 환상에서 과감히 뛰쳐나와
인류와 밝은 세상에 대한 소망과 사랑으로
정행과 인간완성에 힘써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인간으로서 가야 할 유일한 길이고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길에 그대를 초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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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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