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진실을 찾아서
인생의 의미와 진리의 존재성 본문
인생이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생각을 가진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심각히 고민하는 문제지만 유사이래 우주의 비밀을 직접 볼 수 있었던 소수의 성자들을 제외하고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그대와 좋은 인연이 있어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됨을 무척 기쁘게 생각합니다.
현대인들은 대부분 이 세상이 무질서하고 무의미하며 동물적인 생존만 존재하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과학자들도 눈앞에 보이는 생명현상을 물리화학적으로만 분석하여 생명의 근본이 유기물의 복합체에 불과하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현대문명의 흐름은 이 우주가 물질을 근거로 우연히 생겨났으며 세상에 불변의 진리나 가치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고 하는 유물론과 회의론이 주류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방식이 인류에게 얼마만한 해독을 가져다 줄 것인지에 대해 현대의 지식인들은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지만 지금 현대문명과 학문이 하고 있는 짓은 인간으로 하여금 신성한 존재가치를 스스로 부정하게 하고 삶을 무의미와 욕망으로 이끌게 하는 악마의 전령사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 세상 속에는 생명이 나타나 움직이고 있으며 우주에서 가장 영향력이 크고 신묘한 의식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물질보다 더욱 중요한 우주의 본질적인 특징으로서 변화를 일으키고 역사를 꾸미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현상들이 원인이 있어야만 나타난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수많은 생명이 나타나고 의식이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우주 속에 생명과 의식작용의 근원이 되는 요소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만약 이러한 원인이 우주 속에 본질적으로 내재하지 않고 있다면 이 우주 속에는 영원히 생명과 의식이 나타날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생명과 정신을 무시하고 물질이 우주의 본질이라고 견강부회하고 있는 현대과학의 주장들은 비이성적이며 비과학적인 독단이며 편협한 이데올르기에 불과하다고 할 것입니다.
이러한 생명과 의식의 근원이 되는 신성한 존재에 대해 눈이 어두운 자들은 이를 부정하고 있으나 선천적으로 마음이 맑은 사람들은 본성적으로 느끼고 있었음을 우리는 역사 속에서 많이 발견하게 되며 우주의 모든 비밀과 진리를 보신 성자들도 한결같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20세기 최고의 석학인 아인슈타인은 거대한 우주에는 초월자의 완전한 뜻이 깃들어 있다고 결론 내렸으며, 파스칼은 보이지 않지만 모든 것은 서로의 일부분이 되어 존재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또한, 부처님께서는 '나는 전생에 수많은 생을 돌며 인간이 가야 할 바른 길(공덕)을 쌓았으며 전생에서는 아라한의 세계에 머물다 이생에 이르러 비로소 공덕을 완전히 하여 완전한 해탈에 이르렀다'고 하셨으며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내 아버지'라고 하시면서 '몸만 죽이는 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몸과 영혼을 모두 멸할 수 있는 하느님을 두려워하라'하셨고 '올바른 삶을 실천함으로써 천국에서의 영생을 얻으라'고 하셨으며
소크라테스도 다이몬이라는 하늘의 뜻을 받아 세상에 올바른 이치와 바른 삶을 가르친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 세상 속에서는 이러한 성스러움과 진리가 존재하기에 성자들은 하늘의 뜻을 지키며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신 것이며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까지 이를 지키려고 애를 썼던 것입니다.
오늘날과 같이 어지러운 세상의 눈멀고 어리석은 중생들은 이러한 완전한 진리와 우주의 신성함에 대해 부정하고 있지만
그것은 공기처럼 너무나 당연하여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을 뿐 그것은 물고기에 있어 물처럼 우리들의 삶에 절대적이고 치명적인 것입니다.
우리들은 매일 매일 학교나 회사에 나가 일을 하고 공부를 하고 있는데 이러한 일들은 매우 평범한 일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도 위대하고 완전한 자연의 법칙이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우리들이 매일 출근하여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내면 속에는 그러한 노력의 결과가 우리들이 바라는 바대로 이루어질 것이며 새로운 원인이 가해지지 않는 한 기존 사회질서는 계속 유지될 것이라는 인과의 법칙에 대한 내면적인 확신이 숨어있는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인과의 법칙이 작용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 속에는 어떠한 안정된 질서나 규칙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의 행동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전혀 예측하지 못하여 곧 세상은 붕괴되고 말 것입니다.
내가 남의 짐을 들어주는 일이 야단을 맞을지 칭찬을 받을지 알 수가 없고 돌멩이를 던지면 바로 앞에 떨어질지 우주로 날아갈지 확신할 수 없으며 눈앞에 있는 산과 도로가 자신의 속성대로 머물지 않고 제멋대로 움직인다면 어떠한 생활환경이나 사회질서도 유지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동안 우리들은 기성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너무나 많이 목격했기 때문에 이러한 영원한 진리와 참된 가치를 부정하기 쉽지만 이러한 혼란들은 인간들이 근시안적이고 단편적인 욕심으로 함부로 이치를 어기고 이기적인 행동을 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로서 오히려 인과의 법칙이 완벽하게 작용한 결과인 것입니다.
이러한 인과의 법칙은 지금도 한치의 어김없이 완벽하게 작용하고 있어서 좋은 원인이 많아지면 세상이 밝아지고 좋아지며 나쁜 원인이 많아지면 세상은 어두워지고 불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쁜 원인이 많아지면 반드시 그 사회는 붕괴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완전한 인과의 법칙을 지난 IMF 사태 때 뼈저리게 목격한 바가 있습니다.
즉 개발독재시절부터 쌓여온 수많은 악폐들 - 권력자들의 자의적이고 정실적인 자원배분, 투기적이고 부도덕한 자본가, 불성실하고 이기적인 노동자, 사치스럽고 무질서한 국민들, 출세 때문에 권력에 누워버린 무원칙한 공무원,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인 경쟁력 - 등이 계속 쌓여가자 더 이상 국가는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져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인과의 법칙을 무심코 간과하기 싶지만 이 우주 속에 이러한 완전한 이치와 생명의식이 존재한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완전한 신성의 존재를 전제로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만약 우주의 근원이 아무런 뜻과 의지를 가지지 않은 물질이라면 그 속에서 주어진 자극과 원인에 따라 완벽하게 반응하는 신비한 정신과 살아 생동하는 생명체가 생겨날 수 없을 것이며 수천년간의 우주운행과 사시사철의 변화를 한치의 오차 없이 계속해 나가는 엄청난 조화를 결코 이룰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주의 근원 속에는 이 세상을 완전한 뜻과 이치로 가꾸는 신성이 존재할 수 밖에 없으며 그 신성은 자신의 속성과 같은 생명과 의식으로 수많은 생명과 인간을 창조하여 자신의 완전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가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왜 완전한 신성이 완전한 상태에서 편안히 머물지 아니하고 다시 번뇌와 혼란이 가득한 세상을 창조하였는가' 하고 의문입니다.
그 이유는 완전성의 속성과 관련 있습니다. 완전함이란 끊임없이 완전성을 나타내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살아있는 완전함인 것이지 고요 속에 혼자 머무르는 죽어있는 완전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완전한 신성은 그 자체로 가만히 머물지 않고 자신의 속성에 따라 새로운 생명을 짓고 분신인 인간을 창조하여 지은 대로 받는 완전한 법칙을 통하여 완전한 세상을 펼치며
자신의 뜻에 따라 올바른 삶을 산 경우 완성에 이르게 함으로써 영원히 완전성의 약동을 계속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자신의 씨를 뿌려 새로운 자기를 수확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순환의 형태는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보편적인 존재방식인 것이며 모든 생명과 국가, 지구, 그리고 조물주조차 예외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완전한 신성도 그 자체로 가만히 머물지 않고 콩이 콩을 낳고 팥이 팥을 낳아 자신의 존재를 이어나가듯이
생명과 인간을 통하여 지은대로 받는 완전한 뜻을 나타내면서 바른 이치에 따라 살아간 자는 완성에 이르도록 함으로써 자신의 완전성을 영원히 계속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바로 우리가 그토록 알고 싶어했던 인생의 존재이유가 있습니다.
인생은 바로 이러한 신성의 완전한 뜻 속에서 신성의 열매를 거두는 과정인 것입니다.
즉 신성은 자신의 속성에 따라 의식과 생명체를 낳고 자신의 뜻에 따라 바르게 산 것은 점차 높은 의식을 갖게 하여 마침내 자신과 닮은 인간의 차원에 이르게 하는데
이러한 인간들 중에서도 맑은 지혜와 흔들리지 않는 기상으로 하늘의 뜻에 따른 올바른 이치를 흔들림 없이 계속 행하여 마침내 그 마음을 순수하게 정화하게 되면
그 마음에 우주의 진기가 100% 충만하게 되어 우주의 열매가 되게 됩니다.
우리들은 이들은 성자라고 일컫는데 이들은 우주의 꽃이며 열매로서 신성과 다시 하나됨으로써 하늘의 신성함과 완전함을 얻고 우주의 비밀과 이치를 모두 깨닫게 되어
인류에게 우주의 진실과 생명의 길을 가르침으로써 인류의 삶을 축복해 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들은 살아 우주의 열매가 되고 죽어 신성과 합일함으로써 다시 이 세상 속에 완전한 뜻을 짓는 창조주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데 이와 같이 하여 성자들은 완전한 신성이 세상 속에 씨를 뿌려 다시 열매를 맺는 순환고리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완전한 인간!
이것이야말로 모든 인간이 이르러야 할 궁극적인 목표이며 우리들이 살아가는 근본이유로서
인생은 바로 이와 같이 신성이 씨를 뿌려 자신과 같은 완전성을 지닌 열매를 거두는 결실의 과정인 것입니다.
이 세상은 완전한 이치가 펼쳐져 있는 신성한 법계로서 그 속에는 우리의 삶과 이 세상을 관장하는 영원불변하고 완전한 인과의 법칙이 자리잡고 있어서 바르고 좋은 뜻은 인간을 행복과 완성으로 이끌고 세상을 밝고 희망차게 하며 그르고 나쁜 뜻은 인간을 불행과 파멸로 이끌며 세상을 어둡고 절망스럽게 만듭니다.
따라서 하늘의 뜻에 따라 자연의 이치와 합일하게 살아간 자는 자신의 열매를 완성하여 완성에 이르게 되며, 하늘의 뜻과 이치를 모르고 얕은 생각과 탐심에서 이치를 어기고 나쁜 원인을 지은 자는 인간의 의미를 상실하고 불안과 고통으로 쭉정이가 되어 소멸하는 악보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길이 없고 인생이 무의미하다고 남을 해하며 쾌락 속에서 함부로 살아서는 안되는 것이며 진리와 인연을 가지고 우주의 이법에 따른 올바른 행위로써 완성에 이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성의 자식인 인간은 신성과 마찬가지로 살아 생동하는 생명의주체로서 우주의 주관자이며 결정되지 않은 미래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미래가 아직 결정되지 않았기에 모든 생명체는 살아있다고 하는 것이며 살아가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미래를 만들 것인가는 살아있는 생명주체들이 각자 짓는 원인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기에 어떠한 인생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는 전적으로 자신의 결심과 노력에 달려있다고 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인생이란 지은 대로 받는 완전한 우주의 법칙 속에서 더 나은 자신을 만드는 과정인 것이니 우주의 진실과 올바른 이치에 대해 배우고 인간의 의미와 가치를 깨달아 보람 있는 일을 행하는 것보다 더 소중한 일은 없다고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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