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진실을 찾아서
성욕과 완성 본문
모든 존재는 더 나은 자기를 이루기 위해 살아간다.
이것은 생명있는 존재의 공통된 과제이다.
사람도 삶을 통해 현재보다 더 나은 자기를 만들어야 하며
그 궁극적 목표가 완전한 평안과 완전한 밝음에 이르는 해탈인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존재를 안타깝게 여기고 축복해주는 자비심과 사랑,
모든 난관을 극복하는 강한 정신력,
그리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비치는 맑은 마음과
세상의 이치를 밝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욕망과 습에 의해 흔들리는 탁한 마음에서 벗어나
한점 흐림없는 맑은 마음을 얻어
모든 일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 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이며 수행의 본래 뜻이다.
그런데 자신 속에 존재하는 습과 욕망은
계기를 만나 새로운 원인을 짓지 않는 한 저절로 바뀌는 일은 없다.
모든 존재와 마찬가지로 습 또한 자기를 돌고 있어서
과거에 지은 거짓과 화냄과 어리석음과 같은 습은
이 생에서 세상 일을 만나면 또 다시 똑같은 현상을 되풀이해
호박은 호박대로, 수박은 수박대로 과거의 전철을 밟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습과 욕망이 많은 자는 평생을 자신 속에서 스멀스멀 피어나는 습 때문에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하고 탐욕과 어둠에 찌들어 불행 속에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수행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면 속에 있는 흐린 습과 욕망을 정화하여 맑은 마음을 얻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인연과 참된 진리를 만나
세상을 바로 보는 이치를 배우고 세상을 축복하는 선근을 얻어야 한다.
그리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
너무나 평범한 일 같지만 가장 쉽고 중요한 수행법이
현실 속에서 바른 이치대로 열심히 사는 것이다.
오늘날은 말세라 너무 혼탁해
현실을 사는 것이 자신을 닦기보다 오염시키는 면이 강하지만
그래도 인간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삶을 통하여 자신을 농사지으라는 뜻이니
선근있는 자는 말세의 탁류 속에서도 연꽃을 피우고
뼈를 깍는 절망을 자신을 정화하는 불꽃으로 활용한다.
즉 현실에 부딪히며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업의 제한으로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는 부족한 자신을 보게 되고
거짓과 탐욕으로 어두워진 불의한 세상을 보게 된다.
이때 현실의 어둠에 굴복하고 수동적으로 살면
자신의 습과 세상의 어둠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신을 망치게 되지만
선근이 있어 끝없이 자신을 태우고 밝은 세상을 위해 노력한다면
자신을 제한하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여 맑음과 지혜와 힘을 얻게 된다.
이치대로 부지런히 살아라.
그러면 마음이 맑아지고 편안해지며 결과가 생긴다.
세상이 바로 보이고 지혜가 생겨
모든 일에 잘 대처하게 되며 사회에서 인정받고 성공하게 된다.
세상을 이치대로 살아가면 환상과 어둠이 사라지고
세상을 축복하면 삿된 자기를 벗어나 완전한 맑음을 얻게 되는 것이다.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 속에 있는 인과법을 보며
세상을 이치대로 축복하는 한점 흐림없는 맑은 마음이 바로
불성이며 반야심이며 가장 순수한 기운인 것이다.
인과법은 명확하여
흐린 물을 맑게 하기 위해서는 맑은 물을 계속 부어야 하며
흐리게 하려면 흙탕물을 집어넣으면 된다.
칠불통계가 “모든 악은 짓지 말고 모든 선은 받들어 행하라”고 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어떠한 것에도 걸리지 않는 맑고 완전한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세상을 밝히고 축복하는 모든 일을 행해야 하는 것이며
자신의 내면에 숨어 맑음을 억제하고 있는 욕망과 습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습과 욕망이 내면에서 숨어있기에
중생들은 밝은 시각으로 세상을 보지 못하고
불안과 어리석음으로 불행을 맞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생물학적 인간의 기본욕구인 식욕과 성욕은
육체를 가진 인간의 가장 근본적 욕구이나
완성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극복해야할 대상이다.
인간은 육체적 성장과 번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육체를 기반으로 최종적으로 정신적 완성에 이르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물계에서 성욕은 생명을 좌우할 정도로 강력한 충동을 가지고 있으며
동물인 인간에게 있어서도 이겨내기 힘들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그중 가장 무리가 없는 방법은 부처님도 말씀하셨지만 중도이다.
수행에 있어서 지나친 쾌락이나 고행이 아니라
마음을 정상적으로 맑게 유지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셨듯이
성욕을 극복하는데 있어서도
금욕도 안되고 색광증과 같이 지나친 탐욕도 무리가 있는 것이며
정상적인 결혼 생활을 통한 해결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정상적인 생활이니 정신에 아무 무리를 주지 않으며
안정된 심리상태에서 자신을 닦을 공덕행을 더욱 힘차게 추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결혼을 한다고 해서 부처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결혼을 했지만 부처님도 깨달음을 얻었고 이삼한 스승님도 깨달음을 얻었다.
결혼을 통해 정상적인 성생활이 이루어 진다면
성이란 일상의 일처럼 평범한 일이 되어
진리를 찾고 세상을 축복하는 일에 지장이 되지 않을 것이며
자신을 완성으로 이끌어가는데도 지장을 주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열심히 삶을 살아가다보면
자신에 대한 집착이나 욕망보다 더 큰 가치와 세상일이 나타나게 되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공명정대한 맑은 정신과 세상을 축복하려는 사랑이 피어나게 된다.
그때는 자기 일신에게 한정된 성욕과 같은 욕망이나
부귀영화가 큰 의미없이 느껴져
마침내 모든 것을 극복한 완전한 마음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점 흐림없는 맑은 마음에는
오직 진리만 흐르고
세상을 이치대로 축복하는 사랑만 남게 되는 것이다.
>성적인 문제와 관련된 선생님 글을 읽어보면, 성이란 것이 인생의 젊은 시절에는 많은 부분을 차지 하지만 나이가 들어 가면서
>점점 작은 부분으로 변해갈 수 있어야 하는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같은 자연적인 변화는 어떤 과정을 통해 (또는 어떤 공덕을 통해) 일어나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예를 들면, 젊은 시절에 성적인 욕망들을 충분히 충족 시킴으로써^^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같은 욕망들이 줄어들게 되는건가요? 만약, 그같은 욕망들을 충분히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나이가 들어서도 성이 계속 큰 부분으로 남게 되는지요? 그게 아니라면 다른 어떤 공덕행의 과정을 거침으로서 성으로 부터 보다 초연할 수 있는 것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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